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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세종라이프] “한 집에 살지만 이름도 얼굴도 몰라요” (조선일보 2015.03.22 06:00)

[세종라이프] “한 집에 살지만 이름도 얼굴도 몰라요”

 

[세종라이프] “한 집에 살지만 이름도 얼굴도 몰라요” ▲정부세종청사 옆 공무원임대아파트

“세종시에 방 구한지 반 년이 넘었는데, 같은 집에 사는 사람 이름은 커녕 얼굴도 한 번 못 봤어요.”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A국장은 지난해 청사 인근에 방을 하나 구했다. 원룸은 아니고 방3개 아파트 중 방 하나를 쓰기로 했다. 공무원 연금공단의 공무원 임대 아파트로 연금공단에 신청을 하면 추첨 등을 통해 방을 하나 배정 받아 월세를 내고 산다.

A국장은 가급적 서울에서 출퇴근을 해 1주일에 2번 정도만 세종시에서 잠을 잔다. 세종시에서 잘 때면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가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잘 뿐이다. 출근도 빨리 하는 편이다. 저녁 늦게 들어가 아침 일찍 나오고, 화장실도 딸린 방에 살다보니 출퇴근 하는 중에 현관에서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않는 이상 같이 사는 사람을 볼 일이 없다.

A국장이 사는 집에는 A국장을 포함해 3명이 산다.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같은 공무원인것만 알지 이름이나 부처, 직급도 모른다. 출퇴근 하면서 현관에 있는 신발로만 누가 같이 살고 있구나 알 수 있다. 같이 사는 이들도 주로 출퇴근 족인지 신발을 보면 3명이 동시에 집에 있는 날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살다보면 관리비 정산 등 각종 생활에서 최소한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럴 때면 포스트잇에 글을 써서 방 앞에 붙여 놓는 방법으로 소통한다고 한다.

A국장은 “처음에는 누가 같이 사나 궁금해 방문이라도 한번 두드려 볼까 했는데, 살다보니 그냥 서로 모르고 사는 게 편하겠다 생각이 들어 모른 척 살고 있다”며 “집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모를까 굳이 인사할 필요성도 별로 못 느낀다”고 말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까지 세종시로 이사 온 정부 부처 공무원은 8581명이다. 이 중 33.7%인 2890명은 가족으로 두고 혼자 내려왔다. 올해 초 국세청과 국민권익위원회 등 중앙행정기관의 이전이 마무리 되면서 나홀로 공무원은 더 늘어난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나홀로 공무원들 중 상당수는 A 국장처럼 전혀 모르는 공무원들과 집을 공유하는 식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같이 살더라도 부처나 직급 등을 굳이 묻지도 않고 최대한 서로의 개인 생활에도 무관심하게 지내는 것이 일종의 매너라고 한다.

집의 용도도 정말 잠만 자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A 국장처럼 전혀 모르는 공무원들과 집을 공유하는 B과장의 경우에는 공동으로 쓰는 거실은 텅 비어있고,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냄새가 나거나 쓰레기가 나올 수 있으니 주방에는 가스조차 연결해 놓지 않고 있다.

B과장은 “세종시 집은 생활공간이라기 보다는 잠만 자는 숙박시설이라서 집을 공유하는 공무원들 집 대부분이 이럴 것”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