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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중 국

쿤밍역 ‘12분 칼부림’에 170여명 사상… 兩會 앞둔 中 패닉 (동아일보 2014-03-03 08:47:41)

쿤밍역 ‘12분 칼부림’에 170여명 사상… 兩會 앞둔 中 패닉

60cm∼1m 칼 든 복면괴한 10여명 노인-아이 안 가리고 무차별 난자
신장독립세력 계획된 테러로 규정… 시진핑 “그들의 날뛰는 기세 꺾어라”

 


 

주인 잃은 가방들과 핏자국… 처참한 현장 1일 무차별 테러가 발생한 중국 남부 윈난 성 쿤밍 시 기차역 현장에 희생자들의 가방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폴리스라인 안쪽에 남겨진 주인 잃은 가방과 바닥의 핏자국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쿤밍=신화 뉴시스

 

중국 남부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 시에서 무차별 칼부림 테러가 발생해 최소 17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중국 최대 정치 이벤트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최를 이틀 앞두고 총이나 폭탄이 아닌 긴 칼만으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중국 사회가 공포에 떨고 있다.

2일 관영 신화(新華)통신 등에 따르면 상춘(常春) 도시 쿤밍이 피로 물든 건 1일 오후 9시 20분경. 쿤밍 시 중심지인 쿤밍 기차역 광장에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한 괴한 10여 명이 길이 60cm∼1m의 칼을 들고 나타났다. 고대 이슬람 전사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한 이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에 올라온 사진에는 광장은 물론이고 역사(驛舍) 안에도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시신들이 보였다. 또 여행객들의 가방과 안경, 휴대전화 등 소지품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이번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양쯔칭(楊自淸) 씨는 “광장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칼 든 사람들이 뛰어 들어와 보이는 사람마다 찔러 죽였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괴한들이 도망가는 사람들의 등을 베거나 상처를 입고 쓰러진 사람들을 다시 찔러 죽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식당 주인은 200여 명의 여행객을 숨겨줘 추가 피해를 막았다. 그럼에도 이날 칼부림 테러 12분 만에 29명이나 숨졌다고 런민(人民)일보는 전했다. 부상자는 경찰 7명을 포함해 143명이다. 괴한 중 4명이 사살됐고 여성 1명이 붙잡혔다. 사망한 괴한 중에도 여성 1명이 있었다. 청두(成都) 주재 한국총영사관은 현재까지 한국인 희생자는 없다고 전했다.

쿤밍 시 당국은 이번 사건을 ‘신장(新疆) 분리독립 세력의 조직적이고 계획된 테러’로 규정했다. 당국은 사건 현장에서 다수의 증거를 확보하고 붙잡힌 범인을 상대로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법에 따라 테러리스트들을 엄벌하고 (그들의) 날뛰는 기세를 강력하게 꺾어 놓아야 한다”면서 수사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지시했다.

이번 무차별 테러는 양회를 앞두고 발생한 데다 칼만으로 무장한 테러범들이 대도시 한복판에서 17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중국의 치안 수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의 테러전문가 리웨이(李偉) 씨는 “테러분자들이 경계가 삼엄한 베이징(北京)이나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 대신 상대적으로 느슨한 쿤밍을 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이 신장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의 소행으로 최종 확인되면 2009년 7월 우루무치에서 197명이 사망하고 1700여 명이 부상한 유혈시위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신장 관련 민족분규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테러가 발생한 윈난은 우루무치에서 육로로 3600km나 떨어진 곳이어서 위구르족 분리독립 조직의 활동범위가 중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지난해 10월에는 베이징(北京)의 심장부인 톈안먼(天安門)에서 차량 자살 테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40명가량이 다쳤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청나라 때 중국에 편입됐다. 국공내전 등으로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 위구르족이 1933∼1934년, 1943∼1949년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세운 적이 있다.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등의 단체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테러활동을 하고 있다.

위구르족(1006만 명·2012년 말 기준)은 좡(壯)족(1692만 명), 후이(回)족(1058만 명), 만주족(1038만 명)과 함께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4개 소수민족에 속한다. 한족과 외모와 언어가 다르고 이슬람교를 믿는다.


 

 

중국 위구르족 독립운동세력 쿤밍서 묻지마 칼부림 테러, 170여명 사상

 (조선일보 2014.03.02 18:21)

 

 


	1일 밤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위구르족 테러범들을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동방조보
1일 밤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위구르족 테러범들을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동방조보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를 이틀 앞둔 1일 밤(이하 현지시각)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성의 관광 휴양도시 쿤밍(昆明)시의 열차역에서 중국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에 의한 대규모 칼부림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2일 오전 6시 현재 29명이 사망하고, 143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언론과 목격자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 1일 밤 오후 9시 쯤 쿤밍역에서 발생했다. 검은 색 옷을 같이 맞춰 입은 채 복면을 쓴 남·녀 10여명의 폭도들이 길이 50~60㎝에서 1m의 칼을 든 채 역 광장으로 진입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광장에 있던 승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역사 내의 매표소와 대합실 등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폭도 들은 도망가던 승객들을 뒤따라가며 계속 칼을 휘둘렀다.

부모와 함께 하얼빈 고향으로 가기 위해 부모와 함께 쿤밍역에 왔다가 모친을 잃은 왕위(王宇)씨는 “손에 50~60㎝ 길이의 칼을 든 무리들이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며 “역 옆의 여관 쪽으로 도망치다가 모친이 의자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폭도들의 칼에 맞아 숨졌다”고 말했다.

역 광장 옆 매점에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탄(譚)모씨는 “7~8명이 노인, 아이 할 것없이 닥치는 대로 죽였다”며 “광장 부근 매점과 서점 주인이 이들의 칼에 맞아 쓰러졌는데, 아직 죽지 않은 것을 알고 다시 쓰러진 사람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무차별 살육극이 벌어진 쿤밍역 광장과 매표소는 곳곳이 유혈이 낭자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사건이 발생하자, 곧바로 총기를 휴대한 특수 경찰 등을 투입해 진압에 나섰다. 폭도 중 4명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고, 4명은 체포됐으며, 나머지는 행방을 쫓고 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피해자들은 인근 병원 등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계속 늘고 있다.

쿤밍시 당국은 이날 이번 사건에 대해 “현장의 여러 증거로 판단할 때,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분리독립세력에 의한 계획적이고도 엄중한 폭력 테러사건”이라며 “사건 경위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북서부에 있는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국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의 자치구이다. 중앙아시아 투르크계인 위구르족은 중국 전역에 840만명 가량이 살고 있으며, 이슬람을 신봉하고 있다. 위구르족은 청나라 건륭제 때 청나라에 정복당해 중국에 편입됐지만, 이후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벌여왔다.

독립운동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 잠잠해졌다가 1990년대부터 다시 본격화됐다.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이라는 단체가 이 운동을 이끌고 있으며, 이들은 알카에다, 탈레반 등 중동 테러단체와도 연계가 돼 있는 것으로 중국 당국은 보고 있다.

지난 2009년 7월에는 신장의 수도인 우루무치(吾魯木齊)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해 197명이 사망하고, 1700여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후에도 카스(喀什) 등 신장 내 여러 도시에서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칼부림 사건은 이 사건 이후 가장 피해 규모가 크다.

중국 당국은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강온 양면의 다양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지만, 테러사건은 좀처럼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3명의 위구르인 일가족이 탄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이 중국 수도 베이징의 중심부인 톈안먼(天安門)을 향해 돌진한 뒤, 준비한 휘발유에 불을 지르는 자살테러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용의자 3명 등 5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오는 3일 개막하는 양회를 앞두고 위구르족 분리독립세력이 국제적 이목을 끌기 위해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는 오는 3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국정자문회의 격)이 개막하고, 이틀 뒤인 5일에는 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린다.

위구르족이 신장 내 도시나 수도 베이징이 아닌 남부의 윈난성 쿤밍에서 테러 사건을 저지른 데 대해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전역이 위구르족 독립운동 세력의 테러 대상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당국을 긴장시킬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신장의 독립 운동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다. 신장은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보고로 중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신장 남·북부의 타림 분지와 중가르 분지 등에는 중국 전체 석유의 30%, 천연가스의 34%, 석탄의 40%가 매장돼 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사건 발생 직후,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파악하고,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라”고 지시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쿤밍 현지에는 중국 치안의 총책임자인 멍젠주(孟建柱) 중앙정법위 서기와 궈성쿤(郭聲琨) 공안부장이 급파돼 사건 수습과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깨알지식] 신장 위구르, 1759년 淸에 패해 중국에 편입, 中 석유의 30% 매장… 민족·종교 달라 갈등

 (조선일보 2014.03.03 03:02)

 


	최근 발생한 유혈사태.

"위구르는 중국이 아니다.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다. 역사적 배경과 살아온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중국에 편입될 수 있겠는가?" 위구르 망명정부 지도자였던 이사 유수프 알프테킨은 1995년 눈을 감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당시 동(東)투르키스탄·신장)는 1759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중국의 일부가 됐다. 이후 106년 동안 42차례의 크고 작은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1860년대에는 영국·러시아 등 열강에게 독립국으로 인정받고 청을 물리치는 쾌거를 거뒀다. 그러나 청에게 다시 복속됐고 1949년에는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됐다.

중국 북서부에 위치한 신장은 면적 166㎢의 자치구로 이는 중국 영토의 6분의 1(17.3%)에 달한다.

신장은 석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보고이다. 신장 남·북부의 타림 분지와 중가르 분지 등에는 중국 전체 석유의 30%, 천연가스의 34%, 석탄의 40%가 매장돼 있다. 신장의 에너지 자원 없이 중국 경제의 지속적 발전은 불가능하다. 중국은 실제로 2000년대 초반부터 이곳의 에너지 자원을 파이프와 전력망 등을 통해 경제가 발달한 동부 연안 지역으로 운송하는 '서기동수(西氣東輸) 프로젝트'를 실행 중이다.

중국 정부는 이 지역의 중국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한족을 이주시키고 있다. 한족은 신장 거주민의 39%에 이른다. 43%인 위구르족과 큰 차이가 없다.





[中 쿤밍驛 테러] 中 뒤흔든 '칼부림 테러'… 위구르族, 兩會(中 최대 정치행사) 앞둔 中지도부 타격 노려

 (조선일보  2014.03.03 03:02)

[쿤밍驛서 30여명 사망·140여명 부상]

中 "신장위구르 독립세력 소행"
여성 최소 2명 포함된 범인들 길이 50~60㎝ 칼 마구 휘둘러… 4명 사살되고 4명은 체포 돼

 

중국 서남부 윈난성 쿤밍(昆明)시 기차역에서 1일 저녁 시민을 겨냥한 '무차별 칼부림 테러'가 발생해 30여명이 사망하고 140여명이 다쳤다고 관영 신화통신 등이 2일 보도했다. 쿤밍은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한국인 피해는 없다고 주중 한국 대사관이 밝혔다. 현지 공안은 현장에서 범인 4명을 사살하고 1명(여성)을 생포했다. 이어 쿤밍 시내에서 용의자 3명을 더 체포했다. 범인 중 최소 2명이 여성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범인들은 모두 검은색 복면을 쓰고 쿤밍역 광장과 매표소 등에 난입해 50~60㎝ 길이의 칼을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도 가리지 않았다. 쿤밍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중국신문사는 "왕(王)모씨는 어머니가 범인의 칼에 희생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다"고 전했다. 동방조보는 목격자 탄(譚)모씨의 말을 인용해 "5~6세 정도 아이가 피를 흘리며 구급차에 올랐는데, 그 부모는 모두 범인들에게 당했다"고 전했다. 범인들은 달아나는 시민 등에도 칼을 꽂았다. 한 농민공은 대나무 담뱃대를 들고 범인과 맞서다가 20㎝가 넘는 자상(刺傷)을 입었다. 쿤밍시 당국은 부상자를 돕기 위한 헌혈소 12곳을 설치했다.


	1일 중국 서남부 윈난성 쿤밍(昆明)시 기차역에서 무차별 칼부림 테러가 일어난 직후 한 여성이 울면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위 사진). 중국 당국은 신장(新疆) 위구르족 분리 독립 세력이 계획적인 테러 공격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테러 직후 기차역 내부에 희생자들의 여행 가방 등이 어지럽게 흩어진 모습(가운데 왼쪽 사진). 현장 곳곳에 핏자국이 남아 있다. 범인들이 기차역 무차별 칼부림 테러에 사용한 칼(가운데 오른쪽 사진). 신장 위구르 개요.
1일 중국 서남부 윈난성 쿤밍(昆明)시 기차역에서 무차별 칼부림 테러가 일어난 직후 한 여성이 울면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위 사진). 중국 당국은 신장(新疆) 위구르족 분리 독립 세력이 계획적인 테러 공격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테러 직후 기차역 내부에 희생자들의 여행 가방 등이 어지럽게 흩어진 모습(가운데 왼쪽 사진). 현장 곳곳에 핏자국이 남아 있다. 범인들이 기차역 무차별 칼부림 테러에 사용한 칼(가운데 오른쪽 사진). /AP 뉴시스·신화 뉴시스·홍콩 대공보

 

중국 당국은 이번 사건을 "신장(新疆) 위구르족 분리 독립 세력이 계획적으로 일으킨 테러 공격"이라고 밝혔다. 공안 당국은 3일 개막하는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를 앞두고 이번 사건을 일으킨 '배후 세력'을 색출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양회는 우리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국정자문회의에 해당하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를 일컫는 말이다.

위구르족 과격 단체는 작년 10월 말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 회의(3중 전회)를 앞두고도 톈안먼(天安門) 차량 돌진 테러를 감행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번 칼부림 테러에 대해 "법에 따라 테러범을 엄벌하고 (그들의) 날뛰는 기세를 강하게 꺾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사건 직후 치안 최고 책임자인 멍젠주(孟建柱)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와 반(反)테러 공작 영도소조 조장인 궈성쿤(郭聲琨) 공안부장을 동시에 사건 현장으로 급파했다.




 [中 쿤밍驛 테러] 알카에다 연계된 위구르族, 갈수록 잔인… 中 전역으로 공격대상 넓힐 듯

 (조선일보 2014.03.03 03:02)

-왜 쿤밍市인가
관광객 많아 테러효과 극대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앞두고 버스 폭발 테러 발생하기도

 

이번 테러의 가장 큰 공포는 잔인성이다. 과거 신장(新疆) 위구르족 과격 단체는 주로 사제 폭발물을 이용해 경찰서와 관공서를 공격했다. 그런데 이번엔 길이 50~60㎝의 칼을 휘둘러 노인과 부녀자를 포함한 민간인 30여명을 무차별 학살했다. '공포의 극대화'를 노린 것이다.

테러의 범위가 크게 확대된 것도 중국을 놀라게 했다. 종전 위구르족 테러는 신장 지역과 베이징에서만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 테러가 발생한 윈난성 쿤밍(昆明)은 신장의 중심인 우루무치에서 4500㎞ 떨어져 있다.

잔인성의 배후… 알카에다 연계설

인구 900만명인 신장 위구르족의 종교는 대부분 이슬람교다. 중국 당국은 작년 10월 톈안먼(天安門) 차량 돌진 테러의 배후로 위구르족 무장 독립단체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을 지목했다. 1990년대 등장한 ETIM은 파키스탄 등 중국과 인접한 이슬람 국가에 무장세력 양성소를 세우고 요원들을 훈련시킨 뒤 중국에서 관공서 습격 사건 등을 일으켰다. ETIM 계열인 '투르키스탄 이슬람당'은 톈안먼 차량 테러를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며 "지하드를 벌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조직은 기름통을 싣고 톈안먼으로 돌진한 위구르족 3명을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알카에다 등이 ETIM을 배후에서 지원한다고 판단한다. 알카에다는 2009년 우루무치 유혈 사태 당시 인터넷 동영상에서 "신장의 상처 입은 형제를 지원하는 것이 이슬람교도의 의무"라며 "중국 침략자에 맞서 '지하드(성전·聖戰)'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테러단체가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이 심해지는 것과 흐름을 같이한다. 중국은 2009년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 사태(197명 사망) 이후 위구르족 정책을 '유화책'에서 '강경책'으로 선회했다. 신장에는 사실상 계엄령이 내려진 상태다.

테러 공포, 중국 전역으로 확대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위구르족 과격 단체가 쿤밍을 테러 목표로 삼은 것은 중국 전역이 공격 대상이란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쿤밍은 관광도시이자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곳이다. 쿤밍에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버스 폭발 테러가 발생했다.

위구르, 왜 이러나

중국을 향한 위구르족의 증오와 저항은 뿌리가 깊다. 위구르족은 1700년대 청나라에 편입된 이후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지만 모두 진압당했다. 중국 한족과 위구르족 간의 '문화 충돌'은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작년 12월 1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신장의 유혈 사태는 중국 공안이 위구르족 가정을 급습해 가정주부의 부르카(이슬람 전통 의상)를 벗기면서 촉발됐다고 한다. 이슬람교도는 외부인이 부르카를 벗기는 행위를 큰 모욕으로 간주한다.

위구르족은 터키 계열로 외모·언어·종교가 한족과 완전히 다르다. 보통화(普通話·중국 표준어)를 못하는 위구르족 청년은 학력 수준이 낮아 한족 중심의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