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박근혜와 '경상도의 DJ'
- ▲ 선임기자
"열정적 지지자들은 추호의 비판도 용납 않는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다
이 추세는 심화되고 있다"
"나도 박근혜를 좋아하지만 걱정이다. 이대로라면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올라가도 실패한다. 보수언론은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 주변을 취재하는데, 한 인사가 말했다. 맞다. "이쪽도 잘못, 저쪽도 문제"라는 '양비론(兩非論)'으로 슬쩍 묻어갈 순 있어도, 그만을 거론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열정적 지지자들은 박근혜에 대해 추호의 비판도 용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현 정치판에서 유일하게 20% 안팎의 고정표를 가졌다. 지지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다. 이 추세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경상도의 DJ'라는 말도 나온다.
한나라당 내 주류인 친이(親李)계도 더 이상 대놓고 그에게 말하지 못한다. 국회 본회의장 맨 뒷줄 그의 좌석 주변엔 항상 많은 의원이 몰린다. 그의 말 한마디는 대서특필되고 시시콜콜 해석된다. 머잖아 모든 당내 권력이 블랙홀처럼 그에게 빨려 들어갈 공산이 크다.
최근 그 위력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안'을 그가 던져버렸을 때 아무도 이의를 못 달았다. 당 지도부조차 '함구령'을 내리며 눈치를 봤다. 미국으로 건너간 대표비서실장이 30분 설득 끝에 '앞에 단단한 벽이 있는 것처럼' 느끼고 떠난 뒤 그녀는 이렇게 코멘트했다.
"경제도 안 좋은데 괜히 비행기 타고 올 필요가 있었나. 전화로 하면 됐지. 어제 이미 내가 안 된다고 했던 것…." 한번 마음을 정하면 더 이상 논의의 여지를 허(許)하지 않는 게 그의 원칙이다. 이걸 한나라당 주류는 여태껏 모르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탔던 셈이다.
지지자들은 다시 한번 그의 '원칙대로'를 확인하고 "역시 박근혜"라고 말한다. 그런데 자신이 결정 내리면 "그걸로 끝"이라는 원칙에 박수 치는 이들이 현 정권의 '소통(疎通)'을 문제 삼고 있다.
열정적인 지지를 말릴 순 없지만 과연 그의 앞날에 도움이 될까. 그가 늘 강조하는 '원칙'도 좀 냉정하게 살펴볼 때가 됐다. 침묵의 정치를 해온 그가 '원칙'을 말했을 때는 선거와 공천갈등이 생겼을 때다. 정치가 바로 서려면 이 점은 중요하다. 문제는 관심의 편향성에 있다. 차기 지도자로 유력한 그는 자신과 자신의 계파가 관련된 선거 말고는, 다른 국정 운영에서는 이처럼 '무게 있고 분명한' 입장을 취한 적이 별로 없다. 정치판이 아닌, 국민의 삶과 직접 관계된 곳에서 특히 그는 보이지 않는다.
작년 촛불시위가 광기(狂氣)로 흐를 때, 그가 정면에 나서 우리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그 뒤 경제위기로 서민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동안 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 어떤 식으로 고통을 같이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나중에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혹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서 당신은 그때 어디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답변을 할까.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개성공단 위기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결코 그럴 리 없겠지만, 그가 '침묵 모드'를 유지해 현 정권의 실책과 비인기를 기다려 '낙과(落果)'를 줍겠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올 초 국회의사당에서 여야가 팽팽하게 대립했던 미디어법 등 쟁점법안과 관련해 "국민의 공감대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원칙' 발언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가 미디어법 개정을 지지·반대하는지에 대해 아는 이가 없다. '관전평' 같은 그 한마디 말로 법안 처리는 뒤로 미뤄져 향후 표류되거나 더 시끄러워질 공산이 크다.
세상은 늘 '각론'에서 구체화되지만, 그의 원칙은 '총론'만 있다. 정말 중요한 정책에 대해 그는 침묵한다. 그러니 곁에 있어도 그의 실체가 어떤지 알 길이 없다. 신비주의는 인기 비결이 된다. 하지만 이는 본업인 연기는 하지 않고 대신 다른 걸로 이름을 얻는 연기자와 무엇이 다른가.
이미 그는 '그의 사람들'로 갇혀 있다. 그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주변에는 거의 없다. 그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소문은 정치판에 쫙 퍼져 있다. 앞으로 그는 더욱 그의 벽(壁)에 갇힐 것이다. 지지자들은 현 정권의 '포용력'에 대해서는 분개하지만, 남다른 성장과정을 겪은 그에 대해서는 이해해줘야 한다는 쪽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차기 지도자를 이해하면서 가야 하나.
만약 그가 '자신을 떠나간' 전여옥 의원이 테러를 당해 입원했을 때 위로의 꽃다발을 전했다면, 또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했을 때 밥 한 끼를 냈다면, 분명히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다르다고 온 사람들이 합창했을 것이다. 지도자는 결코 보호막 안에서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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