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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낳은 며느리에 논, 과거급제 아들에 노비 선물" (중앙일보 2012.12.17 16:08)

"아들 낳은 며느리에 논, 과거급제 아들에 노비 선물"

한중연 '해주정씨를 통해 본 조선시대 사대부가 존재양상' 학술회의

 

조선 중기의 문신 정효준(1577-1665)은 1635년 며느리가 손자를 낳자 한양 마장리에 있는 논을 며느리에게 선물로 줬다.

또 큰아들 정식(1615-1662)이 1650년 문과에 급제하자 노비 15명을 큰아들에게 줬다.

1657년에는 손자인 정중휘(1631-?)가 과거에 급제한 것을 기념해 축하 잔치를 열었다. 다섯 명의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과거에 합격하자 정효준은 기쁜 마음에 영의정 등 조정의 중신들을 잔치에 초청했으며 이들을 증인으로 세워 노비와 토지 등 손자에게 물려주는 재산 내역을 기록한 분재기(分財記·재산상속문서)를 작성했다.

정수환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선임연구원은 "17세기 해주 정씨는 정효준 대에 이르러 과거를 통한 관료를 배출하게 되면서 크게 번성했다"면서 정중휘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자녀가 재산을 나눈 분재기에 따르면 당시 재산이 노비는 217명, 토지는 70두락(마지기)이 넘었다고 소개했다.

정효준의 가문인 해주 정씨는 조선 시대 대표적인 명문가로 손꼽힌다. 문종의 딸이자 '비운의 왕' 단종의 누나인 경혜공주(敬惠公主·1436-1473)의 시댁이기도 하다.

한중연은 18일 경혜공주의 시댁인 '해주 정씨를 통해 본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존재양상'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해주 정씨 가문의 기틀을 다진 인물은 정역(?-1425)이었다.

정역은 태종 이방원의 등극을 도와 공신이 됐으며 그의 딸이 태종의 둘째 아들 효녕대군과 혼인하면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손자인 정종은 경혜공주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정종이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다 능지처사되면서 가문이 위기를 맞지만, 정종의 아들인 정미수(1455-1512)가 중종반정에서 공을 세우면서 예전의 영광을 되찾게 된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해주 정씨 가문의 고문서를 토대로 조선 시대 왕실과 사대부가의 관계 등을 살펴본다.

이성무 한중연 명예교수는 해주 정씨 가문의 인물과 가계를 역사적 배경과 함께 조명하고 강문식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학예연구사는 조선 초기 태종과 해주 정씨 가문의 관계, 왕실혼의 의미 등을 살펴본다.

박병련 한중연 교수는 중종반정의 의미와 정미수의 정치적 역할을 분석하고 한희숙 숙명여대 교수는 조선 중기 한시 대가이자 다도를 정립한 정희량(1469-?)의 사상을 조명한다.

한명기 명지대 교수는 임진왜란 당시 정문부의 의병활동을 살펴보고 박용만 한중연 선임연구원은 정석(1619-1677)의 시풍을 통해 조선후기의 학풍과 문학 경향을 추적했다.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도 눈길을 끈다. 경혜공주는 단종과 남편 정종을 차례로 잃은 뒤 관비가 됐다는 기록이 전해져왔다.

그러나 연구논문 '고문서를 통해 본 해주정씨 가문의 사회경제적 성격'을 발표하는 정수환 선임연구원은 "세조는 정종이 죽자 경혜공주를 궁으로 불러들였으며 당시 7세의 아들 정미수도 함께하도록 했다"면서 "정미수의 이름을 지은 것도 세조"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