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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경제개발 주도하며 화려한 등장…참여정부 때 `제2전성기`

경제개발 주도하며 화려한 등장…참여정부 때 '제2전성기'

[한국의 新人脈] <3부> 관료사회를 파헤친다 3. 모피아의 맞수, EPB

전윤철·진념·강봉균·변양균 등 거시정책 기획·예산통 핵심 줄기
결속력 덜하지만 실력으로 승부 모피아 득세속 끈질긴 부활시도
EPB(경제기획원ㆍEconomic Planning Board) 관료는 재무관료인 '모피아'와 함께 한국의 경제정책을 책임져온 양대 축이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인사는 "모피아가 국세청ㆍ검찰처럼 궂은 일을 맡아왔다면 EPB는 정책을 예쁘게 분칠하는 일종의 '화장술의 집단'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피아가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말 그대로 '마피아적 행태'를 보여준 반면 EPB는 진정한 실력으로 자신의 주가를 올려온 진정한 승부사들이었다. 모피아와 달리 진념 전 부총리나 강봉균 현의원 등 상대적으로 호남 출신 인물들이 많은 것도 이런 배경과 맞닿아 있다. 결속력 면에서는 EPB가 상대적으로 덜하더라도 모피아의 영원한 맞수로 자리를 지켜온 것은 EPB가 지닌 특유의 거시적 안목이 내공으로 응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모피아의 득세 속에서 계속되는 힘의 부활 시도
EPB는 한국경제의 압축성장 시대인 지난 1960~1980년대 거시정책과 예산을 다루면서 우리 경제의 비전을 그려왔다. 이를 두고 흔히 "재무부가 땅을 보고 경제기획원이 하늘을 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EPB가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5ㆍ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제3공화국 때다. 당시 정부 주도의 강력한 개발경제정책에서 힘 있는 기획과
정밀한 예산배분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재무부 내 예산 부문에 각 부처가 가진 기획ㆍ정책조정 기능을 합쳐 경제기획원을 출범시킨다.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을 주도하기 위한 숙명적 탄생이었다. 이후 EPB는 모피아를 제치고 1960년대부터 시작해 1980년대 초까지 이어온 경제성장 드라이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EPB가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주도권을 계속 잡지는 못했다. 1980년대 이후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 기획원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에는 EPB가
부활의 기치를 걸고,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통합한 재정경제원이 출범했지만 모피아의 끈끈한 유대 앞에 무릎을 꿇고 오히려 입지가 좁아지고 만다. 한 EPB 출신 고위관료는 "재무부와 기획원이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면서 33년간 지속돼온 재무부에 대한 EPB의 견제에 힘이 빠지면서 경제개발 시대를 주도한 EPB의 제1전성기가 끝나게 된다"고 전했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다시 재정경제원을 모피아가 축이 되는 재정경제부와 EPB가 중심이 되는 기획예산처로 분리한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의 정책 부문을 재정경제부가 가져가 결국 EPB는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공정거래위원회로 나뉘어 분파의 아픔을 겪게 된다.

◇모피아에 대한 견제 속 끈질긴 부활 도모
모피아의 막강한 힘에 대한 견제는 한편으로 EPB에 부활의 기회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참여정부 때 전성기가 도래한다. 참여정부 시절 모부처 장관을 지낸 관료는 "당시 모피아의 몰락과 대비해 이피아(EPB+모피아(Mafia) 합성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이 속에서 EPB 출신 관료들은 나름대로 그들만의 계보를 형성하게 된다.

핵심 줄기는 경제정책을 주무른 '기획통'과 예산을 총괄한 '예산통'이다. 기획통에서 공직생활을 한 한덕수 주미대사가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에 취임할 때 경제관료는 모두 13명으로 그 가운데 EPB 출신이 10명에 달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공정거래법의 창시자이자 예산통의 대부인 전윤철 전 감사원장을 비롯해 권오규 경제부청리(기획통),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예산통),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예산통),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기획통), 윤대희 청와대 경제수석(기획통) 등이 모두 EPB에서 경제기획과 예산을 담당하며 한솥밥을 먹던 사이다. 전 전 원장이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임상규 국무조정실장이 예산실장을, 장병완 장관과 김영주 장관이 각각 기금정책국장과 재정기획국장을 역임한 '전윤철 직계'라 할 수 있다. 변 실장은 기획예산처 장관 자리를 장병완 차관에게 물려줬고 김성진 해양수산부 장관과는 동향인 경남 통영 출신이다.

이전인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EPB의 끈끈한 관계는 유지됐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기획원 시절 종합기획과장을 할 때 그 밑에 전 부총리인 강봉균 민주당 의원이 총괄계장을 했고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막내
사무관으로 같이 근무했다.

◇실력 승부…모피아 득세 속 호남인맥 상대적으로 두터워
모피아의 힘을 뚫고 참여정부 당시 부활할 수 있었던 힘은 역시 실력이었다. 특히 '영남정권' 아래서 호남 출신 관료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실력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독 'EPB 대부'들에는 호남 인맥이 많다. 진념(전북 부안), 강봉균(전북 군산), 한덕수(전북 전주), 장병완(전남 곡성)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실력으로 무장한 집단이지만 현정부 들어 EPB의 세는 다시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조만간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물러나면 현정부에서 EPB 출신 장관급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출범과 함께 EPB 출신인 박병원 전 경제수석이 입성하면서 부활을 기대했으나 일찍 퇴임하면서 희망이 사그라져다. 그래도 '전윤철ㆍ진념'의 대를 잇는 후배들은 깊이 힘을 응축하면서 부활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용걸 국방부 차관과 류성걸 기획재정부 2차관, 노대래 조달청장, 이수원
특허청장, 육동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그들이다.

여기에 재정부 본부에도 1급 7명 가운데 5명이 EPB 출신이다. 강호인 차관보, 구본진 재정
업무관리관 등이 그들이며 김용환 예산총괄심의관 등 차세대 주자들도 많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퇴임한 이동규 전 사무처장과 손인옥 현 부위원장, 박상용 사무처장, 한철수 소비자정책국장, 지철호 경쟁정책국장, 김성하 대변인 등이 EPB 출신이다.

모피아 상징어 '이헌재 사단' 경제계 넘어 정치·사회전반에 포진
[한국의 新人脈] <3부>관료사회를 파헤친다 2. 경제정책의 힘, 모피아

■ 그들은 지금 어디에
모피아가 수십년 동안 크고 작은 군락을 형성해왔지만 핵심은 역시 '이헌재 사단'이다.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를 중심으로 한 현 정부의 실세들이 나름 굵직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지만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분출한 카리스마와 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맥의 고리에 필적하지 못한다. 이른바 모피아의 대부라는 사람들의 인적고리가 관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 전 부총리의 사슬은 민과 관에 걸쳐 방대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모피아=이헌재'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다.

다른 한편으로 론스타 매각에 대한 단죄의 과정과 그를 향한 참여정부 '386' 등의 공격은 모피아에 대한 사회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모피아와 이헌재는 이렇게 '힘과 견제'라는 양날의 칼을 품어왔다.

그렇다면 이헌재 사단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물론 정권이 바뀌면서 시장을 뒤흔들던 위력은 예전 같지 않다. 은행권을 뒤흔들던 황영기 전 KB지주 회장은 불명예 퇴진했고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뒤안으로 물러났다. 우리은행장을 지낸 이덕훈 전 금융통화위원도 로펌의 고문으로 후선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오른팔로 불렸던 서근우 전 금감위 심의관은
하나은행 부행장 등을 거쳐 금융연구원에 둥지를 틀었다. '정책 실무 총책'이었던 정기홍 전 서울보증보험 사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은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혹자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소멸'이라는 단어를 이헌재 사단에 붙이는 것 역시 오판이다. 우리 사회에서 모피아의 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과거 정부 그의 사단이 경제계에 국한돼 있었다면 오히려 지금은 스팩트럼이 정치ㆍ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이성남 전 금통위원은 국회의원으로
알토란 같은 법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사단이라고 특정 짓기 힘들다는 얘기도 있지만 박해춘 전 서울보증보험사장은 충남지사 출마에 이어 지금은 한나라당의 서민금융대책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제계에도 그의 인맥 중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금정라인에서는 진동수 금융위원장과 김석동 농협
연구소 대표 등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엄존한다.

민간에서도 그의 철학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많다. 자문역할을 했던 최범수씨는
신한금융지주의 전략담당 부사장으로 '이헌재의 입' 역할을 했던 김영재 전 금감위 대변인은 칸서스자산운용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경험을 말해주듯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그의 사단을 찾았다. 서근우씨는 금감원 구조조정 자문역으로 일했고 '이헌재의 왼팔'로 불렸던 이성규 전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은 은행들의 부실채권을 처리해주는 유암코 사장을 맡고 있다.

'이헌재 사단'에 속하는 한 인사는 "'이헌재 사단'에 대한 평가는 모피아
집단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라며 "특정한 평가보다 그의 철학을 계승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경험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