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똥개 훈련 시키는 기업이…” 취준생들 방송으로 돌직구
취업준비생들의 애환 나누는 팟캐스트
'철수와 존슨의 취업학 개론'
자신들의 취업실패기 실시간으로 중계
"면접장에서만 열정 가득한 양 메소드 연기" 꼬집고 지원자 똥개 훈련 시키는 기업들에도 돌직구
월30일 저녁. 29살의 고등학교 친구 철수(가명)와 존슨(가명)은 그날도 서울 신촌의 한 지하실에서 만났다. 인터넷 방송인 팟캐스트 '철수와 존슨의 취업학 개론'을 녹음하는 날이다. 인디밴드들이 밤이면 모여서 연습을 하는 곳이라 후딱 해치워야 한다. 연습실 한켠에 쭈그리고 앉은 그들이 꺼내든 장비는 달랑 스마트폰 두대와 맥주. 스마트폰 한대로는 녹음하고 다른 한대로는 음악을 튼다. 게다가 대놓고 음주방송이다.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고, 막가도 더이상 막갈 데도 없는 그들의 방송은 요즘 취업준비생들을 울리고 웃기는 인기방송이다.
차마 잉여라고 말할 수 없어서 취준생(취업준비생)이라 한다. 철수씨는 자신을 "국내 최대 금융그룹 직원으로 견마지로를 다하고 현재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돌취(돌아온 취업 준비생)"라고 기다랗게 소개했다. 존슨씨는 "면접에 들어갔다면 95% 이상의 성공률을 자랑하며 특히 인·적성 테스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온" 자칭 '취업계의 대통령'이다.
취준생들에게 세상이 다 그렇듯 방송 '취업학 개론'에도 위로 따위는 없다. 게시판에서 취준생들의 찌질한 고민글을 찾아내어 "이러니까 취업 못하고 게시판에 글이나 올리고 있는 것"이라며 씹어댄다. 취업게시판에서 '취업학 개론'을 욕하는 글이라도 발견하면 "야, 이 인생 실패자들아! 돈도 못 버는 식충이들아!"라며 핏대를 올린다. 취업할 가망이 안 보이는 자식들을 둔 부모님에게 빙의라도 한 듯, 취준생들의 등짝을 후려갈기는 방송이다.
물론 '돌취'나 '첫취'(첫취업 준비생)나 그게 그거다. 철수씨가 지난해 4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 때만 해도 이렇게 두번째 취업시즌을 맞을 줄은 몰랐다. 2012년 7월25일 존슨씨와 '취업학 개론' 첫 방송을 시작할 때 취업만 되면 바로 문 닫을 생각으로 '실시간 취업 시한부 방송'임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1년 동안 그가 문을 두드린 회사만 120곳이다. '취업학 개론'이 23회를 맞도록 철수씨는 매주 응시했다가 떨어지는 취업 상황을 방송에서 고스란히 보고해왔다. 최소한 면접에라도 불러주는 회사는 장래성 있는 기업으로 최대한 미화하고 떨어뜨리는 그날부터 온갖 쌍욕을 퍼붓는다.
"방송이 나가니까 대학 새내기가 벌써부터 취업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회사나 면접에 대한 정보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가 취업정보를 제공할 깜냥은 못 되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대리 표현해주는 맛에 듣는 것 같아요."(존슨) "우리 방송의 가장 큰 특징은 다 까발린다는 것이겠죠. 기업 이름이든 면접 분위기든 숨기는 게 없어요. 누굴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고 잘되어보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끼리 재미있자고 하는 거예요."(철수) 그들이 느끼는 재미든 분노든 모두 '리얼'이다.
대학 졸업한 지 3년이 넘은 존슨씨는 그동안 3곳에서 정규직을, 3곳에서 인턴을 했다. 몇달 전 3번째 회사에 입사했지만 첫날부터 가망없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 취업상태였지만 늘 취준생인 셈이다. 로커가 되고 싶은 존슨씨나 화가가 되겠다는 철수씨나 잠시 꿈을 접고 성실한 월급쟁이로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문과를 졸업하면 무조건 영업직으로 돌리는 사회나 스마트폰 안 쓴다고 한시간씩 설교하는 부장 앞에선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쌍욕에는 쌍욕으로 맞서는 수밖에.
절대 익명을 고수하는 것은 기업들을 자유롭게 욕하기 위해서다. 주로 1년짜리 인턴을 뽑아 싼값에 실컷 부려먹겠다는 속보이는 회사나 취준생들에게 악명 높은 까다로운 면접 과정, 쓸데없이 기다란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요구하는 회사들이 실명으로 도마에 오른다. "취준생들에게 자소서 9부 능선을 넘게 하는 엘지(LG)·에스케이(SK)"나 "원서접수 때부터 취준생들을 똥개 훈련시키는 씨제이 이앤엠(CJ E&M)" 등을 잘근잘근 다지며 "나를 떨어뜨린 그 순간부터 니들은 망한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렇다고 취준생에게 동지 따위는 없다.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어 와 프레젠테이션 하거나 면접관에게 선물을 돌리며 오버하는 열혈 면접생"들이나 "허언·허세 쩌는 취업 컨설턴트"들도 골고루 타박당한다.
23화 방송에 초대손님으로 녹음실을 찾은 취준생 김기자(가명·28)씨도 가세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새누리당에서 청년인사라고 뽑은 사람이 두 부류잖아요. 손수조같이 자의식 과잉이거나 이준석같이 어마어마한 스펙을 갖고 있거나. 기업도 이 두 종류의 인재를 원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들 대부분 어릴 때는 이준석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꿈을 꾸다가 그게 안 되니까 손수조 흉내라도 내는 거죠." 초대손님의 예기치 못한 입담에 철수씨와 존슨씨가 잠시 조용해졌다.
"우리들 80%는 졸라 좀비 같아. 다들 속으론 다른 생각만 하면서 면접장에서는 열정이 가득한 양 메소드 연기 하는 거지." 철수씨가 방송 중간에 돌연 분노의 괴성을 질렀다. "이 정도 꿈도 없으면 그걸 더 부끄러워해야 하는 거 아냐. 난 삼성맨 되고 싶어요, 공무원 할래요. 아씨, 이게 진짜 부끄러운 거지." 존슨씨는 늘 그렇듯 불나방스타쏘세지 클럽의 노래 '불행히도 삶은 계속되었다'를 틀며 서둘러 방송을 마무리했다. "그동안 참느라고 욕봤던 나의 비굴했던 인생"을 애도하는 이 노래는 "변하는 것보다는 일말의 자의식이라도 갖고 있겠다"는 청춘들이 만드는 방송 '취업학 개론'의 주제곡이다.
life tip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취업과정을 담은 만화도 나왔다. 지난해 11월5일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는 이현민 작가의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사진)는 한 대기업의 면접과정을 무협지처럼 그려가는 만화다. 스펙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주인공이 면접장을 찾는 순간, 평범한 그가 되레 튄다. 온통 놀랄 만한 경력에다 개성을 자랑하는 지원자들뿐이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면접을 틈타 권력싸움을 하는 회사 직원들도 별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목숨 걸고 입사를 향해 폭풍질주하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만화지만 어딘지 현실을 닮았다.
신입사원의 일상과 그의 눈에 비친 회사를 다룬 웹툰 <미생>은 인턴과 회사생활까지 자세히 그리면서 취업준비생들이 사랑하는 만화가 되었다. 인턴이 되어 회사 문턱을 밟는 첫날 주인공 장그래는 자신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런 쓸데없는 고퀄리티 어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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