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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인물열전

“제주판 3김 시대 끝내겠다” (주간조선 [2287호] 2013.12.23)

“제주판 3김 시대 끝내겠다”

제주지사 출마 준비하는 양원찬 회장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베트남 호찌민 부근 칸호아에는 제주초등학교가 있다. 또 하노이 근처 번푸에 만덕중학교가 있다. 만덕중학교와 제주초등학교는 모두 2012년 준공했다. 만덕은 제주 출신의 전설적인 거상(巨商) 김만덕의 이름.
   
   ‘베트남에 어떻게 제주초등학교와 만덕중학교가 있지?’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국가적 자존심이 강한 베트남은 공공건물에 외국 고유명사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만덕’과 ‘제주’를 교명에 붙였다.
   
   만덕중학교와 제주초등학교는 김만덕기념사업회(공동대표 고두심·양원찬)의 작품이다. 고두심씨는 제주 출신의 연기자이고, 양원찬씨는 제주 출신의 유명 정형외과 의사다. 양원찬씨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명사. 시너지정형외과병원 병원장인 양씨는 지금까지 많은 사회활동을 해왔다. 현재 그가 갖고 있는 주요 직함은 재외제주도민회 총연합회 회장, 서울제주특별자치도민회 회장, 김만덕기념사업회 공동대표, 한양대 총동문회 회장이다. 전직으로는 제주 세계7대경관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사무총장, 88서울올림픽 국가대표팀 주치의,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 팀닥터…. 두산베어스 전신인 OB베어스 팀닥터 시절 투수 박철순을 치료해 유명해졌다.
   
   양원찬 회장은 내년 6·4지방선거에서 타천으로 새누리당 제주지사 후보로 거명되고 있다. 현재 그는 새누리당 당원이 아니다. 현재 새누리당에는 김방훈 전 제주시장, 김경택 전 정무부지사가 거론되고 있고, 민주당에는 고희범 제주도당 위원장과 김우남 의원의 이름이 나오고 있다. 1950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64세. 성공한 의사인 그가 다소 늦은 나이에 진흙탕에 비유되는 정치판에 뛰어들기로 한 사정이 궁금했다.
   
   지난 12월 18일 오전 서울 논현동 시너지정형외과병원 빌딩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에 남겨준 주소를 보고 찾아가는데 어떤 건물 양옆에 돌하르방이 보였다. 돌하르방은 제주도의 상징. 그럼 보나마나 이 빌딩이구만이라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건물 뒤편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바닥재(材) 역시 제주 바다 냄새가 물씬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도 현무암이었다.
   
   약속장소인 7층에는 김만덕기념사업회 현판이 보였다. 사무실에서 양 회장과 마주 앉았다. 직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걸 이룬 사람이 왜 정치를 하려는지를 물었다.
   
   “현 우근민 지사와 전직 지사인 김태환·신구범씨 세 사람이 지사직을 하며 오랫동안 갈등해 왔습니다. 주민들이 여기에 피로현상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되고 나서 지사의 공직자 줄세우기가 만연해 왔습니다. 공직자들이 도지사의 공복이 되어버린 겁니다. 공직자들이 도민의 공복이 되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는 봉사활동은 많이 해왔지만 행정 경험은 전무하다. 이게 선거판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그 점 때문에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겁니다. 일부에서는 왜 진흙탕 싸움에 뛰어드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처럼 공무원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내려와서 도정(道政)을 바로잡아 달라는 요구가 더 컸습니다.”
   
   제주지사는 우근민·신구범·김태환 3인이 돌아가면서 23년을 맡아왔다. 우근민 관선 2회·민선 3회, 신구범 관선 1회·민선 1회, 김태환 민선 2회. “세 사람은 도지사가 되기 전에 가까웠습니다. 도지사를 하면서 갈등을 보였고 그게 제주도민의 눈에도 볼썽사납게 보인 겁니다. 언론에서 ‘제주판 3김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합니다.”
   

▲ 2009년 베트남에서 학교 설립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한 김만덕기념사업회의 고두심 대표와 양원찬 대표(왼쪽에서 다섯 번째).


   제주특별자치도는 최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광역단체 청렴도조사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최근 서귀포시 공무원들의 비리가 잇따라 적발된 것도 이런 ‘줄세우기’ ‘끼리끼리 해먹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6남매의 3남. 제주일고를 졸업하고 1968년 한양대 의대에 입학했다. 형제들 중 현재 두 명이 제주도에 산다. 그가 김만덕기념사업회에 관여하게 된 것은 2003년. 연기자 고두심씨가 연기 생활 30주년을 맞아 제주를 한 바퀴 도는 걷기 행사를 벌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004년 김만덕기념사업회가 조직되었다. 김만덕은 조선 정조 때의 인물. 천민 출신인 김만덕은 상업으로 부(富)를 일군 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백성을 구휼하는 활동을 해왔다.
   
   김만덕기념사업회는 지지부진했다. 사업회를 활성화하는 묘안을 찾던 그는 김만덕이 한 것처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을 모으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2007년 제주에서 김만덕기념사업회 주최 ‘나눔쌀 천섬 쌓기’ 행사가 열렸고 도민의 성원으로 성공을 거뒀다. 자신감을 얻은 김만덕기념사업회는 쌀모으기 행사를 전국 규모로 확대하기로 한다. 2009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나눔쌀 만섬 쌓기’ 행사를 벌였다. 서울시내 초·중·고생부터 대기업까지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13억원을 모았다.
   
   “고두심씨의 역할이 컸습니다. 고두심씨는 거의 1년간 드라마 출연을 중단하고 쌀 기부 활동에 전념했어요. 회의를 하러 우리 빌딩에 거의 매일같이 드나들었어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이 빌딩이 고두심씨 빌딩 아니냐고 한 적도 있지요. 기획은 제가 했지만 성공하게 한 것은 고두심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죠.”
   
   김만덕기념사업회는 쌀 기부로 모아진 13억원을 가지고 베트남을 찾아 학교 건립 및 기부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대로 2012년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각 준공식을 갖고 개교했다.
   
   KBS는 ‘거상 김만덕’을 2010년 미니시리즈로 방영했다. ‘거상 김만덕’에서 고두심씨는 할매 역으로, 이미연씨가 김만덕 역을 맡았다. 김만덕기념사업회는 2012년에도 ‘나눔쌀 만섬 쌓기’ 운동을 벌였다. 김만덕기념사업회는 여기서 모금된 돈으로 남수단 학생들 통학용 자전거 지원, 해외아동 빈곤퇴치 지원사업 등을 펼쳤다.
   
   그는 “지난 5년간 제주도를 290회나 찾았다”고 했다. 2009년부터 평균 일주일에 한 번씩 찾은 것이다. 그는 곧 새누리당에 입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당 광역단체장을 해야 실질적으로 계획을 펼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제주도만의 고유한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외국의 것을 그냥 가져오는 게 아닌 고유의 색깔을 보여줘야 합니다. 제주도 올레길도 이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옵니다. 오늘의 개발이 30년 뒤에는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숫자의 시대를 넘어 질의 시대로 가야 합니다. 제주도를 스위스나 프랑스 같은 고급 여행지로 바꿔야 할 때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지키면서 주민소득을 창출하는 데 힘을 쏟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