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부의 傳說', 그가 범죄자로 추락한 건...
그는 무결점의 사나이였다. 적어도 '캐비닛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진 그는 그렇게 보였다.
2005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1등으로 입학한 최모(24)씨는 1등으로 졸업했다. 수능에서도 언어·수리·외국어 등 주요 과목을 모두 만점 받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5학기 연속 성적우수상을 휩쓸었고, 학교 외부 장학회 2곳으로부터 장학금도 받았다.
승승장구였다. 경제법을 연구하는 학회에서는 부학회장을 맡아, 그해 공정거래위원장상을 타내기도 했다.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대 내에서도 최씨는 단연 돋보이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뭐든지 잘하는 사람)였다. 한 차례 휴학도 없이 4년 만에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10일 밤 교수 연구실에 침입,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도둑질하기 위해 교수 컴퓨터를 해킹하다 현장에서 붙잡혔다. 당시 그는 캐비닛에 숨어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자백이 뒤따랐다. 여러 교수 컴퓨터를 지속적으로 해킹해왔단 것이었다.
지난 23일 최씨는 학교로부터 영구제적 처분을 받았고, 이 처분에 따라 연세대 학적이 말소됐다. 탄탄대로를 거침없이 달려가던 최씨는 대체 왜 이 같은 일을 벌였을까? 최씨의 고등학교·대학교·로스쿨 친구들을 만나 '그들이 만난 최씨'에 대해 들어봤다.
◇ "그는 '전설'이었다"
최씨는 고등학교 시절 '전설'에 가까운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은 입을 모아 최씨를 "학교에서 공부 제일 잘하던 아이"로 기억했다. 한 동창은 "내신이든 수능 모의고사든 빠지는 거 없이 모두 잘했다"며 "경쟁에서 밀리는 건 참지 못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서 같은 학교 3학년들이랑 붙었던 적이 있는데, '고3 제칠 수 있다. 왜냐. 내가 더 똑똑하거든'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자신감이 대단했고 실제 잘했다." 최씨는 2005년 제6회 전국지리올림피아드에서 당시 1학년으로는 이례적으로 동상을 거머쥐었다. 지리올림피아드는 고등학교 1·2·3학년이 같은 문제를 푼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도 최씨를 "경쟁심 강하고, 성적 잘 따내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한 대학 친구는 "최고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던 녀석"이라며 "'1등 아니면 나머지는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게 느껴져 주변 사람들까지 경쟁심을 묘하게 자극했다"고 말했다. "최○○은 공부의 내리막길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 산산조각이 난 '1등 신화'
대학교 때까지 펄펄 날던 최씨는 서울대 로스쿨에 떨어지며 처음 좌절을 겪었다. 최씨의 학과·영어 성적은 우수했지만, 법학적성시험(LEET·리트) 점수가 발목을 잡았다. 서울대 대신 합격한 연세대에서 '눈 수술을 해야 한다'며 1년 휴학을 하고 한 번 더 시험을 봤다.
연대 로스쿨의 한 동기는 "최씨가 눈 때문에 휴학한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았다. 수술한다고 휴학하고선 3일 뒤에 MT엔 아무렇지도 않게 참석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연세대 로스쿨은 입학한 첫 학기엔 질병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선 휴학을 받아주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휴학하고 인생 처음으로 재수까지 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결국 1년을 허비하고 연대 로스쿨에 돌아왔다.
로스쿨에서 학점은 '모든 것'이라 할 정도로 중요하다. 한 학생은 이를 "학점은 우리에게 알파요, 오메가"라고 표현했다.
한 로스쿨 동기생은 "최씨는 연대 로스쿨을 자기 수준보다 한 수 아래로 보는 것 같았지만, 막상 이곳에서 공부할 땐 버거워 보였다"고 말했다. 어느 로스쿨에서나 높은 학점을 받는 학생들은 대부분 법학 전공자이거나 사법시험을 오래 준비했던 사람들이다. 전공으로 4년 이상, 신림동에서 2~3년씩 공부한 이들의 '내공'은 다른 학문을 전공하고 로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이 따라가기엔 벅찼다.
한 로스쿨 동기는 "최씨 역시 그런 학생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최씨가 우리 스터디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다. 내가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물어봤더니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비법'(非法·법학 전공이 아닌 자)이라 생각했다." 최씨의 다른 로스쿨 동기생은 "최씨는 서울대 로스쿨도 아닌 2등 로스쿨에 와서 '여기서도 1등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스스로를 상품처럼 만드는 것 같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최씨가 서울대 경영학과 조동성 교수에게 공개편지를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편지는 졸업생들이 교수의 안부를 묻는 게시판에 올랐다.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입학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는 고3 수험생"으로 소개한 최씨는 "부패, 도덕적 해이, 비효율성 등으로 평판이 나있는 공기업"을 개혁하는 것이 꿈인데, 경영학과에 입학하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를 물었다. 일부 고3 입시생들은 이를 두고 "서울대 경영학과 가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나서, 실제로도 들어간 '예고 홈런'"이라 칭송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서는 고등학생들의 '멘토'로 인기를 끌었다. 2년 동안 고등학생 1만명에게 공부 상담을 해주었고, 한 학원에선 최씨에게 '사부(師父)'라는 칭호를 붙여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한 일간지엔 '수능 멘토 대학생' 4인방 중 한 명으로 등장, "수험생들의 갖가지 고민을 따뜻하게 상담"해주는 선배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가 쓴 칼럼엔 수천 명의 고등학생이 구름같이 몰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최○○ 코치님~ 꺄악~!"과 같이 팬클럽에서나 볼 수 있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최씨는 고등학생들에게 "가슴이 뛰는 직업을 찾으라"는 당부를 하면서 "그러면 금전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로스쿨에 들어가서는 학생회 활동을 하는 등 활발히 사람들과 어울렸다. 한 학생회 친구는 "처음 최씨의 이미지는 공부도 잘하고 학생회 활동도 잘하는, 못하는 게 없어 보이는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얼핏 보기엔 완벽해 보였지만, 스스로를 너무 계획한 대로 좀 상품처럼 만드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2013학년도 1학기 최우수 상장을 받았을 땐 상장 사진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려두기도 했다.
그가 학교에 몰고 다니던 중형 자동차 앞유리에는 큼지막한 스티커 4개가 붙어 있었는데, 국회 출입증, 백화점 VIP 주차증, 서울대 기부확인증, 연세대 주차증이 그것이다. 한 동기는 "국회 출입증 때문에 국회의원 아들이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지만, 최씨의 아버지는 국회의원이 아니다.
"최씨 말로는 자기가 국회의원 보좌관을 했다는데, 그게 끝나고도 떼지 않고 붙여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백화점 VIP에, 서울대 동문 중에 상당액 기부해야만 나오는 스티커를 차 유리창에 붙여둬서 '집안이 엄청 짱짱한가 보다'고 다들 그랬다."
◇ 실력 대신 부정으로 얻은 성적
복학 후 최씨의 성적은 압도적인 1등이었다. 전 과목 A+. 몇몇 답안은 '모범답안'으로 선정돼 담당 교수 홈페이지에 게시되기도 했다. 한 동기는 "답안지 5장을 정자체로 거침없이 채운 답안에 동기생들 모두 천재라고 생각했다"며 "그가 지나갈 때마다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고, 한편으로 기죽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력 대신 부정(不正)으로 얻은 성적이었다. 최씨의 범행이 드러난 뒤에 로스쿨 학생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특히 최씨와 같은 반에 편성돼 상대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한 학생들은 더 그랬다. 한 로스쿨 동기생은 "캐비닛이 했던 말들이나 행동들을 생각하면 소름 끼친다"고 했다. 최씨는 범행이 발각됐을 당시 교수 연구실 캐비닛 안에 숨어 있었고 학생들은 그에게 '캐비닛'이란 별명을 붙였다.
최씨가 과거 SNS에 올렸던 글들도 다시 회자됐다. 페이스북에 올린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라는 글이다. 한 친구는 "진짜 당연히 불안하지. 교수 컴퓨터를 해킹하고도 불안하지 않으면 그게 사람인가"라고 반문했다.
한 학생은 "1등 지상주의 사회에서 줄곧 1등을 달려온 최씨가 처음 겪은 '2등이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는 최씨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집 전화와 휴대폰 전화와 이메일로 수일 동안 여러 차례 답변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교 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대 합격 배출 20위까지 뽑아봤더니…1위는 대원외고, 2위는? (조선일보2014.02.06 14:06) (0) | 2014.02.08 |
---|---|
서울대 의대 떨어진 '수능 만점자' 페북 글보니…"부끄러워" (세계일보 2014-02-06 08:42:40) (0) | 2014.02.06 |
부경대- 학생부·서류만으로 수시정원 절반 선발, 글로벌 자율학부 신설 (국제신문 2013-08-06 19:01:53) (0) | 2014.01.01 |
절대평가제의 귀환? (주간조선 [2287호] 2013.12.23) (0) | 2013.12.24 |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 잘못 냈다" 수험생 집단소송(연합뉴스 2013/11/29 17:39) (0) | 2013.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