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관계/신아시아구상

시진핑 "일대일로(一帶一路) 건설은 中 독주 아닌 관련국들 합창" (한국일보 2015.03.29 22:58)

시진핑 "일대일로(一帶一路) 건설은 中 독주 아닌 관련국들 합창"

[세계는 지금] 보아오 포럼서 "아시아 공동체" 역설

 

성장 열차에 동참하라 "中 뉴노멀 시대는 새로운 기회"

일대일로 위한 5通 정책… 정책·시설·무역·자금·민심 상통, 정부 간 협력 강화 방안 제시

AIIB 회원국 급속 증가, 美 전통 맹방들도 결국 속속 가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개요

“세계는 변했고 역사는 인류의 운명을 바꿨다. 그 동안 아시아 각국은 위대한 발전을 이뤘다. 이제 아시아는 운명 공동체로 나아감으로써 새 미래를 열어야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8일 이렇게 외쳤다. 그는 “대국(大國)이 된다는 것은 지역과 세계평화 발전에 더 큰 책임을 진다는 의미지, 더 큰 농단을 부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며 “상호 존중, 평등과 공영의 아시아 운명 공동체를 통해 인류 운명 공동체를 건설하자”고 역설했다. 미국을 염두에 둔 듯한 이 말은 이제 중국이 아시아 운명, 나아가 인류 운명까지 책임지는 대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선언이었다. 실제로 유라시아 지역의 경제 일체화를 향한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이미 60여개국이 호응하고 나섰다. 중국 주도의 새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는 미국 반대에도 불구하고 창립 회원국이 되기 위한 나라들이 벌써 40여개국이나 줄을 섰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꿈은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다.

Xi Jinping

지난 28일 열린 2015 보아오 아시아포럼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미일 주도 아시아 질서 다시 짜는 중국

시 주석은 이날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 열린 2015년 보아오(博鰲)아시아포럼 개막식 기조 연설을 통해 아시아를 운명 공동체로 묶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먼저 “지난 70년간 아시아 각국은 자국의 상황에 걸 맞는 발전의 길을 따라 한 세대에서 다시 다음 세대로 쉬지 않고 노력했고, 그 결과 눈 부신 발전의 성과를 얻었다”며 “이제 아시아는 세계경제 총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활력과 성장 잠재력도 가장 큰 지역이 됐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이어 “아시아 각국은 독립 투쟁과 위환 위기, 재난 극복 등의 과정에서 서로 협력하며 ‘내 안에 네가 있고 네 안에 내가 있는’ 상호 의존성이 점점 커졌다”며 “아시아는 이제 운명 공동체로 나아감으로써 새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아시아는 세계의 아시아이고, 아시아가 좋아야 세계도 좋은 것”이라며 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게 전세계에도 이롭다고 주장했다. ‘인류 운명 공동체’와 ‘대국의 책임’을 언급하는 대목에선 날로 높아지고 있는 중국의 국력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구체적으로 2020년까지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동아시아경제공동체도 만들자고 제안했다.

“뉴노멀, 더 큰 기회”, 5년간 10조달러 수입

잠에서 깨어난 중국의 포효는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7.4%까지 둔화,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시 주석은 이와 관련 “중국 경제를 볼 때 성장률만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중국 경제가 뉴노멀(New Normal, 신창타이ㆍ新常態) 시대로 진입한 것은 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전 세계 각국에 더 큰 시장과 성장, 투자, 협력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시 주석은 구체적으로 중국이 앞으로 5년간 10조달러(약 1경1,070조원)의 상품을 수입하고, 5,000억달러(약 553조4,000억원) 이상의 대외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여행 중국인의 수도 5억명(연인원)이 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확실하게 보따리를 풀겠다는 얘기이다. 시 주석은 “우리 모두 ‘아시아 발전’이란 열차를 함께 이끌면서 빛나는 미래를 향해서 쉬지 말고 달리자”고 제안했다.

일대일로 구상,“독주 아닌 합창”

각국에게 중국이 주도하는 ‘성장 열차’에 올라 타라며 구체적으로 내놓은 것이 바로 일대일로 구상과 이를 위한 수단인 AIIB다. 일대일로란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공동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실크로드경제벨트(一帶)와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까지 해양 무역로 및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21세기해양실크로드(一路)를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다. 시 주석은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을 방문, 실크로드경제벨트 구상을 처음 언급한 데 이어 그 해 10월 인도네시아를 찾아 21세기해상실크로드건설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세계 최강국이었던 당나라 시대의 실크로드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뜻도 담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은 무엇보다 미국의 봉쇄망을 뚫기 위한 전략적 목적이 크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사실상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무장을 부추기고,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대일로를 구축하게 되면 중국으로서는 안정적인 자원 운송로를 확보하게 된다. 안정적 경제 성장을 위해선 우선 확실한 자원 안보가 보장돼야 한다.

일대일로 구상은 또 중국의 과잉 생산력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은 현재 중화학 공업과 전통 제조업의 극심한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교통망 구축이 중심이 될 일대일로 사업은 이러한 한계 산업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줄 수 있다. 또 상대적으로 낙후한 중국 변경 지역 경제에도 활력소가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세계 최대인 외환보유고의 활용도도 높일 수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말 기준 3조8,400억달러(약 4,250조원)이다. 이를 미 국채에만 투자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종합하면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모두 1석5조의 효과를 보는 셈이 된다.

중국은 실제로 이날 시 주석의 연설 직후 일대일로 세부계획(액션플랜)을 전격 발표, 자신들의 관심사를 구체화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외교부, 상무부가 함께 발표한 이 계획에 따르면 일대일로는 ▦정책소통 ▦시설연통(聯通) ▦무역창통 ▦자금융통 ▦민심상통 등 5통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정책소통이란 정부간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다. 시설연통은 교통망(도로 철도 항구)과 통신망, 에너지 운송과 저장 등과 관련된 기초시설(송유관 가스관) 연결 등을 일대일로 건설의 최우선 영역으로 삼겠다는 것이 골자다. 무역창통은 자유무역지대 및 투자무역협력대상 확대가, 자금융통은 위안화의 국제화와 AIIB 및 브릭스(BRICS)개발은행 추진이, 민심상통은 문화교류 강화가 그 핵심이다.

일대일로 구상의 관건은 과연 다른 나라들이 얼마만큼 호응하느냐다. 시 주석이 “일대일로 건설은 함께 상의하고 함께 건설하며 함께 누린다는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며 “중국 한나라의 독주가 아니라 관련 국가들의 합창”이라고 한 이유다.

호주ㆍ러도 AIIB 회원국 신청… 42개국으로 늘어

AIIB는 이러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자 무기이다. 일대일로 구축에 필요한 교통 및 에너지 시설 건설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게 주임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있지만 이미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어 중국이 제 뜻을 펴기엔 한계가 있었다. AIIB는 2013년10월 시 주석이 처음 제안한 뒤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이 진행됐다.

당시 참석국은 중국을 비롯 21개국에 불과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 선진국도 모두 참여하지 않아 중국의 도전은 성공이 불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 12일 영국이 참여를 선언한 뒤 프랑스 독일 등이 곧바로 그 뒤를 이었고 26일에는 우리나라도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시 주석이 연설을 한 28일에는 호주 러시아 브라질 네덜란드 덴마크 그루지야 등 무려 6개국이 창립 회원국 신청을 했다고 중국 언론이 전했다. 이에 따라 AIIB 창립 회원국은 이미 40개국을 돌파, 42개국까지 늘어났다. 31일 마감까지 창립 회원국 신청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1966년 31개국으로 창립된 ADB보다 훨씬 큰 규모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 영국과 호주 등 미국의 전통적 맹방이 미국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 편에 선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28일 시 주석을 만나기 위해 중국 남부의 작은 어촌 보아오까지 찾아 온 80여명의 각국 정상급 인사들은 회의장에 들어서기 위해 한참 동안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중국 관영 CCTV는 각국 지도자의 1호차 행렬이 이어지는 장면을 1시간 가까이 내 보낸 뒤 시 주석의 연설을 생중계로 전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어 또 다시 국제 행사의 주인장으로서, 달라진 국가적 위상을 과시했다.

 

중국 보아오포럼 폐막…일대일로ㆍAIIB 집중 논의

(이투데이 2015-03-29 14:45)

시진핑 “아시아는 공동 운명체”

 

원본보기

▲중국 보아오포럼이 29일(현지시간) 폐막한다. 사진은 시진핑(오른쪽에서 7번째) 중국 국가주석 등 이번 포럼에 참석한 세계 각국 정상들이 28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뉴시스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중국 보아오포럼이 29일(현지시간) 나흘간의 일정을 끝으로 폐막한다고 중군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열린 공식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아시아는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 “앞으로 5년간 수입규모가 10조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히는 등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새 질서 구축에 나섰다. 

특히 이번 보아오포럼에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현대 실크로드인 ‘일대일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두 건 모두 시 주석이 제안한 것이다. 

러시아와 호주 등이 보아오포럼 기간 AIIB 가입을 선언했다. 샤오완창 전 대만 부총통은 시 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AIIB 가입 희망의사를 밝혔다. 

스웨덴과 네덜란드, 네팔 등 시 주석과 포럼을 이용해 회담한 각국 정상들도 일대일로ㆍAIIB 관련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번 포럼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IT와 의학, 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을 강조해 헬스케어 사업 진출 의사를 내비쳤다. 

일대일로와 AIIB 이외 거시경제와 환경, 지역협력, 기술혁신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본 집권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총무회장은 시 주석과 만났으나 사진촬영 이외 깊이 있는 대화는 못 나눠 양국의 골이 깊음을 시사했다,

 

 

[글로벌 경제] “시진핑, AIIB·일대일로 목표는 한 배 탄 아시아 번영의 바다로”

(서울신문 2015-04-01 17면)

中 진보 경제학자 후싱더우 베이징이공대 교수 인터뷰

 

중국 경제가 변곡점에 서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28일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2020년까지 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건설하겠다”며 중국 중심의 경제질서를 구축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로 대표되는 중저속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징후도 곳곳에서 보인다. 서울신문은 지난 30일 중국의 진보적인 경제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후싱더우(胡星斗) 베이징이공대 경제학과 교수를 찾아 중국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했다.

▲ 후싱더우 베이징이공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30일 대학 집무실에서 ‘일대일로’ 건설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 디플레 위기 등 중국 경제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건설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의도는 무엇인가.

-아시아를 한 배에 태우려는 것이다. 중국의 힘은 경제에서 나온다. 전 세계 외환보유고의 60%를 중국이 차지한다. 엄청난 돈을 풀어 공동 번영을 이루겠다는 포부다.

→패권적인 중화주의의 부활 아닌가.

-나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예상한다. 일대일로와 AIIB는 중국을 세계에 융합시킬 것이다. 당장 AIIB가 성공하려면 세계적인 규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중국 지도부가 중화주의를 염두에 뒀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중국은 각종 협약과 표준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세계 질서에 순응해야 할 것이다. 이는 중국 사회의 민주화도 앞당길 것이다.

→AIIB가 미국 중심의 금융체제를 바꿀 만큼 강력한 것인가.

현재 미국 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제를 떠받치는 기구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무역기구(WTO)다. AIIB가 이들과 맞서려면 10년 혹은 20년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시 주석의 강력한 통치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나.

-시 주석은 현재 강력한 리더십으로 철권통치만 하는 게 아니라 개혁까지 주도하고 있다. 철권통치만 한다면 파시스트의 길을 걸을 텐데 지금 중국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적절하게 발휘하고 있다. 관례로 굳어진 10년 집권의 틀을 깨고 15년 동안 집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로 잡았는데, 달성할 수 있다고 보나.

-중국의 경제 관련 수치는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보통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수치를 보이는 발전(發電)량 증가량이 지난해 2%에 머물렀지만, 경제성장률은 7.4%로 발표됐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성장률 수치는 더더욱 의미가 없다.

→인민은행장도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직은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증가 상태로 디플레라고 보긴 어렵다. 3~6개월 뒤면 디플레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디플레 전에 정부가 금리 인하와 부동산 규제 완화와 같은 부양책을 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많은 수단을 갖고 있다.

→중국 경제의 뇌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위기를 거론하지만 기업부채 문제가 더 심각하다. 중국 기업의 부채 총계는 국내총생산(GDP)의 130%나 되는데, 이런 나라가 없다. 진작에 파산했어야 할 기업도 부채로 연명하고 있다. 경제가 둔화되면 기업의 부채 상환 능력은 떨어지고, 이는 곧 금융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이 중국 경제의 대안이 될 수 있나.

-창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볼 것이다. 그러나 혁신은 사상, 제도 등의 경직성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작다. 국유기업이 이미 대부분 영역을 장악해 혁신할 공간도 별로 없다. 중국 기업의 평균 수명은 3년에 불과하고, 90%의 기업은 돈세탁을 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는 구조다. 맹목적인 창업과 혁신은 또 다른 거품을 만든다.


 

대륙의 중심에서 ‘일대일로’의 꿈이 영근다

(한겨레 2015-02-01 20:24)

 

중국 산시성 시안 외곽에 조성된 시안 내륙항 안에 있는 철도 물류 집하장으로 컨테이너 트럭들이 드나들고 있다. 이곳은 중국이 추진하는 신실크로드 계획의 물류 허브 중 하나이며, 중앙아시아로 향하는 국제화물열차 장안호가 출발하는 기점이다.

 

‘육상 신실크로드 시발점’ 시안을 가다
중국 서부 산시(섬서)성 시안 시내에서 동북쪽으로 50여㎞ 떨어진 ‘시안 내륙항’. 시안에 첫눈이 내린 지난달 28일 찾은 이곳에는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화물트럭이 쉴새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화물 집하장에선 5~6기의 초대형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열차에 옮겨 싣는다. 이곳에서 장안호가 출발한다. 국제화물열차인 장안호는 현재 매주 한차례 시안에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 44개 도시로 중국의 기계, 전자, 농산품을 실어 나른다. 2013년 11월 운행을 시작한 장안호는 육상과 해상 신실크로드를 뜻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이 본궤도에 오르면 독일 뒤스부르크와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운행 구간을 확장한다. 내륙항 주변엔 44.6㎢에 이르는 국제보세구역과 각종 산업단지들이 조성돼 있다. 왕복 10차로로 뚫린 도로 옆엔 ‘바다와 육지를 잇는 물류허브로 일대일로 전략을 완성하자’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시안의 부푼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시안 물류·교통허브로 부상
60여개 나라 40억명 아우르는
중앙아시아·유럽 향해 열린 창
“문화 긍지 비해 발전 더뎠지만
이제 발전하고 있다” 부푼 기대

중국, 1760조원 투자 계획
일대일로 참여국에 막대한 투자
‘중고속 성장’ 시대 경제 도약과
중국 중심 경제질서 구축 ‘야심’
중앙아시아 자원 확보 속셈도

시안 시내 남쪽에 조성된 상업·문화 복합단지인 ‘대당서시’(大唐西市)에 고대 실크로드의 출발점을 알리는 조형물이 들어서 있다.

시내 남쪽엔 중국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당나라 시절 실크로드의 출발점을 복원한 ‘대당서시(大唐西市) 상업·문화 복합단지’가 들어섰다. 단지 한가운데엔 청동 조형상이 놓여 있다. 뫼비우스의 띠 모양으로 무한한 교류를 상징한 조형상에는 장안(당나라 때 수도이자 시안의 옛 지명)-타슈켄트-바그다드-알렉산드리아-로마 등 고대 실크로드가 통과한 25개 세계 주요 도시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시안 시민들의 기대감도 높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시안 토박이 리웨이둥(46)은 “시안은 고도라는 문화적인 긍지는 높았지만 오랫동안 발전이 더뎠다. 이웃 쓰촨성 청두보다 생활수준이 못하다”며 “하지만 시안은 이제 발전하고 있다. 이미 상하이나 광저우 등 남동부 연안 지역은 발전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지만 시안은 덜 개발된 서북부의 중심에 위치해 발전의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당나라 등 여러 왕조의 수도였던 고향 시안이 좀 더 발전해서 노동자 연간 소득이 최소 3만~5만위안(520만~870만원) 정도가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밝히기도 했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중국과 유럽을 잇는 오랜 역사를 간직해온 천년 고도 시안이 이제 중국 시진핑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 계획의 물류, 교통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일대일로 계획은 시진핑 주석이 2013년 9월과 10월 제시한 것으로 시안-중앙아시아-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푸젠성 취안저우-동남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연결하는 무역로 구축을 말한다. 시안은 서부 내륙이라는 지리적 위치 탓에 해상 물류 이용이 어려워 중국의 연해 중심 경제 성장에서 오랫동안 소외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향해 열린 창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60%에 이르는 40억명,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하는 20조달러 규모의 60여개국을 아우르겠다는 일대일로 계획이 고도의 잠을 깨운 것이다. 시안의 한 20대 회사원은 “최근 수년 동안 시안은 눈에 띄게 변했다.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도심도 2순환도로 안에서 3순환도로까지 확장됐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지역들이 이제는 번듯한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는 곧 일대일로 계획의 구체적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달 24일 관영 <신화통신>은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최종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곧 구체적 계획이 공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일대일로가 지나는 나라들에 1조6천억달러(1760조8천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시안을 빼놓고는 일대일로 계획 중 육상 신실크로드를 논할 수 없다. 중국의 주요 물류 운송 열차는 모두 시안을 거친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하는 장안호 말고도 직할시인 충칭-러시아-폴란드를 거처 독일 뒤스부르크를 잇는 총연장 1만1179㎞의 유신구(위신어우) 열차는 시안을 중간 기착지로 삼는다. 중국의 또 다른 물류기지인 장쑤성 롄윈강을 출발해 간쑤성 란저우-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를 잇는 4018㎞의 중국횡단철도(TCR) 역시 시안을 지난다. 시안이 속한 산시성은 이미 서부10개 성 가운데 종합화물 수송량에서 쓰촨성에 이어 2위, 철도화물 수송 부문에서는 중국 전체의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이른바 ‘신창타이’(New Normal·구조조정 속 중고속 성장) 시대로 접어든 중국 경제의 도약을 꾀하려는 국내 경제적 목적과 아시아에서 미국이 아닌 중국 중심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하려는 국제 정치외교적 목적을 동시에 띠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침체된 경제의 새 돌파구로 삼으려 한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주축인 철도와 전력, 도로망 건설은 이미 과잉생산 상태로 중국 경제에 부담을 지우고 있는 철강, 시멘트 산업에 새로운 판로를 제공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은 이 길을 통해 중앙아시아로부터 자원과 에너지를 확보하려 한다. 한 중국 경제 전문가는 “장안호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중앙아시아로부터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은 신실크로드를 통해 상하이나 광저우, 톈진 등 남동부 연안의 발전된 도시에 견줘 낙후된 서부 내륙지역 개발을 통해 국토 균형발전을 노린다. 자오시쥔 인민대 재정금융학원 부원장은 “일대일로는 중국 기업의 해외진출도 촉진해 중국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 정치적으로는 미국에 맞선 중국의 아시아 주도권 확보라는 전략이 깔려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대일로 계획과 관련해 “일대일로는 솟아오르는 아시아의 날개와 같다. 21세기에 들어서조차 과거의 사고에 머물러선 안 된다”며 “흩어져 있는 등불과 같은 아시아 각국은 서로 연계하고 교류할 때 비로소 아시아의 하늘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가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이 만들어놓은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국 중심으로 주변국 외교의 틀을 짜겠다는 생각을 에둘러 드러낸 것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개최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아시아의 키다리 아저씨’ 구실을 자임하고 나섰다. 중국이 내놓은 500억달러(54조원) 규모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400억달러의 실크로드 기금에는 이미 미국이 장악한 해양 에너지, 물류 수송로에 맞서 안정적인 내륙 수송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중국의 야심이 담겨 있다. 중국은 나아가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지대(FTAAP)를 추진하려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외부에선 “일대일로 계획은 궁국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워싱턴 컨센서스 체제를 중국 중심의 베이징 컨센서스 체제로 바꾸려는 포석”이라고 경계하기도 한다.

 

 

후강통 시리즈(2)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중국 철도주식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