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만원 목걸이, 1000만원 그릇 '메이드 인 차이나 명품' 시대
에르메스가 투자한 ‘샹시아’
중국 전통 살린 고품격 브랜드 표방
작년 파리 진출 … 고객 절반 비중국인
'중국산=싸구려' 고정관념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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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상품=싸구려’라는 생각을 아직 고수하고 있다면 버릴 때가 됐다. 특히 요즘 세계 명품 업계를 들여다보면 그렇다. 내로라하는 명품 그룹이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상품을 만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메이드 인 차이나 명품’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중국 브랜드 ‘샹시아(Shangxia·上下)’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를 운영하는 에르메스 그룹이 투자해 만들었다.
샹시아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 중국인 디자이너 장충얼(蔣瓊耳·36)이 2007년 에르메스 그룹 투자를 받아 설립했다. ‘5000년 중국 역사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중국 전통의 장인정신과 고품격 라이프스타일을 현대화한 브랜드’를 표방한다. 이 브랜드는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중국산 상품 이미지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높은 가격에 물건을 판다. 자기를 대나무로 장식한 다기(茶器) 세트가 최소 1000만원, 금과 대나무를 조합해 만든 목걸이 하나는 1300만원에 이른다.
중국인 장인이 중국에서 제조해 ‘메이드 인 차이나’를 고집하면서도 ‘명품 가격’에 파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샹시아의 디자인 총괄 겸 최고경영자(CEO)인 장은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량생산한 조잡한 상품을 쏟아낸다는 기존 이미지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런 이미지는 최근 20~30년 동안에 형성된 것이지 본래 중국과는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중국의 전통 장인 기술로 만든 최고급 상품을 전 세계가 소비했다. 실크로드는 그래서 만들어진 것 아니냐”고 했다. 중국 명품의 전통으로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에 정면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답변이다.
장 CEO는 중국인으론 처음으로 에르메스 매장 쇼윈도 작업에 참여하면서 에르메스 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2006년 새 쇼윈도 공개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당시 에르메스 그룹 패트릭 토마 회장과 그룹 예술분야 총괄인 피에르 알렉시 뒤마가 의기투합해 샹시아가 탄생했다. 브랜드 설립 후 베이징·상하이 등지에서 주로 중국인 고객을 상대하던 샹시아는 지난해 9월 ‘명품의 본고장’인 프랑스 파리에 진출했다. 에르메스의 초대형·최신식 매장이 있는 세브르가(街)에 들어섰다. 파리 매장 개점 1년이 된 지금, 샹시아의 고객은 중국인이 절반, 비중국인이 나머지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CEO는 “1960~70년대 중국 문화혁명 때는 최고급 상품, 명품을 만들던 장인들까지도 낙후한 농촌으로 내려가 단순 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중국엔 자체 명품의 맥이 끊겼고 중국인들은 서양 브랜드만 명품으로 대접했다. 이제 안목이 높아진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를 찾고 싶어 한다. 그러니 지금이 중국 전통을 담아낸 명품 브랜드가 등장할 적절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 그룹은 사업 규모에 비해 세계 명품 업계의 주목도가 높다. 에르메스 그룹의 지난해 총매출은 38억 달러로 세계 1위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기록한 291억 달러의 13%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명품 브랜드 가방 가격이 200만~500만원대인 데 비해 에르메스 가방은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대다. 하여 ‘명품 중의 명품’이라 불리며 그룹의 행보를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에르메스 그룹이 21세기 전략으로 삼은 게 ‘제2의 에르메스 메이드 인 차이나’, 즉 샹시아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9월 샹시아의 파리 상륙 소식을 전하며 이 브랜드가 ‘중국산임을 감추기보다 중국산임을 찬양(celebrating)하는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명품을 비롯한 소비재 분야에서 중국 시장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에르메스 그룹이 중국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중국 브랜드’를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명품 그룹들도 중국산(産) 혹은 중국풍(風) 명품 브랜드 하나씩은 이미 보유하고 있다. LVMH 그룹은 중국 주류 브랜드 ‘원준(文君·Wenjun)’을 거느리고 있다. LVMH 그룹 포트폴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을 중심으로 한 패션·잡화 분야와 모에샹동 샴페인, 헤네시 코냑 등 주류 분야다. 포트폴리오를 감안하면 60여 개 명품 브랜드를 거느린 LVMH가 그룹의 양대 축인 주류 사업에 중국 백주(白酒) 브랜드를 추가한 것도 향후 중국 소비자가 중국 명품을 찾을 것에 대비한 투자라 볼 수 있다.
최고급 시계·보석 그룹 리슈몽(Richemont)은 중국 전통의상을 컨셉트로 삼은 ‘상하이탕(上海灘·Shanghai Tang)’을 운영 중이다. 상하이탕은 20년대 상하이 지역 상류 사교계 의상인 치파오(旗袍)를 기본으로 남녀 의류와 액세서리 등을 낸다. 94년 홍콩 사업가 데이비드 탕이 설립한 것을 98년 리슈몽이 인수했다.
구찌·보테가베네타 등을 소유한 세계 2위 명품그룹 케어링(Kering)도 중국 디자이너를 내세운 보석 브랜드 ‘키린(Qeelin)’을 갖고 있다. 키린은 중국 둔황(敦煌) 유적에서 출토된 예술품에서 영감을 받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신수(神獸)로 통하는 외뿔잡이 기린(麒麟)을 브랜드 이름으로 삼은 지극히 중국적인 브랜드다.
중국에는 계왕개래(繼往開來)라는 말이 있다. 중국 문화의 찬란한 전통을 계승하자는 최근의 중국 내 여론이 반영된 문장이다. ‘이전 사람의 사업을 계승해 앞길을 개척한다’라는 뜻이다. 세계 명품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명품 그룹들은 중국인 사이에 꿈틀대는 계왕개래 정신을 적극 공략 중이다.
강승민 기자
* 사진 설명
1. 자사 제품을 입은 중국 명품 브랜드 ‘샹시아’의 최고경영자 겸 디자이너 장충얼(36).
2. ①②③ 드래곤 펄(Dragon Pearl)이라 불리는 샹시아의 반지. ④ 정원(庭園)을 닮은 샹시아의 반지. ⑤ 가마에 구운 전통 도기에 중국 래커칠을 한 샹시아 팔찌. ⑥⑦ 주얼리 브랜드 ‘키린’의 열쇠고리와 목걸이. ⑧ 중국 전통 백주(白酒) 브랜드 ‘원준’(文君).
3. 중국 명(明)나라 시대 가구를 모티브로 해 만든 샹시아의 조명.
4. 0.5㎜도 안 되는 얇은 대나무 가닥을 엮어 백자(白瓷)와 조화시킨 샹시아의 다기(茶器) 세트.
5. 샹시아에서 나온 중국 전통 놀이 마작(麻雀)용기구.
6. 브랜드 ‘상하이탕’(上海灘)에서 올 가을·겨울용으로 선보인 여성 의상.
[사진 각 브랜드]
[S BOX] 전통·장인정신·혁신 3박자 갖춘 명품, 동양에 드문 까닭
가격만 무턱대고 비싸다고 명품은 아니다. 대개 명품의 조건으로 꼽히는 건 전통·장인정신·혁신 세 가지다. ▶전통, 즉 역사·문화적인 전통에 기반해 태어난 상품이어야 하고 ▶수준 높은 장인정신과 숙련된 기술이 이를 뒷받침하며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고 현대인의 안목·취향에 맞도록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진짜 명품으로 대접받으며 브랜드 생명이 오래 유지된다. 서양 브랜드만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아닐 텐데도 왜 아시아에서 태어난 명품 브랜드는 거의 없을까.
서양 브랜드가 지금처럼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춰 크게 성장한 건 1990년대 이후다. LVMH 아르노 회장 같은 인물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산업을 키웠다. 아시아에도 명품 조건을 갖춘 상품은 많지만 이런 투자는 서양 브랜드에만 집중됐다.
명품의 3요소를 적절하게 엮고 이를 대중에 널리 알려야 브랜드가 완성된다. 이러려면 든든한 자본력이 필수다.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춘 어떤 상품이 있다 해도 이것이 마케팅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고 상업화돼 ‘브랜드’가 될 때까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생산 기반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명품 그룹이 중국 브랜드를 탐내고 장기적인 투자에 나선 건 이런 맥락이다. 샹시아의 장 CEO는 “ 우린 10년, 20년이 아니라 100년 후 샹시아를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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