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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이란, 강경파 대통령 선택 이유는 (조선일보 2009.06.13)

이란, 강경파 대통령 선택 이유는

천만 이란 국민은 결국 대통령선거에서 개혁파 대신 강경 보수파의 손을 들어줬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은 12일 치러진 대선에서 개혁파 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재선 고지를 밟았다.

두 후보가 박빙의 접전을 펼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승부는 다소 싱겁게 끝났다.

지난 4년간 아마디네자드 집권기에 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난이 심화돼 그의 인기가 크게 떨어져 있던 사실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마디네자드 승리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선거운동기간 막판 무사비의 돌풍이 오히려 보수파 세력의 표를 결집시켜 아마디네자드의 당선을 도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 들어 테헤란의 거리는 무사비 지지자 수만여명의 인파로 뒤덮이는 사례가 잇따랐다. 무사비캠프의 상징색인 초록색 옷을 입은 이들은 축제와 같은 분위기의 선거운동으로 이란 대선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미국 및 서방과 관계 개선을 공약한 무사비를 지지하는 인파가 도시를 뒤덮는 모습이나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함께 어울려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은 보수파에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대선을 이틀 앞둔 10일 이란의 정예군 혁명수비대는 무사비 진영의 선거운동을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벨벳 혁명’에 비유하며 “벨벳 혁명 기도에 대해서는 싹을 잘라버릴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결국 이란에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1천500만명의 표에 막판 부동층의 표가 더해지면서 승부는 쉽게 판가름났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와 함께 최근 이란의 경제난이 심화됐긴 했지만 전체 유권자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서민층과 저소득층은 보조금 정책 등 서민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아마디네자드에게 더 많은 신뢰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퇴역군인인 무하마드 자데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아마디네자드는 전몰자나 부상자 가족, 빈곤층을 도왔다”며 “내 연금은 그의 집권 후 배가 올라 월 500달러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서민층 사이에서 아마디네자드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총리직을 역임한 무사비는 경제위기 관리능력을 인정받는 분위기였지만 이런 강점이 표로 이어지진 않았다.

아무래도 1989년 총리직을 마지막으로 20년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던 점은 유권자들이 그를 새 대통령으로 선택하는데 주저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미국 및 서방과의 대결 구도의 외교정책에 지친 이란 국민이 이번 대선에서 개혁파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는 서방의 기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는 이란 대다수 국민이 현재 경제난의 이유를 정권의 잘못으로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란인은 이슬람혁명 이후 30년간 갈등관계에 있는 미국의 횡포 때문에 석유 매장량 세계 4위, 가스 매장량 2위의 자원대국인 이란이 여전히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이란 유권자들은 반미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무사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에 기죽지 않고 거침없이 독설을 내뿜는 아마디네자드가 대 서방관계 개선을 공약한 무사비보다 유권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알리-아크바르 자반페크르는 AFP통신을 통해 “아마디네자드의 당선은 현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강한 지지를 반증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재선은 우리의 적들에게 ’노(No)’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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