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경제수석들 "파리목숨 장관, 업무파악하다 끝"
[新경제대통령의 조건―역대 경제수석 10人에게 듣는다]
[1] 단명 장관으론 경제 못살려
경제 수장… 美 225년간 75명, 한국은 52년간 43명
장관 5년 임기 보장해야 - "장관에 힘 실려야 경제 살린다"
경제수석 나서지 말아야 - "수석·장관 대립땐 장관 백전백패"
경제 부총리 부활해야 - 前경제수석 10명중 6명 의견일치
한국처럼 대통령중심제로 운영되는 미국은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경제 수장인 재무장관을 거의 교체하지 않는다. 현 재무장관인 티머시 가이트너는 오바마 대통령의 첫 임기 때인 2009년 임명돼 5년째 재직하고 있다. 미국은 1789년 정부 수립 후 225년간 재무장관이 75명에 불과했다. 평균 재임 기간은 3년이다. 앨버트 갤라틴(재임 기간 1801~1814), 앤드루 멜론(1921~1932년), 헨리 모겐소(1923~1932년) 등 3명은 10년 넘게 재무장관을 맡았다.
반면 한국의 경제 수장은 역대로 단명에 그쳤다. 경제기획원이 생긴 1961년부터 지난해까지 52년간 43명의 부총리와 장관이 그 자리를 거쳐 갔다. 평균 재임 기간은 1.2년밖에 안 된다.
본지가 전두환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역대 경제수석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한결같이 "단명하는 장관으론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강봉균 건전재정포럼 대표는 "1년마다 바뀌는 파리 목숨 장관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며 "업무를 파악하다 임기가 끝난다"고 지적했다.
◇장관에게 5년 임기 보장하라
역대 경제수석들은 경제 살리는 대통령의 최우선 조건으로 "대통령과 5년 임기를 함께할 수 있는 경제팀을 구성하고 힘 실어주기"를 꼽았다. 경제 부처 장관들과 경제수석으로 꾸려지는 정부의 경제팀이 제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임기를 보장해 주라는 것이다. 전두환 정부에서 4년 가까이 경제수석을 맡아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운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대통령중심제의 최대 강점이 임기가 보장돼 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경제 수장을 너무 자주 바꾸는 바람에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제 부총리제 부활해야
경제 수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제의 부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이 나왔다. 본지가 인터뷰한 경제수석 10명 중 6명이 이런 의견을 냈다. 현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각 부처 장관들끼리 대등한 관계면 협조가 안 된다. 누가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지 분명하게 해줘야 한다"면서 "경제 부총리가 함께 일할 다른 부처 장관들과 경제수석을 뽑아 쓸 수 있도록 인사권까지 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수석과 경제 부총리를 역임한 권오규 KAIST 교수는 "영국은 경제 수장인 재무장관 밑에 재정, 금융, 공정 거래, 산업 담당 등 관할하는 장관만 5명"이라며 "정권을 총리와 공동으로 책임지는 영국 재무장관처럼 경제 수장의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팀에 힘을 실어준 대통령의 모범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꼽혔다. 10명 중 6명이 그렇게 답했다. 박 전 대통령 시절 경제 부총리의 권한은 국무총리에 비견될 정도로 막강했다. 경제 부총리가 경제 부처 장관들의 실질적인 인사권도 쥐고 있었다. 장기영 부총리 재임 중에 재무장관 4명이 바뀌었는데, 장 부총리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부터 2년8개월간 재직한 김학렬 부총리는 국무총리가 정일권에서 백두진·김종필로 두 번 교체됐는데도 자리를 지켰다.
◇경제수석은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경제팀이 시너지를 내는 데는 대통령의 경제 대리인인 경제수석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수석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 역대 경제수석은 입을 모았다.
박재윤 전 경제수석은 "경제수석은 굉장히 자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재임 시절 내가 너무 설쳤던 것을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나고 나서 보니 수석의 역할은 대통령의 뜻을 장관들에게 정확히 알리는 것"이라며 "장관들이 대통령을 자주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대통령이 가진 경제에 대한 생각을 수석이 중간에서 잘 알려야 한다"고 했다. 권오규 교수는 "청와대 수석은 대통령 귀를 잡고 있는 사람"이라며 "수석과 장관이 대립하면 장관이 100전 100패다. 장관에게 명실상부하게 권한을 주고, 수석은 모니터링 역할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층 인터뷰 역대 경제수석 10人]
▲사공일(전두환·이하 당시 대통령)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박재윤(김영삼) 전 통상산업부 장관 ▲한이헌(김영삼) 전 경제기획원 차관 ▲김인호(김영삼)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강봉균(김대중) 건전재정포럼 대표 ▲현정택(김대중) 인하대 교수 ▲권오규(노무현) KAIST 교수 ▲김영주(노무현)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중수(이명박) 한국은행 총재 ▲박병원(이명박) 은행연합회장
"장관 자주 바뀌면 아래까지 흔들려… 직원들 청와대만 바라봐"
(조선일보 2013.01.08 02:32)
사공일 前경제수석
1983년부터 1987년까지 경제수석을 지낸 사공일<사진>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단명(短命)하는 우리 내각의 인사 실태와 관련, "우리 식의 대통령 책임제는 내각제를 하고 있는 일본 지식층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인데 그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총리가 1년마다 바뀌고 이에 따라 장관이 바뀌고, 밑에 있는 주무 국장·과장까지 흔들린다"며 "한국은 5년 임기 동안 확실한 리더십이 보장되는데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각료가 수시로 바뀌어 대통령 책임제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이 자주 바뀌면 조직이 흔들리면서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국민의 위임을 받아서 그 시대의 비전을 잘 수행할 수 있는 팀을 꾸리고, 그 팀이 계속 갈 수 있게 해줘야 정책의 지속성이 보장되고 전문성도 커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관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며, 청와대 경제수석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석이 전면에 나서면 장관이 힘을 잃고 부하들이 청와대만 바라보면서 장관을 따르지 않아 제대로 일할 수 없다"며 "주요 현안은 장관에게 맡기고, 수석은 조율과 조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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