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원래 그런곳. 바뀌려면.." 예비역 얘기 들어보니
왜 군대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가…예비역 9명 허심탄회 인터뷰
"멀쩡한 사람도 군대에 있으면 어쩔 수 없어요. 군대가 원래 그런 곳이에요."
심신 건강한 20대 예비역 3명이 말했다. '참으면 윤 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떠돌고 있다. 대부분은 이들 3명처럼 적당히 참고 적당히 순응하며 2년여를 버텼다. 문제를 인식했으나 바꾸지 못했다. 군대 안에서는 순응하는 게 최선이었고 지금은, 내 아이를 보내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벌백계'를 천명하고, 육군참모총장이 사의를 표하고, 국방부는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민관군 병영문화 혁신위원회'마저 출범했다. 하지만 예비역들은 군 문화 개선에 회의적이다. 왜 목격자들 다수가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내부 사정을 제대로 알지 않으면 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군대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예비역 9명에게 들어봤다.
◇군대는 원래 그런 곳?
"성인이긴 하지만 사회와 단절된 새로운 조직인 군대에 입대하는 순간 갓난아기와 같은 존재로 돌아가게 된다. 훈련이라는 목적으로 행동이 통제되고 결국 사고가 통제된다. 해당 조직에서 구타를 용인하는 분위기라면 새로운 조직원 입장에선 따를 수밖에 없다. 군대라는 계급사회 안에서 나만의 주관을 지키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위로부터 지시받는 존재일 뿐이다."(서모씨·29)
군대는 싸워 이겨야 하는 특수 조직이다. 훈련이나 실전에 필요한 상명하복은 평시에도 24시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폐쇄적이고 계급적인 조직에 2년 단기계약을 맺고 들어온 신입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이모씨(31)는 "자대 배치를 받으면 내 편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불합리한 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들 수밖에 없다. 억지로 끌려온 거니, 어차피 계속 군인 할 것도 아니니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다. 괜히 문제 일으키고 찍히면 피곤하니까. '까라면 까는' 건 개인적으로는 몸 사리는 행동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모씨(32)는 "기본적으로 군대는 살인집단이다. 배우는 것도 결국 사람 죽이고 살아남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군대 내에서는 여러 종류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폭력 자체에 무덤덤해지기 때문에 구타가 발생한다. 내가 맞았으니 때린다기보다 폭력, 가혹행위가 일상화되면서 폭력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모씨(28)는 "군대가 군인권센터나 다른 시민단체의 간섭을 받는 일반적 행정기관이었다면 윤 일병 사건과 같은 일이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군대가 외부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그들만의 폐쇄적인 조직 논리를 고수하는 한, 사적인 영역에서도 상명하복의 질서를 따라야 하는 한 제2의 이 병장을 아무도 컨트롤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KBS가 4일 오후 육군 28사단 윤일병 폭행 사망사건과 관련해 육군이 진행한 현장검증 사진 44장을 단독 입수해 공개했다. 사진은 '바닥 음식물 핥기' 상황을 재연하는 모습. (KBS 화면 캡쳐) /사진=뉴스1
◇안보? 군기? 문제는 '똥군기'
"질서가 폭력을 동반해야 유지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수시로 전쟁하는 미국이랑 이스라엘도 안 그런다. 난 물에 밥 말아먹었다고 갈굼 당했다. 그런 게 많다. 자기 가오 잡기 위해 애들 괴롭히는. 상병 이상부터 말아먹을 수 있고, 포크 숟가락은 병장만 사용 가능. 병장부터 팩할 수 있고, 이상한 게 많다."(이모씨·31)
많은 사병들이 군대에서 기강과 질서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문제는 '위계질서'나 '안보' 등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폭력과 가혹행위, 인격모독이 전투력과 무관한 선임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정모씨(29)는 "북한이나 러시아도 병영 내 폭력이 만연하다고 하지만 한국군만의 특징 중 하나가 일명 '똥군기'"라며 "예를 들어 '이등병은 혼자 군대매점을 이용할 수 없다'는 등의 전투력과는 무관한 관행들이나, 무슨 괴상한 동작 만들어서 멋들어지게 하면 군기 잘 들었다고 칭찬하는 각종 해괴하고 터무니없는 일들이 폭력을 강화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모씨(29)는 "'군대 기강을 내세우며 선임이 폭력을 휘두르는 건 변명이자 대의명분일 뿐"이라며 "군대에서 적이라 설정하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현재 군대 내 장교들조차 전투력 창달이나 전쟁 생각은 크게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스트레스 해소가 급해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군 기강에 대한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씨는 "군 기강은 상명하복이 아니라 자기 할 일을 제대로 할 때 확립되는 것으로 정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씨는 "지금 군대에서는 일이병이 뭘 잘못하면 무조건 상병장을 갈구는데 이런 구조에서 선임들의 폭력은 없어지지 않는다. 계급에 상관없이 잘못에 대해 본인에게 책임을 묻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민감시단 회원들이 5일 오전 경기도 양주시 육군 28사단 군사법원에서 열린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 결심공판을 참관한 뒤 정문 앞에 추모의 메시지와 리본을 묶고 있다. /사진=뉴스1
◇군대 문화 바뀌려면…
"군은 물론 전쟁에 대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년들이 '모두' 징병되는 점을 고려하면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군인이니까'라기보다 '국민이니까' 혹은 '청년이니까'로 말이다. 막말로 전시상황은 아니잖나. 다 직업군인도 아니고 억지로 끌려 온 건데. 군대가 장병들에게 군인 정신을 강요하기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손모씨·29)
많은 예비역들은 군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치 않는 이들까지 모두, 어떤 검증도 없이 모두 끌려오는 현재의 징병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심모씨(34)는 "속박이 기본에다, 훈련이다 사역이다 짜증나는 일상이 거듭되면서 폭력성이 저절로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회에서야 짜증나는 사람과 안 보면 그만이지만 늘 함께 내무반에서 지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분노와 스트레스가 증폭될 수밖에 없다"며 "내무반에서 폭력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사실상 말년병장뿐인데 1명이 의지를 갖고 바꿔도 1~2개월 후 바뀌면 말짱 도루묵이다. 현 징병제 체제에서 안전지대, 근본 해결책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군대의 변화는 간부와 선임병 등 윗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우씨는 "윤 일병 사건은 윗대가리들이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사단장, 연대장이 자주 와서 "구타하면 가만 안 둔다"고 중대장한테 말만 해도 아무도 애들 못 때린다"며 "내가 있었던 부대도 2000년대 전까지는 폭력이 일반화돼 있었는데 사단장이 폭력 척결시킨다고 대대적으로 사정작업을 한 이후 공식적인 폭력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서씨는 "폭력이 용인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건 병장과 상병 등 선임병들이다. 선임병들에 대한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들이 변화를 주도해야 군대문화가 바뀐다. 후임병들의 목소리만 듣다간 조직 내 괴리감만 커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폭력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침묵하지 않고 신고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강력한 비밀보장과 특혜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줄을 이었다.
박씨는 "군대라는 곳이 들어오면 2년 동안은 나갈 수 없지 않나. 순응하지 않으면 전출을 가든가 왕따를 당하며 살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문제를 처리해주지도 않는다. 소원수리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오히려 글씨체 검사를 해서 찌른 애들이 고통을 받는다. 그러니 고참이 때리라고 시키면 때릴 수밖에 없는 거다"라고 말했다.
최모씨(26)는 "현재는 신고를 하면 진상규명이 되기보단 전 부대를 들쑤시면서 다른 애들은 뭐 없나 전부 초긴장 상태를 만들고 간부들이 생활 이곳저곳에 더 개입하니 선임병도 짜증나서 이것저것 교묘히 딴지를 걸게 된다"며 "한바탕 후폭풍을 생각하면 도와주고 싶어도 그냥 이게 문화다 하고 넘어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구타나 폭행사건 일어나면 부대장이 피해자는 보호하고 가해자는 엄벌한다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가해자 부대를 옮기거나 징계만 해도 엄청난 압박을 느낄 것"이라며 "구타나 가혹행위는 벌어지면 피곤하고 까딱 잘못했다 부대장 진급에 영향 미칠 수 있어서 모른 체하는 문화가 있다. 오히려 폭행사건 시 가해자 피해자 조사 제대로 해 조기에 진화한 경우엔 부대장이 잘한 거라고 칭찬해주면 신고 문화가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들이 5일 연천 28사단 977포병대대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의무 내무반을 찾아 현장 조사후 부대 장병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뉴스1
◇전문가들 "강한 군대는 폭력 아닌 인간적 신뢰로 가능"
예비역들의 목소리는 전문가들 의견과도 상당부분 겹친다. 전문가들은 군내 질서는 폭력이나 가혹행위로 결코 유지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자기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군대와 같은 폐쇄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이 병장의 잠재적 공격성이 극대화돼 표출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군대에서 위계질서는 필요하지만 물리적인 군기가 아니라 인간적 신뢰관계 중심이 돼야 한다"며 '강한 군대'란 물리적 힘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군대다. 불신하고 서로 물어뜯는 군대는 오합지졸이며, 우애 있고 유대감이 강화된 조직이 실제 전투에서도 유리하단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학적인 성격이나 인성문제를 지닌 이들을 현역병에서 배제하고 엄선해야 한다면서도 모병제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그는 "모병제는 결국 예산 문제인데 현재 1년에 병사 1인당 150~160만원인 연봉을 1500~1600만원 선으로 끌어올리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라며 "또 군의 사회적 대표성 측면에서도 돈 있고 배운 이들이 군을 기피하면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을 지켜주는 꼴이 돼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 치우치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 교수는 "윤 일병 문제는 군에 1차 관리감독 책임이 있지만 군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변화시켜야 한다"며 "절대선의 제도는 없다. 병사들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군의 규율과 기본원칙은 준수하되 개인의 존엄성은 지켜주고 가혹행위가 없도록 감시하는 일은 어렵지만, 회피할 수 없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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