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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튀는 문제해결 방안/꼭 필요한 생활의 지혜

`B보이 출신`이 `화난 젊은이`들에게 말하다 (조선일보 2011.11.15 09:05)

'B보이 출신'이 '화난 젊은이'들에게 말하다

중1 때 아버지 여의고 3년간 'B보이' 생활
춤 실력 늘수록 성적 뒷걸음
고2 말 나는 결심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
삭발 1년 후 대학 합격 그 1년 후엔 최연소 회계사
'화난 젊은이'들 심정 이해해
아프니까 청춘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게 우리 삶

"지미 포터는 사탕 파는 시장 노점상(露店商)이다. 대학 졸업 후 번듯한 직장은커녕 하류층으로 몰린 처지에 좌절한 청춘이다. 그에게 사회는 부조리(不條理)다. 악덕감시관은 상인을 쥐어짠다. 상인들은 인도인을 차별하며 화를 푼다.

그의 분노는 고스란히 아내 앨리슨에게 향한다. 군상(群像)의 악다구니가 사라진 밤, 트럼펫을 부는 게 그의 유일한 낙(樂)이다. 그렇다고 그게 구원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순종하는 처(妻)에 대한 지미의 학대는 더 심해져만 간다…."

영국 극작가 존 오스본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우울하다. 1956년 이 희곡이 발표된 뒤 그를 비롯한 일군(一群)의 작가들을 '앵그리 영맨(Angry Young Men)'이라 불렀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 후 기성 권위에 도전하는 영국 젊은이들을 글감으로 삼았다.

1929년 태어난 오스본의 삶은 희곡의 주인공 지미와 비슷했다. 상업미술가인 아버지가 요절하자 술집에서 일하던 어머니가 그를 길렀다. 공부는 16세 때, 배우의 꿈은 지방극단을 돌다가 끝났다. '앵그리 영맨'은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엔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패배한 세대)'이 등장했다. 그들 아버지뻘로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잃어버린 세대)'이 있었다. 최근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점령하라(Occupy)! 세대'의 뿌리는 이렇게 깊다.

중1 때 아버지를 여읜 서준혁(26)씨의 사정도 오스본이나 지미와 다를 바 없었다. 가방 만드는 회사 사장이었던 아버지는 IMF 외환위기 때 다 말아먹었다. 그 후 취업했지만 남긴 재산보다 빚이 더 많았다. 네 살 위인 형은 가사(家事)에 짐이었다. 어머니가 부동산중개사·미용사 자격증을 따며 안간힘을 썼지만 돈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장롱 면허'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비보이(B-boy)'가 되는 것뿐이었다. 중2 때 그는 그 길로 들어섰다.

서씨는 초등학교 때 재미삼아 시작한 춤에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춤 실력이 늘수록 중상위권이던 학교 성적은 뒷걸음질쳤다. 그는 "반(班)에서 저보다 공부 못한 아이들이 한자릿수였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말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중2 겨울방학부터 그는 병역기피 의혹으로 더 유명해진
MC몽(본명 신동현)이 속한 '피플크루'의 백댄싱팀이 됐다. 최연소였다. 매일 아침 8시 서울 대방동 연습실에 가서 청소를 한 뒤 밤 9시까지 땀을 흘렸다. 방송 출연을 앞두곤 밤도 새웠다. 끼니는 보통 김밥·라면이었다. 방송에 나가면 2만원씩의 수당을 받았다. 남는 시간엔 오토바이를 끌고 피자 배달도 했다. 만일 고등학교 2학년 때 새 삶을 결심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도 마룻바닥에 머리를 비벼대고 있었을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어느 날 갑자기 '이대로 살면 어떻게 될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론은 '아니다'였어요. 다시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제 상황이 한심했어요. 수학은 인수분해조차 풀지 못할 정도였어요. 영어는 더 엉망이었고요."

고2 겨울방학 때 그는 머리를 빡빡 밀었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노량진 학원에서 단과(單科)반을 들었고, 새벽 3시까지 닥치는 대로 문제집을 풀었다. 미친 듯 공부의 숲을 헤매자 성적이 올랐다. 그는 숭실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다. 중학 시절엔 춤추고 고교 때는 학교 응원단장이던 그가 지금도 못 잊는 선생님이 두 분 있다. 월촌중 3학년 때 담임이었던 정혜원 교사는 방황하는 소년의 몇 안 되는 말 상대였다. 양정고 3학년 때 담임이었던 백승문 선생님은 그가 반장에 나서겠다고 하자 "믿겠다. 잘해보라"고 격려했다. '공부도 못하는 게'라는 냉소를 예상했던 그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반장이 된 그가 얻은 것은 감투가 아니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었다.

서준혁은 대학생 때도 머리를 밀고 다녔다. 삭발이 그에겐 제의(祭儀)였다. 이번엔 공인회계사가 목표였다. 2학년 때 그는 1004명 중 최연소로 합격한 뒤 운전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대학 졸업 때 그는 '인문사회계 수석' 타이틀을 추가했다.

스물여섯 서준혁에게선 사회나 어른에 대한 불만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애들은 입사원서를 100장 넘게 써도 안 되고 누구는 대여섯 군데씩 합격합니다. 번듯한 직장을 잡으려는 욕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그게 결국 노력의 문제거든요."

요즘 우리 사회를 강타하는 '화난 젊은이'들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만으로 요약할 순 없을 것이다. 구조적 결함도 있고, 어른들이 제대로 못 보살핀 잘못도 있고, 부자(富者) 정권의 한심한 작태가 인내하던 그들을 폭발시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트럼펫이 지미의 삶을 못 바꾸듯 삼류 떨거지들의 독설(毒舌) 향연이 화난 젊은이들의 위안일 순 없겠다. 소설가 겸 언론인 민태원이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다'고 예찬했지만 말이다. 그것은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가
최무룡·박노식 주연의 동명(同名) 짝퉁영화와 구별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누구 말마따나 아프니까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