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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技풍’ 당당 ‘技세’ 등등 (서울신문 2015-03-21 13면)

‘技풍’ 당당 ‘技세’ 등등

정부부처 기술직 공무원 전성시대

 

“옛날엔 ‘공돌이’라며 낮잡아 보는 사람도 적잖았죠. 그러나 요즘 공직사회에선 싹 달라졌습니다. 섬세한 면에서 오히려 행정직 뺨친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주변에서 칭찬이 아주 자자합니다.”

행정자치부에서 일하는 한 고위 간부는 20일 이렇게 말하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기술직들을 두고 한 얘기다. 신인사운영 3대 원칙에 걸맞게 차별 철폐와 발탁 인사 적극 활용, 소수를 배려하는 배치를 천명한 데 따른 현상이다.

먼저 장관 비서실에 시설직 사무관을 발령해 눈길을 끌고 있다. 7년차인 김민철(33·행정고시 51회) 비서가 행정부 사상 비서실 기술직 1호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이다. 흔히 기관장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쓰지만 김 사무관은 정종섭 장관과 일면식도 없던 사이다.

●정종섭 장관 “직렬 따지지도 묻지도 마라”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에서 공직 첫발을 뗀 김 사무관은 앞서 주택정비과, 공공주택건설본부, 건축기획과를 거쳤다. 대학에선 건축학을 전공했다. 구만섭 비서실장은 “사안을 분석하는 데 눈에 띄게 빼어나다”며 김 사무관의 맹활약을 반겼다. 장관 일정을 관리하려면 정책들을 두루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업무엔 홍보 기능도 붙었다. 의사처럼 제대로 진단한 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우간다를 순방하고 있는 정 장관은 “직렬이니 뭐니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괜찮은 사람이면 명단을 모두 뽑아 보라고 지시해 건진 보배”라고 맞장구를 쳤다. 비서직 채용 땐 5배수로 추천을 받아 장관 면접까지 거친다.

행자부는 앞서 국장급인 지방행정연수원 기획부장에 기술고시 20회 출신인 충남도청 남궁영(53) 기획관리실장을 깜짝 발령해 놀라게 만들었다. 남 실장은 충남도에서 농정유통과장에 이어 살림살이를 도맡는 총무과장을 지냈다. 과거엔 거의 전부를 행정직으로 채웠던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도 한경호(52·기술고시 20회) 지방분권국장을 임명해 소수 직렬 배려가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핵심 업무를 다루는 전자정부정책과장에도 기술 서기관(황규철·43·기시 31회)이 뛰고 있다. 재정정책과 총괄업무 담당엔 전공과 너무 동떨어진 게 아니냐는 말까지 들을 법한 시설직 사무관(조형선·34·행시 52회)을 배치했다.

●행자부 5급 이상, 기술직 출신이 30%

이런 변화엔 소수 직렬에게서 쏟아지는 불만을 해소하려는 뜻도 담겼다. 늦은 승진 등 행정직들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행자부는 지난 13일 김주이(45·여·행시 39회) 공기업과장을 3급으로 승진시키기도 했다. 홍보담당관실 최영선(38·5급 경력채용) 서기관은 첫 여성 온라인대변인이다. 이들을 비롯해 과장급 이상 여성 공무원 13명을 배치했다. 본부 국·과장 7명, 소속기관 6명이다.

정 장관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부터 행복해야 서비스 대상인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라며 “어디에서도 차별을 느끼지 않도록, 소수자를 배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행자부는 지난 13일 인사에서 3급 승진 심사 결과 8명 가운데 전산직과 시설직 각 1명을 발탁했다. 4급에서도 대상자 22명 중 7명(전산직 4명과 시설·공업·방송통신직 1명씩)을 승진시켰다. 현재 5급 이상을 따지면 행정직이 498명으로 69.7%, 기술직이 217명으로 30.3%를 차지한다. 임호철(57·7급 기사보 공채) 청사기획관은 부이사관에서 2년 2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한 계단 뛰어올라 기술직으론 보기 드물게 고위 공무원단 대열에 당당히 합류한 사례다. 행자부는 다음달 단행되는 전보인사 때도 사서직 등 소수 직렬의 본부 진입을 늘릴 예정이다.

불과 2년 전인 2013년 7월만 해도 당시 안전행정부 과장급 승진 인사에서 기술직 출신을 단 1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기술직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국민안전처가 인사혁신처와 함께 행자부에서 떨어져 나간 상황인데도 변화를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가뜩이나 적은 기술직렬 자리를 기존대로 행정직으로 계속 채운다면 변화를 꿈꾸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서울시에선 2011년 행정직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인사과장에 기술직인 구아미(당시 48세·기시 29회) 전 상수도연구원장을 임명해 처음엔 의아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생물학을 전공한 환경직 고시파이기 때문이다. 이런 파격은 막연히 존재하던 행정·기술직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칸막이를 제거함으로써 과거 행정직 위주로만 이뤄지던 인사운영 시스템에 균형감을 싣자는 취지였다.

정부 부처는 기존 이공계 출신이 담당하던 토목, 시설, 안전 등 소관 부서마저 행정직에 쏠려 차별을 더 심화시켰다는 비난을 받던 터였다. 그러나 이제 사뭇 달라진 것이다. 이달 말 정부청사 4곳을 관리하는 방호직에서 사무관이 탄생한다는 점도 바뀐 분위기를 가늠하게 한다. 입법부인 국회사무처에선 2013년 이미 배출됐지만 행정부 방호직으론 처음이다. 정 장관 취임 이후 행자부는 ‘방호직’의 의견을 수렴해 직위 명칭을 ‘방호관’으로 바꾸고 5급 신설을 추진했다.

틀을 깬 기술직 전진 배치는 다른 부처에서도 돋보인다. 고용노동부(산하기관 제외)에선 과장급 이상 직위에 배치된 기술직 공무원이 7명이다. 모두 4급이다. 역시 행정직에 주로 해당하던 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지방고용노동청 지청장, 산재예방보상정책국 산업안전과장과 산업보건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본부 기준)에선 과장 68명 가운데 10명이 기술직이다. 의사 3명, 약사 2명, 전산직 2명, 한의사 1명, 보건직 7급 출신 1명, 개방직(민간 보건) 1명이다. 2013년 말 현재 부처를 통틀어 기술직은 약 2만 3900명, 행정직은 9만 820명이다. 기술직 여성은 전체의 24.3%인 5810명에 이른다. 행정직 여성은 3만 185명이다. 정부는 차별 철폐를 위해 3급 이상 고위 간부에 대해 행정·기술직 구분을 없앴다. 부이사관 이상 직급은 1616명(여성 71명)이다.

●“승진 여전히 느려… 소수 직렬 배려 아직 부족”

행자부의 한 고위 간부는 “과거에 비춰 한층 높아진 기술직 공무원 선호도를 생각하면 다소 과장된 것인지 모르지만 도리어 절대다수라 할 행정직들 사이에 일종의 위기감과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등 뜻밖의 부대효과마저 나타난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기술직 간부 공무원은 “일정직위 이상에 소수 직렬이 많이 배치된다고 하면 마치 승진도 빠른 것처럼 비치지만 그렇지 않다”며 “근무 연한과 같은 구체적인 자료를 따지면 기술직 배려라고 해 봐야 여전히 부족해 능력을 인사의 잣대로 삼는다는 대원칙엔 아무래도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