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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꼭 필요한 생활의 지혜

연차 내고 찾아오는 노래방, 이런 곳이구나 (오마이뉴스 2013.02.10 19:28)

연차 내고 찾아오는 노래방, 이런 곳이구나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서울시의 1인 가구 수가 85만 4천가구로 4인 가구 수를 넘어섰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는 쉽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고시텔 등 혼자 사는 20대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것을 혼자 하는 '1인 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1인 마케팅'도 늘어간다. 1인 노래방부터 1인 미용실에 1인 식당까지, 기자가 직접 하루 동안 이곳을 찾아다니며 '혼자 놀기'를 체험해봤다... < 기자말 >

"죄송합니다, 손님. 앞으로 110분 정도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1인 전용 노래방을 찾았다. 지난해 9월 생긴 후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곳이다. 그래도 평일인 월요일, 오전 11시 반에 갔는데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재차 확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노래방 안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7명이 제각기 앉거나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 직원은 하루에만 100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2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1인 노래방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1인전용 노래방.

ⓒ 유성애

"주간에는 주로 근처 학생들이 많이 오는 것 같고요. 야간에는 실용음악과 학생이나 개인 연습실이 없는 가수지망생들이 와요. 처음엔 다들 호기심으로 오는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장비가 고급이다 보니까…. 방 한 개에 들어간 음향장비 값이 한 110만 원 정도?"

공중화장실의 화장실 한 칸보다 약간 큰 크기의 노래방이 이곳에는 16개나 있다. 가격은 회원일 경우 낮12시 이전에 입장하면 1시간 당 천 원, 낮12시 이후에는 시간 당 5천 원이다. 카운터 오른쪽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음료수 바와 자신이 녹음한 노래를 전송할 수 있는 컴퓨터 세 대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같이 기다리던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영등포에서 왔다는 직장인 김아무개(27)씨. 인터넷 리뷰를 보고 처음 이 노래방을 알게 된 뒤, 한 달에 두 세 번은 꼭 찾는단다.

"회식자리나 친구들 모임에서 노래 부를 때 대비하면 좋아요. 친구들이랑 놀러 가면 연습은 못하잖아요. 제가 원래 뭐든 혼자 하는 걸 좋아해서요. (친구들)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 귀찮으니까, 굳이 말 안 해요."

그는 "홍대에 다른 1인 노래방도 있지만 여기가 훨씬 싸다"면서 "예전엔 안 기다리고 바로 들어갔는데 요즘 사람이 세 배는 많아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직장인이 평일 오전에 어떻게 노래방에 와 있는 걸까?

"아, 연차 내고 왔어요."

김씨는 올 때마다 연차 휴가를 낸다고 했다.

헤드셋 끼고 혼자 노래 불러 봤더니...

두 시간을 기다려 겨우 들어간 1인 노래방. 직원 말대로 시설이 좋기는 했다. 노래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시원시원한 28인치 노래방 화면. 벽에 붙은 책상 왼쪽에는 가수들이 사용하는 레코딩 전용 '스탠딩 마이크'가 있고, 오른쪽에는 볼륨 등을 조절하는 전문 음향기기 '사운드 믹서'도 놓여있었다.

노래를 찾아서 리모컨으로 선곡하는 과정은 다른 노래방과 똑같았다. 단 옆방과 거리가 가깝다 보니, 노래를 부를 때는 소음 방지를 위해 연결된 헤드셋을 껴야만 했다.



1인 노래방의 내부 모습. 오른쪽에는 전면 거울이 붙어있고, 옷을 걸 수 있는 옷걸이도 있다.

ⓒ 유성애

혼자서 노래방에 온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누군가 보는 것처럼 괜히 쭈뼛거렸다. 일단 노래방 책을 펼쳐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선곡했다.

혼자다 보니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부를 수 있었다. 헤드셋을 통해 들리는 내 목소리가 생소했다. 방 한 가운데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부르고 있자니 왠지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최신 유행곡인 정형돈의 '강북멋쟁이'를 선곡했다.

"강동은 강동의 이쁜이 있고/ 강서는 강서의 귀요미 있고/ 강남은 강남의 스타일 있고/ 강북은 강북의 멋쟁이 있지~ 넘기고 깃 세우고 소매를 걷고/ 별 거 없이도 빛이 난다 조명 없이도~ 라라라라~ 라라라라~ "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연달아 '메뚜기 월드(유재석)'와 '원,투,쓰리,포(이하이)'등을 부르며 어색했던 내 목소리가 익숙해질 무렵, 이번에는 녹음에 도전해봤다. 리모컨으로 조작하니 녹음한 노래는 바로 USB에 옮기거나 이메일로 전송이 가능하단다.

"큼, 큼".

목을 가다듬은 뒤 녹음 전용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한 쪽 벽에 붙은 전면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니 왠지 가수가 된 기분도 들었다. 방 안에 의자가 있어 마음껏 움직이기에는 다소 비좁은 탓에, 춤을 출 수는 없었다.

노래하고 녹음하랴 전송하랴, 처음에는 길게만 느껴지던 한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마이크 성능이 좋다보니 다른 방에서 부르는 사람들 목소리도 헤드셋으로 들리기도 했다. 마지막에 녹음한 대여섯 곡을 재빨리 이메일로 전송한 뒤 마이크를 내려놓고 방을 나서려는 찰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고리에 붙어있는 안내를 보자 허탈감이 밀려왔다.

'문을 닫은 후 손잡이를 위로 올리면 완벽하게 방음이 됩니다.'

1인 전용 식당, '독서실에서 밥 먹는 기분'

1인 노래방을 나와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이동했다. 노래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간 곳은 신촌 현대백화점 옆에 위치한 일본식 라면집. 5년 전 문을 연 이곳은 '1인 전용 식당'으로 식권부터 무인자판기를 통해 구입해야 한다.

한 줄에 5석씩 네 줄, 복도식으로 만들어진 식당의 전체 자리 수는 20석 규모. 칸막이가 쳐진 독서실 형태라 옆 사람과 눈이 마주칠 일도 없었다. 답답하지는 않을까, 오는 사람은 많을까 궁금했는데 주말에는 줄을 서서 먹기도 한단다.



오른쪽에 있는 무인자판기를 통해 식권을 발급받는다. 왼쪽의 공석표지판을 통해 자리도 확인 가능하다.

ⓒ 유성애

"처음에는 식당에 들어왔다 놀라서 그냥 나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식당이 뭐 이렇게 생겼나 했던 거겠죠. 근데 문 연지 4,5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서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혼자 식사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 여긴 혼자서도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라면집을 운영하는 이명재(37) 사장은 "평일엔 200명 정도, 주말엔 300명 정도가 음식점을 찾는다"고 말했다.

"재밌는 일도 많아요. 식사하면서 책 읽는 손님은 물론이고, 가끔은 옷을 갈아입거나 커플들이 몰래 애정행각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안 보이는 줄 알고 춤추는 손님도 있고요."

자판기에서 라면을 주문한 뒤 자리에 앉자 직원이 빈 컵을 주고 식권을 받아갔다. 독서실 자리에 앞만 트인 형태라 직원도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은 자리 왼쪽에 있는 식수대에서 직접 따라 먹는다. 라면이 나오자 직원은 앞에 있던 커튼을 내렸다.

그러자 양옆과 앞이 완벽하게 막혀 그야말로 '혼자서' 식사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편하면서도 한편으론 답답한 기분도 들었다. 옆 사람은 뭐하나, 힐끔 훔쳐보니 나와 같은 20대 또래의 여성이 이어폰을 끼고 식사 중이다.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예능을 보면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1인 전용 식당의 내부 모습. 칸막이로 돼있어 혼자서 식사가 가능하다.

ⓒ 유성애

2012년 통계청이 조사한 서울시의 1인 가구 수는 85만 4천 가구로, 4인 가구 수인 80만 7천 가구보다 많다. 또한 증가 속도도 빨라 2035년에는 전국 모든 시도에서 1인가구가 가장 많아져 전체가구의 34.3%를 차지할 전망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홍대의 1인 미용실 '삥'. 사람들이 붐비는 일반 미용실과 달리 이곳은 미용사도 1명, 상대하는 손님도 1명이다. 사장이 기르는 고양이 세 마리가 구성원이라면 구성원이겠다.

머리를 자를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서강대 학생 박민석(24)씨는 "사장님이 인간적이라 부담 없고 편해서 자주 놀러온다"고 말했다. 자신을 '삥'이라 소개한 미용실 주인은 30대 후반의 남자 미용사. 예약도 휴대폰 메신저인 '카카오톡'으로 받는다고 했다.

"편한 사람 위주로, 손님과 허물없이 편하게 지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남자 손님은 별로 안 좋아해요. 이미 너무 많거든요(웃음). 그래서인지 요즘은 여자 고객들이 더 많이 와요."

나만을 위한 '1인 미용실'도 있다



홍대에 위치한 1인 미용실. 미용사가 '나만을' 케어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유성애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탓인지 그는 손님마다 어울리는 헤어스타일도 알고 있었다. 머리를 자르러 온 손님에게 "옛날에 우리 이렇게 짧게 자른 적 있었잖아요. 그때 괜찮았는데, 그렇게 다시 한 번 잘라볼까요?"라고 권하기도 한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에게도 그는 "거기 바나나 있으니 드시라"는 등 친근하게 음식을 권했다. 손님들도 어색하지 않은 듯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따뜻한 난로와 고양이 집, '아기와 나' 등 만화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미용실은 옛날 서점 같이 느낌이었다. 여기서는 커트와 파마, 매직과 삭발 등 간단한 스타일만 시술하는데 가격은 각각 2만 5천 원~9만 원 선이다.

주인은 "예쁘면 특별히 할인해주기도 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찜질팩과 머리안마기, 고양이 사료 등 물건으로 계산을 대신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했다. 의외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직접 머리 손질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다음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인간적인' 미용실이었다.



1인 미용실은 '카카오톡'을 통해 예약을 받는 등, 손님과 1:1로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유성애

"안녕하세요? 고객님. 고객님께서 OO미디어 반주기로 부르신 '고품질 녹음곡'을 전해드립니다. 앞으로도 자주 애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온 종일 혼자서 지내본 하루. 혼자 살고 있는 고시텔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자 오전에 보내놓은 내 노래 녹음 파일이 메일로 도착해 있었다. 호기심에 클릭해서 들어보니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친구와 함께 들으며 웃고 싶었지만 들려줄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혼자 먹고 혼자 놀고, 내내 혼자 지내고도 또 혼자서 잠드는 밤. 방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취재를 제외하고는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집 사람이 죽어도 잘 모른다는 일본의 '무연사회'처럼, 우리나라에도 모든 것을 혼자 하는 '1인 사회'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1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