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관계/국제분야

푸틴 대통령의 일상, 수영 2시간 후 집무…15분 단위로 일정 소화 (중앙일보 2014.09.20 13:54)

푸틴 대통령의 일상, 수영 2시간 후 집무…15분 단위로 일정 소화

[뉴스위크] 역사서 즐기고 동물 좋아해…지인들과 아이스하키 경기 자주 열어

 

[사진 푸틴 공식홈페이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느지막이 일어나 정오 직후 아침을 먹는다. 식사는 가장 간단한 것부터 시작한다. 코티지치즈(작은 알갱이들이 들어 있는 부드럽고 하얀 치즈)가 기본이다. 주식은 늘 양이 많다. 오믈렛, 때로는 포리지(죽의 일종)다. 푸틴은 메추리알을 좋아하고, 과일 주스를 즐겨 마신다. 음식은 늘 신선하다.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 키릴 총대주교의 농장에서 푸틴이 좋아하는 농산물이 정기적으로 배달된다.

그 다음 커피가 나온다. 이미 각료들을 불러 놓았지만 아침식사 후 첫 두 시간 동안 푸틴은 수영을 한다. 그는 물속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 고글을 쓰고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자유형 수영에 몰입한다. 정치 참모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수영을 하는 동안 주로 조국 생각에 잠긴다.

각료들은 옻칠한 나무로 장식된 대기실에서 다리를 꼬고 농담을 하며 지루한 시간을 죽인다. 푸틴이 그들을 곧바로 불러들이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장관의 경우 서너 시간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푸틴은 수영 후 러시아 뉴스 전용 TV가 켜진 체육관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 ‘마초’로 통하는 그는 실내 자전거보다는 역기를 훨씬 더 좋아한다.

때론 운동 후 책을 읽는다. (이유는 자신이 밤늦게까지 일하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신이 가장 맑을 때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려고 각료들을 소환한다. 모든 게 더 명확해지는 늦은 시간에 말이다.) 그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책은 역사서다. 그는 역사책을 찬찬히 뜯어본다. 무겁고 두툼하며 누가 봐도 번듯한 책들이다. 주로 폭군 이반, 예카테리나 2세, 표트르 대제의 행적에 관한 내용이다.

하지만 가끔씩 그가 소설책을 읽었다는 소문이 떠돈다. 2006년 푸틴은 스릴러를 한 권 읽었다고 알려졌다. 노동자 계급의 남자들이 체첸인과 보안대원들을 두들겨 패고 기관총을 동원해 부패한 도둑들로 부터 주지사 공관을 탈취한다는 혁명을 다룬 소설이다. 자하르 프릴레핀이 쓴 ‘산캬(Sankya)’다.

한편 푸틴이 잠자리에 들면서 무슨 책을 읽는지 잘 안다는 사람들은 그가 ‘제3제국(The Third Empire)’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민족주의 정치인 미하일 유리예프가 2006년에 펴낸 정치소설이다. 미래인 2054년을 시점으로 가상의 라틴아메리카 역사가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역사가는 가상의 황제 블라디미르 2세의 위업을 이야기한다.

러시아 영토 전부를 거둬들인 황제다. (친러시아적인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 주민들이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오렌지 혁명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는데 ‘제3제국’의 황제 블라디미르2세가 주민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에 편입시킨다는 내용으로 최근 푸틴의 크림공화국 합병과 흡사하다.) 그러나 측근들은 대통령이 독서광이 아니라고 애써 강조한다.

푸틴은 목욕재계에 공을 들인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몸을 푹 담근다. 그 다음 옷을 차려 입는다. 그는 몸에 꼭 맞게 맞춘 어두운 색 정장만 입는다. 타이는 대개 음울한 색으로 고른다. 그런 다음에야 집무가 시작된다. 이른 오후엔 주로 브리핑 보고서를 검토한다. 대부분 무거운 나무 책상에 앉아서 읽는다. 그의 사무실엔 칸막이가 없다. 푸틴은 보안이 검증된 기술만 사용한다. 종이 서류가 든 붉은색 폴더, 옛 소련 시대에 설치된 유선을 사용하는 전화기 등.

푸틴은 두꺼운 가죽 폴더 세 개를 읽으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첫 폴더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작성한 국내정세 보고서다. 둘째는 러시아 대외정보국(SVR)이 작성한 국제정세 보고서다. 셋째는 러시아 연방경호국(FSO)이 작성한 크렘린 내부사정 보고서다.

푸틴은 정보에 집착한다. 그가 요구한 가장 두꺼운 폴더는 정보 보고서가 아니라 신문 스크랩이다. 가장 먼저 러시아 언론의 기사 요약본을 펼친다. 가장 중요한 신문이 맨 먼저 등장한다.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 등 정부에 아첨하는 일간지들이다. 이 신문들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독자가 수백만 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그 신문들의 제목과 가십 칼럼, 그리고 예를 들어 최근 시베리아 철도 사고에 대한 그 신문들의 반응이 근로자들의 민심을 좌우한다.

그 다음 고급 매체로 눈을 돌린다. 경제 일간지 베도모스티와 종합 일간지 코메르산트 등 약간 비판적인 신문들이다. 약간의 검열을 거치는 이런 매체는 크렘린 내부에서 중요하게 간주된다. 관료 조직에서 나도는 가십, 그들이 선호하는 칼럼과 분석 기사가 실리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코메르산트지의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가 쓰는 블라디미르 푸틴에 관한 고정 칼럼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측근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이 칼럼을 아주 좋아하며 반드시 끝까지 읽는다.

그 다음 중요도가 가장 떨어지는 폴더를 펼친다. 외국 언론의 기사들로 대통령 행정실과 외무부 양쪽에서 스크랩한 것이다. 그 부서들은 나쁜 소식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외국에서 대통령을 얼마나 악마 취급을 하는지 본인이 반드시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려고 독일어 원문으로 된 기사도 포함시킨다. 그가 오래 전 옛 동독 드레스덴에서 KGB 간부로 활동하던 시절 통달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각료들은 문밖에서 계속 기다린다. 푸틴 대통령은 CCTV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기를 즐긴다. 그들은 잡담을 하며 지루해서 몸을 뒤틀거나 휴대전화를 갖고 논다. 그래도 푸틴은 그들을 무시하며 계속 보고서를 읽는다. 푸틴은 인터넷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화면 속에 또 화면이 나오고 메시지가 계속 뜨는 막대 알림판이 혼란스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가끔씩 보좌관들은 그에게 온라인으로 풍자 비디오를 띄워 보여준다. 외국인들이 푸틴을 어떻게 조롱하는 지 본인도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푸틴의 일상생활은 각종 행사와 면담으로 채워진다. 금박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방들이 끝없이 그를 기다린다. 그의 일정은 15분 단위로 잘게 쪼개진다. 몇 년 뒤는 아니더라도 몇 달 뒤까지 일정이 잡혀 있다. 보고서 검토가 끝나면 독수리 모양이 도드라지게 새겨진 일정표 폴더가 건네진다.

[사진 푸틴 공식홈페이지]


푸틴은 일정표를 대충 훑어본 뒤 미소나 즐거운 표정도 없이 묵묵히 그대로 따른다. 접견이나 면담, 행사는 대부분 의미가 없다. 바레인의 왕세자를 영접하거나, 우드무르트인 노동자 영웅들에게 메달을 수여하거나, 연방 우주산업 기관들의 임원 승진을 심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푸틴은 모스크바에 살지 않는다. 그는 모스크바를 싫어한다. 교통체증과 각종 공해,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이다. 그는 노보-오가료보에 있는 궁을 관저로 선택했다. 모스크바 서쪽 외곽이다. 그의 대정원은 붉은 담과 대규모 주택단지, 대형 쇼핑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 관저에서 크렘린궁까지 거리는 24㎞다. 푸틴이 크렘린으로 가겠다고 결정하면 그 노선은 완전히 폐쇄되고 모든 교통이 차단된다. 이동 시간은 25분이 채 안 걸린다. 그동안 모스크바의 교통은 완전히 정체된다. 푸틴은 크렘린 출근을 싫어하며 관저에서 일하기를 더 좋아한다.

2012년 이래 모스크바에서 진행되는 접견과 면담 건수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좋은 인상을 줄 필요가 있는 고관 영접이나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자작나무 키만큼 높은 거울이 갖춰진 호화 홀이 필요한 공식 행사로 국한했다. 그는 크렘린 출퇴근을 짜증스러워 한다.

푸틴은 늘 바쁘게 지내기를 좋아한다. 토요일과 일요일도 예외가 아니다. 주말이면 그의 일정은 좀 더 즉흥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때론 오후에 공부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 영어 교습이다. 교사는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그가 어려운 단어를 잘 익히도록 도와준다. 가끔씩 일요일에 기도와 고백 성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러시아 정교 총대주교실의 사정에 정통한 측근들은 그가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도 아니라는 점을 애써 강조한다.

푸틴은 아이스하키를 아주 좋아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다. 아이스하키가 우아하고 남성다우며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능한 한 아이스하키 연습을 많이 한다. 두껍고 폭신한 헬멧을 쓰고 날렵한 하키 스틱을 들면 마냥 즐거운 듯 싱글벙글한다. 푸틴은 몇 주마다 한 번씩 아이스하키 경기를 주최한다.

러시아 과두체제 사회에서 가장 큰 자랑 거리이자 ‘대통령과 친하다’는 기준이 되는 것이 푸틴의 하키 경기에 초대 받는 것이다. 초대 받은 사람들은 그와 절친한 사이다. 대다수는 그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옛 동료들이며, 그가 신뢰하는 사람들이다. 대개 그들은 사업가로 미국의 제재 대상 목록에 올라 있다. 겐나디 팀 첸코와 아르카디·보리스 로텐베르크 형제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통령과 함께 경기를 하며 늘 지는 쪽을 선택한다. 팀의 나머지는 경호원들로 채워진다.

대통령의 경호원들은 그의 이름이 인쇄된 셔츠를 입고 그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경호원들이 상대팀의 나머지를 구성하며 기쁨조 역할을 한다. 대통령이 주최하는 경기에 총리의 경호원들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지만 총리 자신은 거의 그곳에 가지 않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푸틴의 측근들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부터 그와 함께한 인물들이다. 당시 그는 부시장에 불과했다. 그들은 별장에서 싸구려 고기를 함께 먹었다. 그런 암울한 시절을 같이 지냈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영광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과거 그를 ‘보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근년 들어선 ‘차르(황제)’로 부른다.

푸틴에게 사치의 이야기는 없다. 단지 쓸쓸함의 이야기만 있다. 그는 가정생활이 없다. 부모는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신경질환에 시달렸다. 오랜 별거 끝에 결국 이혼했다. 그에겐 두 딸이 있다. 하지만 그 딸들에 관한 일은 국가기밀로 취급되며 지금 그들은 러시아에 살지 않는다. 밤에 그에게 모델, 사진작가, 체조선수들이 찾아온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신빙성은 없다. 어떤 측근도 그 문제는 확인해주지 못한다.

푸틴은 동물을 좋아한다. 그는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동물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검은 래브라도 사냥개와 함께 있을 땐 마음의 위안을 얻는 듯 편안한 모습이다. 푸틴은 사냥을 좋아한다. 촬영진과 함께 헬기를 타고 회색과 흰색의 툰드라 지대 상공을 날며 호랑이와 곰을 찾으면서 희열을 느낀다. 러시아의 아름다움이다.

대통령 통역관은 그의 일상이 단조롭다고 말한다. 의미 없는 접견과 영접. 규정에 얽매인 대통령 의전. 매년 끝없이 반복되는 틀에 박힌 일정. 그의 차량행렬은 오로지 두 곳 중 하나를 향한다. 크렘린 아니면 공항이다. 푸틴은 자신이 스탈린 이래 어떤 러시아 지도자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역대 지도자 중 아무도 그처럼 자주 출장을 다니고 협상을 하고 러시아를 많이 둘러본 인물은 없다. 그의 비행기는 대통령 전용 터미널인 브노코보-2에서 떠난다. 한동안 러시아 정부청사를 숲이 우거진 이곳으로 이전하려는 제안이 있었다. 그 절반은 거대한 레고 블록 같은 색의 주택단지로 채워지는 계획이었다. 숲과 쓰레기 더미 위에 가상의 공항 복합도시가 그려졌다. 하지만 푸틴은 그 계획이 너무 야심적이라고 판단하고 취소했다.

[사진 푸틴 공식홈페이지]


푸틴이 비행기를 타면 세 대가 함께 움직인다. 한 대는 그의 차량행렬을 운반하고, 또 한 대는 그와 대표단이 타며, 나머지 한대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앞서 날아간다. 그 비행 편대는 브노코보-2 공항에서 한 달에 다섯 차례 이상 이륙한다. 푸틴은 세계 어디든 있고 싶어한다. 서시베리아 옴스크의 산업박람회, 핀란드 북부 러시아령 카렐리아의 군사기지 시찰,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의 정상회의, 또는 한국 국빈 방문 등.

그러나 넓은 러시아 영토 각지의 주지사, 지방 유지, 경찰서장은 그의 눈을 속이려고 잔꾀를 부린다. 최근 모스크바 북동쪽 도시 수즈달의 관료들은 쓰러져가는 나무 오두막들이 너무 부끄러워 새로 페인트를 칠하고 방수포로 싼 뒤 대통령을 맞이했다. 공장과 군사 시설이 너무도 노후화 돼 그 모든 것을 감추려고 애썼다.

해외 방문은 그와 전혀 다르다. 정보기관들이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다. 선발대가 한 달 전에 대통령이 방문하는 도시에 도착한다. 그가 머무는 호화 호텔은 철저히점검된다. FSB와 SVR이 사소한 문제까지 협력해서 완벽한 방문을 준비한다. 호텔방의 보안을 강화하고 화장실의 생물오염을 방지한다.

대통령이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말 그대로 궁전이 차려진다. 호텔이 크렘린으로 변한다. 객실 200개를 예약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한다. 대통령 전용 엘리베이터를 만든다. 외교관들이 배불뚝이 FSO 요원, 손이 축축한 의전 담당 관리들과 혀를 차며 상의한다. 대통령이 머무는 방은 철저히 밀폐된다. 특별 보안팀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도록 한다. 기존의 침대 시트와 화장실 물품들은 전부 버리고 새로 장만한다. 크렘린의 특별 오염방지 조치를 거친 세면도구와 과일로 호텔방이 채워진다.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비행기로 도착한다. 러시아인 요리사, 러시아인 청소부, 러시아인 웨이터 등. 러시아제 트럭이 삑 소리를 내며 러시아 식재료 2t을 내려놓는다. 단 하루 밤을 지내기 위한 조치다. 외교관 여러 명이 주최측과 만찬 메뉴를 두고 여러 차례 협의를 거친다.

유제품은 대통령에게 제공할 수 없다. 국가수반이라도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권할 수 없다. 아무리 음식 전통이 풍요로운 국가에서도 푸틴은 크렘린이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은 외국 음식은 먹지 않는다. 푸틴에게 말 못할 유당 소화장애증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 그보다는 독살 기도를 우려하는지 모른다. 러시아에서 생산된 식재료가 사전에 공수된다. 현지 요리사들은 FSB, SVR, FSO만이 아니라 시식팀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다. 외국이 주최하는 연회에서 푸틴 대통령은 음식에 손을 대지도 않는다.

주최국의 모욕감도 개의치 않는다. 통역관은 뜨거운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이야기 꺼낸다.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 사이에서 흥분과 두려움, 불확실함이 교차한다. 대통령이 도착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마치 자신이 청동으로 만들어져 밝게 빛나는 존재처럼 행동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눈을 마주치면 움찔하리라는 걸 아는 듯하다. 그의 주위에는 침묵이 감돈다. 다 큰 사람들이지만 그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들의 목소리가 달라진다. 가능한 한 나지막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얼굴은 엄숙하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 버린다. 눈을 내리깔고 아래를 바라본다. 걱정과 불안, 경계심이 교차한다.

통역관이 말한다. “대통령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미소를 지어야 한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산책도 원하지 않는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그에겐 언제나 10명이 따라다닌다. 경호가 철저해 누구든 그에게 3m 이내로 접근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속삭이는 참모들, 카메라맨, 경호원들로 둘러싸인다. 그가 있을 땐 정치인들이 크게 이야기하지 않고 늘 귀를 기울인다. 그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은 거의 없다. 그가 연회실에 들어가면 말소리가 잦아든다. 내가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다. ‘대표단 여러분 사인을 받기 위해 옆방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러자 한 각료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입 다물어. 그가 여기 있잖아.’”

푸틴은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다. 팡파르와 함께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끊임없이 이동해야 한다.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다. 그냥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한다. 사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연설문은 사전에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다. 협상에 임할 때도 입장은 미리 확고하게 정해둔다. 협상 자체는 홍보 행사일 따름이다.

각료들도 그와 함께 도착한다. 그와 직접 대화할 정도로 가까운 각료는 거의 없다. 그의 면전에서 농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적다. 하지만 푸틴은 그런 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틈만 나면 완전히 차폐된 침실로 가서 쉰다. 이전에 전부 경험한 상황이라 새로울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각료들도 대통령을 모방하려고 한다. 그들은 그의 제스처와 세상만사를 초월한 듯한 그의 분위기를 흉내 내고 싶어한다. 그들 역시 첨단기술을 혐오하는 척한다. 그의 어조와 비웃는 말투를 모방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와 달리 그들은 밤이 깊어 가면 웃고 마시며 떠든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곳에 없다.

“그는 어느 무엇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듯 무덤덤한 모습을 보인다”고 통역관이 돌이킨다. “마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개의치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산전수전 다 겪고 세파에 지친 모습이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아무도 침투할 수 없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지냈다. 모든 것이 제어되는 상황에서 완전히 고립돼 재미없는 연극을 보듯이 행동한다.

어떻게 보면 덫에 갇힌 신세다. 가까이서 보면 그는 기꺼이 대통령직을 내려놓고 싶어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중세 봉건제도식 외의 다른 방식으로 러시아를 통치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 그의 철권통치가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나고 그는 감옥에 갈 것이다. 그때는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처럼 불에 탈 것이다.”

그의 솔직한 심경 토로를 들은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측근들이 있다. 한 인사에 따르면 그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조국의 운명에 관해 솔직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노브-오가료보의 관저에서 그날 저녁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러시아의 최대 반역자가 누구인가?

하지만 그는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러시아 역사에서 최악의 범죄자들은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재위 1894~1917년)와 미하일 고르바초프처럼 스스로 권력을 내던져버린 약골들이라고 그는 스스로 답했다. 나약한 그들은 히스테리 환자와 광인들이 권력을 잡게 허용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측근들에게 그는 자신은 절대로 그들처럼 처신하지 않겠다고 엄숙한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필자 벤 유다는 오픈데모크라시 기자다.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관련된 분석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 구조를 취재한 `불안한 제국(Fragile Empire: How Russia Fell in and Out of Love with Vladimir Putin)`을 출판했다. 이 기사는 그 책을 쓰기 위해 3년 이상에 걸쳐 전직 총리들, 현 장관들, 주지사들, 고위 관리들, 보좌관들, 일반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필자는 그 인터뷰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현대판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의 개인적 습관과 일상생활을 재현했다. 취재원 보호 때문에 인용자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 결과 진실을 전하기 위해 소설 기법을 사용한 ‘신저널리즘’ 기사가 만들어졌다. 가상처럼 읽히지만 모든 세부 사항은 신중하게 취재된 정보에 근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