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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중 국

中 "출구전략 시기상조"… 세계, 한시름 덜다 (조선일보 2010-03-06 08:08)

中 "출구전략 시기상조"… 세계, 한시름 덜다

사상최대 '1조500억위안 적자재정' 편성, 家電·車 지원 유지… 신규 대출은 조여
"위안화 환율, 합리적·안정적으로 유지"

全人大 개막… 원자바오 총리 시정연설

"세계 경제 회복의 기초가 취약하고 금융 위험요소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중국 경제의 내생적 동력도 부족하다… 경제가 부분적으로 회복된다곤 하지만
각국의 출구전략이 난항 겪고 있지 않나"


성장목표 8%, 실업률 억제 목표 4.6%, 일자리 900만개 창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 정부업무보고는 지난해와 빼다박은 듯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가오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앞두고 잔뜩 긴장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 정도가 지난해와 달라진 점이었다.

원 총리의 이날 보고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재정 적자 규모이다. 중국은 올해 재정 적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1000억위안 늘어난 1조500억위안(약 175조원)으로 책정했다. 지난해와 비슷한 GDP(국내총생산)의 2.8% 수준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 재정을 편성하기로 한 것이다.

반면 올 연초부터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두 차례나 은행 지급준비율을 인상하면서 예상됐던 출구전략 시행에 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수준의 재정적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올해에도 경기 부양 기조를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장은 "전체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세웠던 지난해 정책 기조를 변화없이 유지하겠다는 내용"이라며 "소비자 물가 억제 목표를 4%에서 3%로 낮춘 것은 물가 관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국내외의 자산 버블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기 부양책을 그대로 끌고가기로 한 것은 세계 경제의 회복 추세가 여전히 불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 총리는 이날 보고에서 "세계 경제 회복의 기초가 취약하고, 금융 영역의 위험요소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각국이 출구 전략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국 경제의) 외부환경이 불안하고 불확실한 요소도 많다"고 진단했다. 중국 내부에 대해서도 "경제 성장의 내생적 동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민간의 투자·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전면적이고 정확한 형세 판단을 해야 한다. 경기가 반등한다고 경제 운용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금리 인상 등 조기 출구전략을 시행해야 한다는 중국 정부 일각과 전문가들의 주장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중국이 금리 인상 등 조기 출구전략에 들어갈 가능성은 낮아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다만, 세부적으로는 자금 흐름의 왜곡을 막고 경기 부양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의 미세조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올해 신규 대출 목표치를 지난해 9조6000억위안보다 2조1000억위안가량 줄어든 7조5000억위안으로 낮춰잡았다. 또 투자 자금이 과잉생산 업종이나 부동산 등 비효율적인 부문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대출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내수 중심으로 경제성장 모델을 전환하기 위한 소비 확대 정책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 총리는 이날 "재정의 상당 부분을 의료 서비스 확대와 보장성 주택의 공급, 교육 개혁, 소득분배 구조 개선 등에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 보장을 통해 서민의 소비 여력을 높여나가는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지난해 도입한 가전하향(家電下鄕·농민이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과 자동차 구매세 인하 등의 단기 소비 진작책도 올해 계속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화 절상에 대해서는 "위안화 환율을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의례적인 언급만 하고 넘어갔다. 원 총리는 지난해 말 "외부의 압력에 굴복해 위안화를 절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미국·EU(유럽연합)와의 관계를 고려해 향후 위안화 환율을 올릴 여지를 남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 “올 8% 성장 목표”

중국의 주요 국정을 논하는 최대 정치 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11기 3차 회의가 5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흘 일정(14일 폐막)으로 개막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부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원자바오(溫家寶·사진) 총리는 2900여 명의 전인대 대표 앞에서 정부업무 보고를 했다. 이 자리에서 원 총리는 올해 주력 사업으로 8대 과제를 제시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를 8% 내외로 설정했다. 이는 최소 목표치로 실제 성장률은 지난해(8.7%)보다 높은 9%선을 웃돌 것으로 경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원 총리는 정부가 물가를 3% 선에서 억제하고, 올해 도시에서 9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도시 실업률을 4.6% 선에서 잡겠다고 밝혔다. 또 재정지출 규모는 지난해보다 11.4% 증가한 8조4530억 위안(약1437조원)으로 책정해 올해에도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또 금융권의 신규 대출 규모는 지난해(9조6000억 위안)보다 다소 줄어든 7조50000억 위안 선에서 유지하되, 비교적 유연한 통화정책을 펴기로 했다.

원 총리는 서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공급 물량을 확대 해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또 3185억 위안의 예산을 투입해 도시와 농촌의 사회보장시스템을 확대해 빈부 격차에 따른 사회 불안 요소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경기 부양책 유지하되 부동산 거품 등 부작용 억제

뉴스분석
  고속 성장에서 안정 성장으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전인대 개막식에서 발표한 업무보고의 골자다. 경기 부양을 지속하되 조일 건 조여 부작용이 생길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적극적 재정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여전히 경기 상황을 낙관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원 총리가 제시한 올 재정적자 1조500억 위안은 지난해(9500억 위안)에 비해 10.5% 늘어난 규모다.

성장을 지속하되 속도는 다소 늦출 수도 있다는 자세다. 과열을 막고, 언제든 출구로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원 총리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를 ‘8% 내외’라고 발표했다. ‘8%를 지키겠다’는 바오바(保八)에선 다소 후퇴한 뉘앙스다. 주희곤 우리투자증권 베이징리서치센터장은 “성장률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지방정부들의 과도한 실적 경쟁으로 과열이 발생할 수 있어 최저 성장률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원 총리는 특히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중에 푼 자금이 갈 곳을 잃고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며 주택 가격이 폭등했다. 일단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은행 지급준비율 인상과 신규 대출 제한 등 긴축 카드다. 하반기 이후에는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현지에서 나온다. 수출 위주에서 내수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개편하는 작업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가전하향(家電下鄕)’ 등 내수 부양책 덕을 톡톡히 본 우리 기업들의 선전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인대 개막을 앞두고 잔뜩 긴장해 있던 세계 금융 시장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원 총리의 발언이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이란 평가에 따른 것이다. 아시아·유럽 주요국 증시는 오름세를 탔다. 전날 ‘금리 전격 인상’ 루머가 돌며 급락했던 중국 상하이 증시도 이날은 소폭 상승하며 마감했다. 코스피지수도 전날보다 16.37포인트(1.01%) 오른 1634.57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 1월 28일 이후 한 달여 만에 1630 선을 회복했다. 외국인이 주식을 사면서 원화가치는 5일 연속 올라 달러당 1140.10원을 기록했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가 전날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는 소식과 미국의 주간 단위 실업자 통계가 긍정적으로 나온 것도 호재가 됐다. 이어 발표된 미국 2월 실업률도 9.7%로 전달과 변동이 없었다. 시장의 예상보다는 나은 수치여서 미국 증시도 상승세로 출발했다. 중국 긴축을 포함해 세계 증시를 괴롭히던 ‘3대 악재’가 다소 누그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아직은 관망 분위기가 짙다. 중국·미국·그리스로부터의 변수가 겹쳐 ‘빅 프라이데이’로 불린 이날, 지수는 올랐지만 거래대금은 3조원 초반대에 그쳤다. 해외 변수를 더 지켜 보겠다는 투자자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삼성증권 정명지 연구원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금리 인상에 대한 언급이나 시사가 없었다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중립적”이라면서 “중국의 경우 ‘전격 조치’도 잦은 편이라 전인대가 끝나는 14일까지는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