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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신아시아구상

[기고] 한-ASEAN 특별정상회의와 동아시아 구상 (매일경제 2014.11.27 17:11:56)

[기고] 한-ASEAN 특별정상회의와 동아시아 구상

 

지금 동남아시아에는 한국에 대한 호감이 깊고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여기 사람들은 과거 말레이시아와 버마(미얀마)가 축구에서 우리의 맞상대였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때는 한국이 그다지 커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휴대폰과 자동차로 이어지고 한국 드라마로 넘어간다.

‘겨울연가’로 시작된 한류는 동남아 사람들의 가슴에 한국에 대한 호감을 심어줬다.

북한강의 모래더미 남이섬이 이제 한류 애호가들의 순례 코스가 돼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추억거리를 선사해주고 있다. 지금이 우리에게는 한반도와 동남아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가 동남아와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할 이유가 적어도 세 가지 있다.

첫째, 중국이 부상하고 미국·일본·인도가 움직이는 전환기 상황에서 동북아와 동남아는 안보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중견국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둘째, 경제적으로 동남아는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 교역은 1350억달러, 중국에 이어 2위이며, 우리 해외 투자 대상으로서도 중국과 1·2위를 다툰다.

셋째, 동남아에는 지중해만큼이나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한국의 다문화사회는 동남아가 바탕이며, 동남아와의 교류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을 함양하는 뜻깊은 역할을 할 것이다.

주변의 큰 나라들이 동남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순방을 앞두고 ‘재균형 정책의 핵심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라고 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아세안·일본 특별정상회의에서 200억달러 경제 지원 약속과 함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중국은 아세안과 ‘2020년 1조달러 교역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으며, 지난해 10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에서 ‘21세기 해양 실크로드 구상’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성공 스토리 자체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안보가 어려운데도, 자원이 빈약한데도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이루고, 이제 문화에서까지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한국을 부러워한다. 한국과 꼭 같은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한국이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과 자신감을 주고 한국에 대한 호감과 존경심을 갖게 한다.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을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조건 우리에게 다가오지도 않을 것이다. 좋은 여건은 그것을 활용할 창의적 의지를 만날 때 빛을 낼 수 있다.

우리가 동남아 안보에 직접 기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역내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고 비전통 안보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1990년대 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창설 과정에서부터 동아시아 구상을 제시해온 지적인 원천을 갖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기술집약적 경제 발전을 이룩한 경험이 동남아의 동반자로서 우리가 가진 매력 포인트이자 강점이다. 지금 동남아 국가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생산기지(supply chain) 구축이 아니다.

기술력 제고를 통한 제조업 기반 확보다. 우리가 상생의 의지를 갖고 다가갈 때 동남아는 우리에게 중국에 버금가는 시장이자 남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교두보로 다가올 것이다.

오는 12월 11~12일 이틀간 부산에서 한·아세안 대화 수립 2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된다. 2015년 아세안 경제공동체 출범을 앞두고 상생의 협력 의지를 다지고, 한국과 동남아가 하나의 공동체임을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조병제 주말레이시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