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선우정 특파원의 오타쿠 경제] '공부의 신' 원작자 미타 노리후사 인터뷰
입력 : 2010.04.10 03:13 / 수정 : 2010.04.10 09:52
"난 양복점하다 30세부터 만화 그려… 공부든 사업이든 일단 도전하세요"
그냥 갑자기 그려서 출판사 보냈어요
데뷔하기 위해 연습을 한다거나 준비하는 일은 안 했지요
그랬다면 아직 출발도 못하고 자신의 능력만 의심하고 있을겁니다
지난 2월 23일 종영한 드라마 '공부의 신'은 일본 만화 '드래곤 사쿠라'가 원작이다. 일본에서도 원작 만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 모두 큰 인기를 끌었다. 뜻밖이었다. 만화가 연재되기 시작한 2003년, 일본은 유토리 교육(전인교육을 명목으로 학습량을 줄인 것)의 절정기였다. 이런 시대에 갑자기 파산 위기의 양복점을 경영하던 만화가가 "주입식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라고 외치자, 일본 국민이 손뼉을 친 것이다.
벚꽃이 개화하기 시작한 3월 31일, 한적한 주택가인 도쿄 기치조지(吉祥寺)에서 '드래곤 사쿠라'의 원작자인 미타 노리후사(三田紀房)를 만났다. 1958년생. 한국의 '58년 개띠'들처럼 치열한 시험전쟁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70년대 학번이다. 마침 일본 정부가 유토리 교육을 중단하고 학생들의 학습량을 대폭 늘리기로 한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직후였다.
―"주입식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란 만화 속 야나기 선생의 주장은 연재를 시작한 2003년 당시 기준으론 정말 파격적이었습니다.
"만화를 기획했을 때 유토리 교육의 전성기였지요. 하지만 국민 사이에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역시 확실히 공부하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함께 생기기 시작했어요. 학생들의 학력과 국제 경쟁력 하락이 느껴질 때였지요. 하지만 분명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생각하는 혼네(本音·속마음)를 만화로 하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지요. 생각대로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단순하고 당연한 명제였지요. '도쿄대에 갈 수 있으면 가는 것이 좋다' '도쿄대에 갈 수 있으면 가라'는."
―말은 쉽습니다만….
"도쿄대에 대해 모두 '어렵다, 일등 인간이 아니면 못 들어간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하지요. 처음부터 '나는 무리'라면서 생각조차 안 합니다. 전 27세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30세에 만화가로 데뷔했어요. 갑자기 시작해 어느 정도 성공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말고 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일단 해봐요, 이런 메시지이지요."
- ▲ 최근 국내에서 방영된 드라마 ‘공부의 신’의 원작 만화 ‘드래곤 사쿠라’를 그린 일본 만화가 미타 노리후사는 “만화 연재를 시작한 2003년은 전인교육을 뜻하는 유토리 교육의 전성기였으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학생들의 학력 하락에 대한 걱정이 번지고 있었던 시기”라며 “모두가 생각하는 속마음을 만화로 만들어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말했다. / 도쿄=선우정 기자
■'도쿄대 신화 붕괴'는 매스컴이 지어낸 말
―선생님도 학생 때 도쿄대를 지망했나요? (그는 사립명문인 메이지·明治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못했습니다. 도쿄대를 들어가는 학생들은 늘 만점을 맞고, 모의시험에서 1등을 했지요. 전 만점을 못 맞았으니 도쿄대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당시 도쿄대는 역시 '언덕 위의 구름(평범한 사람은 근접할 수 없는 세계를 이르는 관용어)'이었군요.
"제가 학생 때는 아이들이 많았으니까요. (수험생이) 200만명 정도 있을 때였지요. 지금은 130만명. 저보다 윗세대는 300만명이었지요. 제가 수험생일 때 도쿄대는 2차 시험까지 있었어요. 아주 가혹한 시험이었지요. 재수, 삼수는 당연하다고 여길 때였습니다. 현역(재학생) 합격률이 아주 낮았습니다."
―만화에서 사쿠라기 변호사는 "도쿄대는 이제 언덕 위의 구름이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출산으로 학생도 줄고, 입시 방법도 아주 다양해 졌지요. 들어가겠다고 생각하면 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지요."
―일본에서 도쿄대를 졸업하면 정말 인생이 달라집니까? 만화에서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도쿄대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한국에선 드라마에 대해 수험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컸습니다.
"(인생이 달라지는 데) 도쿄대는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현실이지요. 나라가 가장 많은 돈을 주는 곳도 도쿄대입니다. 정부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으니 도쿄대의 메리트는 더 커질 것입니다. '대학 이름은 상관없다' '도쿄대 신화는 붕괴했다'는 주장은 매스컴이 만들어낸 말이지요. 수험 경쟁을 부추기는 주장을 삼가는 것이 원칙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선생님은 대학 졸업 후 기업 '세이부(西武)백화점'에서 일한 경험도 있습니다만, 사회에서 보면 실제로 도쿄대 출신이 경쟁력이 있나요?
"일이 빠릅니다. 틀이 잡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대단합니다. 도쿄대 출신의 특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만화에서도 '틀'을 강조했습니다. 수험의 '틀'을 익히면 도쿄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래서 "도쿄대 출신은 붕어빵 같은 인재"라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단지 인상이지요. 도쿄대 출신에게 상대적으로 붕어빵 인재가 많다는 데이터가 있습니까? 정말로 여러 분야에서 탁월한 인재를 배출한 대학이 도쿄대이지요. 기초에서 우주공학 분야까지 압도적입니다."
―만화에 등장하는 교사 중 가장 임팩트가 컸던 교사는 수학 담당 야나기 선생이었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도 수학 교사 차기봉(변희봉 분)의 역할이 컸는데요.
"일본 기준에서 공부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가의 분기점은 수학이지요. 산수입니다. 일본인에게 '수학 신앙'은 아주 강합니다. 수학이 안 되면 공부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지요. 공부를 하겠다? 그러면 산수부터 하는 것이 원칙이지요. 수학을 강조하지 않으면 일본에선 리얼리티가 떨어집니다."
■양복점 주인에서 만화가로
―언제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나요?
"27세.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남성 양복점이었지요. 늘 경영난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도산한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무언가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지요. 그러다 찾은 일이 만화였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그럴 때 만화가게 운영을 결심할지 몰라도,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재능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만화 역시 '틀'이 있어요. '리메이크'라고 할까? '하나의 틀을 각자가 여러 형태로 재생산하는 것이 만화가 아닐까' 하고 전 생각했지요. 지금 잡지에 실리는 만화와 비슷한 수준의 만화를 그리면 출판사가 채용해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지요."
―수험생은 학원에 가서 배우면 되지만, 만화가 지망생은 어떻게 '틀'을 배우나요?
"종이를 사서, 그 위에 캐릭터와 대화를 집어넣는 것이 만화이지요. 자신이 하고 싶은, 흉내 내고 싶은 만화를 먼저 보고, 그것을 종이 위에 그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흉내 내면서 점차 자신의 스타일, 오리지널리티를 가미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만화라는 하나의 '관성계(慣性系)'가 완성됩니다. 그것을 출판사에 보내는 것이지요."
―누구를 흉내 내셨나요?
"지바 데쓰야(한국에서 '도전자 허리케인'으로 소개된 '아시타노 조'의 원작자), 미즈시마 신지(일본 야구만화의 대표 작가) 등 제가 어렸을 때 활약했던 분들의 만화였지요. 특히 지바 데쓰야의 단편 만화를 서점에서 사다가 몇번씩 읽으면서 '아, 이런 장면은 이렇게 그리는구나' 하고 공부를 했지요. 단편 만화의 표본이었습니다."
―몇년이나 공부를 했나요?
"저는 처음부터 만화를 그리자마자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데뷔를 하기 위해 연습을 한다든가, 준비를 한다든가 하는 일은 안 했지요. 준비를 하려고 하면 대체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본인은 잘 모릅니다. '자, 준비를 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자'라는 스타트 라인을 본인이 발견하기 어렵지요. 자신이 한 일을 계속 의심하게 됩니다. '이러면 상을 탈 수 있을까', '출판사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더 어렵습니다. 전 그냥 보냈습니다. 출판사에서 반응이 없으면 재능이 없다는 얘기이니 체념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반응이 있으면 스스로 모르는 재능,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이니까 정식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출판사 편집자는 '이건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요?' 하고 늘 조언을 줍니다. 말한 대로 고치면 되지요."
■독자의 공부법 제보, 만화에 반영
―처음부터 만화 인생이 쉽게 풀렸습니까?
"처음 응모에선 떨어졌어요. 최종 심사까지는 갔었는데. 편집자의 조언에 따라 만화를 고치고 다시 응모를 했지요. 이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데뷔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때가 서른이었군요.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만화를 그렸으니 1년에 한 편을 그리기 어려웠지요. 데뷔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월간지로부터 월 1회씩 연재를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1년 정도 계속 가게를 운영했지요. 그러다가 '만화로 먹고살겠구나' 싶어서 가게를 접었습니다."
―유명해진 것은 역시 '드래곤 사쿠라'부터였지요.
"그렇지요. 전에는 고교야구가 좋아서 주로 일본 고교야구를 테마로 만화를 그렸습니다."
―일본 만화는 야구·권투와 같은 스포츠, 공상만화가 주류입니다. '드래곤 사쿠라'는 수험이라는 이색 장르이지요. 히트 만화가 될 줄 예감했습니까?
"물론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누구나 히트 칠 것이라고 믿고 그립니다. 세상 일이 다 그렇지요. 하지만 믿음일 뿐 실제론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요. 도쿄대 수험이란 테마를 결정하고 어떻게 히트를 칠 것인가를 놓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담당 편집자가 도쿄대 출신이었지요?
"고단샤(講談社·'드래곤 사쿠라'를 연재한 만화잡지의 발행 출판사)에 신입사원으로 막 입사한 편집자였습니다. 연재를 시작한 2003년에 22세였지요. 수험 생활 후 4년밖에 안 지났을 때라 생생한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도쿄대 친구들도 활용해서 여러 공부법을 취재했지요. 그 가운데 재미있는 것을 만화에 반영했지요. 도쿄대 합격이란 결과가 확실히 나온 공부법이라 신뢰성이 있었지요. 연재가 시작되고 앙케트를 통해 독자 반향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공부법도 있다' '우리 학교엔 이런 선생도 있다' 등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지요. 그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반영했습니다. 그러자 점점 더 독자의 반향이 커졌습니다. 선순환이랄까."
―한국에서도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도 비슷한 수험전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수험이 만화의 테마이지만, 실은 그 뒤에 더 큰 테마가 있습니다. '열심히 살자'는 것이지요. '노력하는 것은 아름답다, 특히 아이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응원하고 싶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마음이지요. 열심히 축구하는 아이, 열심히 야구하는 아이에게 느끼는 감동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에게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수험이라는 공통의 환경이 아니라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공통의 정서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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