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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엔 돈 섬…딸 시집 보내려 경쟁 했었지" (전남일보 2013. 10.18. 00:00)

"40년 전엔 돈 섬…딸 시집 보내려 경쟁 했었지"

[섬 이야기] 신안군 흑산면 만재도

 


만재도 앞바다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만재도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20㎞의 거리에 위치한 섬으로 신안군 흑산면에 속해 있다. 예전에는 진도군 조도면에 속했으나, 1983년 행정구역 재편으로 신안군 흑산면에 속하게 됐다. 0.59㎢의 면적을 가진 아담한 크기의 섬이다. 섬에 사람이 처음 들어온 시기는 조선 숙종 26년(1700)으로 평택 임씨인 임충재가 진도에서 이주해와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바다 한가운데 멀리 떨어져 있다 해서 먼데 섬 또는 만대도라고 했다. 재물을 가득 실은 섬의 의미로 晩財島 또는 해가 지고 나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 하여 晩才島라 했다 한다.

만재도 앞 선착장.

태도군도 남쪽으로 만재도가 있다. 더 남서쪽에 가거도가 있다. 가거도보다 만재도가 목포항과 더 가깝다. 그런데 여객선은 목포항에서 흑산도와 상ㆍ하태도를 경유해 가거도에서 1시간 정도 머무른 뒤 만재도로 향하는 코스로 운항한다. 뱃길로 5시간 넘게 걸리다보니 만재도가 낙도 중 낙도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쾌속선이 가져온 1일생활권 시대라 해도 만재도에 가면 꼼짝없이 하루를 묵을 수밖에 없다.

이 작은 섬이 한때는 돈섬, 보물섬으로 불리며 돈이 풍족했던 적이 있었다. 주민들은 만재도의 황금기를 1930~1960년대라고 회상한다. 당시 만재도 근해에서 전갱이과 가라지라는 생선이 대풍을 이루던 시기였다. 가라지를 잡는 수백여 척의 풍선(돛단배)들이 성시를 이루었고 가라지 파시가 열려 거래가 이루어지니 자연히 풍요를 누리는 잘사는 섬이 되었다. 돈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을 앞 해변에 있는 몽돌해수욕장에 진을 친 12개의 가건물 기생집에서는 노랫가락이 밤새도록 멈추지 않았다 한다.

만재도 앞 전경.

고등어보다 조금 큰 고급 어종인 가라지는 가거도나 하태도에서는 구경조차 못하는데 유독 만재도 부근에서만 많이 잡혔다고 한다. 해방 전후 온 민족이 가난했을 적에 만재도 사람들만은 가라지 덕에 부자였다. 마을의 아이들이 가라지 몇 마리를 가게에 가지고 가서 사탕과 바꿔먹는 풍속도가 있었다.

가라지가 가져다준 돈으로 섬경제는 풍족했고 그 덕분에 자녀들을 대학교육까지 시킬 수 있었다. 인근의 섬에서 딸 가진 부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만재도로 시집보내려 했던 시절이었다. 황금기에는 이 작은 섬에 100가구가 넘게 살았다. 마을 건너편 산밑에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살던 집터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준다. 1960년대 초, 만재도 근해에서 가라지가 갑자기 사라져 38년간의 황금기가 끝났다. 계속될 것만 같던 풍족함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섬은 쇠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정부의 이주정책에 부응해 농사라도 짓기위해 많은 가구가 진도로 떠났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당시 만재도 사람들은 11월이면 염장한 생선과 마른 생선, 미역 등을 돗단배에 가득 싣고 진도나 해남 등지로 가서 식량 및 생필품과 바꾸고 지붕을 이을 볏짚을 싣고 들어와 월동을 했다.

만재도 앞 무인도.

가거도나 마라도, 백령도 등은 국토의 끝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잘 알려져 있는 데 비해 만재도는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객선으로 5시간 남짓 걸려야 도착하는 만재도는 접근성이 좋지 않다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만큼 자연 그대로 본연의 생태환경을 잘 보존하고 있는 장점이 이 섬에는 있다.

큰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선착장이 없어 차도선이 닿질 않으므로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도 경운기도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어선의 엔진 소리를 제외하면 온통 자연의 소리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다르고 닿는 소리가 다르다. 높새바람,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의 소리가 제각기 다르고 세기에 따라, 방향에 따라 또다른 소리결을 만들어낸다. 파도소리 또한 해변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다르다. 바위에 세차게 부딪쳐 내는 역동적인 소리, 몽돌에 닿는 뭉근한 소리, 모래알에 닿는 깨알 같은 소리. 뭍에서는 볼 수 없는 이름 모를 새들이 숲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파도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갈매기 소리는 물때에 따라 어선의 드나듦에 따라 합창의 멜로디와 강약이 달라진다. 돌담길 사이로 새나오는 노동요나 타령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태고적 원시의 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섬은 온갖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평화로운 휴양, 진정한 휴식을 제공한다.

이곳의 해안은 다양한 형태의 해식애海蝕崖가 일품이다. 처음 접한 해안의 절경은 서들개. 삼각형 모양의 해벽이 거대해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만다. 앞산자락 녹도를 지나가면 주상절리의 규모가 커지고 모양도 다양해진다. 주상절리 기둥이 마치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듯하다는 지붕바위 앞에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곧이어 붉은 용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진 용바위가 나타나고, 그 옆 거북바위를 거쳐 구멍이 뚫린 남대문바위가 이어지며 해상유람의 절정을 보여준다.

맑은 바닷물이 일품인 해변에는 자잘하고 구슬 같은 돌들이 파도가 칠 때마다 스르르 스르르 소리를 내며 굴러다니고 그 해변의 뒤편엔 암벽등반을 하는 등산가들이 탐을 낼 만한 거대한 절벽이 바다로부터 하늘로 솟아 있다.

이재언 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



●둘러보기

만재도 역시 여객선의 접안시설이 갖춰 있지 않아 종선이 마중 나와서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른다. 섬에 다가갈수록 선착장 위로 보이는 마을이 전부이며 고즈넉한 섬이다. 방파제 안에는 고작 고깃배 너댓척이 정박해 있다. 여객선에서 내려 방파제가 꺾이는 부분에는 몽돌해안이 있다. 주먹 만한 자갈로 이뤄진 해변이 초승달 모양으로 크게 휘어져 있다.

만재도는 방파제에서 시작되는 길을 따라 가면 길 입구에 만재도의 유일한 편의시설인 만재슈퍼가 있고 이곳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면 만재교회로 가는 오르막길이다. 마을 돌담길은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돌담길 사이로 노인 몇 분이 어선의 주낙을 정리하고 손질한 주낙에 미끼를 끼우고 있다. 남서쪽으로 가면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예전 흑산초등학교 만재분교였던 곳. 그러나 학교였음을 입증할 만한 흔적은 없고 지금은 민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학교 옆의 동백나무 숲이 할머니 당숲이다. 오래 전부터 섬사람들은 이 할머니 당숲에서 당제를 지내왔다. 이곳 사람들이 할머니 당숲을 소중히 여기고 숭앙하는 이유는 섬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이 있기 때문이다. 폐교 앞으로 난 포장길을 따라 곧장 가면 발전소로 이어진다. 발전소 정문에 있는 준공기념 표지석을 보니 1997년으로 새겨져 있다. 쇠끝너머(마을너머)에는 지하수를 담수해 하루 100톤의 식수를 생산하는 취수원이 있놓았다.

●지리

만재도는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섬으로 목포 남서쪽 120㎞, 흑산도 남쪽 45㎞ 지점에 있다. 면적 0.590㎢, 해안선 5.5㎞에 43가구 9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는 길

남해퀸호, 목포―가거도, 1일 1회 / 소요시간: 4시간 30분. 목포―만재도 노선은 오전 8시 목포여객선터미널을 출발, 비금?도초를 거쳐 흑산도―다물도―상태ㆍ중태도―하태도―만재도를 거쳐 오후 12시 30분쯤 가거도에 도착, 10여 분 승객을 실은 뒤 목포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