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어촌, 여수 적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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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전국 첫 어민주식회사 설립 어촌계 정비ㆍ관광 개발 '전국 모범' |
입력시간 : 2011. 03.22. 00:00 |
"어~, 그런 곳이 있었어요."
21일 오전 전남도청 9층 서재필실. 전남도 실ㆍ국장 주례 회의를 주재하던 박준영 전남지사는 이인곤 해양수산국장으로부터 가난에 허덕이던 여수의 섬마을 주민들의 '성공 신화'를 전해듣고 놀란 표정을 지은 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날 실ㆍ국장 회의에서 화제로 떠오른 섬마을은 전국 최초로 어민주식회사를 설립해 5년만에 전국 최고 부자 어촌이 된 여수 적금도.
여수항에서 뱃길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적금도 주민 58명의 지난해 총 소득은 32억 원.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6000만원으로, 지난 2005년 가구당 1200만 원이던 소득이 5년새 5배 늘어난 것이다.
적금도는 사실 가난한 어촌이었다. 가난한 어촌마을의 변신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전국 최초로 어민주식회사를 설립해 개별소유였던 어장과 어선, 어업권을 공동소유로 전환하고 분업을 통해 마을어업을 탄탄하게 다져나갔다. 어촌계원 자격도 다른 어촌계와는 달리 현지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순수어민으로 철저히 제한했다.
마을 58가구가 어업공동체를 이뤄 기업운영 방식으로 마을을 경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개인이 보유하던 10척의 문어잡이 어선을 공동체 소유의 3척으로 통폐합해 어업자원을 자율적으로 관리했다. 이들은 또 소득의 10%는 어린종패 살포와 어장청소 등 어업환경 개선을 위해 재투자했다. 나아가 바지선에 해양펜션을 만들고 실내풀장, DVD영화관을 갖춰 연간 1억원 이상의 관광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적금도 주민들은 어촌계 구성원 재정비를 통한 결속력 강화, 주식회사형 어촌계 운영방식 전환, 자체 어선어업 구조조정, 어촌계 수익금 재투자, 관광사업 등을 통해 전국 최고의 어촌마을로 탈바꿈했다.'적금도의 신화'는 현재 동영상으로 제작돼 전국 어촌마을에 소개되고 있다.
구례 오미 한옥마을 탈바꿈... 입주 대기자 200명
◇58명이 마을공동체로 45억 소득=여수시 화정면 적금도(면적 0.78㎢) 주민 58명이 지난해 거둬들인 소득은 45억. 절반이 65세 이상인 주민들이 한 명당 7500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5년 전인 지난 2005년 벌어들인 전체 소득 1억7700만원의 27배가 넘고 지난해(35억)보다 10억이나 많다.
한때 찢어지게 가난했던 섬은 지난 2005년 마을 주민들이 자율공동체를 구성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개별적으로 소유했던 어구를 공동 소유로 바꾸고 어업권도 공동으로 변경했다.
“왜 내 어장에서 고기를 잡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던 어민들이 함께 그물을 끌어올리고 바지락을 캐는 사이로 발전했다. 개인적으로 샀던 문어잡이 배들을 모두 팔게 하고 대신, 5t짜리 공동 문어잡이배 3척을 구입했다. 좁은 바다에 10척이 넘는 배가 100줄 이상씩 빽빽하게 쳐놓으면서 ‘자원 고갈’,‘어구 훼손’등으로 몸살을 앓는 일도 없어졌다. 새조개, 참꼬막, 강성돔, 바지락, 천초(톳, 몰자반), 장어, 문어, 김 등 풍부한 수산물은 황금어장의 밑천이 됐다.
이 때문에 어촌계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외지인은 절대 안되고 10년 넘게 섬에 태를 묻은 주민들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어촌계원 가입금으로 9000만원을 줘도 못 들어간다”는 소리도 나온다.
주민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고싶은 섬’ 개발에도 손을 댔다.
2시간40분 걸리는 배편 대신, 도선을 투입해 7분 거리로 바꿨고 풀장과 숙박시설이 딸린 1억5000만원짜리 바지선 5척을 사들여 내부 설계를 직접 했다. 지난해 1747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면서 3300만원의 짭짤한 소득을 더했다.
◇땅 사려는 대기자만 200명, 구례 오미 행복마을=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오미마을은 고풍스런 한옥 25채가 층층이 들어선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운조루가 있는 마을로, 봉황이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형국이라는 금환낙지(金環落地) 형인 천하의 명당이다.
3년 전인 2008년만 해도 ‘명당’일 뿐, 볼품없는 산골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28∼29가구가 어쩔 수 없이 살면서도 “더 살아야 하나”면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찾아오는 사람도 손에 꼽았다. 그러던 촌마을이 땅만 주면 집을 짓겠다는 사람들 200명이 줄을 서는 ‘살만한 마을’로 바뀌었다.
없는 돈을 보태 한옥을 짓는 보조금을 받아 한옥을 짓기 시작한 것. 첨엔 괜한 짓 한다 싶었던 주민들이지만 한옥이 들어서고 길도 깔끔하게 정비되면서 이사 온 사람도 늘자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현재 40가구 80명이 살만한 동네를 지키고 있다.
촌동네가 한 폭의 그림 같은 한옥마을로 탈바꿈하자 마을을 등졌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한옥을 체험하려는 관광객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병주(57) 행복마을 추진위원장은 “기존 마을을 한옥마을로 리모델링한 뒤 매일 집을 짓겠다며 땅을 보러오는 외지인들이 많다”면서 “전통 마을 경관을 지키기 위해 농경지에 절대 집을 짓지 않기로 주민들이 결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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