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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국제분야

50조 '빅 딜' 놓친 월가의 굴욕…떠나는 IB 스타들 (조선일보 2015.03.26 09:48)

50조 '빅 딜' 놓친 월가의 굴욕…떠나는 IB 스타들

 

50조 규모의 ‘빅 딜’ 크래프트푸드와 하인즈 합병에 월스트리트 IB가 배제됐다/블룸버그
50조 규모의 ‘빅 딜’ 크래프트푸드와 하인즈 합병에 월스트리트 IB가 배제됐다/블룸버그


10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약 50조원 규모의 대형 인수합병(M&A) 계약에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은행(IB)이 배제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통상 M&A에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IB들이 주간사를 맡아 외부자금 조달, M&A 자문 등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미국 최대 식품회사 크래프트푸드와 케첩업체 하인즈의 ‘빅 딜’에 IB는 빠져있었다. 소규모 재무 자문업체만 끼어있을 뿐이다. IB의 굴욕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를 반영하듯 최근 월스트리트의 거물급 인재들이 IB를 떠나 실리콘밸리로 이탈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25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와 브라질 사모펀드인 3G캐피털이 공동으로 갖고 있는 케첩업체 하인즈가 크래프트와의 인수합병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합병회사 이름은 ‘크래프트하인즈’다. 합병금액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480억달러(약 53조원)로 추정된다. 이번 합병으로 크래프트하인즈는 하인즈와 크래프트, 필라델피아, 맥스웰하우스 등 식품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5위 식품기업이 된다. 연매출 규모는 280억달러(약 30조8560억원)다. 지분은 하인즈 주주들이 합병회사 주식의 51%, 크래프트 주주들이 49%를 갖는다.

◆10년만의 빅 딜에 대형 IB 이름 못올려

블룸버그는 이번 480억달러 규모 딜은 적어도 10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빅 딜’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딜에는 소위 '벌지 브래킷 펌(전 세계에 고객을 두고 자금 조달 주선, 인수합병(M&A) 자문 등 IB 분야의 거의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류 IB회사)' 라는 최고 수준의 IB들이 주관사로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딜에는 이들의 이름이 없었다. 소규모 재무 자문사인 라자드, 센터뷰 파트너스만 끼어있을 뿐이었다.

통상 작은 규모 딜에는 이런 자문사들이 혼자 재무 상담이나 자금 조달 등의 IB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크래프트와 하인즈 합병 때는 워런 버핏과 3G 캐피탈이 이 역할을 대신 맡아서 했다.

샌들러 오닐 파트너스 LP의 제프 하트 애널리스트는 "이런 빅 딜을 진행할때는 일류 IB들을 써왔다"며 "외부 자금 조달 부족 때문에 딜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이들 대신 이번 딜에 2000년 이후부터 은행에서 관리 임원으로 일해온 라자드의 최고경영자(CEO) 켄 제이콥스와 알렉산더 해커를 선봉장에 맡겼다.

이번 딜 한 방으로 라자드 주식은 이날 2.8% 가량 올랐다. 더불어 자문사 순위도 8위에서 4위로 껑충 뛰었다. 센터뷰는 14위에서 6위로 8계단을 올라섰다.

◆월스트리트 떠나는 거물급 인재들


구글 CFO로 자리 옮기는 모건스탠리 루스 포랫 CFO(좌)와 트위터로 자리를 옮긴 골드만삭스 전 대표/블룸버그
구글 CFO로 자리 옮기는 모건스탠리 루스 포랫 CFO(좌)와 트위터로 자리를 옮긴 골드만삭스 전 대표/블룸버그


이런 상황을 대변하듯 월스트리트 스타급 인재들은 속속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

인터내셔널뉴욕타임즈는 26일자 신문 1면에 세계 최대 투자은행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루스 포랫이 오는 5월 구글 CFO로 자리를 옮긴다고 보도했다.

포랫은 자그만치 28년간을 모건스탠리에 몸담은 인물이다. 미국 스탠포드대 출신인 포랫은 지난 1978년부터 가장 오랫동안 일한 월스트리트 최고 여성파워엘리트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휘청거리던 모건스탠리의 재무를 책임지면서 은행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랫 CFO뿐만 아니다. 트위터는 지난해 골드만삭스에서 기술·미디어·통신 부문 공동대표를 지낸 앤서니 노토를 새 CFO로 선임했다.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은 크레디트스위스 출신 임란 칸을 최고전략책임자(CSO)로 끌어들였다. 모바일 결제업체 스퀘어도 골드만삭스의 새라 프라이어를 CFO로 선임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월스트리트 베테랑들이 실리콘밸리로 대거 이동하는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강화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전략적 차원에서 경쟁하듯 월가 금융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있다. 최근 IT기업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M&A를 통한 덩치키우기에 사활을 쏟고 있다. 이처럼 전략적인 결정을 내릴때 당연히 월스트리트에 방대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면서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금융전문가가 필요하다.

막대한 현금을 굴리고 주주들의 요구에 맞춰 주가를 관리하는데도 월스트리트의 전문적인 인력은 필수다.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이 월스트리트 인력을 경쟁하듯 앞다퉈 영입하고 있는 배경이다.

래퍼티 캐피털의 딕 보브 투자분석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더 이상 최고 인재들이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지 않다는 징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