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배임’ 재벌 관재팀
오너의, 오너에 의한, 오너를 위한
▲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자택에서 검찰 직원들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집을 나서고 있다. |
CJ그룹 비자금 수사를 통해 흘러나오는 각종 의혹의 중심에는 ‘관재(管財)팀’이란 조직이 등장한다. 3명 정도로 운영되는 이 팀은 이재현 회장과 이 회장 자녀들의 각종 개인재산을 관리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CJ관재팀의 존재가 외부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 CJ그룹 임원의 살인청부 수사 때도 청부를 의뢰했던 인물이 전직 관재팀 임원 이모씨로 드러나면서 관재팀의 존재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당시 경찰 수사를 통해 이씨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사재를 자기 돈처럼 멋대로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은 두 가지에 놀랐다고 한다. 우선은 한 번도 드러난 적이 없었던 이재현 회장의 숨겨둔 재산규모에 놀랐고, 다른 하나는 이 회장의 전폭적 신뢰를 받으며 재산을 관리해주는 가신 그룹, 이른바 ‘관재팀’이라 불리는 조직의 존재에 놀랐다는 것이다. 관재팀의 역할을 들춰 보며 재벌 오너들의 은밀한 ‘속살’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관재팀은 오너 일가를 향한 수사 때마다 사건의 실마리를 움켜쥐고 있는 핵심 조직으로 수사기관의 주목을 받고 있다.
관재팀은 한국 재벌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존재다. 공적인 회사의 조직과 인원을 동원해 자신과 자식들의 재산을 관리시키는 재벌 오너들의 행태에서 공과 사를 뒤섞고,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후진성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관재팀의 존재야말로 재벌 오너들의 ‘숨겨진 배임’ 중 하나라는 비판도 따른다.
관재팀을 향한 관심은 높지만 워낙 은밀하게 운영되는 조직인 만큼 구체적인 활동이 드러난 적은 별로 없다. 또한 이런 조직이 과연 CJ그룹에만 존재하겠느냐는 궁금증도 불러일으킨다. 관재팀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례가 지난 2010년 이재현 회장의 장녀 경후씨가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로부터 부동산을 매입했던 당시의 일이다.(주간조선 2251호)
당시 경후씨가 빌라를 매입한 금액은 38억원이었다. 주간조선이 이 자금에 대해 불법증여 의혹을 제기하자 CJ 측은 한 장의 우리은행 대출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계약서에는 경후씨가 동생과 공동소유하고 있는 가로수길 빌딩을 담보로 38억원을 대출받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2009년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170억원짜리 5층 빌딩을 매입했었다.
그런데 두 부동산을 매입한 시기에 경후씨와 선호씨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즉 부재중이었던 그들을 대리해 누군가가 부동산 매입과 은행 대출을 진행한 것이다. 주간조선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계약서에는 CJ그룹 소속 조모씨의 이름이 등장한다. 조씨가 미국에 있는 경후씨를 대신해 대출계약서에 서명한 것이다. 조씨는 대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부동산 매입 과정을 대리했다고 한다. 이후 조씨의 존재에 대해 취재해보니 그는 CJ그룹 내 재무팀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오너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2팀, 즉 ‘관재팀’ 소속이었다. 이처럼 관재팀은 CJ그룹에 속해 있지만 실제적인 업무는 오너 일가의 재산 관리부터 은행 대출까지 오직 오너만을 위한 조직으로 운용되고 있다.
CJ그룹 관재팀은 선대 회장인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운용돼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관재팀은 범삼성기업에 대부분 존재한다. 운용하는 형태도 비슷하다. 삼성그룹 관재팀의 존재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었다.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에버랜드 CB(전환사채) 발행 및 전환업무를 구조조정본부 내 관재팀이 주도한 사실이 밝혀졌다. 특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 관재파트는 형식적으로는 그룹 경영을 지원하는 전략기획실 경영지원팀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회장실’ 직속으로 운용됐다. 그러면서 이들은 계열사 재무 관련 업무가 아닌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재산 관리를 도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범삼성가인 신세계에도 이런 재무팀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세계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범삼성기업이 아닌 다른 대기업에도 관재팀은 존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기획실 내 재무팀과 글로비스 재무팀에서 그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비스에서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는 이 회사가 경영권 승계의 핵심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이정대 전 현대모비스 부회장이나 김경배 글로비스 대표이사가 모두 글로비스를 거쳐가거나 현재까지 대표이사로 있는 이유도 오너들의 경영권 승계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 역시 그룹 내부에 관재팀을 따로 운용했던 사실이 2011년 검찰 수사와 올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바 있다. SK그룹의 경우 오너 일가와 친분관계가 있는 인물들이 이 역할을 담당했다. 검찰 수사를 통해 주목을 받은 무속인 출신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나 SK 상무 출신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그들이다. 최근 검찰 수사를 받았던 한화그룹 역시 ‘장교동팀’으로 불리는 관재팀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교동팀은 그룹 경영기획실 재무팀(회계2파트) 4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관재팀이 오너와 관련해 어느 정도의 사소한 일까지 하는지는 아래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은 대기업 오너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 세무서에서 일하며 종합부동산세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한 국세청 직원의 설명이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종합부동산세가 처음 도입됐는데 이 지역에는 대기업 회장님들이 몰려 살았다. 당연히 대부분의 회장님들이 종부세 납부 대상자였는데, 종부세와 관련해 문의를 하거나 납부하러 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 기업 직원이었다. 회사 직원들이 부동산처럼 오너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던 거다. 재산세나 소득세는 원천징수되기 때문에 직원들이 직접 세무서에 올 일이 없었는데 종부세가 도입되고 나서 그들이 직접 세무서에 오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재벌기업은 저렇게 직원들이 다 관리하는구나 싶었는데 한번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중견 건설업체 오너가 직접 종부세를 문의하러 세무서에 왔었다. 그래서 저런 재벌도 있나 싶어서 직원들이 다 깜짝 놀랐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관재팀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철저하게 수면 아래서 움직여야 하고,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조차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관재팀 인원을 선발할 때도 극비리에 진행하는데 가장 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회사에 대한 충성도라고 한다.
관재팀은 대부분 오너의 집무실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CJ의 경우에도 관재팀은 회장실 바로 아래인 13층에 위치해 있는데, 이들은 일반 직원이 이용하는 통로 끝 계단이 아니라 회장실로 곧바로 연결되는 계단을 이용해 회장실에 직보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내부에서도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는지 알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 역시 지난 2008년 특검을 받을 때까지도 이 회장 집무실이었던 28층 바로 아래에 관재팀을 운영했었다.
관재팀의 특성상 팀의 수장은 오너의 최측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창업주로부터 경영수업을 받을 때부터 곁에 있던 사람이거나 오너와 개인적 연이 있는 사람에게 관재팀의 지휘를 맡긴다. 삼성그룹의 경우 이건희 회장에게는 이학수 전 부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김인주 전 사장이 이런 역할을 맡았었다. 이들은 모두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수업을 받을 때부터 곁에 있었다. CJ 이재현 회장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키맨’으로 꼽히는 신 모 부사장은 이 회장의 고려대학교 후배다. 살인청부 의혹을 받았던 전직 관재팀장도 고려대 출신이고, 초대 관재팀장으로 알려진 김모씨는 이재현 회장의 경복고 동기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최측근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그들을 믿지 않는 것이 오너들의 특성이라고 한다. 재계 사정에 밝은 한 세무사는 “오너 일가는 회사 내부의 관재팀을 통해 재산 관리를 하지만 외부에 따로 회계사와 세무사를 두고 관재팀이 하는 일을 검증한다”며 “이런 견제장치를 하지 않을 경우 언제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너들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오너들이 이처럼 관재팀을 운영하며 사조직처럼 활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재벌들의 후진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재벌들이 ‘주식회사’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이지수 변호사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주식회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주주 전체의 것인데, 오너들이 마치 회사 전체를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 돈과 인원을 마음대로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관재팀은 오너가 회사 내에서 이렇다 할 견제를 받지 않고 독단적인 경영을 할 때에만 존재가 가능한 조직”이라며 “사실상 조직과 인원을 내 맘대로 쓰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재벌기업에서 관재팀이 운영되는 것은 대기업의 잘못된 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과 SK, CJ 등 그동안 수사를 통해 관재팀의 존재가 드러난 회사들은 대부분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을 받는 재벌기업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5월 30일 발표한 ‘2013년 대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을 보면 이건희 회장이 전체 삼성그룹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분율은 0.69%에 불과하다.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 0.04%에 불과하다. 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 회사의 돈과 인원을 마음대로 활용하는 셈이다.
이지수 변호사는 “대부분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순환구조로 돼 있는 상황에서 적은 지분을 가지고도 전체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며 “IMF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관재팀은 독립된 법인이 아니라 각 계열사에서 파견받은 직원들로 이뤄진 사실상의 유령조직”이라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런 조직을 만드는 것은 배임행위”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기업들은 관재팀의 조직 자체를 부인하거나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해명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특검 당시) 김용철 변호사가 그런 팀이 있다는 주장을 했지만 그런 조직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 또한 “공식적으로 관재팀은 회사 건물과 같은 공식적인 재산을 관리하는 팀일 뿐 다른 의미에서 관재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테크 > 기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건희 회장, "신경영 새로운 출발은 상생" (조선일보 2013.06.07 09:51) (0) | 2013.06.07 |
---|---|
[주간조선] 대기업 임원들이 의원회관 338호실에 줄서기 하는 까닭은? (조선일보 2013.06.04 10:47) (0) | 2013.06.04 |
[주간조선] 5년 만의 흑자 소니의 반격 시작됐다 (조선일보 2013.05.19 08:38 ) (0) | 2013.05.19 |
네이버는 뭘 잘못했길래 조사받나요? (한겨레 2013.05.17 21:25) (0) | 2013.05.17 |
◆ 삼성은 왜 베트남으로 갔나 / ① 박닌성 vs 구미 ◆ (매일경제 2013.04.21 20:51:02) (0) | 2013.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