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정조와 춘향의 공통점?
◇담바고 문화사/안대회 지음/480쪽·3만 원·문학동네
조선중기 이후 최고 기호품, 담배… 한문 고전 통해 ‘흡연사’ 정리
친숙한 것 잊기 어려움은 예로부터 걱정거리/욕망을 이기려면 마음 모질게 가져야지/이제부터 남방서 온 담배를 끊으려고 하니/이십 년 세월 동안 피운 것이 잘못이다.
조선 후기 대학자 남당 한원진(1682∼1751)이 담배를 끊기 위해 지은 한시다. 스스로 세운 굳은 다짐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금연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하게 다가온다. 조선시대 금연의 동기는 다양했다. 지금처럼 건강을 염려하기도 했지만 담뱃값이 급등해 어쩔 수 없이 끊거나 가법(家法)으로 금한 경우도 있었다. 두릉 정각선(1650∼1720)은 “우리 종중의 가법은 담배를 통렬히 금지했다. 만약 담배를 피우는 자손이 나타나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증조부와 종조부는 지위가 삼정승에 이른 뒤에야 담배를 즐기신 적이 있다. 우리가 그분처럼 할 수 있다면 피워도 좋으리.
이 책은 조선 중기 이후 최고의 기호품으로 각광받은 담배를 통해 한 시대를 훑은 역작이다. 인용된 한문 문집만 해도 총 100여 편에 이른다. 저자는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2만 권가량 팔린 ‘정조의 비밀편지’와 ‘벽광나치오’를 펴낸 인문학계의 대표적인 파워라이터다. 한문 고전을 대중의 시선에 맞춰 풀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가 나서서 흡연자를 만만한 세원(稅源) 대상으로 삼는 것도 모자라 미개인 취급을 하는 요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뜬금없는 책일 수도 있겠다. 저자도 이 점을 의식한 때문인지 “최근의 금연정책은 흡연자를 고상하지 못하고 덜 진보한 인류로 몰아가는 폭력적인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참고로 저자는 30여 년 전인 대학 3학년 때 담배를 끊은 비흡연자다.
담배가 17세기 초반 이후 절대 다수의 기호품이었으며 경제의 블루오션이자 일상의 가장 중요한 물질이었다는 사실은 흡연사를 연구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정조가 1796년 11월 18일 쓴 ‘남령초(南靈草·담배의 별칭) 책문(策問·시험문제)’이 대표적인 사례다. 규장각 초계문신에게 출제한 이 유쾌 발랄한 시험지는 “온갖 식물 가운데 이롭게 쓰이고 사람에게 유익한 물건으로 남령초보다 나은 게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모든 백성에게 담배를 피우게 할 것인지 대책을 제시하라는 데까지 이른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군주가 나서 담배를 백성들에게 보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전례가 없다. 심지어 정조는 담배 소비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도 물리쳤다. 애연 군주로서 손색이 없다.
저자는 정조의 책문이 그가 경계한 패관문학류의 가벼운 글이라는 모순이 있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기호품을 모든 백성이 누리도록 하고 싶다는 여민락(與民樂)의 순수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금욕적인 도덕군자인 체하면서 홀로 즐길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흡연의 쾌락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기생들도 정조 못지않게 흡연의 욕구에 솔직했다. 춘향전에서 이몽룡을 방으로 맞아들인 춘향이 제일 처음 한 것은 섬섬옥수로 담배를 권한 것이었다. 춘향이 직접 장죽을 빨아 불을 붙인 뒤 사랑하는 낭군에게 전하는 장면은 에로틱하기까지 하다. 저자는 “사회질서 밖에 존재한 기생은 섹스와 음주, 흡연, 옷차림, 가무 등에서 특별한 자유를 누렸다”며 “기생과 장죽은 뗄 수 없을 만큼 고착된 이미지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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