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능산리 7세기 木簡서 寶憙寺 존재 확인
서기 600년경 펴낸후 신라 -> 일본 건너간 듯
“고대 한국인 의식구조 엿볼 수 있게돼”
입력 : 2006.10.16 00:04 / 수정 : 2006.10.16 00:04
- 최연식/목포대 교수
- 혜균의 대승사론현의기(이하 사론현의) 필사본 발견은 한국의 사상사 연구 등에서 학술적으로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삼국시대 이전, 고대 한국인의 사고나 의식구조를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이전 책으로 편찬된 우리 문헌은 사실상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나 을지문덕의 시 등 삼국사기 등에 극히 제한적으로 전해지는 문서나 시, 그리고 광개토대왕비나 중원 고구려비, 무령왕릉 묘지석(무덤 안에 적어 넣은 글) 등 명문(銘文 돌 등에 새긴 글씨)이 전부다. 삼국이 각각 자신들의 역사를 편찬했지만, 이 책들은 현재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한국 저자 출판물’을 찾은 최연식 목포대 교수. 이번 발굴은 두 명의 외국인 교수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일본 고마자와(駒澤)대학 이토 다카토시(伊藤隆壽) 교수와 독일 보쿰대 요르그 플라센 교수다.
◆혜균은 중국인이 아니라, 백제인
1984년 서울대 인문대 수석합격생(국사학)으로, 한국 불교사를 전공한 최 교수는 2001년 가을 고마자와대학에서 박사후(後·포스트) 과정 중 불교학 전문가인 이토 교수를 만났다. 이토 교수는 최 교수에게 “70년대에 ‘사론현의’를 집중 검토했었는데, 중국이 아닌 한국의 문헌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 문헌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삼론학에 관해 별 지식이 없던 최 교수는 검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4년 6월 한국 종교 문헌에 관한 워크숍이 열린 독일 보쿰대에서 삼론학 전문가인 플라센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로부터 이토 교수가 한 얘기를 들은 플라센 교수는 뜻밖에도 “원효의 저술이 사론현의로부터 영향받은 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공동 연구가 시작됐다. 연구는 지난 7월까지 목포대와 보쿰대를 오가며 계속됐다. 최 교수는 찬자(纂者·저자)와 찬술(纂述)지역(발행지)을 집중 검토했고, 플라센 교수는 불교사적 의미를 분석해 이번에 논문을 발표하게 됐다.
◆집필장소는 백제땅
지난 2000년 4월 백제의 고도인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금동향로와 함께 목간 20여점이 출토되었다. 목간중에 ‘寶憙寺(보희사)’라는 절이름이 나온 바 있다. 최교수는 바로 이 자료를 주목했다. ‘사론현의’ 를 읽어가다 깜짝 놀랐다. 저서 내용 중 ‘현재 이곳의 보희연사(寶憙淵師)…’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현재 이곳’이란 문헌 편찬 지역을 의미하고, 보희연사는 보희사(寺)의 연사 스님을 뜻한다. “현재 이곳에서 질문하는 문제는 이미 중국에서는 해결됐다”라는 문맥이므로 ‘이곳’은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다. 목간에서 확인되었듯 ‘현재 이곳’은 바로 보희사가 있는 백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 ◆왜 일본에서 발견되었나
이 책 필사본에는 ‘현경(顯慶) 3년(658년) 무오년(戊午年) 12월 6일 흥륜사(興輪寺) 학문승(學問僧) 법안(法安)이 대황제(大黃帝)와 내전(內殿)을 위하여 공경히 이 의장(義章)을 바친다’라고 돼 있다. 흥륜사는 신라의 절이고, 학문승은 ‘일본에서 신라로 유학 온 승려’를 말한다. 대황제는 일본의 제명(齊明, 재위 655~661)왕이다.
즉 이 책은 백제에서 펴낸 것인데, 얼마 되지 않아 신라로 전해졌고, 곧 일본으로도 건너간 것이다. 하지만 그 뒤 백제가 멸망하면서 원 발행지였던 우리나라에서는 잊혀졌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필사본으로 전승돼 삼론종이 고대 불교의 중심이 됐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일본 나라시대에 이 문헌의 필사 기록들이 나타나고, 일본 불전(佛典) 목록에도 삼론학의 주요 문헌으로 수록돼 있다”며 “현재 원본은 없어지고 필사본만 교토대학이 7권, 개인이 2권을 보관하고 있으며 3권은 실전(失傳)됐다”고 말했다.
◆왜 서기 600년경의 저술인가
혜균은 진(陳)나라 유학 시절 중국 승려 길장(吉藏·549~623)과 함께 수학했다. ‘삼론종 중흥의 시조’라 불리는 길장의 ‘대승현론(大乘玄論)’이 내용상 혜균의 ‘사론현의’를 의식하며 지어졌다고 분석되고 있다. 길장의 책내용에 서술된 개념중 이미 혜균이 ‘사론현의’에서 서술된 개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당초 길장의 저술로 알려졌다가 혜균의 저작임이 밝혀진 것도 두 권 있다. ‘사론현의’에는 길장이 장안(長安)으로 간 599년이 기록돼 있고, 일본 승려가 일본 왕에게 필사본을 바친 해는 658년이다. 따라서 저술 시기는 599년과 658년 사이가 된다. 여기에 또 길장의 ‘이체의(二諦義)’가 ‘사론현의’보다 발전된 형태여서 ‘사론현의’가 길장이 입적한 623년 이전의 저작이란 견해도 있어 왔다.
최 교수는 “문헌의 내용과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길장이 장안으로 간 직후에 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600년경’이란 추정이 나왔다.
키워드 - 삼론종은
삼론종은 인도대승불교에서 시작되어 중국에서 크게 번성한 종파. ‘세속과 진리중 진짜 진리는 어느 한쪽에도 치우지지 않는다(非有非無)’라는 입장이다. 중국에서는 인도승려 구마라습(343~413)이 3개의 주요경전들을 번역한 이후 제자들에 의해 크게 번성했고, 선종(禪宗)이 들어오면서 점점 쇠퇴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원효가 삼론의 핵심을 뽑아 저술했고, 백제 혜현(慧顯)이 삼론을 강설했고, 고구려 혜관(慧灌)이 일본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입력 : 2006.10.16 00:40 / 수정 : 2006.10.16 00:40
- 통일신라시대 원효(元曉)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보다 앞서 백제 말기에 펴낸 우리 문헌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문헌의 역사가 삼국시대로 올라가는 것이다. 현재 이 문헌의 원본은 전하지 않으나 필사본이 일본에 있다.
목포대 최연식(崔鉛植·역사문화학부) 교수는 15일 “일본 교토대 도서관에 보관된 고대 불교 저술인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사진)’의 저자 혜균(慧均)이 백제 승려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불교 삼론학(三論學)의 개론서(총 12권)인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알려진 7세기 중후반 통일신라시대 원측(圓測)과 원효(元曉)의 저술보다 앞선 것이나, 저자 혜균은 그동안 일본에서 중국의 고대 불교학자로 막연히 추정돼 왔다.
최 교수는 “독일 보쿰대 한국학과의 불교 연구자인 플라센 교수와 공동 연구해 혜균이 백제 승려임을 밝혀냈다”면서 “여러 기록들을 종합할 때 대승사론현의기는 원효의 저술보다 60년 가량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혜균이 백제 승려라는 결정적 증거로 이 문헌에 나오는 절 이름 ‘寶憙寺(보희사)’가 2000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에 기록된 ‘寶憙寺’와 일치하는 점을 들었다.
최 교수는 저서 내용 중 ‘현재 이곳의 보희연사(寶憙淵師)…’라는 대목을 중시했다. ‘현재 이곳’이란 문헌 편찬 지역을 의미하고, 보희연사는 보희사(寺)의 연사 스님을 말한다. 문장 전체의 의미는 “현재 이곳에서 질문하는 문제는 이미 중국에서는 해결됐다”이므로 ‘이곳’은 중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간(木簡)에서 ‘寶憙寺’를 판독했기 때문에 ‘현재 이곳’이란 백제라는 것이다.
최 교수와 플라센 교수는 오는 20일 한국사연구회와 목포대 공동 주관의 학회인 ‘백제 승려 혜균과 대승사론현의기의 재발견’에서 이 같은 연구 성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동국대 불교학부 김성철(金星喆) 교수는 “최 교수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우리나라 최고의 문헌임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동국대 사학과 김상현(金相鉉) 교수도 “이 책의 저자 혜균이 백제 승려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백제의 불교는 물론 남중국과 동아시아 불교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여러모로 매우 중요한 연구 성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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