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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중 국

<1> 더 이상의 굴욕은 없다 (동아일보 2010-10-02 04:23)

[다시 포효하는 중화제국]‘패권의 추억’ <1> 더 이상의 굴욕은 없다
힘의 맛을 알다… 영토분쟁 日한방에 KO-美와도 장군멍군식 ‘맞짱’



중국 건국 61주년 기념일인 1일제복을입은공안들이 상하이 엑스포공원내 중국관 부근에서중국국기인오성홍기를 게양하기앞서 경례하고있다.상하이=
중국이 다시 제국()의 포효를 시작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아시아의 병자’로 불렸던 중국, 그러나 이제는 나폴레옹이 말했던 ‘잠자는 사자’도 아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이룩한 초고속 성장을 바탕으로 중국은 이제 한(), 당(), 명(), 청()시대의 화려했던 중화제국()을 다시 꿈꾸고 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최근 중국이 보여준 모습은 ‘제국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세계 패권의 ‘세력 전이’를 꾀하는 중국 힘의 실체를 7회에 걸쳐 심층 해부한다. 》

○ 융단폭격과 맞짱 뜨기

이번 중-일 분쟁에서 중국이 보여준 모습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근 국제 금융위기 속에 중국의 목소리가 커지긴 했지만 ‘완벽한 KO승’을 거두려는 외교 자세는 일찍이 찾기 어려운 행태였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일본이 센카쿠 열도 관련자 15명 중 선장을 제외한 전원을 풀어줬음에도 대규모 일본 관광취소하고 정상회담도 사실상 거부한 뒤, 일본에 치명적인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는 등 ‘융단폭격’으로 일본을 굴복시켰다. 중국은 특히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 과거 중국이 패권국가에 당한 수모와 굴욕을 되돌려주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인 미국도 이제 중국이 두려워하는 상대는 아니다. 미국과의 갈등에서도 움츠러들기는커녕 맞짱을 뜨거나 ‘장군 멍군’식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은 줄기차게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가했지만 중국은 꿈쩍도 안 했다. 중국은 되레 미국산 닭고기에 최고 105.4%의 반()덤핑 관세를 물리기로 하는 등 맞불을 놓았다. 화가 난 미국은 지난달 29일 연방하원 의회에서 환율 조작 의심국가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중국은 개의치 않는 태도다.

○ 도광양회()→화평발전()→돌돌핍인(qq)?

중국의 이런 모습은 과거와는 딴판이다. 중국은 1999년 자국 대사관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의 폭격을 당해 3명이 숨졌을 때나 2001년 하이난() 섬 상공에서 미군과 중국군 전투기가 충돌해 자국 조종사만 숨졌을 때도 꾹 참고 맞대응을 삼갔다.

중화권 일부 매체는 중국의 달라진 모습을 ‘돌돌핍인’으로 표현한다. 돌돌핍인이란 ‘신속한 발전으로 기세가 등등해져 남에게 압력을 가하는 모습’으로 옆에서 봐주기가 심히 거북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중국 정부는 “이번 사태는 일본이 먼저 도발했기 때문이지 외교 기조가 바뀐 게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힘의 과시’를 통한 상대국 굴복시키기는 선린외교나 구동존이(·의견이 같은 것은 추구하고 다른 것은 남겨둔다), 갈등의 평화적 해결 등 중국이 그동안 표방해온 외교 기조와 차이가 많다.

○ 크고 강해진 몸집




중국인은 1840년 발발한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영국과 세계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을 맺었다. 이를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산업화에 먼저 성공한 패권국에 줄줄이 무릎을 꿇고 국토 일부와 이권을 내주는 등 100여 년간 온갖 굴욕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영국의 경제사학자 앵거스 매디슨의 ‘20세기 세계경제: 역사적 통계’에 따르면 1820년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3%에 이르렀던 중국의 경제 규모는 이후 계속 추락해 1950년 4.59%까지 내려갔다. 이어 개혁개방 때까지 세계 인구의 20%를 넘는 중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총량의 5%를 넘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간 연평균 9.8%에 이르는 초고속 성장으로 중국의 GDP는 2008년 세계의 17.5%(구매력 기준)까지 올라왔다. 중국의 GDP는 2030∼2040년이면 환율 기준으로도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튼실해진 경제력에서 “더는 굴욕을 참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나오는 셈이다.

○ 화평발전 고수 속 ‘핵심 이익’ 걸리면 패권 외교

하지만 중국이 모든 외교에서 패권적 행태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주변국은 물론 세계 강대국이 모두 반발해 되레 중국의 굴기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이 뒤늦게 난사()군도 분쟁 당사국과 협의에 나선 것도 이런 우려를 의식한 조치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달 30일 열린 국경절 리셉션에서 “나라가 강해져도 패권은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영토와 주권 독립 문제, 공산당의 집정()과 관련되거나 지속적 경제발전과 연관된 사안에서 중국의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 이들은 ‘중국의 핵심 이익이 달린 문제’로 특히 영토는 ‘선진국의 꿈’까지 포기하고 다퉈야 하는 문제로 보고 있다. 1962년 인도, 1969년 옛 소련, 1979년 베트남과 각각 무력 분쟁을 벌인 것도 모두 영토 문제였다. 문제는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는 나라가 여전히 인접 21개국 중 8개국이나 된다는 점이다. 특히 해상 분쟁지역은 150만 km²로 중국 전 영해의 절반 크기다. 주변국과 잦은 마찰이 불 보듯 뻔한 셈이다.

최근 인민 사이에 고조되는 민족정서도 중국 지도부가 무시하기 어렵다. 이번에도 중국 정부의 강공 배경엔 시민의 잇단 대규모 반일()시위가 한몫했다.

또 중국은 기존 패권국을 비판하면서도 패권국 대열에 끼고 싶어 한다. 덩샤오핑()은 일찍이 “4개도 좋고 5개도 좋으나 소위 다극()이라고 하는 것에 중국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말해 현행 미국 중심의 ‘단극() 패권’을 중국을 포함한 ‘다극 패권’으로 대체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했다.


외교기조의 변화… ‘굴기’ 전략 비난 거세자 ‘화평발전’으로 ▼



중국이 1949년 건국 이래 표방하는 외교기조는 평화공존과 자주외교로 요약된다. 건국 초기부터 지금까지 고수하는 외교원칙은 1956년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에서 명기된 평화공존 5원칙이다. 1954년 4월 인도와의 협정 체결과정에서 처음 발표된 것으로 △영토의 보전과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호혜평등 △평화공존 등 5개항이다.

하지만 실제 중국의 외교전략은 내부의 정치적 필요와 외부 변화에 따라 크게 변해왔다. 건국 초기 중국은 친소() 일변도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구()소련과의 영토분쟁이 발생하면서 ‘량거반() 전략’으로 바꿨다. 량거반 전략은 미소()를 모두 제국주의로 규정하면서 미소와 나머지 지역에 대처하자는 전략이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외교전략은 다시 변했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현실적 힘이 매우 약한 점에 착안해 도광양회()와 유소작위()를 주창했다. ‘때를 엿보며 조용히 힘을 기르되 꼭 개입할 필요가 있을 때만 할 일을 하자’는 전략이다.

하지만 중국의 힘이 점차 커지자 후진타오() 지도부는 2003년 11월부터 화평굴기()를 새로운 전략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굴기란 말이 주변국에 위협으로 비치자 2004년 4월 화평발전()으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