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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자원전쟁

<르포> `백색황금` 잠자는 소금호수를 가다 (연합뉴스 2010.11.15 18:17)

<르포> '백색황금' 잠자는 소금호수를 가다

연합뉴스 | 입력 2010.11.15 18:17 |


칠레 아타카마 염호 리튬 개발 손길 기다려

(안토파가스타 < 칠레 > )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서쪽으로는 태평양을 두고 1천㎞가량 길게 뻗어있는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이곳은 칠레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구리의 주산지다. 이곳의 대표 광물은 구리만이 아니었다.

19세기 화학원료로 각광받던 초석 산지였던 이곳을 둘러싸고 1879년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가 전쟁까지 불사했고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가 당초 볼리비아의 영토였던 아타카마 사막의 일부 지역을 빼앗아오면서 초석 생산을 독점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또하나의 광물을 두고 세계 여러 나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한창이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전기자동차의 등에 쓰이는 2차전지의 주원료로 '백색 황금'으로 불리는 리튬을 둘러싼 전쟁이다.

아타카마 사막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관광도시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에서 비포장길을 세 시간쯤 차로 달리면 리튬이 잠자는 아타카마 염호(鹽湖)가 나온다.

말이 호수지, 물 한 방울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땅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따금 길 옆에 서 있는 '접근 금지' 표지판 외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찾을 수 없다.

이 황량한 곳이 현재 전 세계 리튬 소비량의 45%를 책임진 세계 최대의 리튬 생산지역이다. 현재 칠레의 SQM, SCL 등 두 업체가 이곳에서 2008년 기준 각각 연 2만-3만t의 리튬을 생산해내고 있다.

일찌감치 리튬의 가능성에 주목한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눈독을 들이던 이곳에 한국 기업이 발을 들였다.

삼성물산과 한국광물자원공사로 이뤄진 한국 컨소시엄이 칠레 에라수리스 그룹의 자회사인 코피아포사와 손을 잡고 엔엑스 우노 리튬 프로젝트의 지분 30%를 인수한 것.

지분 인수 계약을 하루 앞둔 14일(현지시간) 김신종 광물공사 사장, 지성하 삼성물산 사장, 에라수리스 그룹의 프란시스코 에라수리스 회장 등 관계자들과 함께 찾은 아타카마 염호는 치열한 자원전쟁의 중심지답지 않게 고요한 모습이었다.

흙으로 덮인 바닥은 언뜻 바짝 마른 갯벌처럼 보였지만 바닥의 흙을 조금 걷어내 보니 하얀 소금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탐사 과정에서 꽂은 시추공을 들여다보자 지면 몇 미터 아래로 찰랑거리는 염수가 보였다.

리튬 품위(광석 중에 함유된 특정 원소의 비율)가 0.15%로, 볼리비아(0.035%)와
아르헨티나(0.062%)의 염수호보다 훨씬 리튬 함량이 많은 '알짜' 염수다.

이 염수를 끌어올린 후 다섯 단계의 자연증발 과정을 거치면 리튬 6.26%의 고농축 염수가 만들어지고 이를 생산공장에서 가공하면 바로 2차전지에 쓰이는 탄산리튬이 나온다.

에라수리스 회장은 내년께 염수 추출과 증발, 정제 설비를 시공할 부지를 직접 보여주며 "기후 조건과 토질이 다른 광구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아타카마 염호는 세계 최대의 리튬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과 비교해 강수량은 연 10㎜로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증발량은 연 3천㎜로 두 배 수준이라 리튬 추출에 유리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해발 고도는 2천300m가량으로 다른 염수호보다 고도가 낮으면서 해발 5천m 이상의 화산들로 둘러싸인 분지라는 점도 지형적인 이점이다.

2007년부터 이곳 리튬개발 사업 참여를 추진해온 삼성물산의 지성하 사장은 "볼리비아나 아르헨티나의 경우 증발과정에서 화학약품 처리를 해야하는데 이곳은 자연증발이 가능해 비용상의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엔엑스 우노 광구에서는 이르면 2014년부터 연 2만t가량의 탄산리튬이 생산되며 판매권은 전량 우리 측이 갖게 된다. 2만t이면 지난해 기준 국내 2차전지 생산업체들의 리튬 수요량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광물공사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이 지난 6월 지분을 인수한 아르헨티나 살데비다 리튬 광구의 경우 아직 탐사단계이고 볼리비아는 여전히 연구 단계라는 점에서 칠레에서 가장 먼저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세계 2차전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이르면 3년 안에 지구 반대편의 고요한 소금 호수에서 안정적 원료 공급처까지 확보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위를 굳히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