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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알카에다의 새거점

입력 : 2009.04.03 17:22 / 수정 : 2009.04.05 11:24

예멘, 소말리아, 수단. 이들 3개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동부 사이의 아덴만과 홍해를 접하고 있는 이들 국가는 모두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전과 분쟁 등으로 치안 상태가 극히 불안하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우두머리 빈 라덴 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접경 지대에 숨어있는 빈 라덴과 알 카에다는 이들 3개국이 새로운 힘을 비축하고 조직을 부활시킬 수 있는 최적지라고 판단해 왔다.

소말리아 이슬람반군 알 샤바브 전사들이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예멘

빈 라덴 아버지의 고향… ‘제2의 아프간’으로 점찍은 곳
빈 라덴 비서 와하이시를 총사령관으로 세력 급속 확장

이들 3개국 중 빈 라덴과 알 카에다가 ‘제2의 아프간’으로 점찍은 국가는 바로 예멘이다. 2400㎞의 해안선을 갖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접경이 산악 지역인 예멘은 테러리스트들이 거점으로 삼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예멘은 빈 라덴의 부친 모하메드가 살았던 고향이다. 모하메드는 지난 3월 15일 한국인 관광객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한 고대 도시 시밤을 관할하고 있는 하드라마우트주(州) 출신이다. 빈 라덴의 부친을 비롯한 조상들은 하드라마우트주의 알 루바트라는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킨다 부족의 일원이다.

빈 라덴은 부친의 고향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의 넷째 부인도 예멘 출신이며 경호 책임자도 예멘 사람이다. 그가 1980년대 아프간에서 소련군과 싸울 때부터 함께 했던 무자헤딘 전사들 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예멘 출신이 가장 많았다. 그는 “예멘은 이슬람 국가 중 믿음과 전통을 가장 잘 지키고 있다”면서 “산악 지형에다, 국민들도 부족 단위로 살고 있고, 무장도 잘 갖추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예멘의 전체 인구 2200만명 가운데 3분의 1은 하루에 1달러 정도밖에 벌지 못하는 극빈층에 속한다. 특히 전체 인구의 60%가 만 24세 이하의 젊은층이지만 이들은 대부분 직업이 없다. 부족 간 분쟁이 만연해 성인 1인당 3정에 해당하는 1700만정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과 예멘 정부는 치안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등 국가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 중 상당수는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비즘’을 추종하고 있다.

살레 대통령과 빈 라덴은 과거부터 잘 알던 사이다. 북예멘 대통령을 거쳐 1990년 통일된 예멘의 대통령으로 31년째 집권 중인 살레는 1994년 통일에 반대한 남예멘의 공산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빈 라덴으로부터 무기와 자금 및 전사들을 지원받기도 했다. 알 카에다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7년 빈 라덴의 비서 출신인 나시르 알 와하이시(33)가 예멘 지부의 총지휘관에 취임한 이후부터이다.

'아라비아 반도 알 카에다'의 총사령관 알 와하이시가 서방에 대한 지하드를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


1990년대 후반 고향인 예멘을 떠나 아프간의 알 카에다에 합류했던 와하이시는 빈 라덴을 측근에서 모셨다. 2001년 말 미국의 아프간 공격을 피해 이란으로 피신했던 그는 이란 정부에 체포됐다가 2003년 예멘으로 압송됐다. 예멘 정치범 교도소에 수감됐던 그는 2006년 수감자 22명과 함께 탈출했다. 그는 조직원들이 그동안 예멘 정부와 거래해온 점을 강력히 비판하고 조직을 재정비했으며 이때부터 예멘에서는 테러 활동이 급격히 늘어났다. 2007년 7월 동부 마리브 지역 고대 사원을 여행하던 스페인 관광객 7명과 예멘인 운전사 2명이 자살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고, 지난해 1월 벨기에 관광객 2명이 총격으로 피살됐다. 지난해 9월 미국 대사관을 겨냥한 차량 폭탄 테러로 예멘인 경비원 등 16명이 사망했다. 특히 와하이시는 대규모 공격 대신 외국인 관광객이나 외국인 거주 지역에 대한 테러를 될수록 많이 감행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알 카에다는 지난 1월 사우디와 예멘 지부를 ‘아라비아 반도 알카에다(AQAP)’로 통합하고 와하이시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알 카에다가 와하이시에게 중책을 맡긴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10대 등 젊은층을 대거 포섭, 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예멘 젊은이들은 빈 라덴의 측근 인물이었던 와하이시에 대해 상당한 존경심을 보여왔다. 예멘 정부 관리들은 알 카에다가 최근 몇 달간 예멘에서 18세 이하 어린 대원들을 대거 포섭한 뒤 예멘 또는 주변국에서 테러 감행 훈련을 시켜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국 관광객 테러 사건의 자살 폭탄 테러범도 소말리아에서 훈련을 받은 18세 남성이었고, 3월 18일 한국 정부 조사팀 차량 테러 사건의 자폭 테러범도 18세였다. 둘째, 와하이시의 카리스마를 이용해 예멘을 테러의 구심점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현재 예멘에는 사우디 출신 알 카에다 조직원이 대거 들어와 있다. 그 이유는 사우디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위기에 몰린 조직원들이 예멘으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또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예멘 출신 조직원들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상태다. 알 카에다는 이들을 통솔하기 위해 와하이시를 앞세우고 관타나모 미군 테러용의자 수감 시설에서 석방된 사우디의 사이드 알리 알 쉬리를 AQAP의 제2인자로 삼았다.

소말리아
강경파 이슬람반군 알 샤바브 지원, 합병 선언 임박
대통령 축출 투쟁 등 혼란 부추겨 거점 삼으려는 속셈

해적의 소굴로 악명 높은 소말리아는 예멘에서 너비 32㎞의 바브엘 만데브 해협을 건너면 갈 수 있는 국가이다. 현재 예멘에는 소말리아 난민 수만 명이 살고 있으며 예멘 사람들도 소말리아를 오가면서 무기를 비롯해 각종 밀무역을 하고 있다. 소말리아에선 1991년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독재 정권이 붕괴된 이후 18년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빈 라덴은 일찌감치 내전 상태인 소말리아를 알 카에다의 또 다른 근거지로 생각해왔다. 미국과의 첫 번째 대결도 소말리아에서 벌어졌다. 바로 1993년 10월 발생한 블랙호크다운 사건이다.

당시 미국은 이슬람반군 지도자인 모하메드 아이디드를 체포하기 위해 블랙호크 헬기 등을 앞세우고 특수부대를 수도 모가디슈에 진입시켰다. 미군은 이슬람반군과 이틀간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헬기 2대가 격추되고 병사 18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미국은 이후 소말리아에서 군대를 철수했다. 당시 알 카에다는 미국의 소말리아 사태 개입을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만 일대에 이어 동아프리카까지 장악하려는 속셈이라고 판단했다. 알 카에다는 이슬람 반군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하고, 미군에 저항할 것을 부추겼다. 빈 라덴은 1998년 파키스탄의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소말리아에서 나의 부대가 미군 헬기 1대를 격추했다”고 말했다.

빈 라덴은 지난 3월 19일 음성 메시지를 통해 “소말리아의 이슬람 전사들은 샤리프 셰이크 아흐메드 소말리아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건파 이슬람반군 연합체 소말리아재해방동맹(ARLS)의 지도자인 아흐메드는 지난 1월 31일 유엔의 중재로 인접국 지부티에서 치러진 의회 투표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알 카에다는 소말리아의 강경파 이슬람 반군인 알 샤바브와 유대를 맺어왔다. 알 샤바브는 아흐메드 대통령을 미국의 앞잡이로 간주해왔다. 알 샤바브는 이슬람 반군들 중 가장 강력했던 이슬람법정연대의 한 분파이다. 이슬람법정연대는 2006년 당시 유엔이 지원해온 과도정부가 통치하던 모가디슈를 무력으로 장악하면서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당시 상황이 급박하게 변하자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인근의 에티오피아가 대규모 병력을 파견, 이슬람법정연대를 모가디슈에서 몰아냈다. 미국도 알 카에다와 연루된 이슬람 법정연대의 지도자들을 미사일 공격으로 제거했다. 소말리아는 2007년 3월 압둘라히 유수프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모가디슈에 입성하면서 국가 형태를 갖추게 됐으나 이슬람 반군들과의 싸움으로 혼란은 계속돼 왔다. 유수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온건파 이슬람 반군과의 협상을 통해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하고 자신은 스스로 사임했다. 에티오피아도 지난 1월 15일 소말리아에서 철군했다.

알 샤바브는 이미 새 과도정부에 대한 무력 투쟁을 선언해 놓은 상태이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동부 아프리카의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보고서에서 알 카에다가 소말리아 등 동부 아프리카 국가들로 손쉽게 들어가 거점을 확보하고 테러 활동을 계획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빈 라덴이 아흐메드 대통령의 축출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소말리아의 혼란을 극대화시켜 알 카에다의 활동을 유리하게 만들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알 샤바브는 최근 미국으로 이민간 소말리아 출신 청년들을 대거 조직으로 끌어들인 정황이 드러나 미국 정보당국이 수사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 바 있다.

(뉴스위크 1월 26일자) 미국은 알 샤바브가 자국을 대상으로 테러를 기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2005년 7월 영국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의 테러범 4명 중 2명은 소말리아 출신 이민자였다. 알 샤바브는 또 해적과 유대를 맺으면서 세를 넓히고 있다. 소말리아를 조직원을 훈련하고 충원할 수 있는 거점으로 보고 있는 알 카에다는 알 샤바브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미국 국방정보국의 마이클 메이플스 국장은 알 카에다와 알 샤바브가 조만간 서로를 동지로 인정하는 공식 합병 발표가 임박했다고 밝혔다.

수단
`빈 라덴이 1990년대 망명했다가 추방된 곳
‘후방기지’ 활용 위해 은밀히 조직 복원 나서


수단은 빈 라덴이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수단은 당시 사우디에서 추방됐던 빈 라덴에게 망명처를 제공했다. 빈 라덴을 초청했던 인물은 수단의 종교지도자 하산 알 투라비였다. 그는 오마르 알 바시르 현 대통령과 함께 1989년 6월 쿠데타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투라비는 수단을 이란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성직자가 통치하는 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수단의 호메이니’라는 말까지 들었던 투라비의 조카딸은 빈 라덴의 셋째 부인이다. 투라비의 비호 아래 빈 라덴은 수단에 알 카에다 훈련장을 만들고 각국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모집했다. 투라비와 빈 라덴의 유대 관계가 돈독해지면서 자신의 권력 유지에 위협을 느꼈던 바시르는 투라비를 투옥하고 빈 라덴에게 수단을 떠나줄 것을 요구했다. 빈 라덴은 1996년 5월 아프간으로 망명했다. 올 77세인 투라비는 야당인 이슬람 인민의회당을 이끌고 있으며 바시르 대통령을 강력하게 비판한 죄목으로 수차례 투옥과 석방을 거듭해왔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 3월 4일 다르푸르 내전과 관련, 바시르 대통령을 민간인 학살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알 카에다의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지난 3월 25일 오디오 메시지를 통해 바시르는 미국 등 서방에 협조해 빈 라덴을 추방했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 받은 것은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와히리는 바시르가 서방에 대한 지하드(성전)를 선포하는 것만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수단 국민들에게 서방 십자군의 침공에 대비해 장기적인 게릴라전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밝혔다. 이런 발언으로 볼 때 알 카에다는 수단에서 은밀하게 과거 조직의 복원을 모색하면서 바시르 이후를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단은 알 카에다가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강화할 수 있는 ‘후방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