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바로알기

강진 성전면 '월남사지' 정밀 발굴조사 설명회 (연합뉴스 2012/12/04 15:50)

강진 성전면 '월남사지' 정밀 발굴조사 설명회

 

백제시대 와당과 기와
백제시대 와당과 기와
 전남 강진 월출산 자락 월남서 터에서 발굴된 백제시대 와당과 기와. <<관련기사 참고>> 2012.12.4.

 

전남 강진군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 1월에 실시했던 기념물 제125호 월남사지(月南寺址) 시굴조사와 관련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 주관으로 4일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현장에서 1차 정밀 발굴조사 설명회를 개최했다.

월남사지는 월출산 남쪽 산자락에 있는 절터로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1178~1234년)이 창건했다고 알려졌으나 이번 발굴 조사에서 많은 백제 기와들이 출토돼 이미 백제시대에 사찰이 창건된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고려시대 풍탁
고려시대 풍탁
 전남 강진 월출산 자락 월남사 터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풍탁. <<관련기사 참고>> 2012.12.4. cbebop@yna.co.kr

이에 그동안 백제와 후백제, 고려 중기 등 다양하게 검토됐던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의 건립 시기도 재검토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백제 창건을 뒷받침하는 백제 기와의 경우 전남에서는 최초로 와당이 함께 출토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강진 월남사 터
강진 월남사 터
 백제와 고려시대 와당과 기와 등이 발굴된 전남 강진 월출산 남쪽 월남사 터. <<관련기사 참고>> 2012.12.4. cbebop@yna.co.kr

이 밖에도 높이 23㎝의 초대형 고려시대 금동 풍탁(風鐸), 돌로 만든 차(茶) 맷돌 등과 함께 청자 의자와 화분, 향로, 도판(陶板) 등 다양한 용도의 특수 청자들이 출토됐다.

이처럼 대형의 금동풍탁과 청자도판 등 다양한 용도의 특수 청자는 당시 실세였던 무인정권을 기반으로 한 월남사의 위상과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알려주는 학술적 자료로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 사찰 고고학적 증거
백제 사찰 고고학적 증거
 전남 강진 월출산 자락 월남서 터에서 백제시대에 처음 창건된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굴됐다. <<관련기사 참고>> 2012.12.4. cbebop@yna.co.kr

강진원 강진군수는 "전라남도와 문화재청과 협의해 사역 전체에 대한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해 고려시대 가람 구조뿐만 아니라 이번 조사에서 그 가능성이 확인된 백제시대 가람 구조에 대해서도 조사한 후 체계적으로 복원 정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사당리 43호 고려청자사적지 발굴과 월남사지 1차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한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은 이날 공개설명회를 하기 전에 강진군민장학재단에 장학금 500만원을 전달했다.

 

 

강진 월남사 백제 때 창건…백제와당 출토

 (연합뉴스 2012/12/03 16:44)

전남 최초의 백제사찰..23㎝ 초대형 고려시대 풍탁도 발굴

 

전남 강진 월남사(月南寺) 터에서 백제시대에 처음 창건된 사찰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드러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민족문화유산연원(원장 한성욱)은 강진군 의뢰로 사역(寺域) 정비를 위해 지난 8월 이래 월출산 남쪽 산자락에 있는 월남사 터를 발굴조사했다. 그 결과 와당과 평기와를 비롯한 백제시대 기와를 확보함으로써 이곳에 이미 백제시대 창건한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3일 말했다.

현재는 폐허 상태인 월남사는 고려시대 고승인 진각국사 혜심(1178-1234) 이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문헌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 그런데다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각종 문헌기록에는 고려시대에 창건됐다는 기록만이 있어 처음 이곳에 사찰이 들어선 시기를 알 수 없었다.

조사단 한성욱 원장은 "이번 조사 결과 6-7세기 무렵 백제시대에 제작했을 와당을 비롯한 백제시대 기와를 다수 수습했다"면서 "당시 건축 사정을 고려할 때 와당을 쓴 건물은 왕궁을 제외하고는 사찰밖에 생각할 수 없으므로 이곳에 백제시대 사찰이 있었다는 적극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백제는 불교국가로 알려졌지만 막상 옛 도읍인 공주나 부여, 제2의 수도로 평가되는 익산 등지의 중앙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그 시대 사찰이 거의 보고된 바 없다. 더구나 전남 지역에서는 백제사찰은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빠르면 6세기로 올라가는 백제시대 사찰이 강진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월남사터 발굴은 백제 불교사는 물론이고 6세기 무렵 지금의 전남 일대에 대한 지배 방식도 엿볼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높이 23㎝에 이르는 초대형 고려시대 금동 풍탁(風鐸·풍경), 돌로 만든 차(茶) 맷돌, 다기(茶器) 물이나 발우를 씻은 물을 버리는 아귀구 혹은 아귀발우라고 일컫는 고려시대 유적도 발견됐다.

석탑이나 건물의 처마 끝에 매달아 사용한 풍탁 중에서 높이 20㎝ 이상 되는 대형은 익산 미륵사터와 경주 감은사·황룡사터·안압지 출토품 등이 있지만 출토 사례가 극히 드물다. 나아가 고려시대 풍탁으로 이만한 크기의 유물은 거창 천덕사 터와 단양 일명사 터에서 각각 1점씩 출토됐을 뿐이다.

또한 이번 발굴조사에서 나온 차 맷돌은 당시 사찰에서 차를 직접 만들어 마셨음을 알려주는 증거로 풀이된다. 이런 차 도구가 출토된 사찰 터로는 강화 선원사뿐이다.

이와 더불어 청자의자와 화분, 향로, 의자, 약봉(藥棒), 도판(陶板) 등 고려시대 다양한 도자기 유물도 수습됐다.

이들 청자류 중에는 기사(己巳·1329년)라는 연대를 적은 대접 조각도 포함됐다.

또한 건물 벽면을 장식한 건축자재인 도판은 이제까지 국내 모든 유적에서 출토된 수량보다 많은 양이 출토돼 당시 월남사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방증하는 자료라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한성욱 원장은 "이번 월남사터 고려시대 기와는 13세기 삼별초가 근거지로 활용한 진도 용장성 출토 기와들과 문양이 비슷해 월남사가 13세기에 중창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월남사 터에는 후백제 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현재 삼층석탑과 진각국사 혜심의 비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