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사회 만들자]
(1·①) "서있는데 안전벨트 메라고?".. 대한민국의 현실
<1부> 우리 안의 또다른 세월호들 1 편법 판치는 사회
생활 속 제2, 제3의 세월호.. 관행이라 눈감아주시겠습니까
강원도 시골마을 등하굣길 철도건널목, 시야 가리는 건물 없애는 데 장장 30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자신의 생활 주변을 돌아보는 국민이 많아졌다.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에 스스로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옳은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눈감고, 편법에 길들여진 생활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한다.
사회 구석구석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박혀 있는 모순들은 시민의식 변화만으로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보여준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목숨을 건 잠수를 감행했던 민간잠수사, 내 일처럼 유가족을 돌본 자원봉사자, 유족과 고통의 나날을 함께한 천안함 유족들이 있었다.
파이낸셜뉴스는 세월호 참사에도 여전한 안전불감증과 잘못된 관행들을 되돌아보고 비극 속에서 희망의 꽃을 피운 이들의 이야기를 총 2부 6회에 걸쳐 게재한다.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 초등학생들의 통학길 안전을 위협하던 17.98㎡의 단층 건물 하나 철거하는 데 30여년의 세월이 걸렸다. 생활 속의 '작은 세월호'다.
태백시 통리초등학교는 학교 가까운 곳에 철도가 지나간다. 학생들은 이 철도 건널목을 지나 등하교를 한다. 철도 옆에는 건널목지킴이가 사용하던 작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아이들의 시야를 가려 다가오는 기차를 볼 수가 없다. 건널목 안전을 지켜주던 건물이 지금은 한 업체의 창고로 쓰이고 있고 지킴이도 없어 오히려 위험시설로 변질됐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과거 자동차와 열차가 추돌하는 사고도 있었고 인명피해도 발생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건널목에 안전시설을 요구하는 민원이 제기돼 왔다.
이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 김모씨는 지난 2012년 공식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철도시설공단에 건물을 철거하고 안전시설을 보강하라고 요구했다. 자신도 이 학교 졸업생인 김씨는 30여년 전부터 위험한 철길을 건너 다녔는데 자식까지 같은 길을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다른 학부모들도 동참했다. 그러나 공단과 관계 당국의 무관심 속에 1년6개월을 끌었다. 민원이 해결되지 못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세월호 참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씨가 처음 시설공단에 민원을 제기했으나'불가' 통보를 받은 이유는 이 건물이 철도시설공단 소유이지만 민간 업체가 임대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시설물을 사용 중인 민간업체는 공공의 안전보다는 작은 이익에 급급했다. 이 지역 철도는 한 석탄 회사가 무연탄을 나르는 용도로 사용 중이었고 문제의 건물도 무연탄 운송을 위한 창고로 사용 중이었다. 시설공단은 이 업체가 창고로 계속 사용하겠다고 하자 철거가 어렵다고 주민들에게 통보했다. 김씨는 경찰과 태백시에도 민원을 넣었다. 관계 당국은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렸지만 강제할 권한은 없었다.
4개 기관이 얽혀 있는 일이었지만 책임지는 곳이 없어 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하자 김씨는 서울에 있는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 호소했다. 결국 권익위원이 수차례 현장을 방문해 문제가 커진 뒤에야 해결 움직임이 보였다.
권익위 관계자는 "모두 다 건널목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었지만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의견을 모아야 처리가 가능했는데 처음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이 우리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생활 속 작은 일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국민들은 '내가 세월호 선원이었다면 관행처럼 행해온 과적에 반대할 수 있었을까. 출항이 늦더라도 화물을 단단히 결박해야 한다고 따질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다. 참사 이후 안전 의식이 변화하는 움직임은 곳곳에 나타나고 있 다.
지난 23일 아침 출근시간, 경기 수원에서 서울 강남 방향으로 향하는 좌석전용 'M버스' 안에서 운전기사는 고속도로 진입을 앞두고 "안전 벨트를 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이전에 이미 안내방송에서는 같은 주문이 있었지만 기사가 재차 강조한 것이다. 승객들은 주섬주섬 벨트를 찾아 모두 채우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앞자리 승객 몇몇만 못이기는 척 벨트를 맸던 풍경이 지금은 확연히 바뀌었다. 스스로 벨트를 이미 매고 있던 승객도 상당수였다.
세월호 이후 달라진 풍경들을 시민들이 몸소 체험하고 있다.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가 비슷한 대책을 반복했듯이 시민의식도 반짝 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는 확실하다. 하지만 시민 의식이 높아져도 안전불감증을 강요하는 시스템은 여전하다.
같은 날 또 다른 버스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같은 노선을 운행하는 광역급행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자 운전기사는 "조금씩 들어가 주세요"라며 통로에 서 있는 승객들에게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다그쳤다.
그 틈을 비집고 버스 앞문에는 또 3명이 올라타 출입문 계단까지 점령했다. 운전기사가 하차용 뒷문을 열자 이번엔 그쪽으로 4명의 승객들이 올라탔다. 좌석에 앉은 승객이 45명, 통로를 메운 승객 30여명, 이렇게 70여명의 승객이 꽉 들어찬 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100㎞가 넘는 속도로 내달렸다. 버스라고 도로교통법상 고속도로에서 안전벨트를 매야 하는 규정이 예외일 리는 없다. 그러나 관행으로 여겨 단속하지는 않는다. 승객들은 손잡이를 꽉 잡는 것 외엔 달리 안전을 도모할 방법이 없었다.
앞서 안전밸트에 대한 달라진 풍경은 좌석제로 운영되는 'M버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입석이 허용되는 대부분 수도권의 광역급행버스는 여전히 위험을 안고 있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작은 세월호'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 입석을 금지하는 입법을 예고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노선 조정을 놓고 지자체 간 이견이 있고 버스업체가 늘어날 부담을 떠 안아야 하는 문제 등은 풀리지 않고 있다.
2013년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2011년 기준)를 보면 우리나라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101.2건으로 OECD내 1위이며 프랑스(16.5), 스페인(26.6), 영국(44.6), 일본(83.5)에 비해 아주 높은 수준이다.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역시 10.5명으로 폴란드(11.0명)에 이어 두번째로 많고 영국(3.1), 일본(4.3) 독일(4.9) 프랑스(6.1) 등 주요 선진국과 크게 차이가 난다.
승객 안모씨는 "나는 통로에 서 있는데 운전기사가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며 "요금은 똑같이 냈는데 늦게 탄 승객은 죽어도 좋다는 것인지 할말이 없다"고 말했다.
(1·①) 망해야 할 기업이 승승장구.. 세모그룹 통해 본 사회상
(파이낸셜뉴스 2014-05-25 16:55)
망해야 할 기업이 망하지 않는 사회, 자격이 없는 기업도 탄탄대로를 걷는 사회, 불가능한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
세월호 사건의 주인공인 세모그룹은 성장할 수 없는 무능한 회사였고 1990년대 말 결국 부도가 났다. 그러나 곧 다시 일어나 더 큰 기업으로 성장했고 일어나선 안 될 참사를 잉태했다. 우리나라가 세모와 같은 그룹이 망하고 재기하지 못하는 정상적인 사회였다면 세월호가 출항하는 일도, 착한 아이들이 부모곁을 먼저 떠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세모의 성장과 재기에는 부정한 권력과의 결탁, 금융권의 편법적인 자금 공급 등 우리사회의 적폐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1980년대의 병폐는 2000년 들어 유병언 일가가 재기하는 과정에서도 청산되지 못하고 반복됐다. 유씨 일가가 1980년대에 써먹던 방식이 그대로 2000년대에도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편법과 무원칙이 유씨 일가의 주변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는 데 있다.
수도권 한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관광사업을 벌이던 최모씨(42)는 몇해 전 공들인 사업을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이후 사업을 접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갔다. 지자체마다 지역경제활성화를 지상 목표로 부르짖던 당시 최 사장은 지역 관광자원을 패키지로 묶어 상품화하는 사업을 지자체에 제안했다. 교통편이 좋지 않고 관광 거점이 분산돼 있던 해당 지자체의 지리적 여건을 극복할 만한 사업 구상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반겼고 사업은 빠르게 추진됐다. 성사만 되면 단체장의 치적사업으로 홍보할 만했다. 사업안이 완성단계에 들어설 때 최 사장에게 모 대기업 계열의 회사가 해당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결국 최 사장이 공들인 사업은 그 회사의 손에 넘어갔다. 최 사장은 담당자에게 하소연해봤지만 그는 "합법적인 입찰 과정을 거친 것이어서 어쩔 수 없다. 시민들도 그렇고 큰 기업에 맡기는 것이 신뢰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입찰심사에서 점수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사장처럼 공정하지 못한 업계 풍토 때문에 좌절하는 기업가들은 "대한민국도 이제 객관적인 룰에 의해 움직이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게 좋다는 식, 편법,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경제 풍토로는 더 이상 도약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시뮬레이션 영상 제작 프로그램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한 벤처기업의 대표 김모씨는 최근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 상하는 일을 겪었다. 그는 "국내에선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다. 미국에선 주가수익비율(PER) 20배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적용해 투자를 하겠다는 곳이 많은데 국내에선 PER 5~6배밖에 쳐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외국계 회사에서는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벤처캐피털을 비롯해 기관투자가들은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이 성장할 만한 풍토가 너무 척박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10년이 넘게 기술을 축적해 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개발, 실용화했지만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적정 가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후려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회사는 올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미국 현지에서 투자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은 "대통령이 원전비리, 탈세, 공기업 개혁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해관계자들끼리 유착돼 있는 부패가 근본 원인"이라며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서 개혁작업에 반발하는 사회 일각의 풍토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②) 벗어던진 제복.. 사라진 직업의식
(파이낸셜뉴스 2014-05-26 22:09)
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 저임금 비정규직 양산.. 끼리끼리 눈 감아주는 문화
지난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서 추락해버린 제복(직위)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속옷 차림으로 구조된 선장은 제복과 함께 직업 윤리도 벗어던졌다.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해경은 조직 문화에 갇혀 무엇이 우선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의전과 형식에 치중한 채 분초를 다투는 구조는 뒷전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파다한 직업 소명 의식 부재와 조직문화의 적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는 비단 특정 조직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는 잘못된 인식들 중 직업 소명의식 부재와 조직 문화에 대해 짚어본다.
■어느 회사원의 고백
"술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제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왜 야근을 염두에 두고 일을 천천히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이런 질문조차 이 회사에서는 왜 의미가 없어지는지···"
"회사 생활을 통해서 집단 윤리 수준은 개인 윤리의 합보다 낮다는 니부어의 명제, 조직의 목표와 조직원의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리인 이론을 이해하게 됐다."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삶아져서 배를 뒤집고 죽어버리게 된다. 냄비를 뛰쳐나가는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냄비 안에 갇힌 채 스스로에게는 자신이 대단한 변혁을 하는 양 합리화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2007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 신입사원의 사직서가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입사한 지 1년 만에 퇴사를 결정한 신입사원의 글엔 동료들이 보인 직업소명 의식 부재에 대한 한탄이 담겨 있다. 이 글은 최초로 사내게시판에 게재된 이후 인터넷 공간을 타고 퍼지면서 7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을 통해 회자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직장 문화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방증이다.
■ "가만히 있는 게 상책"
'시키는 것만 잘하자' '튀어야 좋을 것 없다'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다'… 이는 우리나라 조직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불문율이다. 이와 같은 수동적인 태도는 비단 철밥통 공무원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올해 초 한 채용사이트가 대기업 면접관들을 대상으로 직원 채용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을 조사한 결과 '튀지 않는 것'이 1위로 꼽혔다.
기업들이 저마다 인재상에 '도전' '창의' '열정'을 내건 것과는 대조되는 조사 결과다. 흥미로운 건 직장인들도 사회 생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으로 바로 '튀지 않는 것'을 꼽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괜히 일을 만들었다가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국 아무 일도 안하게 된다"고 말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이 점점 늘어가는 고용 구조가 소속감 부재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32.6%로 전년 동기 대비 소폭(0.7%포인트) 줄었지만 규모는 5911명에서 5946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친 2000년대 초반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비정규직 근로자는 사회 문제로 떠올라 아직도 고용 시장을 흐트러뜨리는 가장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이들의 급여 수준도 문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고용형태별 근로실태를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총액(2013년 6월 기준)은 1만1259원으로 정규직 1만7524원의 64.2%로 나타났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애컬로프 교수의 '효율성임금이론'에 따르면 급여 수준은 생산성과 노동 의욕에 직결되는 요소다. 안정적인 고용보다는 그때 그때 고용된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내 회사 아닌데' '어차피 오래 있을 거 아닌데' 하는 생각이 커지게 된다는 것. 자연스레 책임감과 윤리의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희경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고용 형태와 급여 수준은 소속감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두 요소"라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유된 가치와 목표, 결속력, 참여 등이 중시되는 가족적인 관계지향적 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계 지향적 문화에서는 조직구성원의 참여가 조직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조직구성원 상호 간의 신뢰와 집단의식을 강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조 부연구위원은 "유대감과 결속력은 구성원들 간의 개방성과 공동의식, 상부상조, 인간적 배려 등으로 이어지고 구성원들의 직무만족과 조직몰입을 향상시켜 결국은 기업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벗어던진 해경 제복 '그들만의 리그'
해경도 선장 못지않은 적폐로 지적돼 '조직 해체'라는 극단적 최후를 맞았다. 해경은 희생자 구조보다 고위 관료 의전에만 치중하며 제복(원래 역할)을 벗어던졌다.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한국선급.한국해운조합.한국해양구조협회 등은 해경 간부들의 은퇴 이후 자리를 보장 받는 곳이다.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을 승인했고, 해운조합은 과적을 묵인했다. 이를 감시해야 할 '바다의 경찰'은 되레 압수 수색 내용을 해당 기관에 흘리는 등 부적절한 조치로 국민의 분노를 키웠다.
우리사회 내 전문적이고 폐쇄된 분야일수록 이런 골은 더 깊고 미묘해진다. 긴밀한 유착관계로 형성된 '제 식구 감싸기'의 결말은 늘 대형사고였다.
당장 세월호 참사 발생 3주도 안돼 발생한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만 봐도 그렇다. 서울메트로는 고장난 신호기를 방치하는 등 안전점검은 뒷전이면서도 자체적으로 평가한 안전부문 성과점수는 만점을 매겼다. 성과점수가 성과급과 직결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고 원인이 서울시 관피아에 있다는 주장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 역대 서울메트로 최고경영자(CEO) 15명 중 10명이 서울시 고위직 출신이다. 서울메트로는 적자를 이유로 열차와 운전제어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까지 퇴직금누진제를 유지하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해왔다.
국민을 원전 공포로 몰아넣은 원전 부품 비리도 단단한 '인간 연결고리' 때문에 일어난 사고다. 원전 관리를 도맡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직원의 90% 이상이 기술직이다. 각 원전에는 전문 부품 수만 개와 장비가 사용되는데, 보통 한 기술 전문가가 20~30여년 동안 같은 일을 맡는다. 자기 일을 남이 알 수 없도록 한 구조다. 기술직끼리의 문화도 끈끈하게 형성됐다. 쉽게 문제를 알아챌 수 없을 뿐더러 비리를 알아도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화를 불렀다.
손봉호 나눔운동국민본부 대표는 "끼리끼리 모여 눈 감아주는 문화 안에서는 한 개인이 최소한의 양심도 지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효율성임금이론(Efficiency Wage Theory)은 임금의 높낮이가 근로자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이론이다. 근로자의 생산성 고저에 따라 임금의 높낮이가 결정된다고 설명하는 전통적인 이론에 반해 효율성임금이론은 이를 정반대로 설명하고 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UC버클리 교수가 주장했다.
(1부·3)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철밥통, ‘관피아’
(파이낸셜뉴스 2014-05-27 17:58)
우리 안의 또다른 세월호들 3 영원한 철밥통, 관료
퇴직공무원 지난 4년간 1263명이 낙하산 타고 기관장·기업 감사로 취업
안전행정부가 지난 2013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사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취업 심사를 받아 퇴직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데 성공한 고위직 공직자는 1263명으로 집계됐다. 1362명을 심사해 이 중 92.7%가 통과했다. 이 중 100명 이상은 현직시절 감찰 업무를 담당하다 퇴직 이후에는 주요 기업체의 감사 자리를 싹쓸이 했다. 세월호 사태 이후 '관피아'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관료와 마피아를 합친 말로, 공무원들끼리 자리 보전을 위해 짬짜미하는 관행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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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日 5년간 관련업종 취업 불가.. 美 직무 따라 ‘영구제한’도
(파이낸셜뉴스 2014-05-27 17:59)
외국 공무원 재취업 엄격 제한
(2) “높으신 분 잘 모시면 출세”.. 권위적 ‘의전 문화’ 사회 좀 먹는다
(파이낸셜뉴스 2014-05-26 17:11)
엄격한 위계질서가 조직 지배.. ‘보고서 주의’도 융통성 막아
구성원 창의성 저하로 이어져
"장관님 오십니다."
유명 호텔에서 열린 한 기업 행사에 장차관급 인사가 등장하자 인파가 양옆으로 갈라졌다. 흡사 모세의 기적을 보는 듯했다. 한 사람이 뒤에서부터 공격적으로 앞 사람을 밀치면서 '높으신 분' 옆에 달라붙는데 성공했다. 그러더니 본인과 자기 회사에 대한 소개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나 좀 봐달라는 듯 사람들이 소리를 쳤다. 어수선했던 행사장은 VIP 퇴장과 동시에 다시 고요해졌다. 행사 관계자는 "보통 VIP들이 오전 일찍 얼굴만 비추거나 축사만 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본격 행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버려 민망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과도한 의전주의는 여러 번 지적된 비효율적인 조직 문화다. 의전은 본래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을 말한다.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안내는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행사는 '의전으로 시작해 의전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객이 전도됐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행사 내용보다는 '어떤 분이 오시느냐'가 행사 진행의 핵심이 돼버렸다는 것.
이렇듯 의전을 앞세우다 보니 정작 중요한 걸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월호 사고 수습 때도 폐해는 되풀이됐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의 진도 방문을 두고 일각에서는 "괜히 열심히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 눈치 보게 왜 내려가냐"라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창업지원기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의 임정욱 센터장은 이 같은 의전 문화에 대해 "높은 사람이 오면 그에 맞춰서 의전을 준비하는 데 익숙해진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고통받는 희생자 가족들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라면서 "위기상황에서 효율적으로 구조활동을 펼치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은 없었지만 높은 사람들을 모시는 의전방법은 머릿속에 박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이어 "윗사람들이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행사를 쫓아다니는 동안 조직 전체의 효율성은 떨어진다"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권위적인 의전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전 지상주의와 함께 '보고서 지상주의'도 조직 융통성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적된다. 세월호 사고 당시 안전행정부 국장급 공무원이 세월호 침몰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시도해 공분을 샀다. 이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는 "실제 정부를 포함한 조직 내에서 결재 수단으로 상향식의 보고서를 선호하다 보니, 기념 사진은 보통 해당 보고서의 증거 혹은 도장 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시인했다. 형식에만 급급한 나머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형식을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통제를 줄이고 권한을 부여해 자기주도적인 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경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조선시대부터 양반 문화 등을 통해 한국의 문화가 보이는 것에 얽매여 형식을 중요시해왔다"면서 "이것이 바로 위계 질서가 조직을 지배하는 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엄격한 위계 문화로 인해 규제와 질서가 조직의 핵심 가치가 되어 왔다"면서 "이는 구성원의 소극적 태도와 창의성 저하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통제를 강화하면 구성원들의 동기부여가 약화되고 직무만족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무사안일 행태가 발생해 자발적 노력 의지와 조직에 대한 애착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부연구위원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조직을 흔드는 충격과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하며, 구성원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①) “꽃같은 자식 잃은 슬픔, 내가 알지요” 진도 달려간 천안함 유족들
(파이낸셜뉴스 2014-05-28 17:27)
<2부> 희망 주는 국민들 1 재난사고 유족·자원봉사자들의 선행
지난달 30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모여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30여명의 자원봉사단이 도착했다.
이들은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으로 꽃다운 나이의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천안함 장병 유가족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발표한 이 사건의 공식 명칭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40명의 해군 장병이 사망하고 6명은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실종자로 남았다.
천안함 유족들은 가족들을 차가운 바닷속에서 잃었던 슬픔을 가슴에 품고, 이를 이겨냈던 사람들이다. 이날 이들의 진도 방문은 자신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만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고자 해 이뤄졌다.
원래 침몰사고 초기부터 진도체육관을 방문하려고 자원봉사센터에 신청을 했으나 자원봉사자 수가 너무 많아 늦게서야 시간 배정을 받았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이 머물고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청소와 세탁, 배식, 분리수거 등 자원봉사를 말없이 했다.
이날 유족 대표로 참석한 이용상 하사 아버지 이인옥씨는 "2010년 당시 국민의 성원과 자원봉사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됐다"며 "이번에는 우리가 진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진도를 찾았다"고 이번 방문의 배경을 설명했다.
■천안함을 기리는 봉사와 기부
천안함46용사유족회는 천안함 사고로 숨진 장병의 가족들로 이뤄진 모임이다. 천안함 폭침 이후 이들에게는 전 국민적인 위로와 도움이 쏟아졌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10년 천안함 폭침 후 시민들로부터 받은 395억원의 성금을 전사한 장병 가족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했다.
유족회는 그 뒤 매년 몇 차례씩 모여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아픈 기억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를 도왔다. 또 국민들로부터 받은 위로와 도움을 이 사회에 되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매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천안함46용사회는 지난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불우이웃돕기 성금 5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당시 이인옥 유족회 회장은 "어려울 때 국민의 성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도움을 되돌려주기 위해 작은 정성이나마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기탁했다"면서 "천안함 용사의 정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매년 기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2010년에는 천안함 희생장병인 고 민평기 상사의 모친이 편지와 함께 나라를 지키는 데 보태달라며 성금 1억원을 청와대에 기탁하기도 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국민성금으로 받은 돈과 아들의 사망보험금 전액을 기탁해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랐다.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들도 힘 보태
2003년 192명의 사상자를 냈던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의 피해자 유족들도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돕는 데 힘을 보탰다. 자칫 섣부른 위로방문이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망설였지만 지난달 22일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유족 6명은 진도를 방문했다. 이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최악의 경우 실종자를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이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자칫 더 큰 슬픔을 불러 올 수도 있었겠지만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똑같은 슬픔을 한차례 겪었기 때문에 이런 조언들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단발성 방문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세월호 피해자 지원을 위해 각 지역에서 성금 모금 활동에도 앞장서고 지자체 등에 건의해 추가적인 봉사활동 일정도 잡기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아픔을 딛고 봉사활동으로
자신들도 큰 아픔을 겪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이제 다른 사람의 고통과 슬픔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벌이는 사례는 더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는 우선 지역지부별로 현충원 지킴이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충원 지킴이는 2006년부터 시작된 봉사활동으로 매년 3~11월 전국 대한민국전몰군경 유족회원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10만명가량이 참석한 대표적인 유가족 봉사활동이다.
이들은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각 지역 현충원에서 경건한 참배 분위기 조성을 위해 기초질서 계도, 출입차량 질서 유지를 위한 정화활동 등을 벌인다.
(2·①) 유족 태우고 진도까지 달린 택시기사.. 16230명의 자원봉사자들
(파이낸셜뉴스 2014-05-28 21:39)
전 국민을 깊은 슬픔에 빠뜨린 세월호 사건은 피해가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그러나 대형 재난사고가 있을 때마다 우리 국민은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가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힘을 모아왔다.
이번 세월호 사태 때도 수많은 실종자 가족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봉사활동을 벌인 이들이 있었다.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봉사자들이 청소, 세탁, 배식 등의 활동을 벌이면서 피해 가족과 구조인력을 도왔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세월호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벌인 인원은 전국 봉사단체 728개, 그리고 개인 자격으로 1만6230명이 참가했다. 구호물품은 70여만점이 접수됐다.
진도 실내체육관 앞에는 각지에서 온 단체들이 설치한 하얀 천막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으며, 어린 학생들부터 옆집 아주머니들까지 저마다 조용한 가운데 묵묵히 봉사활동을 벌였다.
사고 발생 첫날부터 팽목항에서 음식을 만드는 자원봉사를 했던 '빵맹그는 아짐' 김연단 회장은 죽을 끓이고 김밥, 과일을 싸서 실종자 가족이 있는 천막을 오가면서 나눠주는 일을 했다. 김 회장은 "처음에는 천막에 들어가기도 미안했지만 나중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먼저 찾아오기도 했다"며 "하루하루 지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피해자 가족 사이를 돌아다니며 세탁물을 수거해서 빨래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으며,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한 대학생은 실내체육관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하루 종일 치우기도 했다.
피해자 가족과 함께하다 보니 자원봉사자 중 일부는 함께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하기도 했다. 실제로 진도 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심리치료 상담소에는 한산한 오후 시간대에 자원봉사자들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상담을 받는 일도 자주 있다.
안산지역 택시기사들은 사고 직후부터 안산과 진도를 오가는 실종자 가족들의 발이 돼줬다. 옆집 사람 또는 동료의 자식들도 세월호에 타고 있었다며 같은 동네 주민으로서 가만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안산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원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희생자의 시신이 안산 장례식장으로 향할 때 유가족을 태우고 곧바로 안산으로 가는 일을 맡았다. 안산과 진도는 먼 거리지만 하루에 한두 번씩 이를 왕복하는 강행군을 했다. 택시기사 안대순씨(57)는 "안산과 진도 사이를 왕복하면 하루 열시간가량 걸리지만 유가족을 보면 안타까움이 앞섰다"고 말했다.
(2·②) 해난 현장마다 나타나는 그들
(파이낸셜뉴스 2014-06-01 16:09)
UDT·SSU서 경험 쌓고.. 산업잠수사로 활동
해난사고가 있을 때면 언제나 그들이 달려갔다. 천안함 사고에서부터 20여년 전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까지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민간잠수사들은 군·경과 함께 수색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30m 이상의 심해에 뛰어들어 가이드라인을 설치하고 실종자 시신을 인양하는 등 현장에 몸을 던졌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한국수중환경협회 특수구조봉사단, 한국구조연합회, UDT 동지회 등 각급 단체들은 홈페이지와 비상 연락망을 통해 구조단을 모집했다. 잠수사들은 "뭐라도 해야 마음이 덜 아플 것 같다"며 지원 요청에 화답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UDT, SSU 등에서 경험을 쌓고 산업잠수사나 스쿠버다이빙 강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중공사 현장에서 선체 인양이나 수중교각 설치, 발전소 냉각시설 설치 등 고난도 작업을 담당하는 물속의 전문가로 불린다.
해난사고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개인장비를 갖춘 전문 잠수사들이 직접 사고 해역에 뛰어들거나 보유한 장비를 지원하는 등 수색활동에 힘을 보탰다. 민간 업체에서는 잠수병을 방지하기 위한 감압 체임버와 구조장비, 구조선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의 천안함 사고 때는 민간 잠수사 40여명이 사고해역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SSU, UDT 요원들과 번갈아 바다에 들어가며 실종자 수색작업을 펼치고 선체 인양 작업에도 힘을 보탰다. 선체가 함수·함미로 분리돼 있어 잠수사들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UDT 동지회 잠수사들은 선수에 있는 함장실 내부에 진입해 직접 인도줄을 연결하며 격실 안을 수색하기도 했다. 구조 작업이 인양 작업으로 이어지자 SSU 전우회를 비롯한 민간 전문가들이 "인양 작업을 지원하겠다"며 나섰다.
민간 업체의 감압 체임버와 인천 지역의 쌍끌이 어선도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 실종자 부유물 수색에 나섰던 쌍끌이 어선 98금양호는 수색 작업 종료 후 복귀하던 중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1993년 전북 부안에서 일어난 서해훼리호 참사 당시에는 사고 발생 3일째부터 민간 잠수사들이 현장에 투입돼 빠른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였다. 1000여척의 민간 어선과 인근 위도의 어민들까지 수색작업에 참여해 사고 발생 23일 만에 실종자 292명 전원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수색 작업에 참여한 한 민간잠수사는 "민·관이 협력해 빠른 대처에 나서 실종자 시신을 모두 인양할 수 있었다"며 "조류 흐름을 미리 파악해 마지막 실종자까지 찾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2·②) 그들은 왜 진도로 향했나.. 열정 하나로 목숨 건 ‘민간 잠수사들’
(파이낸셜뉴스 2014-06-01 16:09)
<2부> 희망 주는 국민들 2 열정 하나로 목숨 건 민간 잠수사들
검은 물 밑에 아이들이 있고 저 땅 위에 부모들이 있어..
마지막 남은 한사람까지 찾고 싶다.. 그것이 우리들의 사명
#1. 새벽 2시 작업 위해 쉬는 중. 피곤하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리 없어서 쪽잠 중. 이 아래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그래도 열정이 사라지지 않는구나. 피곤함도 지침도 모르겠다, 이젠.
#2. 기상 문제로 잠시 대기 중. 몸도 피곤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 잠시 쉬고 싶지만 바지선에 잘 수 있는 자리도 없다. 마지막 실종자 하나까지 구하고 쉬고 싶다.
민간잠수사 김명기씨(36)는 지난달 30일 전남 진도 사고해역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아내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씨는 하루 네 번 있는 정조시간을 맞추기 위해 며칠째 배 위에서 지내고 있었지만 "물속에 있을 아이들 생각에 피곤함도 모르겠다"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
또 다른 민간잠수사 A씨도 SNS에 사고 해역에서의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악조건 속에서 지쳐 있지만 마지막 실종자 한 명까지 구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여객선 침몰사고가 일어난 지 40여일이 지났다. 새로운 실종자의 시신을 인양했다는 소식이 들린 지 1주일째, 하지만 여전히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서해훼리호, 천안함, 98금양호 등 해난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구조활동을 펼치는 민간잠수사들이 현장에 있다. 그들은 "사고가 일어나면 열정 하나만 가지고 장비를 챙기게 된다"며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진도행을 당연한 일인 양 생각하고 있었다.
지난달 민간잠수사협의체를 구성해 바다에 나선 황대영 한국수중환경협회장(61)은 "특수부대 출신에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한 만큼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며 "모두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현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민간잠수사들은 해군 해난구조대(SSU), 특수전 전단 UDT 등 특수부대에서 경험을 쌓은 뒤 산업잠수사 등으로 활동하는 정예요원이었다. 하지만 직접 맞닥뜨린 사고현장은 베테랑이라 불리던 그들에게도 만만찮은 상대였다.
평균 유속은 2~4노트(약 1~2㎧), 잠시만 방심하면 2~3m씩 떠내려갈 수 있는 속도다. 물살이 잠잠해진다는 정조 시간에도 바람이 불면 입수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미리 설치해 둔 가이드라인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동시에 투입되는 인원도 10여명에 불과하다.
황 회장은 "정조 시간에도 다른 지역의 사리(한달 중 조수의 차가 가장 클 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속이 거센 곳이라 작업하기가 어렵다"며 "물살이 상대적으로 잠잠한 소조기에 기상 악화로 수색이 중단되기라도 하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바지선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새벽 정조 시간에 잠수하기로 했던 날. 민간잠수사 10여명이 입수 준비를 마치고 바지에 올랐다. 하지만 바지를 통제하는 해경들은 "지금은 정조 시간이라도 물살이 강해서 입수하면 안 된다"며 막아섰다.
이미 준비도 다 끝낸 상황이고 '지금 아니면 언제 들어갈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동행했던 한 잠수사가 시험 삼아 물속에 들어가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10m가량 잠수한 뒤 곧바로 배로 돌아와야만 했다. 마스크가 벗겨질 정도로 물살이 강해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것. 이날 새벽 정조 시간의 작업은 성과가 없었다.
사고 여객선까지 수심은 25m, 선체 내부를 수색하려면 거기서 22m를 더 잠수해야 한다. 수심 50m 가까운 곳에서 장시간 작업을 하다 보니 잠수병에 노출될 확률도 높아진다.
황 회장은 "수심 깊은 곳까지 내려가다 보니 잠수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수압이 높아져 위험한 상황도 발생한다"며 "하루 한 번 이상 다이빙 하고 나면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도 "현재 표면 공기공급 방식으로 오래 작업할 수는 있지만 감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잠수병에 노출될 수 있다"며 "30m 수심에서 15분만 작업해도 10분 동안 감압해야 하는데 수심이 더 깊은 곳에서 작업시간이 더 길어지면 그만큼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감압을 위해 수심 5~6m 되는 곳에서 다이버가 정지해 있다 서서히 올라와야 하는데 맹골수도는 한곳에 정지해 있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잠수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수색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선내 도면을 숙지하고 가지만 손으로 더듬어가며 수색을 해야 할 정도로 어두운 데다 미로 같은 격실 때문에 길을 잃기 십상이다. 부유물 때문에 배 안에 갇히거나 장애물로 인해 공기호스가 막힐 위험도 있다. 한 번 들어갔을 때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어서 베테랑 잠수사들도 당황하는 경우가 잦았다.
김씨는 "시간이 갈수록 더 깊숙이 들어가고 더 장시간 수색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늘어났다"며 "수색 초기에 설치한 라인이나 격실 내 부유물들을 빼내고 수색을 계속해야 하지만 그럴 엄두도 못낼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악조건 속에서도 민간잠수사들은 쉽사리 팽목항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수색작업이 장기화되며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잠수사들도 작업을 다 끝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실종자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나타냈다.
철수한 민간잠수사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시 해역으로 나서는 잠수사가 있었는가 하면 잠수병에 걸려 입원 치료를 받은 잠수사가 당장 물에 들어갈 수 없으면 공기줄이라도 잡게 해달라며 바지선에 오르기도 했다.
김씨도 잠시 대전의 사무실에 복귀했지만 곧바로 진도행 택시에 올랐다. 그는 "단골 술집을 찾아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더니 술집 주인이 '다시 돌아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보라'며 택시비를 손에 쥐여 주었다"며 "잠수사가 없어서 고생하는 사고해역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대전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고 당시의 이야기를 전했다.
한 잠수사는 "바지선에 있다 팽목항으로 철수하면 아이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이 바다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들을 볼 낯이 없었다"며 "집으로 복귀하려다가도 다시 발걸음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회장은 "생업으로 돌아온 민간잠수사들도 팽목항에서 본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과 고전하고 있는 잠수사들을 가슴에 품고 있다"며 "협회 회원들과 함께 언제든지 진도로 갈 수 있도록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장을 찾은 민간잠수사들은 "사고 소식을 접하고도 집에 있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한 사람이라도 구해보겠다는 열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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