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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빅 데이터(Big Data)사회`… (조선일보 2011.05.29 09:33)

'빅 데이터(Big Data)사회'…

줄줄 새는 개인정보가 차곡차곡…

누군가 내 사생활을 분석하고 있다

웹사이트 방문기록·검색 통계, 소셜미디어 기록까지 차곡차곡
기업들 막대한 개인정보 분석해 경영에 활용하기도
"단순 위치정보로는 개개인 식별할 수 없어"
"2·3차 가공하면 개인정보 추출… 해킹 통해 유출될 위험도"

지난 24일 부산에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대학교수 강모(53)씨는 한 포털 사이트에서 '사체 없는 살인'이란 검색어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돼 용의선상에 올랐다. 경찰은 주요 포털 업체에 공문을 보내 강씨 명의로 가입된 아이디가 있는지 확인한 뒤 접속기록과 검색어 등을 뒤져 이를 확인했다. 강씨가 '흔적'을 남긴 곳은 이곳뿐이 아니었다. 그는 스마트폰 문자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인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내연녀에게 "맘 단단히 먹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공간 곳곳에 자신의 관심사와 개인정보를 '흘리고' 다닌 것이다. 지난해 가수 MC몽 역시 네이버 지식인에 어금니를 어떻게 뽑는 남긴 질문 때문에 '군 복무를 회피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개인들이 인터넷에 남긴 정보는 경찰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기업들은 웹사이트 방문 기록, 온라인 검색통계, 소셜미디어 소통 기록 등을 그러모아 경영에 활용하고 있다. 한 사람의 개별적인 정보라도 수만~수억건씩 모이면 전혀 새로운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취향이나 행태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미국 구글은 웹사이트(google.org)에서 독감 유행 정보를 예보하고 있다. 독감 증상이 있는 사람이 늘면 '감기' 관련 주제를 검색하는 빈도가 함께 증가하는 것에 착안, 시간·지역별 독감 유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구글의 예보는 보건당국보다 앞서 독감 유행 징후를 감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마트폰 보급 이후에는 위치정보와 결합된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광고·마케팅 기법도 비즈니스의 새로운 금맥으로 부상했다.

데이터를 돈으로 바꿔라

회사원 서은영(가명)씨는 최근 서울 신촌에서 소셜커머스 업체인 그루폰을 통해 식당을 예약하고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루폰은 국내 최초로 스마트폰의 위치정보에 기반한 소셜커머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씨는 전철역을 나서는 길에 신촌과 이화여대 인근에서 '반값 할인' 행사를 하는 업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루폰은 위치에 기반한 추가적인 정보도 추출해낼 수 있다. 이용자가 늘수록 지역별 선호 메뉴와 이용자 계층, 즐겨 찾는 업소에 대한 정보가 축적되고 이를 분석해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데이터를 가공해오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은 지난달 인천에 명품관을 오픈하면서 새로운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정보가공)을 시도했다. 기존 인천점 고객 중 30~40대 전문직 여성을 추려낸 뒤 이들 중 고급 화장품 구매 경험을 비롯, 5~6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타깃 고객'을 찾아내고, 다시 이들 중 서울 지역 백화점에서 명품 구매 경험이 있는 손님만 집중 공략한 것. 결과는 적중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추리고 추려 찾아낸 4만명의 손님 중 2만명 이상이 실제 명품을 구매했고, 인천점의 전체 매출도 30% 이상 증가했다"며 "단순한 구매 '이력' 추적만으로도 꽤 유용한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IT기술의 발전과 모바일 환경 확대로 인해 생활 주변에서 창출되거나 유통되는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웹사이트 방문, 온라인 검색 통계, 위치정보, 소셜미디어 등 기업의 내·외부에 축적된 '빅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빅 데이터는 대용량의 데이터를 저장·수집·발굴·분석·비즈니스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칭하는 용어로 최근 굳어졌다.

해외의 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에 쌓이는 개인정보의 양은 1.2년마다 두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는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하는 일을 맡은 직원만 6000명에 달한다. 대용량 정보가 늘면서 정보를 세는 단위도 기가나 테라를 넘어 이제는 페타, 엑사, 제타까지 등장하고 있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기업마다 정보를 분석하고 새로운 데이터로 만들어내는 전문 인력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맥킨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만 14만~19만명의 정보 분석 전문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 미디어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시스모스(Sysmos)라는 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해 세계 각국의 트위터 이용자들이 올리는 관련 정보를 분석하고 있다. 코카콜라 코리아 관계자는 "갑자기 비우호적 정보가 급증한 국가나 지역 대상으로 홍보를 강화하는 등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트위터 분석은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아랍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이뤄지고 각 나라의 코카콜라 브랜치에 제공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움브리아라는 회사는 매일 수백만개의 블로그 포스트를 자동으로 읽어내 게시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10대인지, 20대인지를 문장구조, 사용단어, 구두점 습관 등을 통해 유추해낸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는 기업들이 인터넷상에서 고객들에 대응하거나 광고를 하는 데 유용한 정보로 제공된다.

빅데이터는 유용한 측면도 많다. 뉴욕타임스가 매킨지의 보고서를 인용한 지난 13일 보도에 따르면, 자동차 위치 정보와 교통량 분석만 활용해도 인류는 출퇴근 교통혼잡 비용과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여 전 지구적으로 연간 6000억 달러를 아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에는 교통카드 이용자의 승·하차 시각과 위치 정보를 가족에게 보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 무수한 개인들의 출·퇴근 시각과 이동 반경에 대한 정보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SK가 보유한 'OK캐시백' 회원 3400만명의 정보도 향후 큰 폭발력을 지닐 전망이다. 하지만 OK캐시백 사업을 담당하는 SKM&C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통합 마일리지 제공 이외에는 별도의 사업 계획이 없다"며 "개인 정보는 함부로 다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착한 빅브러더가 될 것인가

김기연씨는 최근 미국의 한 쇼핑 사이트에서 보내온 이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6살 된 아들과 남편의 속옷 등 필요로 하고 있던 쇼핑 아이템의 세일 정보를 보내온 것이다. 김씨는 "몇달 전 가족들한테 필요한 의류 제품을 검색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메일을 보내왔다"며 "유용했지만, 단순 검색 기록만 갖고도 누군가 우리 집 가족 관계까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다"고 했다. 구글은 이용자들의 개인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광고와 웹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필터링'을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이 개인에 관한 정보를 활용할 가능성이 많아짐에 따라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
애플의 위치정보 수집 의혹이 불거진 이후, 어디까지를 개인 정보로 볼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구글코리아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업계는 이를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은 단순 위치 정보를 개인정보로 보고 수사하는 것은 무리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찰은 단순 위치정보라고 해도 2차, 3차 가공을 통해 개인정보를 추출해낼 수 있고, 해킹을 통해 유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수집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빅 데이터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업이 가공한 '개인 정보'에 대한 소유권은 누가 갖는지, 기업에 남아 있는 개인정보에 대해 삭제할 권리는 없는지 등 다양한 이슈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춰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념을 '누구인지 식별되지 않을 권리'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지홍 세명대 교수(정보통신학부)는 "정보 생활의 '편리'를 위해 제공한 정보를 누가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해선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텍 컴퓨터공학부 김종 교수는 "자동차 보험 갱신 시기만 되면 여러 보험회사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전화가 걸려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국내 기업들이 개인정보의 안전한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라며 "새로운 서비스와 산업이 나올 가능성은 열어둬야겠지만,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수단도 동시에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