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관계/인물열전

경제개발 주도하며 화려한 등장…(서울경제 서울경제 | 2010/08/24 16:45)

경제개발 주도하며 화려한 등장…참여정부 때 '제2전성기'

[한국의 新人脈] <3부> 관료사회를 파헤친다 3. 모피아의 맞수, EPB

전윤철·진념·강봉균·변양균 등 거시정책 기획·예산통 핵심 줄기
결속력 덜하지만 실력으로 승부 모피아 득세속 끈질긴 부활시도
EPB(경제기획원ㆍEconomic Planning Board) 관료는 재무관료인 '모피아'와 함께 한국의 경제정책을 책임져온 양대 축이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인사는 "모피아가 국세청ㆍ검찰처럼 궂은 일을 맡아왔다면 EPB는 정책을 예쁘게 분칠하는 일종의 '화장술의 집단'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피아가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말 그대로 '마피아적 행태'를 보여준 반면 EPB는 진정한 실력으로 자신의 주가를 올려온 진정한 승부사들이었다. 모피아와 달리 진념 전 부총리나 강봉균 현의원 등 상대적으로 호남 출신 인물들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과 맞닿아 있다. 결속력 면에서는 EPB가 상대적으로 덜하더라도 모피아의 영원한 맞수로 자리를 지켜온 것은 EPB가 지닌 특유의 거시적 안목이 내공으로 응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모피아의 득세 속에서 계속되는 힘의 부활 시도
EPB는 한국경제의 압축성장 시대인 지난 1960~1980년대 거시정책과 예산을 다루면서 우리 경제의 비전을 그려왔다. 이를 두고 흔히 "재무부가 땅을 보고 경제기획원이 하늘을 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EPB가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ㆍ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 때다. 당시 정부 주도의 강력한 개발경제정책에서 힘 있는 기획과
정밀한 예산배분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재무부 내 예산 부문에 각 부처가 가진 기획ㆍ정책조정 기능을 합쳐 경제기획원을 출범시킨다.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을 주도하기 위한 숙명적 탄생이었다. 이후 EPB는 모피아를 제치고 1960년대부터 시작해 1980년대 초까지 이어온 경제성장 드라이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EPB가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주도권을 계속 잡지는 못했다. 1980년대 이후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 기획원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에는 EPB가
부활의 기치를 걸고,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한 재정경제원이 출범했지만 모피아의 끈끈한 유대 앞에 무릎을 꿇고 오히려 입지가 좁아지고 만다. 한 EPB 출신 고위관료는 "재무부와 기획원이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면서 33년간 지속돼온 재무부에 대한 EPB의 견제에 힘이 빠지면서 경제개발 시대를 주도한 EPB의 제1전성기가 끝나게 된다"고 전했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다시 재정경제원을 모피아가 축이 되는 재정경제부와 EPB가 중심이 되는 기획예산처로 분리한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의 정책 부문을 재정경제부가 가져가 결국 EPB는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로 나뉘어 분파의 아픔을 겪게 된다.

◇모피아에 대한 견제 속 끈질긴 부활 도모
모피아의 막강한 힘에 대한 견제는 한편으로 EPB에 부활의 기회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참여정부 때 전성기가 도래한다. 참여정부 시절 모부처 장관을 지낸 관료는 "당시 모피아의 몰락과 대비해 이피아(EPB+모피아(Mafia)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이 속에서 EPB 출신 관료들은 나름대로 그들만의 계보를 형성하게 된다.

핵심 줄기는 경제정책을 주무른 '기획통'과 예산을 총괄한 '예산통'이다. 기획통에서 공직생활을 한 한덕수 주미대사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에 취임할 때 경제관료는 모두 13명으로 그 가운데 EPB 출신이 10명에 달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공정거래법의 창시자이자 예산통의 대부인 전윤철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권오규 경제부청리(기획통),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예산통),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예산통),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기획통), 윤대희 청와대 경제수석(기획통) 등이 모두 EPB에서 경제기획과 예산을 담당하며 한솥밥을 먹던 사이다. 전 전 원장이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임상규 국무조정실장이 예산실장을, 장병완 장관과 김영주 장관이 각각 기금정책국장과 재정기획국장을 역임한 '전윤철 직계'라 할 수 있다. 변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 자리를 장병완 차관에게 물려줬고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과는 동향인 경남 통영 출신이다.

이전인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EPB의 끈끈한 관계는 유지됐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기획원 시절 종합기획과장을 할 때 그 밑에 전 부총리인 강봉균 민주당 의원이 총괄계장을 했고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막내
사무관으로 같이 근무했다.

◇실력 승부…모피아 득세 속 호남인맥 상대적으로 두터워
모피아의 힘을 뚫고 참여정부 당시 부활할 수 있었던 힘은 역시 실력이었다. 특히 '영남정권' 아래서 호남 출신 관료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실력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독 'EPB 대부'들에는 호남 인맥이 많다. 진념(전북 부안), 강봉균(전북 군산), 한덕수(전북 전주), 장병완(전남 곡성)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실력으로 무장한 집단이지만 현정부 들어 EPB의 세는 다시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조만간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물러나면 현정부에서 EPB 출신 장관급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출범과 함께 EPB 출신인 박병원 전 경제수석이 입성하면서 부활을 기대했으나 일찍 퇴임하면서 희망이 사그라져다. 그래도 '전윤철ㆍ진념'의 대를 잇는 후배들은 깊이 힘을 응축하면서 부활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용걸 국방부 차관과 류성걸 기획재정부 2차관, 노대래 조달청장, 이수원
특허청장, 육동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그들이다.

여기에 재정부 본부에도 1급 7명 가운데 5명이 EPB 출신이다. 강호인 차관보, 구본진 재정
업무관리관 등이 그들이며 김용환 예산총괄심의관 등 차세대 주자들도 많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퇴임한 이동규 전 사무처장과 손인옥 현 부위원장, 박상용 사무처장, 한철수 소비자정책국장, 지철호 경쟁정책국장, 김성하 대변인 등이 EPB 출신이다
재정부 최고 요직 세제실장 '1급중 특1급'
[한국의 新人脈] <3부> 관료사회를 파헤친다 3. 모피아의 맞수, EPB

참여정부 시절에 승승장구
모피아 빗대 '세피아' 불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재정부 내 최고 요직 중 하나다. 100여명에 불과한 세제실 조직을 맡고 있어도 국가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그래서 세제실장은 승진 코스로 각광받으며 1급 중에도 '특1급' 자리로 통한다. 세제실은 재무부 시절 금융과 양대 축을 이루던 부서로 모피아로 분류되는데 참여정부 시절 세제실 출신들이 승승장구할 때 모피아에 빗대어 '세피아(세제+마피아(Mafia))'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승진 코스인 세제실장…1급 가운데 특1급인 요직
지난 1990년 재무부 세제국에서 세제실로 승격되면서 14명의 세제실장을 배출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경제특보가 대표주자. 1994년 3대 세제실장이었던 강 위원장은 1997년 공직을 떠나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1996년 4대 세제실장이었던 윤 장관도 지난 정부 금융감독원장 등을 거쳐 현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정부 장관에 올랐다.

1999년 6대 세제실장이었던 김진표 민주당
의원과 2001년 7대 세제실장을 지낸 같은 당 이용섭 의원도 강 위원장과 윤 장관의 관계와 유사하다. 참여정부에서 김 의원이 재정경제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이 의원이 건설교통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내는 등 닮은 꼴 행보를 걸었다.

◇기업ㆍ학계에서도 맨파워는 탁월
재정부 최고 요직을 거쳐간 세제실장 출신들은 공직을 떠나도 기업과 학계 등에서 왕성한 활동으로 맨파워를 자랑한다. 1대 세제실장인 김용진씨는 현재 한영회계법인 고문, 2대 세제실장을 지낸 이근영씨는 법무법인 세종 고문으로 일하고 있으며 8대 세제실장인 최경수씨는 2008년 현대증권 사장에 발탁돼 증권맨으로 변신했다. 9급 출신 신화를 창조했던 10대 세제실장 이종규씨는 코스콤 대표이사 등을 거친 뒤 외환은행 상근감사를 지내고 있으며 11대 세제실장 김용민씨는 감사원 감사위원을 거쳐 현재 재능대학 세무회계학과 교수로 후학양성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정부에서 13대 세제실장을 지낸 이희수씨는 IMF 이사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
◇세제업무 잔뼈가 굵은 세제통이 '대세'
역대 세제실장은 20년 이상 세제업무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세제통이 절대 다수다. 민간이나 재정부 타 실ㆍ국 출신이 세제실장이 된 전례는 단 한번도 없다. 15대 세제실장으로 현 주영섭 실장은 국세청, 재무부 세제실, 조세심판원 등 30년의 공직생활을 세제 분야에서 한우물을 팠다. 전임자인 14대 세제실장 윤영선 관세청장도 30년간 세제 분야에서 몸담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권 초기 조세정책 개혁 법안을 무난하게 그려냈다. 본부 국장인 김낙회 조세정책관과 김형돈 재산소비세정책관, 문창용 조세기획관도 세제실과 조세심판원을 오간 정통 세제통으로 통한다. 지난해 1급으로 승진해 조세심판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백운찬 원장과 2008년 국세청으로 이동한 김문수 국세청 소득지원국장도 빼놓을 수 없는 세제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