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 사태 속에서 스타가 된 흑인 여검사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습니다."
1일(현지시간) 오전 볼티모어 전쟁기념관 앞.
앳돼보이는 흑인 여검사 매릴린 모스비(35)가 마이크 앞에 섰다.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습니다.” 경찰 구금 상태에서 숨진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25) 체포에 관련된 경찰관 6명을 살인,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한다는 전격적인 발표였다.
미국 전역을 폭동과 연대 시위로 몰아넣은 볼티모어 사태에 급반전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사법 정의를 요구하던 시위대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이후 경찰관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이 잇따랐지만, 경찰관 기소결정이 이렇게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모스비는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올 1월 취임한 새내기 검사다. 미국 50개 주 검사 가운데 최연소다. “경찰관들의 공권력 남용을 보다 공격적으로 다루겠다”는 약속으로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삼촌 등이 경찰인 5대째 경찰관 집안 출신이다. 어린 시절 사촌오빠가 마약상으로 오인받아 집앞에서 살해당했다. 이때 자신의 가족을 검찰이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내가 그레이를 위해 정의를 실천하려면 여러분이 절대적으로 평화를 지켜줘야 한다”며 시위대의 자제를 요청했다. 동시에 “6명 경찰관에 대한 기소가 경찰 전체에 대한 기소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달라”며 경찰 조직을 달랬다.
그러나 경험 부족과 정치적 야심 때문에 모스비가 성급한 결정을 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의 남편은 현직 볼티모어 시의원이다. 게다가 선거 때 그레이 가족의 변호사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경찰 노조는 이미 모스비의 객관성에 문제가 있다며 특별 검사 지명을 요청하고 있다. 기소된 경찰관들이 재판에서 유죄로 확정될지도 미지수다. 미국 사법 시스템에서 공무집행 중 벌어진 사건에 대해 결정적인 증거 없이 경찰관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어쨌든 모스비는 볼티모어에서 ‘정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시위대에선 벌써 '모스비를 시장으로'라는 피켓이 등장했다.
[볼티모어 르포] "총 꺼내들어 보여주자 그제야 돌 든 시위대가 지나갔다"
(중앙일보 2015.05.03 17:10)
2일 정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 있는 상점가. 이곳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60대의 한인 업주가 옆의 신발가게인 ‘스위트 16’에 급하게 들어와 말을 꺼냈다. “(가게 철문을 내릴) 준비를 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자 현금인출기 옆에 서 있던 한인 업주 강모(51)씨는 “형님 난 다 준비했어요”라며 손으로 계산대 아래를 가리켰다. 권총을 준비했다는 얘기다. 그는 “경찰에 물었더니 상점 안에선 내 생명 보호를 위해선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가 경찰 호송 과정에서 사망한 뒤 지난달 27일부터 대규모 시위와 약탈이 벌어지며 대형 잡화점과 편의점이 불타는 장면이 전세계에 보도됐던 곳이 바로 이 일대다. 이날도 이 거리에서 시위가 예정돼 있었다. 하늘 위에는 낮게 비행하는 경찰 헬기의 굉음이 이어졌다. 30여m 옆에서 ‘홉킨스 뷰티 서플라이’를 운영하는 방인철씨. 그는 가게 앞 도로에 차를 세운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방씨는 “죽은 프레디그레이와 쌍둥이 여동생은 우리 가게의 고객이었다”며 “LA 폭동 때 당했는데 여기 와서도 폭동을 겪는다”고 말했다.
1992년 LA 폭동 사태 때 방씨는 건물 관리인이었다. 그가 담당한 건물엔 아버지와 장인의 가게가 있었는데 모두 털렸다. 방씨는 “시위대가 오면 가게 문을 닫고 차 안에 들어가 가게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방씨는 약탈이 벌어졌던 지난달 27일 바로 이 자리에서 시위대를 맞았다. “시위대가 돌을 들고 몰려와 차 안에 몸을 숨겼다. 몇 명이 바깥에서 유리창에 코를 대고 들여다 보기에 차 안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더니 그제서야 그냥 지나갔다.”
바로 옆 가게인 ‘뷰티 포인트’는 그날 밤 완전히 털렸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닥엔 깨진 화장품과 미용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진열대 유리는 조각조각 깨져 있었다. 현금인출기는 박살난 채 가게 한곳에 쓰러져 있었다. 이곳의 한인 업주 정지호씨는 “하룻밤 만에 35만 달러가 사라졌다”고 허탈해 했다. 약탈범들은 정문의 철문을 뚫지 못하자 건물 내부의 뒷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정씨는 다음날 낮에 뒷문을 용접해 출입을 막았지만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메릴랜드주 정부에 따르면 이번 폭동 사태로 피해를 본 업체는 200여 곳이다. 이중 한인 업소는 확인된 숫자만 40여 곳이다.
40여분후 ‘올 나잇 올 데이’를 외치는 시위대 300여 명이 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우리는 밤과 낮 내내 정의를 위해 싸우겠다’는 구호였다. 시위에 참여한 40대 흑인 여성 캐시 베넷은 “흑인들은 집도 직업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데 정부는 하는 게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낮시위는 물리적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다. 검찰이 프레디 그레이의 사망에 관련한 경찰 6명을 기소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차로 20여 분 떨어진 주류 소매점 ‘킴스 리커’에서 만난 이한엽씨는 가게 문을 열고 내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가게 앞엔 약탈당할 때 깨진 술병 조각들이 그대로였다. 이씨는 “약탈 다음날 아침에 와보니 점포 안엔 미처 들고 가지 못한 술병을 담은 쇼핑백이 구석에 놓여 있었다”며 “쇼핑하듯이 가져 갔다”고 말했다.
그가 보여주는 가게 CCTV 화면엔 해머로 점포 문을 부수는 약탈범들의 모습이 담겼다. 이씨는 “맥주처럼 값싼 술은 그대로고 비싼 양주만 들고 나갔다”며 “약탈범들이 훔친 양주를 팔게 분명해 앞으로 3개월은 장사가 거의 안될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2년 전 이 가게를 인수했던 그는 “좀도둑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다음엔 총을 들고 가게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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