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 실적 최고 삼성전자 왜 팔지?
3월 7일 이후 35일간 2조6119억여원… 한국 탈출 외국계 자본 절반
▲ photo 조선일보 DB |
투자 대상으로서 삼성전자의 매력은 이런 수치적인 것만이 아니다. 전 세계 휴대전화 판매량과 TV·메모리 반도체 1위, 디스플레이 부문 역시 세계적 강자로 불리는 등 시장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즐비하다. 특히 전 세계 전자기업 중 부품에서 완성 제품까지, 냉장고와 세탁기 등 백색가전은 물론 스마트폰과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IT 제품까지 거의 모든 전자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사실상 유일한 종합 전자기업이 바로 삼성전자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삼성전자는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반드시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고 싶은, 혹은 담고 있어야 할 주식’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런데 최근 이런 삼성전자 주식을 외국계 투자자들이 대규모로 팔고 있다. 더욱이 시간이 갈수록 외국계 투자자들의 삼성전자 주식 대량 처분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올 1월 2일부터 4월 24일까지 외국계 자본이 판 삼성전자 주식 규모는 2조4621억5200만원(169만6867주)이다. 이 중 98% 이상이 3월 이후에 집중적으로 매각했다. 외국계 자본이 올해 처분한 2조4621억5200만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 중, 3월 4일부터 4월 24일까지 38일(시장 개장일 기준) 동안 주식이 무려 2조4212억9800만원이다. 164만632주가 넘는다. 이는 삼성전자 총 상장 주식의 1.3%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3월 4일부터 4월 24일까지 한국 시장을 이탈한 외국계 자본 중 절반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해외로 빠져나간 외국계 자본의 규모는 5조2273억4000만원이다.
외국계 자본의 삼성전자 탈출이 본격화한 건 3월 7일부터다. 1월 2일부터 3월 6일까지만 해도 외국계 자본은 삼성전자 주식을 1497억8900만원어치나 싹쓸이하는 애정을 과시했다. 특히 3월 첫 거래일이던 3월 4일부터 6일까지, 불과 3일 동안 무려 1906억4300만원어치나 되는 삼성전자 주식을 쓸어 담듯 사들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3월 7일 이후 이들의 변심이 시작됐다.
외국계 자본은 3월 7일 710억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웠다. 다음 날인 8일 1425억원이 훨씬 넘는 주식을 처분하더니, 급기야 3월 15일과 18일에는 무려 4421억원과 3774억원이 넘게 팔았다. 그렇게 3월 7일부터 4월 24일까지 35일(시장 개장일 기준) 동안 외국계 자본이 팔아치운 삼성전자 주식 규모는 무려 2조6119억4100만원에 이른다. 이 기간 외국계 자본이 삼성전자 주식을 산 날은 불과 5일밖에 되지 않는다. 30일 동안 팔기만 한 것이다.
현재 국내 투자자는 물론 외국계 자본 사이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나쁘지 않다. 최근 발표된 2013년 1분기 실적 역시 양호하다. 매출 52조원에 영업이익이 무려 8조7000억원(잠정)에 이른다. 영업이익률은 15.9%를 넘었다. 한국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5.6%인 것을 감안하면 삼성전자가 보여주고 있는 수익 창출 능력은 한국 제조기업 중 최고 수준이다. 또 세계 시장 판매를 앞두고 있는 주력 스마트폰 갤럭시S4 역시 전작인 갤럭시S3에 버금가는 수익을 안겨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IBK투자증권, HMC투자증권, 한화증권 등 몇몇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이 12조3000억~11조원에 이를 것’이란 예측까지 내놓고 있다. 우리투자증권과 대우증권 등 국내 증권사는 물론 노무라 등 외국계 증권사까지 ‘삼성전자 주가가 주당 210만원까지 갈 것’이라는 장밋빛 목표 주가를 내놓았다.
이렇게 겉으로는 ‘사자(buy)’를 외치는 외국계 자본들이 도대체 왜 삼성전자 주식을 갑자기 처분하고 있는 것일까? 익명을 요청한 한 외국계 자본의 한국투자 담당 임원은 “2013년 들어 외국계 자본들은 세계 IT 시장, 특히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성에 회의적이다”며 “특히 미국 시장에서 애플의 주가 폭락이 IT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자금 회수를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애플의 주가 급락 이유가 경쟁사인 삼성전자나 구글이 잘해서가 아니라 ‘세계 IT 시장의 성장성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시각 때문”이라며 “결국 애플로 대표되는 세계 IT산업에 투자됐던 자본 회수 과정에서, 한국 시장에 투자한 외국계 자본들 역시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외국계 자본 관계자들도 “시장은 이미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한계’를 언급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스마트폰의 새로운 시장 확대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외국계 자본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신규 시장의 꼭짓점에 다다랐다”며 “통상 성장성이 한계에 다다르는 시점에, 특정 사업자가 시장점유율을 50% 이상 독점·과점하고 있다면 그때 주가 성장률이나 투자수익률 역시 ‘피크(꼭지)’에 다다른 것으로 분석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한국 IT 시장, 특히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이런 상황을 맞고 있다”며 “최근의 외국계 자본들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지 않거나 획기적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삼성전자의 주가가 150만원 중반대 전후인 시점이 자신들의 수익률이 정체되는 시점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외국계 자본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한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LG전자의 최근 기업 실적이 외국계 자본의 삼성전자 탈출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는 “기업의 우량도 분석에선 삼성전자가 LG전자보다 훨씬 우량하고 좋다”면서도 “하지만 투자수익성, 특히 단기 투자수익성을 따지면 삼성전자보다 최근의 LG전자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적자였던 LG전자가 최근 흑자로 전환되면서 한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자본에 투자 매력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계 자본의 첫 번째 투자 목적은 수익성입니다. LG전자의 흑자 전환 이벤트는 LG전자 주가의 ‘단기’ 수익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지요. 수익성이 더 큰 쪽으로 자금이 옮겨가는 건 당연합니다. 또 통상 2등 기업의 주가 탄력성이 1등 기업보다 높은 게 일반적임을 고려할 때, 어차피 한국 시장, 또 IT산업에 대한 투자 규모가 정해져 있는 외국계 자본 입장에선 수익성 높은 2등 기업 LG전자에 단기 투자하기 위해 1등 기업 삼성전자 주식을 팔겠다는 전략과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 없는 것이지요.” 실제로 외국계 자본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 처분하기 시작했던 3월 7일부터, 많은 때는 하루 100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LG전자 주식을 거의 매일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
최근 외국계 자본의 삼성전자 주식 대량 처분에 가장 열을 올리는 곳은 미국계 증권사 ‘BoA메릴린치’(이하 메릴린치)다. 메릴린치 창구 한 곳이 최근 두 달간 매각한 삼성전자 주식이 1조700억원을 훨씬 넘는다. 메릴린치가 외국계 자본의 삼성전자 주식 대량 매도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메릴린치 측에 3월부터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메릴린치 관계자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메릴린치 서울지점의 김경덕 상무는 “메릴린치가 삼성전자에 대한 시각을 바꾼 건 아니다”라며 “현재의 매도는 미국, 영국 등 외국계 투자자들이 메릴린치를 통해 파는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 등의 어떤 자본이 메릴린치를 통해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 매도하고 있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상무는 “현재 외국계 자본의 전체적 분위기가 한국 시장에서 돈을 빼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외국계 자본에 가장 쉬운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한국 시장 우량주인 삼성전자 주식을 파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외국계 자본이 한국에서 돈을 빼 일본에 투자하는 상황”이라며 “일본 기업 투자를 위해 가장 쉽게 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재 외국계 자본이 대량으로 내놓은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곳은 연기금이다. 연일 수백억원의 돈을 투입하고 있다. 덕분에 외국 자본의 공격적 대량 매도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의 주가는 버티고 있다. 문제는 연기금도 힘에 부치는 모양새다. 연기금 역시 4월 16일을 기점으로 25일까지 7일 연속 순매도에 동참하며 ‘팔자’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국 주식 시장 비중은 무려 20%(시가총액 기준)다. 산술적으로 삼성전자 주가 등락률 5% 변화에 한국 주식 시장 전체 지수는 1%가 출렁이게 된다. 자칫 한국 자본 시장에 충격을 안겨 줄 수 있는 외국계 자본의 삼성전자 매도 상황을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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