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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분야/창조경제

[매경의 창] 창조경제, 인문학을 접목하라 (매일경제 2013.06.06 22:09:50)

[매경의 창] 창조경제, 인문학을 접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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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은 우라늄, 플루토늄 등의 핵연료가 분열하면서 방출하는 열로 물을 끓이고 여기서 발생하는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핵분열이 일어나는 장치인 원자로는 다량의 열이 발생하므로 원자로 내부를 냉각해 주는 물이 많이 필요하며 원자력발전소는 물을 쉽게 얻기 위해 대개 해변에 위치하게 된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면서 전원 공급이 중단되고 냉각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시작됐다. 냉각수 유입이 중단되고 그 결과로 핵연료가 식지 않아 수소가 발생하고 폭발함으로써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쓰나미가 원전 사고의 1차 원인이었지만 냉각수만 정상적으로 유입되었어도 원자로가 붕괴되는 끔찍한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원자력 발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핵연료나 원자로뿐만 아니라 냉각수가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과학기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에 인문사회 연구개발이 결합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수용되어야 가치를 갖게 되는데 과학기술의 사회적 용도와 수용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시장이나 문화 또는 법과 제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기술집약형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기술이 아닌 시장에서 실패한다. 한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대를 모았던 위성 DMB나 IPTV 등의 뉴미디어도 기술은 준비되어 있었으나 비즈니스 모델이 부재하거나 관련된 제도가 미비하여 결국은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예산을 살펴보면 인문사회 연구개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다. 한국연구재단에 인문한국 지원이나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 등의 인문사회 분야 연구개발 프로그램이 있지만 과학기술 연구개발 사업을 위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수준이다. 최근에 BK21 플러스 사업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인문사회 사업단이나 사업팀에 배정된 예산은 과학기술 분야에 비해 상당히 적다. 따라서 인문사회 분야에 배정되는 연구개발 예산을 의미 있는 규모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 전체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10% 정도는 인문사회 연구개발에 할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과학기술 분야 대형 연구과제 연구진에 필수적으로 인문사회 연구팀을 포함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삼정전자 등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연구개발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예전에는 대기업들이 선진국의 기술을 베끼는 방식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보고 베낄 데가 없는 실정이다. 베낄 데가 없다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데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방향 설정에는 반드시 인문사회적인 고려가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대기업들의 산학협력도 인문사회 분야 중ㆍ장기 연구개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인문사회 연구자들도 이제는 밥값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업이나 정부의 단기적인 숙제를 하는 용역과제나 인문사회 토양을 굳건하게 하는 기초연구도 중요하지만 우리만의 인문사회 이론이나 사례, 정책, 전략 등을 개발하여 과학기술의 성과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에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창조경제가 원자력 발전이라면 과학기술은 핵연료, 과학기술 연구개발 시스템은 원자로에 해당되며 인문사회 연구개발은 냉각수의 역할을 한다.

과학기술은 인문사회 연구개발로 냉각될 때 안전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 시스템이 붕괴되고 결과적으로 창조경제가 실패하는 인재(人災)를 막으려면 인문사회 연구개발 결과가 안정적으로 유입되어야 한다. 창조경제는 인문사회 연구개발을 강화해야 성공할 수 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