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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인터폰으로 연애 '응사 커플' 수두룩 … 음주 적발되면 퇴사 (중앙일보 2014.03.01 09:46)

인터폰으로 연애 '응사 커플' 수두룩 … 음주 적발되면 퇴사

광주·전남 대학생 서울 숙소 '남도학숙' 20주년

 

본관 옥상에서 포즈를 취한 2014학년도 남도학숙생들. 20년 전 선배들처럼 학숙에서 추억을 쌓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날 기숙사로 돌아오니 한 여학생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거예요. 너무 예뻐서 줄을 대 만난 뒤 방마다 설치된 인터폰으로 밤새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주변 공원에서 데이트도 하고요. 같은 숙소 다른 층에 살던 그 여대생이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전남 해남이 고향인 임근석(47) 포스코ICT 이사가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4년 평생 배필을 만난 사연이다. 그러니까 지방 출신 학생들이 서울 지역 대학으로 진학해 한 숙소에서 생활하다 눈이 맞아 결혼에까지 골인했다는 줄거리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응사)의 신촌하숙 얘기 같다. 응사에선 경남에서 올라온 삼천포와 전남 여수에서 상경한 윤진이 맺어지지만 임 이사 커플은 동향(同鄕)이다. 임 이사가 “고향이자 집 같았던 곳”이라고 표현하는 서울 대방동 남도학숙. 광주·전남 출신 대학생들의 서울 기숙사인 이곳이 올해 3월로 20주년을 맞는다.

 지난달 18일 찾아간 이 학숙 1층 로비는 새 학기를 맞아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고향에서 보낸 택배로 가득했다. 김완기(70) 학숙 원장은 “94년 당시 광주시장을 비롯한 공무원과 기업인에서부터 농민·학생·주부까지 17만 명이 성금을 모아 마련한 숙소”라며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곳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고향의 도움으로 배우고 있다는 애향심을 갖고있다”고 소개했다. 20년간 거쳐간 인원만 9000여 명. 이 학숙 출신 중엔 국가고시(변리사·공인회계사 포함) 합격자만 156명이 나왔다. 의료계(65명), 언론계(35명)도 활발히 진출했다. 94년 학숙에 들어왔던 조교식(47) GS칼텍스 업무팀장은 “입사 당시엔 월 10만원을 냈다”며 “학숙에서 주는 밥이 맛있어서 각 대학으로 흩어지는 학생들이 점심 도시락을 싸 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학생이 내는 월 비용은 14만원이다. 지난해 이곳에 들어온 김명호(23·건국대)씨는 “1학년 때 학교 기숙사에 지내면서 6개월마다 식비를 빼고 200만원씩 냈었는데 하숙이나 자취는 물론이고 대학 기숙사비보다도 싸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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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학숙에는 850명의 학생이 살기 때문에 응사의 신촌하숙과 달리 관리가 빡빡하다. 오전 6시에 기상 음악이 울리고, 자정까지 학숙으로 돌아와야 한다. 응사 하숙생들이 틈만 나면 술잔을 기울이던 것과 달리 학숙에선 음주를 하다 적발되면 퇴사해야 한다. 음식을 남기지 못하게 식당에 잔반통도 없다. 월 1회 진행하는 명사 초청 강연 참석도 필수다. 규정을 많이 어겨 벌점이 일정 기준 이상 쌓이면 재입사를 제한한다. 94년 학숙에 들어왔던 서봉하(45) 전주지검 검사는 “대학 생활을 하면서 느슨해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지금은 돌아가신 김준 당시 원장 선생님에게 조언을 듣곤 했다”며 “학숙 시절 몸으로 익힌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검사 생활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였다. 학숙 원년 멤버인 주웅(42) 이화여대 여성암센터 교수는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어 ‘삐삐’로 메시지를 전하던 시절이다 보니 학숙 인터폰으로 여학생 방에 전화를 거는 ‘방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주 교수는 “학숙생끼리 커플이 되더라도 고향이 비슷해 한 다리 건너면 아는 경우가 많아 부모님들 귀에 들어갈까봐 조심조심 연애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2002년 이곳에서 지낸 남현정(33·여)씨는 “지하철역에서 학숙으로 오는 길이 어두침침해 여학생들이 불안해하자 예비역 장교 출신인 학숙 장학사 선생님이 지하철역에서 기다리다 보디가드를 해주곤 했다”고 술회했다. 남씨와 결혼한 논술학원 강사 이정주(32)씨는 “지금의 아내와 학숙 시절 ‘타향 살이’ 고달픔을 나눈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 점수를 땄다”며 “대학 동기들과 어울려 미팅도 많이 했지만 학숙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만큼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학숙 출신 김수철(30) 군인공제회 사업개발팀 사원은 “통금이 지난 밤늦은 시간에도 자물쇠가 걸린 출입문 틈으로 몰래 드나들곤 했다”고 전했다. 김옥주(26·홍익대)씨는 “2011년 학숙 친구들과 과테말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며 “학교를 마치면 주로 학숙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기말고사 기간에 불을 밝힌 남도학숙의 야경(위). 호신술 동아리 회원들이 2002년 5월 열린 기숙사 축제에서 합기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가운데). 같은 날 장기자랑 시간에 남녀 학생들이 층별로 짝을 이뤄 춤을 추고 있다(아래).

 

정을 나누다 보니 후배 사랑도 각별하다. 고재호(58) 학숙 장학부장은 “졸업생들이 동기회를 꾸려 매년 12월이면 학숙 송년회를 열고 장학금을 전달한다”며 “도움을 받은 졸업생이 ‘릴레이 장학금’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713명이 23억원가량의 혜택을 받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학숙 분위기는 달라졌다. 과거 의무였던 아침 체조는 2011년부터 요가·산책·조깅 등 동아리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야간 통로였던 출입문에는 지문인식 시스템이 달렸다. 학숙이 문을 열 때부터 근무한 정병수(53) 장학사는 “예전엔 학생들끼리 서로 인사도 잘 하고 휴게실에서 후배가 TV 채널도 맘대로 못 바꾸는 등 위계질서가 있었다”며 “요즘엔 서로 모르고 지내는 학생들도 많고 후배가 선배 눈치를 안 본다”고 했다. 연애 풍경도 변했다. 지난해 들어온 장지현(22·여·동덕여대)씨는 “다른 사람 시선은 의식하지 않고 화장기 없는 ‘쌩얼’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하루 종일 붙어다니며 데이트하는 학숙 커플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학숙을 찾는 학생들은 취업용 스펙을 쌓으려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광주·전남 출신 인사가 오너인 기업체에서 학숙생을 위한 입사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입사 추천을 의뢰하기도 한다. 동향 출신 인사들의 부인모임 등에서 매년 30여 명을 뽑아 해외 자원봉사나 배낭여행,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김명호씨는 “외부에서보다 경쟁률이 낮아 학숙 내 프로그램만 잘 활용하면 취업용 자기소개서에 쓸 스펙을 쌓기에 좋다”고 했다. 올해 학숙에 발을 디딘 대학 신입생 장종협(19·서울대)씨는 “캠퍼스 생활도 기대되지만 고향 친구들과 함께할 학숙 생활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며 “응사 세대 선배들처럼 우리도 2014년의 추억을 쌓아보겠다”고 말했다.

  20주년을 맞은 남도학숙을 포함해 서울에는 지방 유학생을 위한 기숙사가 6곳 있다. 강원학사(강원·1975년 개관), 경기도장학관(경기·1990년), 충북학사(충북·1992년), 서울장학숙(전북·1992년), 탐라영재관(제주·2001년)이다. 이들 시설은 각 시·도가 세운 장학회에서 지원하는 돈으로 운영한다. 2인 1실 시스템이고 월 기숙사비가 11만~20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게 공통적이다. 규모는 200~800명으로 차이가 있다. 입사 경쟁률이 높은 곳은 8대 1까지 치솟는다.

 지역별 기숙사 이름이 다르듯 각각 특색이 있다. 고재호 남도학숙 장학부장은 “학숙에 쓰이는 한자가 ‘잘 숙(宿)’이 아닌 ‘글방 숙(塾)’”이라며 “먹이고 재우는 곳이 아니라 일본의 정치 엘리트 양성기관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처럼 배우는 곳이란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강원학사도 당초 ‘새강원의숙(義塾)’으로 문을 열었다가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송재필(59) 강원학사 총무팀장은 “신림동 관악산 자락에 학사를 연 것은 산골이 많은 강원도 학생들이 향수를 덜 느끼도록 배려한 것”이라며 “학생들끼리 좀 더 친해질 수 있도록 2인 1실짜리 5개 방이 1개의 거실을 공동으로 쓰는 게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90년 강원학사에 입사한 황영철(49)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밤마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과 어울려 미래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며 “사회생활을 하며 학사 출신 동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탐라영재관의 ‘탐라(耽羅)’는 제주의 옛 이름으로 시민 공모를 통해 정했다. 탐라영재관은 김포공항과 가까운 강서구 가양동에 있다. 부영애(61·여) 영재관 장학부장은 “고향을 오가는 비행기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도록 공항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며 “제주도 특성상 명절에도 고향에 못 가는 학생들이 있어 연중 무휴로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2인 1실(월 기숙사비 13만원)뿐 아니라 3인 1실(월 11만원)을 운영하는 게 특색이다.

 서울장학숙은 고시동을 따로 운영한다. 국가고시 준비생 64명이 1인 1실에서 생활한다. 경기도장학관은 지역 특성상 연천·평택·용인·양평 등 다소 먼 지역 출신 학생들이 많이 이용한다. 충북학사는 2009년 개포동에서 당산동 신축 건물로 옮겼는데, 가장 최신 시설로 꼽힌다. 영남 지역 유학생을 위한 재경 기숙사 건립은 수차례 추진됐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한 기숙사 관계자는 “그나마 서울 땅값이 쌌던 70~90년대면 몰라도 지금은 시설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6개 기숙사는 매년 가을 연합체육대회를 연다. 각 지방 사투리로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2007년 충북학사에 입사한 서리나(25·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팀 사원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다른 기숙사 친구들과 달리 우리는 ‘지지나 말고 와유~’식으로 응원하곤 했다”며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