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관계/국제분야

‘아픈데 찌르는’ 질문‘유머로 피해간’ 답변 (한겨레 2010.01.20)

‘아픈데 찌르는’ 질문‘유머로 피해간’ 답변
“인권 왜 대답않나”→후주석 “오바마에 물은줄 알았다”
“중국 성장 싫은가”→오바마 “물건 많이 팔수 있는데 왜”
한겨레
[미-중 정상회담] 공동회견 안팎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1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끝낸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은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회견이 진행된 1시간 내내 엷은 긴장이 가시지 않았다.

이날 회담이 열린 백악관 이스트룸에는 전세계 3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자리가 꽉 찼다. 예정시간보다 20여분 늦은 오후 1시27분께 시작된 회견은 2시34분께 끝났다. 대개 30분 안에 끝나는 정상회담 기자회견에 비춰 매우 긴 회견이었다.

이날 회견의 질문자는 미국 쪽 기자 2명, 중국 쪽 기자 2명으로 미리 정해져 있었다. 양쪽 기자들은 서로 상대국 정상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미국 쪽 기자들은 ‘중국의 인권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중국 쪽 기자들은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싫어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캐물었다. 그러나 두 정상은 기자들의 날선 질문에 맞대응하지 않고 여유있게 대응하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줬다.

중국의 인권문제에 대한 미국의 첫 기자 질문에 후 주석이 대답을 않고 넘어가자, 미국 쪽 두번째 질문자인 <블룸버그 통신> 기자는 ‘왜 첫번째 인권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느냐’고 따지듯이 묻기도 했다. 그러자 후 주석은 “통역과 해석 문제로 질문을 못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 질문인 줄 알았다”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유도하며 부드럽게 넘어갔다. 또 이날 백악관 국빈만찬에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이 참석을 거부한 것에 대한 곤란한 질문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훨씬 더 대답하기 나은 위치에 있다”고 피해가기도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기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은 중국의 성장에 불편한 생각이 없느냐”며 공세적으로 질문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도 “중국이 부상하면 우리는 모든 종류의 물건들을 당신들에게 팔고 싶다”는 유머로 한바탕 웃음을 끌어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연단에 기대거나 답변하는 후 주석을 지켜보는 등 자세를 바꿔가며 여유있게 회견에 응했다면, 후 주석은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꼿꼿이 서서 다소 긴장한 듯 정면을 바라보며 답해 대조를 보였다.

메뉴·음악 ‘아메리칸 스타일’… 청룽 등 중국계 대거 초대
스테이크·랍스터 식탁에 재즈공연 곁들여
미셸, 중국인 좋아하는 붉은 옷 입어 눈길
중 인권활동가 등 225명 3개방 나눠 식사
한겨레
» 백악관 국빈만찬
[미-중 정상회담] 화려했던 국빈만찬

립아이 스테이크, 미 메인주의 바닷가재, 애플파이, 아이스크림, 재즈….

미국식 질서를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최고 지도자에게 미국 정부가 베푼 만찬은 미국의 정서와 가치에 충실한 전형적인 미국식 식사였다.

19일 오후 6시(현지시각)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태운 검은색 리무진이 백악관 현관 앞에 멈춰섰다. 후 주석이 차에서 내리자 흰색 드레스 셔츠와 턱시도 정장을 차려입은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이 현관 앞으로 나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날 미셸이 입은 화려한 붉은색 드레스에 대해 “중국인들이 붉은색을 행복과 번영의 상징으로 여기는 점을 감안한 선택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붙였다. 푸른색 넥타이를 맨 후 주석은 다소 머뭇거리는 모습으로 오바마 부부 가운데 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뉴욕타임스>는 “국빈만찬은 미국 정부가 외국 정상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라며 “장쩌민 주석에 이어 14년 만에 미국 정부가 베푼 만찬의 테마는 ‘전형적인 미국’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주 요리는 백악관 농장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어니언 링을 곁들인 미국 메인주의 바닷가재 요리와 립아이 스테이크, 디저트는 미국 서민들이 즐겨먹는 애플파이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등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건배사에서 미국 사회의 핵심 가치인 ‘가족주의’를 강조하며 ”우리는 교육과 근면, 희생을 통해 미래를 일궈낼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고자 하는 열망에 기초한 가족애라는 공통된 가치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후 주석도 “대화와 소통을 통해 전략적인 상호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며 이에 화답했다.

이날 만찬에는 무려 225명이 초대된 탓에 식사는 주빈들이 위치한 스테이트 다이닝룸을 중심으로 블루룸, 레드룸 등 3개의 방에서 진행됐다. 스테이트 다이닝룸의 정면에는 미국 정신의 상징인 에이브라함 링컨의 초상화가 걸렸고 식장 한쪽에는 미국 개척정신의 상징인 독수리상도 놓였다.

이에 앞선 오전 9시 백악관 남쪽 뜰에는 후 주석을 맞는 미 정부의 공식 환영행사가 열렸다. 후 주석은 리무진에서 내려 팡파르 속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단상에 올랐다. 그를 맞이하는 21발의 예포가 울렸다. 이 자리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둘째딸 샤샤도 참석해 오성홍기를 흔들었다.

‘중국 지도부가 뜨면 큰 장이 선다?’

미 기업과 구매계약 체결
위안화 절상 대체 측면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에 맞춰 450억달러(50조4000억원) 규모의 구매 계약이 체결되면서 중국의 통 큰 외교에 눈길이 가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19일(현지시각) 중국 기업들이 후 주석의 방미를 맞아 대규모 구매 계약을 미국 기업들과 맺었다고 발표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번 70여건의 구매 계약이 미국 일자리 23만5000개를 유지시키는 수준이라고 백악관 쪽이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이 중 보잉이 비행기 200대를 190억달러에 팔기로 한 게 가장 큰 규모의 계약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평화적 부상은 세계에도 좋고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며 성과를 내세웠다. 중국산 제품 수입 증가가 미국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여론의 불만을 잘 아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번 회담의 가장 가시적인 열매인 셈이다. 미국 정·재계의 요구인 위안화 절상은 이끌어내지 못한 대신 거액의 수출 계약을 얻어낸 측면도 있다.

후 주석과 함께 방미한 중국 기업인 500여명은 대규모 합작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전력투자는 미국의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알코아와 75억달러 규모의 알루미늄·에너지 분야 합작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기업인들을 ‘바이 아메리카 사절단’으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계약이 정상회담에 맞춰 발표된 사례들도 있지만, 중국 쪽의 ‘구매 외교’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라는 점에는 이견이 붙지 않는다. 중국은 이런 식의 행보를 최근 부쩍 자주 보여주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지난달 인도를 방문해서는 160억달러 규모의 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곧이어 파키스탄에서는 300억달러 규모의 협정을 맺었다. 재정 위기에 빠진 유럽에서는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의 국채 매입으로 인심 얻기에 나서고 있다. 리커창 부총리는 이달 초 기업인들을 이끌고 스페인·영국·독일을 방문해 200억달러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처럼 ‘세일즈 외교’를 넘어 ‘금력 외교’ 양상을 띤 중국 지도부의 행보는 일차적으로 중국의 국부가 뒷받침되기에 가능하다. 또 중국 경제의 핵심이 국영기업들이기 때문에 국가가 이를 활용하기 쉬운 점도 배경에 있다. 미국에서 구매와 경제협력 규모가 가장 큰 것은 중국이 ‘구매 외교’를 중요한 정치·외교적 지렛대로 사용하는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