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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신아시아구상

아시아 국가들 수출위주 정책 바꿔야` (조선일보 2009.06.05)

"글로벌 금융체계 회복에 몇년 걸려 아시아 국가들 수출위주 정책 바꿔야"

입력 : 2009.06.05 02:35 / 수정 : 2009.06.05 10:25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미국인들이 소비를 줄이는 만큼, 아시아 각국도 수출 위주인 경제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인터뷰
싱가포르에도 한류(韓流) 열기 '한국문화센터' 세우기로
불황땐 노사(勞使) 서로 양보를

"세계 경기침체로 싱가포르 경제도 타격을 받았지만,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 '금융센터'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준비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4일 본지 김창기(金昌基) 논설위원과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경제가 회복해도 미국인들의 소비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지향적) 경제구조도 바뀌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싱가포르에 부는 한류(韓流)를 소개하며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에게 '한국문화센터' 건립을 제안해 동의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요지.

―경기침체로 무역·금융 허브인 싱가포르가 특히 타격을 받았는데.

"올해 마이너스 6~9%의 경제성장이 예상된다. 독립(1963년) 이래 최악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한다. 우리의 무역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3.5배에 달한다. 내년에도 마이너스 8~9% 성장을 전망한다. 매우 어려울 것이다. 미국 경제가 빨리 회복해야 한다."

―언제쯤 세계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보나.

"경기회복 '증후'(green shooters)가 보이더라도 기본적으로 금융 체계가 회복하려면 몇 년은 걸릴 것이다. 독성(toxic) 자산이 사라져야 은행들의 자본확충도 잘 이뤄진다. 현재 미국인들이 덜 소비하고 더 저축하는 성향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미국 같은 거대 소비국을 대체할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경제 회복을 위해 무작정 새 차 사고 LCD TV 사라고 돈을 뿌릴 수는 없다. 아시아의 (수출 위주) 경제 구조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금융 위기 이후 동남아시아의 '금융 파워하우스'를 만들겠다는 싱가포르의 전략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금융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축소되고 있고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 '금융 센터'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개방돼 있고 영어로 말하고 법체제도 잘 정비돼 있고, 통신망도 잘 구축돼 있다. 40억~50억달러를 투입하는 복합리조트(Integrated Resort) 개발도 시작했다. 이는 쇼핑과 식당, 회의, 유흥, 카지노 등을 복합한 것이다. 기업인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중국의 증대한 영향력은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세안(ASEAN) 국가들엔 '도전'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의 대책은 무엇인가.

"중국은 미국, 일본만큼이나 아시아 모든 국가의 주요 경제 파트너다. 아시아의 균형이 바뀌었고 경제의 전체 그림도 변했다. 중국은 그러나 더욱 평화적으로 변모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미국과 이 지역의 안보 문제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면서도 동시에 중국과도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왔다. 아마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두 나라를 모두 친구로 지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일 것이다."

―싱가포르와 한국의 지정학적 입장이 서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은 뭔가.

"두 나라는 모두 주변이 강대국들에 싸여 있다. 한국의 경우, 북한이 한반도에 긴장 관계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목표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다(condemned). 우리는 외교·6자회담을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평화적인 해결 방법을 희망한다."

―싱가포르의 한류(韓流) 열기는 어떠한가.

"많은 사람이 한국 음식, 영화, 드라마, 가요를 즐긴다. 한국이 이 지역에서 친구를 만들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에게 싱가포르에 '한국문화센터'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이 대통령도 동의했다."

―2006년 한국·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두 나라 사이의 인적·경제 교류는 어떠한가.

"지난 2년간 무역은 15~20% 증가했고, 계속 증가할 것이다. 한국인의 싱가포르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삼성은 독일 실트로닉과 합작해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고 쌍용건설은 복합리조트 건설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있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꾸준히 늘어 1만5000명 정도가 있다. 많은 한국 어머니들이 싱가포르 학교에서 자녀를 공부시키려고 온다. 우리나라에선 영어와 중국어를 다 배울 수 있다. 한국인 학생 수도 1500명 정도 된다."

―총리께서 기업인이라면 투자처로서의 한국의 장단점을 무엇이라고 보나.

"1997년 이후 한국의 금융·투자환경은 훨씬 개방적으로 변했다. GIC(싱가포르투자청) 같은 대형투자기관들도 서울 등지의 건물에 투자하고 있다. 이틀 전에 한국 기업인과 얘기를 했는데 어떤 노조단체는 매우 강성(强性)이어서 기업과의 협력을 어렵게 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노조와 건설적이고 보다 협력적이고 신뢰가 있는 관계를 맺길 원한다. 싱가포르에서 노조단체의 장(長)은 정부의 장관급이다. 그는 국가의 경제 개발과 노동자들의 직업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는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정부·기업·노조가 서로 협력해서 각자의 이익을 축소하는 방안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