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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실무 임원마저 점령한 낙하산들 (조선일보 2014.02.07 15:43)

공공기관 실무 임원마저 점령한 낙하산들

 

공공기관 상임이사 자리마저 정치권 ‘낙하산’ 인사에 잠식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낙하산 인사는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 중인 현 정권 기조와 정면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임이사는 각 기관의 실무를 관장하는 최고위 임원이다. 기관 본연의 업무와 관련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므로 실무 경험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업무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외부 인사가 집행임원을 맡으면 조직 운영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7일 조선비즈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www.alio.go.kr)’에 등록된 295개 공공기관 상임이사 프로필을 전수 조사한 결과, 최소 10명이 전·현 정권의 낙하산 인사로 분류됐다. 이번 조사에서 기관장, 감사, 사외이사는 포함하지 않았다. 상임이사 중 관련 부처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 역시 제외했다.

그동안 기관장, 감사, 사외이사에 대한 낙하산 인사 문제는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실제 공공기관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집행임원 낙하산 현황을 파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지역 항만공사, 현 정권이 ‘접수’

지역 항만공사의 경우 “현 정권이 접수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낙하산 논란이 무성하다.

부산항만공사는 최근 신임 운영본부장 공개모집 전형을 통해 박충식 전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 팀장을 내정했다. 박 전 팀장은 새누리당 서울시당 운영위원과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항만 관련 경험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왼쪽부터)박충식 부산항만공사 신임 운영본부장 내정자, 김진우 울산항만공사 운영본부장, 인천항만공사 경영본부장 내정설이 불거진 양장석씨. /안석현 기자
(사진 왼쪽부터)박충식 부산항만공사 신임 운영본부장 내정자, 김진우 울산항만공사 운영본부장, 인천항만공사 경영본부장 내정설이 불거진 양장석씨. /안석현 기자


앞서 지난달 울산항만공사는 운영본부장에 김진우 전 대통령직 인수위 담당관을 임명했다. 김 운영본부장은 한나라당 기획조정국 부장, 친박연대 사무부총장, 새누리당 정책위 수석전문위원을 지냈다. 김씨에 앞서 울산항만공사 운영본부장을 지년 공 모씨의 경우 40년간 항만물류업계에 몸담은 전문가였지만, 김씨는 항만과 관련한 경력이 없다.

울산항만공사 관계자는 “전임자가 워낙 항만업계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에 공사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됐다”며 “신임 운영본부장은 관련 경험이 없어 내정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고 설명했다.

인천항만공사는 현 정권 인사가 상임이사로 부임하려 하자 노조의 극렬한 반발을 사고 있다. 주인공은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의 보좌관을 지낸 양장석씨다. 양씨는 앞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기획이사로 거론되다 인천항만공사 경영본부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부대변인과 인천시당 공동 대변인을 지낸 양씨는 항만업무와 관련된 이력은 전무하다. 양씨는 인천항만공사 임원 내정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노조측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이수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기획이사, 이철수 한국공항공 상임감사위원, 조현수 신용보증재단중앙회 경영본부장, 진태화 중소기업유통센터 관리이사, 허훈 주택관리공단 기획이사. 이상 공공기관 임원들은 정당 혹은 청와대 출신임. /안석현 기자
(사진 왼쪽부터)이수태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기획이사, 이철수 한국공항공 상임감사위원, 조현수 신용보증재단중앙회 경영본부장, 진태화 중소기업유통센터 관리이사, 허훈 주택관리공단 기획이사. 이상 공공기관 임원들은 정당 혹은 청와대 출신임. /안석현 기자


◆ 한 자리 놓고 낙하산이 낙하산을 대체

한 자리를 놓고 낙하산 인사가 연거푸 부임하는 난맥상도 드러났다.

2012년 11월 에너지관리공단 상임이사(기후대응이사)에 임명된 유효경씨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과 국가위기관리실 행정관을 지냈다. 기후변화 및 환경·에너지와 관련된 이력은 거의 없다. 유씨에 앞서 기후대응이사를 역임한 신동웅씨 역시 관련 이력이 전무하다. 신씨는 17대 대통령선거 자원봉사단 부위원장 출신으로 창원시의회 의원, 선진국민연대 경남공동대표를 역임했다.

(사진 왼쪽부터)유효경 에너지관리공단 기후대응이사, 임승업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교육홍보이사, 박종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상임이사. /안석현 기자
(사진 왼쪽부터)유효경 에너지관리공단 기후대응이사, 임승업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교육홍보이사, 박종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상임이사. /안석현 기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교육홍보이사 자리도 낙하산이 낙하산을 대체한 사례다. 2012년 6월 선임된 임승업씨는 서울시의회 의원(새누리당), 서울특별시 의회 부의장 출신이다. 임씨에 앞서 교육홍보이사를 역임한 최대열씨는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 대통령실 고용노사비서관실을 거친 이력이 있다. 임씨는 지난 3일자로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도 마찬가지다. 박종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상임이사는 대통령실 경호처 기획관리실 위원, 대통령실 경호처 훈련부장 출신이다. 박씨의 전임자 김무환씨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소속으로 2002년 2006년 부여군수에 당선된 바 있다.

송창희 캘리포니아주립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 인사는 유능한 민간인이 자유 경쟁을 통해 집행위원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실질 개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기관장·감사 낙하산 보다 더 심각”

공공기관 상임이사의 낙하산 인사는 기관장이나 감사, 사외이사 낙하산 보다 공공기관 경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공기업 관계자는 “낙하산으로 내려온 기관장이나 감사는 조직관리, 대외 활동 등 전문성이 떨어지는 일을 주로 맡다보니 회사 본연의 업무에 크게 차질을 빚는 일이 많지 않다”며 “하지만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집행임원 자리에 낙하산이 내려올 경우는 조직 실무운영에 차질을 빚는 등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현재 공공기관 인사는 대통령 선거 결과의 전리품이다. 정부는 공기업 적자를 줄이고 투명 경영을 위해 감시한다고 하지만 인사 악습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며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려면 공기업 이용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악습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