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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기업

[주간조선] 5년 만의 흑자 소니의 반격 시작됐다 (조선일보 2013.05.19 08:38 )

[주간조선] 5년 만의 흑자 소니의 반격 시작됐다

 

일본 1위 전자업체 소니가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니는 지난 3월 마감한 2012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430억엔(5월 16일 기준 약 468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일본 기업은 12월 결산이 다수인 우리와 달리 3월 결산이 많다. 소니가 흑자전환한 것은 2007 회계연도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쇼 ‘CES 2013’에 출품된 소니의 4K OLED TV. photo 로이터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쇼 ‘CES 2013’에 출품된 소니의 4K OLED TV. photo 로이터

소니는 2012 회계연도 순이익 430억3000만엔을 달성, 2011 회계연도의 4566억6000만엔 순손실에서 크게 반등했다. 이 기간 매출액은 6조8000억엔(약 74조원)으로 전년 대비 4.7% 증가했다. 특히 지난 회계연도 4분기에는 순이익 939억엔, 매출액 1조7000억엔을 기록해 이번 흑자 전환을 견인했다.

소니의 흑자 전환은 의미가 크다. 일본 증시에서는 전자와 자동차가 양대 산업이다. 시가총액 중 전자가 12%, 자동차가 10%를 차지한다. 자동차는 도요타가 건재하고 있지만 소니는 세계 1위 전자업체의 영광을 잃은 지 오래다. 소니뿐만 아니라 다른 전자업체들도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1위 전자업체 소니가 부활하면 전자산업은 물론 일본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공격적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 효과와 더불어 직원 감원과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펼친 것이 소니의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엔저 효과가 기본적으로 컸다. 소니 측은 달러화에 대해서는 엔화 약세의 이익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유로화에 대한 엔화 환율이 1엔씩 올라갈 때마다 연간 이익이 60억엔씩 늘어난다고 보도했다.

소니는 자구 노력도 강도 높게 진행했다. 소니는 올 들어 도쿄와 뉴욕에 있는 회사 건물을 잇따라 매각했다. 가토 마사루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이번 흑자 전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지난 5월 14일 한국 시장에 출시된 엑스페리아 태블릿Z. photo 소니코리아
지난 5월 14일 한국 시장에 출시된 엑스페리아 태블릿Z. photo 소니코리아

소니를 비롯한 일본 전자업계는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현재 시장을 이끄는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눈에 띄게 존재감이 줄어든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삼성과 애플·LG·화웨이·ZTE가 나란히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톱5를 차지했다. 애플을 제외한 나머지 네 회사가 한국과 중국 업체들이다. 소니 등 일본 업체들은 안방에서도 밀린다. 아이폰은 지난해 일본 휴대폰 시장에서 점유율 15%로 1위를 차지했다.

소니의 부활 전략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뉜다. 우선 소니 몰락의 직접적 원인이 된 TV 부문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것이다. 소니는 지난 1월 세계 최대의 가전쇼인 CES 2013에서 뛰어난 제품을 다수 선보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아직 삼성전자와 일본 제조업체 간 어느 정도의 기술 격차가 있지만, 삼성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일본 기업들의 반격이 삼성 측이 예상한 시나리오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소니는 CES 2013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의 화질을 4배 이상 끌어올린 ‘4K OLED TV’를 공개하며 ‘왕좌’를 되찾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했다. 샤프 또한 삼성, LG 등 우리나라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4K보다 두 배 이상 해상도가 뛰어난 8K TV 제품을 내놓으며 녹슬지 않은 기술력을 과시했다. 이번 CES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초대형 TV, 곡선형 OLED TV 등을 선보이며 대대적 기술력 과시에 나선 것도 후발 업체들의 추격에 대한 위기의식의 표현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기술력도 문제지만 가격 경쟁력은 더 큰 위협이다. 엔저로 일본 기업들이 덤핑을 때릴 여유가 커졌기 때문이다. 소니는 지난 4월 1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서 55형·65형(인치) 크기의 UHD TV가 6월부터 판매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55형과65형 UHD TV 가격은 각각 50만엔(약 545만원), 75만엔(약 818만원) 전후로 책정될 전망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같은 크기의 제품을 4999달러(약 558만원)와 6999달러(약 782만원)에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해 하반기 84형 UHD TV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이보다 크기를 줄여 40형 이상의 대형 TV로 발을 넓힌 것이다.

주목을 끄는 것은 단연 가격이다. 이번에 출시한 55형 TV의 가격은 지난해 출시한 84형 제품(168만엔·1831만원)의 30%, 65형은반값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소니는 지난해 연말 84형 UHD TV의 가격을 동일한 크기인 LG전자 UHD TV(2500만원)의 76%, 2.54㎝(1인치) 큰 삼성전자의 85형 UHD TV(4000만원)의 47.5% 수준으로 책정하며 가격경쟁력을 앞세웠다. UHD와 OLED TV 등 차세대 TV 시장에서 한국의 LG전자와 삼성전자가 기술을 선점하며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자 가격을 무기로 반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소니는 신성장동력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게임, 엔터테인먼트, 모바일, 의료기기 등 ‘4대 분야’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자회사인 ‘소니 엔터테인먼트 네트워크’를 통해 영화와 음악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월 국내에도 개봉된 애니메이션 ‘몬스터 호텔’도 소니가 제작한 것이다. 그룹 홈페이지는 소니가 제작한 만화영화나 일본에서 인기 있는 음악 순위를 소개하고 음악도 들을 수 있게 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처럼 꾸며 놓았다.

소니는 또 의료기기 사업이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기둥’이 될 것으로 보고 공을 들이고 있다. 2010년 미국 일리노이의 생명과학 회사 아이시트(iCyt) 미션 테크놀러지를 인수했고 2011년에는 휴대형 혈액검사 장비 전문업체인 마이크로닉스도 인수했다. 이외 현재 삼성·애플이 양분하고 있는 스마트폰 모바일 시장도 꾸준히 공략하고 있다.

올해는 소니가 부활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비록 5년 만에 흑자를 달성했지만 본업인 전자 분야에서는 적자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월 8일 “히라이 가즈오 소니 CEO가 그동안 화학사업부를 매각해 비용을 줄이고 사업부 구조조정을 했지만 이제는 제품 제조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히라이 가즈오 CEO가 올해 큰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올해처럼 엔저가 받쳐주는 여건에서 전자 분야에서 흑자를 내지 못한다면 소니는 이제 가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니 경영진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 위협적인 것은 소니가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다. 일본의 기술 수준이 한국보다 달려 주도권을 잃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일본 전자업계가 소니병에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소니 전문가의 진단을 보자. 20여년간 소니를 취재한 언론인 다테이시 야스노리는 ‘굿바이 소니’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이 책에서 소니의 성공과 몰락에 관해 분석했다. 다테이시는 소니를 몰락으로 이끈 결정적 원인으로 잘못된 기업전략을 꼽는다. 1946년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가 설립한 소니는 처음부터 개발과 기술을 지향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소니의 덩치가 커지면서 매번 ‘워크맨’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을 수는 없게 됐다. 소니 임직원들은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확실히 팔리는 상품을 파는 빠른 길을 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후발진입전략’.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소비에 드라이브가 걸린 시점을 가늠해 시장에 뛰어드는 방법을 택했다. 혁신과 안전의 갈림길에서 안전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 이 방법이 계속되면서 소니다운 상품 개발을 목표로 해왔던 연구·개발 부문의 힘이 약해졌다는 게 다테이시의 분석이다.

그는 오가 노리오, 이데이 노부유키, 하워드 스트링거로 이어지는 최고경영자(CEO) 간의 암투도 소니의 몰락에 일조했다고 꼬집는다.
1995년 소니 사장으로 취임한 이데이는 전임 오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감독과 집행을 분리하기 위해 소니그룹을 독립된 25개의 회사로 나눴다. 그룹 본사는 투자은행처럼 관리와 평가만 하고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게 됐다. 그 결과 본사는 급속도로 관료화됐고, 각 회사들은 당장의 이익만 낸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이런 실적 평가 방식이 소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한다.

소니는 이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소니는 전자사업 적자에 책임을 지고 최근 히라이 가즈오 CEO 등 관련 부서 임원들이 상여금을 전액 반납키로 하는 등 주력 사업 재생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소니는 그동안 소홀했던 스마트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 소니가 CES에서 선보인 전략 스마트폰 엑스페리아Z는 소니의 기존 제품과는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전혀 차원이 다른 명품폰으로 국내외의 관심을 끌었다. 히라이 가즈오 CEO는 “최근 몇 년간 모바일을 소니 비즈니스의 핵심 사업으로 통합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