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3.07.17 05:31 / 수정 : 2003.07.17 05:31
- 지난 2000년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古墳群) 옆에서 출토된 목간(木簡)의 내용이 현전 최고(最古)의 백제 시가(詩歌)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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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 김영욱(金永旭·국어학) 교수는 16일 “현재 부여박물관에 소장 중인 목간(길이 12.7㎝)의 ‘숙세결업동생일처시비상문상배백래(宿世結業同生一處是非相問上拜白來)’라는 글은 사언사구(四言四句) 형식에 백제인이 이두(吏讀)로 기록한 최고의 시가”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을 오는 24~25일 일본 도야마(富山)대학에서 열리는 ‘한·일 한자 한문 수용에 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백제의 이두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이 시가를 ‘전생(前生)에서 맺은 인연으로/이 세상에 함께 났으니/시비(是非)를 가릴 양이면 서로에게 물어서/공경하고 절한 후에 사뢰러 오십시오’라고 해석했다. 서울대 이종묵(李鍾默·국문학) 교수는 “부부가 함께 부처님 앞에서 죽은 뒤 같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발원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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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은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나무 조각에 문자를 기록한 것. 현재 전하는 백제 시가는 백제 멸망 후 800여년 뒤 조선시대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한글로 기록된 ‘정읍사’(井邑詞)가 유일하다. 서울대 조동일(趙東一·국문학) 교수는 “우리나라 고대 시가들이 모두 후대 문헌을 통해 전하는데 이 시가는 목간에 기록된 당대의 노래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닌다”며 “현재 개정작업을 진행 중인 ‘한국문학통사’에 이 작품을 포함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영욱 교수는 또 ‘숙세가(宿世歌)’라고 이름붙인 이 시가가 한국어와 한문의 어순(語順)이 섞여 있는 ‘백제 이두’로 기록됐으며, 이로써 백제는 이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학계 정설의 잘못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입력 : 2003.07.17 18:31 / 수정 : 2003.07.18 05:04
- 1500년 전 부여 하늘에 울려퍼졌던 백제인들의 노래가 그들이 직접 쓴 글씨에 의해 되살아났다. 길이 12㎝의 나무조각 (목간·木簡)위에 쓰여진 16자의 흐릿한 글자들이 판독 결과 삼국시대인에 의해 당대에 쓰여진 현전 유일의 시가(詩歌)임이 밝혀졌다.
한국문학사를 새로 쓰게 만든 백제 시가 ‘숙세가(宿世歌)’<본보 7월 17일자 1면>는 땅 위로 드러난지 2년 여가 지나 제 위상을 찾게 됐다.
국립부여박물관이 백제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 옆의 절터를 발굴한 것은 지난 2000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993년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 95년 창왕명(昌王銘) 석조사리감(石造舍利龕)(국보 제288호)이 잇따라 출토됐던 바로 그곳에서 다시 목간(木簡) 23점과 나무 그릇, 나무 빗, 나무 젓가락 등이 발굴됐다. 목간에는 대부분 사찰 이름, 관직명, 인명, 행정구역명, 삼림과 전답 관리에 관련된 문구가 기록돼 있었는데 국어학자 김영욱(金永旭) 교수(서울시립대)가 그 중 하나에서 이두로 기록된 백제시가를 극적으로 찾아낸 것이다.
삼국시대인 직접 남긴 유일한 노래
- 지난 2000년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古墳群) 옆의 능사(陵寺·왕릉에 딸린 사찰) 유적지에서 7세기 중엽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목간(木簡)이 발굴됐다. 현재 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 이들 목간은 백제사 연구에 새로운 자료로 평가되는데 그 중에 16자의 글씨가 새겨진 것이 하나 있다. 목간의 원문은 ‘숙세결업동생일처시(宿世結業同生一處是)’ ‘비행상문상배백래(非相問上拜白來)’의 2행으로 되어 있다.
이 목간은 역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그 내용을 문학사적 관점에서 접근한 학자는 없었다. 그런데 서울시립대 김영욱(金永旭) 교수가, 이 목간에 씌여진 글자를 이른 시기의 백제 시가(詩歌)로 해석하였다. 필자는 얼마 전 소장·중견 한국학 연구자 모임인 ‘문헌과해석’의 세미나에서 김 교수가 이 원고를 사전 발표하는 자리를 통해 그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필자를 비롯한 국문학 전공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는 김 교수가 ‘숙세가(宿世歌)’라고 이름붙인 이 백제 노래가 한국문학사에서 특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간 한국문학사에서 백제의 노래로는 정읍사(井邑詞) 한 편이, 그것도 조선시대의 문헌(악학궤범)에 전하고 있을 뿐이다. 또 가야의 노래인 구지가(龜旨歌), 고구려의 노래인 황조가(黃鳥歌) 등도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전한다. 삼국시대의 노래가 당시의 모습으로 전하는 것으로는 이 백제 목간이 유일하다. 김 교수의 논문을 검토한 서울대 조동일(趙東一) 교수가 “현재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인 ‘한국문학통사’에 이 작품을 포함시키겠다”고 말한 것은 이 백제 시가가 지니는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또 이 백제 시가는 사언사구(四言四句)로 되어 있는데, 구지가·황조가·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인삼찬(人蔘讚) 등 현재 전해지는 삼국시대의 노래가 대부분 사언사구로 되어 있다. 또 향가 중에도 제작 시기가 빠른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은 이와 유사한 사구(四句)체이다. 이런 점에서도 이번 백제시가의 발견은 삼국시대의 노래가 사언사구 형식을 선호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그러나 이 백제 시가의 내용과 성격이 분명히 밝혀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욱 교수는 “전생(前生)에서 맺은 인연으로/이 세상에 함께 났으니 /시비(是非)를 가릴 양이면 서로에게 물어서/공경(恭敬)하고 절한 후에 사뢰러 오십시오”라 고 ‘사랑을 다짐하는 노래’로 풀이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견해를 달리하여 “전생에 맺은 업으로/같은 곳에 태어나게 해 주소서/잘잘못을 따지려 하신다면/위로 절하고 사뢰오리다”라고 ‘발원문(發願文)’으로 풀이하고 싶다.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질 때 이 백제 시가는 한국문학사에서 더욱 높은 위상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종묵 서울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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