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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예멘 피살 엄씨 블로그서 `나는 순례자`(연합뉴스 2009.06.16)

예멘 피살 엄씨 블로그서 "나는 순례자"
"굳게 잠긴 현관문"
(수원=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지난 12일 예멘 북부 사다에서 피랍된 한국인 엄모(34.여)씨가 피살됐다는 보도가 나온 1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엄씨 집 현관문이 굳게 잠겨 있다. 집 안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엄씨 아버지와 여동생은 이날 불을 모두 끈 채 문을 굳게 잠근채 외부 접촉을 피했다. 2009.6.16 <<전국부기사참조>> dkkim@yna.co.kr

예멘에서 테러단체에 납치된 뒤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인 엄모(34.여.수원시 세류동)씨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스스로를 '순례자(Pilgrim)이자 움직이는 영혼(Travelling Soul)'이라고 했다.

국제의료봉사단체 '월드와이드 서비스' 소속으로 예멘에서 봉사활동을 해 온 엄씨는 지난 1월 23일 영문으로 올린 글에서 "2008년 10월 예멘으로 와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00이라는 귀여운 어린이를 즐겁게 가르치고 있고 한집에서 사는 네덜란드인과도 잘 지낸다"고 근황을 알렸다.

그러면서 이 어린이의 어깨에 팔을 얹고 함께 찍은 사진과 지프 지붕 위에 앉아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한 사진을 곁들여 올려놓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팀 동료들이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 준 일을 소개하며 "우리 팀원들은 한국인, 네덜란드인, 독일인으로 강한 유대를 갖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병원에서 일하면서 현지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적었다.

엄씨는 예멘인들과의 의사소통에 필수적인 아랍어를 배우고 있다면서 8월 말에 귀국한 뒤 올 연말에 터키로 갈 계획이라고 미래의 구상을 밝혔다.

현지의 치안에 불안감을 나타낸 대목도 눈에 띄었다. 엄씨는 "한 달에 한두 건씩 외국인 납치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는 종종 수도 사나를 여행해야 하며 그때마다 하나님의 가호를 구한다"고 했다.

아버지(63)와 여동생(31)을 언급하며 건강을 기원했고 특히 "아버지는 '우리의 구세주'를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5년 11월 개설된 엄씨의 블로그에는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2명이 납치됐을 당시 영국 BBC방송의 관련 기사와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전문 등 271건의 글이 올라 있다.

대부분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목표, 현재의 생활과 앞으로의 구상 등을 담고 있으며, 주로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찍은 사진 100여장과 자신의 거처를 소개하는 짤막한 영상 5건도 있었다.

주인을 잃은 엄씨의 블로그에는 16일 그의 명복을 비는 댓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엄씨는 피랍 직전까지 예멘 사다에 거주하면서 한국인 의사들과 함께 현지에서 병원 일을 해왔으며, 의사들의 자녀 교육도 맡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엄씨가 소속된 월드와이드 서비스는 1989년 네덜란드에 비정부기구(NGO)로 등록됐고 엄씨는 지난해 8월 예멘에 도착한 뒤 이 기구에 가입해 단원으로 활동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