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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알기

역사 속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석유 이야기(sk에너지 세상 속 에너지의/세상의 에너지 2015/04/06 10:00)

역사 속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석유 이야기

 


“석유는 문명의 젖줄이다. 석유가 없었더라면 문명은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석유로 가동되는 대형 공장들이나 휘발유를 동력원으로 하는 육상 교통, 항공 교통, 해상 교통, 더 나아가 비행기나 잠수함조차도 석유가 없다면 모두 그저 녹슬어 가는 하나의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자말 압단 나세르 (전 이집트 대통령)


우리는 모두 석유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생활 속의 사소한 물건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석유를 필요로 하지요. 이제는 석유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석유는 석탄을 비롯한 다른 동력 에너지원에 비해 비교적 늦게 주목받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을 거슬러가면 의외로 역사 곳곳에서 석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수지(樹脂)를 함유한 목재로 방주를 하나 만들어라. (…) 그리고 그 방주의 안팎을 역청으로 칠하라.” (「창세기」6:14)

 

석유가 성경에 등장한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거대한 홍수에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에, 방수를 위해 ‘역청’을 바르라 지시하는 부분이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데, 여기서 역청이란 바로 석유를 말합니다! 이처럼 역사 속 기록에서 석유의 존재와 옛날 사람들의 기발한 사용 방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흥미로운 석유 이야기들을 찾으러 떠나볼까요?



중국 고대 역사서에 석유가 등장한다고?!


중국 고대 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漢書)’의 중에는 ‘고노(지역)에는 불이 붙는 유수가 있다’라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 짤막한 구절이 중국의 역사서에 처음으로 나타난 석유에 관한 기록입니다. 


또한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였던 심괄은 관직에서 물러나 ‘몽계’라는 곳에 머물면서 평생 자신이 보고 듣고 알게 된 것을 수필 형식으로 남겼습니다. 그것이 《몽계필담》이라는 책입니다. 이 《몽계필담》의 24권 〈잡지〉에 ‘석유’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또 석유를 이용해 불을 붙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연로 경내에는 석유가 있는데, 옛날에 고노현에 유지수가 생산되었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말한다. 그것은 물가의 모래돌에서 나오고 있는데, 샘물과 서로 혼합되어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은 메추리 깃으로 그것을 묻혀서 항아리에 모으는데 순수한 칠 같으며, 그것을 태우면 마(麻) 같다. 그러나 연기가 매우 많이 나와 장막이 온통 검게 변하였다. 나는 그것의 연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 재를 긁어서 먹을 만들면 검고 윤기가 있어 마치 옻칠 같았다. 송연묵도 그것에 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대규모로 제작하여 그 위에다 ‘연주석액’이라고 새긴 것이 바로 이 먹이다. 이 먹은 머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세상에 널리 유행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제안하여 만든 것이었다. 석유가 무한정 많아 땅 아래에서 무궁무진하게 생산될 수 있기에 소나무처럼 언젠가는 고갈되는 것이 아니었다."


와! 중국인들은 꽤 오래 전부터 석유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를 먹으로 만들어 활용하기도 하고 장차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부상 할 것을 예측하기까지 했다니 정말 신기합니다. 중국의 또 다른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의 기록도 한 번 살펴볼까요?



"주천(酒泉)이란 곳에서는 비즙(肥汁)이 나는데, 이것은 아주 밝게 타며 먹을 수는 없다. 그곳 사람들은 이를 석칠(石漆)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주천(酒泉)이라는 지방은 유전이 있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또한 이 지방 사람들은 수레바퀴나 물레방아의 돌아가는 부분에 석유를 발라 마찰을 적게 하는 윤활유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석유는 수비(水肥), 석지(石脂), 화유(火油), 맹화유(猛火油), 웅황유(雄黃油), 석뇌유(石腦油) 등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중국의 고서에 남아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진 남북조 시기의 기록에는 석유에 관해 의학적으로 탁월한 치유 효과가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아마 고대 중국 사람들은 석유에 의학적 효능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네요!



고대 서양에서 다양하게 쓰였던 석유!


그렇다면 이번에는 고대 서양으로 넘어가 볼까요? 고대 서양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석유와 함께해온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먼저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가 태양 숭배를 하던 시기에, 가스를 제거한 석유인 역청은 신과 같이 숭배를 받으며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이집트인들이 지각변동으로 지표 위에 솟아난 역청을 채취하여 죽은 파라오의 시체를 방부, 보존 처리하는 데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라를 싸는 천에도 아스팔트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또한 건축 기술로 유명한 바빌로니아 인들도 석유를 애용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성벽을 건축할 때 아스팔트와 역청으로 접착을 하여 성벽을 쌓아 올렸습니다.



세계 3대 문명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인들이 기원전 3000년경 아스팔트를 재료로 한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원전 500년경 페르시아에서는 사원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사용하였고, 기원전 400년경에는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네를 공격할 때 방화용 기름으로 석유를 화살촉에 발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코카서스 산맥이 이어지는 카스피 해 연안 쪽에서는 손과 간단한 도구를 이용한 원유의 채취가 가능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이탈리아에서 중국을 향해 떠난 긴 여정을 담은 책인 《동방견문록》에서도 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많은 역사 속 기록에서 석유를 치료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피부 질환뿐만 아니라 상처에 발라 피를 멈추게 하는 혈액 응고부터 발열을 멈추게 하는 약, 설사약 등 다양한 약효를 가진 물질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석유는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고대 중국과 서양 역사 속의 석유 이야기를 찾아봤으니 이제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한 번 찾아볼까요? 우리나라에 석유는 고종 17년, 그러니까 1880년쯤 개항 시기에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기록을 조선 말기의 문인 황현의 ‘매천야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석유는 영, 미 등 제국에서 생산되는데, 혹자는 바다 가운데서 취한다 하고, 또 혹자는 석탄에서 빼낸다 하며, 또 어떤 이는 돌을 짜낸 것이라 하여 그 설명이 같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천연자원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경진년부터 이것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붉은색이 나고 냄새가 고약했으며, 한 홉이면 열흘 밤을 켤 수 있었다.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색깔이 점점 희어지고 냄새도 좋아졌으나, 화력이 감해져서 한 홉을 가지면 겨우 3,4일밖에 켜지 못하게 되었다. 석유가 나오면서부터 산이나 들판에 기름 짜는 열매는 번성하지 않게 되었으며, 온 나라 안에 석유로써 연등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었다.“


기록에서 나와 있듯, 석유는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서 등잔불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석유가 보급되면서 종래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등잔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흰색 사기 재질에 구멍이 뚫린 뚜껑을 덮고 그 안에 심지를 넣어두는 형태의 등잔은 개화기 석유가 널리 사용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입니다. 석유가 날아가지 못하게 뚜껑을 덮은 것이지요.

 

그전까지는 종지에 들기름, 돼지기름, 생선기름 등을 넣고 불을 붙여서 사용했습니다. 심지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고정되어 있지도 않았지요. 그러니까 개화기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 석유 등잔이 나오는 것은 드라마 혹은 영화 속 ‘옥에 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출처: e뮤지엄>


그렇다면 개화기 당시에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석유가 전해진 것일까요? 봉원사 승려였던 이동인이라는 사람이 일본에서 들여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는 특이하게도 승려였지만 개화사상을 받아들인 인물이었습니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대표적인 개화파 인사들과 어울려 새로운 문물과 사상을 조선에 전하고자 했습니다.
 
일본에 가게 되었던 이동인은 1880년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서 돌아올 때 동행하였고, 이때 석유를 포함해 성냥, 램프 같은 물건들을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석유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계기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전의 것들보다 훨씬 편리한 원료라는 것이 증명되자 빠르게 조선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고 곧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유스로거와 함께 한 역사 속 석유 이야기, 어떠셨나요?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은 곳에서 석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발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점들이 굉장히 흥미로웠는데요! 석탄에 비해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석유는 오래전부터 우리의 곁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해 왔다니. 석유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