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정보부 뺨치는 무법적(無法的) 은행 회장 사퇴 공작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지난달 31일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자리를 내놨다. 강 행장은 작년 9월부터 회장 대행을 겸직해 오다 12월 3일 회장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차기 회장으로 내정됐다. 회장 선임을 위한 임시주총을 불과 1주일 앞두고 회장 내정자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 은행을 둘러싸고 비정상적 일이 벌어져왔다는 증거다.
강 행장이 지난 12월 3일 차기 회장으로 내정될 때부터 정부가 못마땅해한다는 이야기가 정부와 금융가에 공공연히 나돌았고, 이어 금융감독원이 12월 16일 올 1월로 예정된 종합검사의 사전준비를 한다면서 KB금융지주에 대한 전방위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본 검사에 앞선 사전검사는 금감원 직원 3~4명이 나가 필요한 자료를 제출받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이번 KB금융지주 감사에 13~14명의 요원을 집어넣어 주요 부서장의 PC 12대를 압수하고, 강 행장의 차량 운전기사를 조사하고, 사외이사들의 비리(非理) 혐의를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PC 압수는 종합검사 때도 보기 드문 일이고, 비리 혐의가 분명하지 않은 한 운전기사를 불러 면담을 위장한 조사를 벌인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힘든 일이다. 금감원이 군사정권 시대의 정보부 노릇을 한 셈이다.
KB금융지주는 외국인 지분이 58%에 이르고 정부는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다. 정부가 이런 회사의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출된 회장 내정자에 대해 아무 법적 근거 없이 마구잡이 사퇴 압력을 넣은 것이다.
이번 일로 정부에 밉보이기만 하면 금감원이 어사(御史) 출두하듯 나서 시중은행장이든 민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이든 얼마든지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줬다. 금감원의 이런 불법 압력에도 강 행장이 버티고 있었다면 국세청과 검찰이 나섰을는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는 이 나라에서 법·규칙·제도는 그저 장식용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강 행장의 회장 내정 과정에서 KB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공공성이 강한 금융기관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잇속만 차려왔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회장도 자신들이 선출하고, 사외이사도 자신들이 뽑고, 연봉도 스스로 결정하면서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정부가 끼어들 빌미를 주고 말았다. 정부처럼 법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외이사들처럼 법을 자기들 유리하게만 이용하려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번 사태로 서울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꿈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드러났다. 세계의 어느 금융회사가 이런 법 없는 나라에 투자할 것이며, 이런 질 낮은 사외이사를 두고서 과연 한국 금융산업의 선진화가 가능하겠는가.
'인간관계 > 인물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찰, `비방글 작성` 박근혜 동생 남편 소환 (조선일보 2010.01.02 06:47) (0) | 2010.01.03 |
---|---|
[사람과 이야기] `과학에 희망 있어요 (조선일보 2010.01.02 05:26) (0) | 2010.01.03 |
카툰으로 투병기 쓰는 `오방떡소녀` 조수진 (조선일보 2010.01.02 13:47) (0) | 2010.01.03 |
`G세대`의 특징 (조선닷컴 2010.01.01) (0) | 2010.01.01 |
`G세대 한국인` 새 100년을 이끈다 (조선닷컴 2010.01.01) (0) | 2010.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