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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영유권 분쟁

여기는 대한민국!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24시(주간조선 2013.12.16)

여기는 대한민국!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24시

 

▲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photo 조선일보 DB
“1년에 60일 정도 사람이 머무릅니다. 올해는 68일 체류했네요. 평균 2주일, 그것도 좀 길어진 거예요. 11월부터 2월까지 동절기에는 접근하기 어렵고 태풍 오는 7~9월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에 2주 이상 머물기 어렵다는 곳.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식수를 사서 갑니다. 담수화 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부족한 편이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우리나라 해양과학 발전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덕분입니다.” 가장 최근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다녀온 국립해양조사원 해양관측과 유학렬 주무관의 이야기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물이다. 미국에도 10여종의 관측 장비를 갖춘 타워형 관측소는 있지만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만큼 대규모의 해양과학기지는 없다. 주변에 아무런 인공시설이 없고 주기적으로 유지·보수가 이뤄지기 때문에 세계 해양과학계에서도 이어도의 관측 자료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막상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측에서는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다. 기지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가급적 취재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도는 우리나라 ‘공식 최남단’ 마라도에서도 남쪽으로 149㎞ 떨어진 곳에 있는 수중 암초다. 가장 얕은 곳이 수심 4.6m이고, 수심 40m 기준으로 동서로 약 750m, 남북으로 약 600m 넓이다. 바닷속에 잠겨 있다 보니 좀처럼 높은 파도가 치지 않는 이상은 육안으로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어도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어부들에 대한 제주도 전설은, 이어도를 발견할 만한 날씨는 파도가 높게 쳐 조난당하기 일쑤인 사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이 암초 위에 서 있다. 전체 높이는 76m. 바닷속에 잠긴 부분이 40m이고, 해수면 위 36m 높이에 연면적은 1320㎥(약 400평) 규모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해양 관측을 위해 세운 플랫폼 형식의 구조물이다. 제작에서 설치까지 순수 우리 기술로만 만든 해양과학 기술의 집약체다. 1986년 당시 수로국(국립해양조사원)은 이어도 지역에서 자주 발생하는 선박 좌초 사고 등을 방지하기 위해 등대 시설을 포함한 해양·기상관측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1987년 해저에 고정해 해수면 위로 띄워 장애물 위치를 표시하게 한 구조물인 등부표가 설치됐지만, 본격적인 고정식 해양과학기지 건설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의 일이다. 2002년 10월 하부구조 설치를 완료하고 2003년 6월 11일 준공을 마쳤다.
   
   총 5개 층, 일반적인 건물의 높이로는 26층짜리 거대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무게만도 3400t에 달한다. 이어도 기지는 기본적으로 부산에 있는 국립해양조사원(원장 박경철) 등에서 인공위성을 통해 원격조종을 해 작동하지만, 기지 보수나 시설 점검을 위해 연구원들이 머무를 때도 있다. 한 번 갈 때마다 평균 2주일 정도 머무른다. 종종 3주일간 머물러야 할 때도 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배를 타기 어려울 때다. 이어도 지역은 항상 파도가 높고 날씨의 변화가 심하다. 지금은 부산의 국립해양조사원에 있는 유 주무관은 전화통화에서 “동절기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수준이고 태풍이 지나가는 7~9월 여름철에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체류하기는 어렵다”며 연구의 어려움을 설명하기도 했다.
   
▲ 태극기를 게양하는 연구원들.
기지의 1, 2층과 3, 4, 5층 사이에는 전동식 계단이 설치돼 있는데, 1층 접안시설을 통해 무단침입이 있을 경우 전동계단을 들어 올려 3층 이상으로 접근을 차단한다. 망망대해에 있는 기지인 만큼 좁은 접안시설에 배를 대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핵심 시설은 4, 5층에 몰려 있다. 각종 관측 장비와 헬기 착륙장은 5층에 있다. 4층에는 관측 자료들을 처리하는 관측실이 있다. 간단한 취사가 가능한 식당 겸 휴게실, 4인이 머무를 수 있는 침실 2개, 화장실 2개도 있다. 이어도 기지의 전력원은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이다. 헬기장 바로 아래 옥상에 18㎾급 태양광발전 시설이 설치됐고 이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를 대비해 2기의 디젤발전기도 갖췄다.
   
   이어도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면 23시간, 가까운 서귀포에서도 8시간 걸린다. 원래도 원격조종으로 작동되는 기지다 보니 연구원들이 가 있어도 물자를 넉넉히 보급받을 수가 없다. 유 주무관은 “입도하기 전 제주도에서 즉석식품 위주로 먹을거리를 사서 간다”고 설명했다. 물은 해수담수화 장치로 바닷물을 정화해 쓴다. 늘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머무르며 연구하는 연구원들은 물을 아껴 쓰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한다. 유 주무관은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해양누리호를 통해서 보급품을 받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해양누리호는 2011년 11월부터 취항하기 시작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관리 전용선으로, 기존에는 제주도에서 8시간 이상 걸리던 거리를 3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성능을 자랑한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태풍 또는 이상기후로 인한 장비 고장으로 관측자료 수신이 중단될 경우도 있는데 해양누리호의 취항으로 즉각적인 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내에는 기지국이 설치돼 있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짧은 기간 체류하던 것이 기지의 시설 강화로 연구원들의 체류 기간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4월 19일 해양수산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를 단계적으로 유인화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한 관계자는 “앞으로 해양과학기지의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유인기지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그만큼 이어도 해양과학기지가 우리나라 해양과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는 주변 해역을 관찰할 수 있는 해수면 관측 장비, 레이더 파고계, 유속계 등이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되고 있다. 관측 장비들을 통해 얻은 인근 해역의 수온, 염분의 변화 등은 인공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현재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서 관측되는 자료는 국립해양조사원을 비롯해 소방방재청, 해군작전사령부 등으로 전송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 해양위성 검보정 네트워크 관측기기(AERONET-OC)’ 장비도 설치했는데, 이 장비를 통한 관측 결과는 NASA 홈페이지에 제공된다. AERONET-OC는 대기와 해수에서 나오는 빛의 양을 측정하는 기구로, 유럽과 미국 등에 10여개만 설치된 장비다. 인공위성에서도 바다 색깔을 관측할 수 있지만, 이 장비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바다색을 측정하게 된 것이다. 유 주무관은 “해상부유물이나 오염 정도, 적조현상 등은 바다 색깔만 봐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며 “AERONET-OC의 관측 결과가 위성 자료의 정확도를 높이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관측실. photo 국립해양조사원
무엇보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관측·연구가 우리나라 해양·기상과학에 도움을 주는 것은 태풍을 관측하는 데 있다. 작년 11월 국립해양조사원이 발표한 ‘이어도 해양과학정보 특별호’를 보면 이어도는 한반도로 접근하는 태풍의 길목에 서 있다고 한다. 2012년 한 해만 해도 한반도에 상륙한 7호 태풍 카눈, 14호 태풍 덴빈, 15호 태풍 볼라벤은 물론 한반도를 비켜 간 10호 태풍 담레이의 진로가 겹치는 부분이 바로 이어도다. 그래서 이어도에는 풍향풍속계, 종합기상관측계 등이 설치돼 있다. 그러면서 태풍의 예상 진로와 규모를 측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파도와 풍향·풍속을 관측할 수 있다. 유학렬 주무관은 “기존에 예측된 태풍의 강도를 수정·판단할 수 있는 장비들”이라면서 “태풍이 제주도에 상륙하기 6시간 내지 4시간 전에 태풍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어도 인근 해역은 주변 국가 관할 구역의 경계일 뿐 아니라 각종 해류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쿠루시오난류와 서해 저층냉수, 중국 장강에서 흘러나온 물이 교차하는 지점이라 다양한 어류가 발견된다. 우리나라 서해 지역의 어족 수가 급감하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어도 지역의 어장 개발이 필수적이다. 깊은 바다로만 이뤄진 주변 해역과는 달리 이어도 지역은 지형 특성상 다양한 수심에 따른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가 한반도 해양 영토의 시작 지점에 있다 보니 우리나라 해양 경제 활동의 핵심 통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량의 90%가 이어도 남쪽 해상을 통과하는데, 특히 천연가스와 석유 수입량의 99.8%가 이어도 해역을 지난다. 이 때문에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해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수색전진기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해양경찰청은 1년 365일 상시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주변을 맴돌며 기지를 지키고 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에 연구원들이 머물 때에는 하루에 한 차례씩 정기적인 소통을 한다. 유학렬 주무관은 “육안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불법 선박이나 외국계 선박에 대한 점검을 해경이 대신 해주고 있다”며 “기지를 수호하고 보호하는 데 해경의 역할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 돈 대다 YS와 마찰로 무산 노무현 대통령 재가로 10년 만에 결실”

 (주간조선  2013.12.16)

김시중 전 장관이 밝힌 이어도 기지 탄생 비화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가 없었으면 아마 이어도가 중국에 그냥 넘어갔을 겁니다. 우리가 떼쓸 거리가 전무한 상태에서 뭘 갖고 중국과 거래를 하겠습니까. 공해상에 세워놓았지만 그 기지 덕분에 이어도 주변은 사실상 우리 바다가 된 겁니다.”
   
   김시중(81) 전 과학기술처 장관(현 고려대 명예교수)은 최근 중국과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로 새삼 주목받고 있는 이어도 문제만 나오면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이어도가 사실상 우리 영토임을 웅변하고 있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산파 역할을 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9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자연계캠퍼스 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서울센터에서 만난 김 전 장관은 “당초 이어도 기지를 만들 때는 순전히 과학적 필요에 의해 만든 건데 정부가 이어도까지 포함되도록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해 명실상부한 우리 바다와 하늘이 되니 큰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고 했다.
   
   김 전 장관에 따르면, 2003년 세워진 이어도 기지는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산물이었다고 한다. 예산 부족 때문에 몇 번의 중단 위기를 겪다가 10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고 한다. “이어도 기지의 아이디어는 내가 과기처 장관이 된 1993년 해양연구소(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초도 순시 때 나왔어요. 그때 책임연구원으로 있던 이동영 박사가 ‘해수면 5m 아래 있는 암초’에 대해 얘기하더군요. 당시 이름은 이어도가 아니라 파랑도였는데 파도가 칠 때만 보이는 이 섬 주변의 어류 생태를 정부가 지원해 한번 조사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퍼뜩 머리를 스친 게 미국 유학 시절 대서양 휴양지에서 본 무인 구조물이었어요. 바다 한가운데 막대기 같은 구조물을 세워놓고 거기서 다이빙을 하면서 즐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바다에 등대 같은 구조물을 세워 놓으면 어떠냐는 생각을 했죠.”
   
   단순한 바다 위 구조물 구상은 금방 과학기지로 발전했다고 한다. 이어도 암초의 토질이 등대를 세울 정도로 단단하고, 특히 이어도가 태풍의 길목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1959년 사라호 태풍이 이어도에서 제주도까지 오는 데 10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어도에 과학기지를 세우면 이런 대형 태풍을 예보해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고 연구소 측에서 그래요. 이어도 기지가 연구소가 나서서 할 게 아니라 나라가 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죠.”
   
   김 전 장관은 이어도 과학기지 구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국제법적인 측면도 많이 따져봤다고 한다. “유엔해양심판관으로 있던 고려대 법대 박춘호 교수한테 전화를 걸어 이어도 과학기지가 유엔해양법에 저촉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죠. 한 보름 있다가 연락이 왔는데, 유엔 측 인사들과 상의한 결과 유엔해양법에서는 그런 해상 기지를 오히려 권장한다는 답이었습니다. 암초에 선박이 충돌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해상 안전 측면에서 좋다는 거예요.”
   
   김 전 장관은 “그런 유권 해석을 들은 후에도 일을 단단히 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중국대사관, 일본대사관에 문의하는 절차를 거쳤다”며 “당시 두 대사관 모두 이어도 과학기지가 해상 안전을 위해 좋다는 답을 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장관은 “유엔 등에 문의하는 과정에서 이어도가 공해상에 있긴 하지만 기지를 지으면 나중에 관할권 다툼에서 유리하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도는 가장 가까운 유인 섬이 우리나라의 마라도로, 이어도와 마라도의 거리는 140㎞ 정도다. 중국은 가장 가까운 섬이 둥다오로 약 247㎞ 떨어져 있다. 이어도는 해안선으로부터 200해리(370.4㎞)가 인정되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와 중국의 EEZ 안에 모두 포함된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EEZ가 겹쳐져 있는 특정 지점의 관할권은 국제해양법상 유인 섬에서 누가 가까우냐는 근거리 우선 원칙, 또는 중간선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그럴 경우 이어도는 우리 EEZ 안에 있고 여기에 과학기지 같은 것을 세워 놓으면 나중에라도 우리가 관할권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김 전 장관은 “과기처만 갖고는 힘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국방부 등 관련 8개 부처에 모두 문의해 이어도 과학기지가 ‘필요하다’는 답을 얻었지만 돈을 쥐고 있는 경제기획원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정재석 당시 경제부총리를 찾아가 이어도 기지 얘기를 꺼냈죠. 그런데 이 양반이 얘기를 꺼내니까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과학기술 행정이나 잘하세요. 나라 영토 넓힐 생각 하지 마세요’ 이래요. 결국 돈이 없다는 얘기였죠.”
   
   김 전 장관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정재석 부총리를 게속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다 나온 아이디어가 ‘이어도 관광지’였다. “내가 돈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며 정 부총리에게 제시한 게 잠수함 관광지였습니다. 괌에서 얻은 아이디어인데 이어도에 헬기 이착륙이 가능한 헬리포트를 만들고 그 밑에 소형 잠수함 선착장을 만들어 해저 관광을 시키자는 아이디어였죠. 정 부총리가 ‘좋다’며 ‘관광회사에 시설을 짓도록 해 20년간 운영하고 기부체납토록 하자’고 하더군요.”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현실화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접촉한 관광회사 사장들마다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다. “한진관광을 처음 접촉했는데 사장이 만난 지 보름 만에 찾아와 ‘못하겠다’는 거예요. 잠수함도 사야 하고 어쩌고 하면서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삼성그룹 계열의 관광회사와도 접촉했는데 거기도 반응이 똑같았어요.”
   
   유일한 진전은 김 전 장관의 ‘고집’을 높이산 정재석 부총리가 기초조사비 명목으로 2억원을 건네준 것이었다. “자꾸 들볶으니까 그 양반이 어떤 구조물을 지을 수 있는지 기초조사나 하라고 2억원을 주데요. 그래서 그걸 해양연구소에 주고 시뮬레이션을 시켰죠. 과학기자재를 설치할 1, 2층과 헬리포트를 설치할 3층, 그리고 태양전지를 깔 집열판 면적 등을 합쳐서 1157㎡(350평)와 1653㎡(560평) 두 종류의 구조물을 시뮬레이션 해보라고 시켰죠. 각각 비용이 128억원과 220억원이 나오데요. 삼성그룹까지 나가떨어졌는데 이 돈을 어떻게 구합니까. 그래서 일단 손을 놓고 있었죠.”
   
   시간은 이어도 기지 첫 아이디어가 나온 지 7~8개월이 지나 1994년으로 해가 바뀌어 있었다. 1994년 8월 말쯤 느닷없는 ‘반전’이 이뤄졌다. “어느날 삼성중공업 사장이 저를 찾아왔어요. 삼성중공업에서 이어도 관광기지 사업을 하겠다는 겁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이건희 회장 지시래요. 독일에서 머물다 돌아온 이 회장이 계열사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데 삼성관광 사장이 이어도 사업을 포기했다는 보고를 한 겁니다. 이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이 소리를 지르며 ‘장관이 개인적으로 필요해서 하는 거냐.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 아니냐. 삼성관광으로는 안 되고 삼성중공업이 나서서 하라’고 지시를 했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삼성중공업이 나서 사업을 진척시키는 중에 또 다른 ‘반전’이 찾아왔다. 1995년이 되자 삼성그룹과 김영삼 정권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이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게 되고, 재벌의 선단식 경영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개혁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미묘한 정치적 갈등이 생기면서 정부 사이드에서 추진되던 삼성그룹 사업이 다 중단돼 버렸어요. 나도 이미 1993년 12월 장관직을 그만둔 상태였고. 더욱이 1996년이 되면서 해양수산부라는 신생 정부 조직까지 생겨 버렸어요. 당연히 이어도 사업은 공중에 붕 떠버렸죠. 내가 후임 과기처 장관들한테 이어도 사업을 챙기라고 얘기하면 해수부 소관이라고 미루고, 해수부는 또 본래 과기처가 하던 일이라고 미루고. 7~8년을 허송세월 할 수밖에 없었죠.”
   
   김 전 장관은 후임 장관들을 채근하면서 속이 탔다고 한다. 전문가들을 만나면 “이어도 기지가 들어설 곳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어류의 보고로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곳”이라는 하소연이 들려오기 일쑤였다. 그러던 와중에 다시 정권이 두 번 바뀌어 2002년 12월 노무현 정권이 탄생했다. 김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결심’을 했다고 한다. “노무현 당선인이 해수부 장관을 지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양반이 해양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 당시 해수부 장관이 김호식씨였는데 무작정 장관실로 찾아갔어요. 장관들은 전직 장관이 찾아오는 걸 싫어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기획관리실장 배석시켜 달라’고 부탁해 놓고 안면 무릅쓰고 갔죠.”
   
   당시 김 전 장관은 김호식 장관을 만나 “노무현 당선인께서 이어도 기지를 아마 이해하실 것이다. 당선인이 해수부 장관을 지내지 않았느냐. 이건 해양산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학기지다. 정부에서 만들어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예상대로 김호식 장관도 “우리도 조사해 보니까 그렇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답을 했고 만난 지 며칠 후 전화를 걸어와 “하기로 했다”며 재가가 났음을 알려왔다. 아이디어가 나온 지 10년 만에 이어도 기지가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김 전 장관은 이후에도 수시로 이어도 기지 공사의 진전상황을 체크했다고 한다. 구조물을 어떻게 세우는지, 시설은 어떤 걸 갖추는지를 줄곧 관심을 두고 챙겼다고 한다. 이어도 기지의 시공사는 최종적으로 현대중공업이 낙찰받았고 공사비는 186억원으로 결정됐다. 당초 1157㎡ 기준 128억원이던 비용이 허송세월을 하는 동안 그만큼 인상된 것이다. 김 전 장관은 “만약 삼성중공업이 사업을 맡았으면 1995년에 완공했을 것”이라며 “7~8년간 사업이 표류했지만 결국 사업이 유종의 미를 거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2003년 이어도 기지 준공식 때 참석해 허성관 당시 해수부 장관과 함께 인천에서 원격 준공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김 전 장관에 따르면, 이어도 기지는 빈틈없이 만들어졌고 실용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기지가 들어선 암초의 토질와 강도를 완벽하게 파악했고, 공법도 거기에 맞도록 신경을 썼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바닷속에 박은 철근은 포항제철에 의뢰해 특수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기지 내의 설비는 거의 대부분 자동화 시스템으로 설계돼 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중국이 이어도가 자신의 섬이라고 떼쓰는 이유는 해저자원이나 풍부한 어류자원뿐 아니라 중국 연안의 심도가 낮아 이어도 인근으로 항로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작용한다”며 “이미 과학기지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해양법의 원칙과 논리에 따라 당당하게 이어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면 된다”고 했다.

 

이어도 사태로 다시 주목받은 제주해군기지

 (주간조선  2013.12.16)

이어도 해역 방어에 결정적 역할 공정률 40% 반대파선 예산삭감 시위

 

▲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항만 방파제 공사현장. 해상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오탁방지망이 쳐져 있다.
지난 12월 11일 제주국제공항에서 1시간 차를 달려 서귀포시 강정동 일대 제주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도착했다. 기지건설 반대투쟁으로 점철된 현장, 기자는 이곳 취재가 처음이다. 강정마을의 입구인 강정교(橋)에는 대나무 장대에 매단 ‘해군기지 결사반대’ ‘No Naval Base(해군기지 반대)’라고 적힌 노란 깃발 수십 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강정교 너머부터 시작되는 공사 현장을 둘러싼 높이 6m 현장 가림막은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었다. 반대 시위대가 걸어둔 현수막은 덕지덕지 내걸려 있었다. 해군기지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의 이름도 ‘통곡의 문’이다. 해군 측에서 붙인 이름은 아니다. 기지건설 반대 시위대들이 정문 입구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럼비야 사랑해’란 글과 함께 갈겨쓴 이름이다.
   
기자와 동행한 해군본부 서울공보팀의 최태복 대령은 “2011년 2월에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한 이후 현장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공개한 기억은 없다. 주간조선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공사는 당초 2010년 1월 착공 예정이었으나 일부 시위대의 거친 반대로 1년 정도 지연됐다.
   
   ‘통곡의 문’을 통과하자 49만㎡에 달하는 제주해군기지 부지가 위용을 드러냈다. 항만부는 부산의 해군작전사령부와 비슷한 규모라고 했다. 바다 쪽으로 남(南)방파제와 서(西)방파제가 보였다. 거의 윤곽이 다 드러났다. 길이 1496m에 달하는 남방파제와 서방파제는 해군기지의 핵심시설이다. 기지 내 크고 작은 함정들을 높은 파도로부터 지켜내게 된다. 해군기지 부지 위에는 방파제 바깥쪽에서 거센 파도를 잘게 부수는 역할을 맡을 각종 삼발이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헤아릴 수 없이 쌓여 있었다. 잠수함이 정박할 부두도 대략 윤곽을 잡아가고 있었다.
   
   공사 현장에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고, 트럭과 크레인만 바쁘게 돌아갔다. 서방파제 앞에 버티고 선 겐트리크레인은 3000~4000t의 방파제 블록(케이슨)을 찍어내고 있었다. 케이슨은 아파트 10층 높이에 달하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방파제의 기초다. 해군기지사업단의 송진영 소령은 “케이슨은 아파트를 짓듯이 철근과 콘크리트를 연속타설공법으로 쌓아올려 만든다. 이를 수심 15~20미터 바닷물 속에 투하한 뒤 흙과 모래를 채워 가라앉힌다”고 설명했다.
   
   케이슨 한 개를 찍어 바닷물 속에 투하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일. 이보다 더 큰 최대 1만5000t의 대형 케이슨은 강정마을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화순항(港)에서 배로 운반해 온다. 아파트 높이의 케이슨을 들어올려 2만t까지 적재가능한 바지선에 태워 현장까지 옮겨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4시간. 방파제 조성에는 이 같은 블록 131개가 들어가는데 현재 75개까지 투하됐다. 송진영 소령은 “10층짜리 아파트 131개를 바닷물 속에 집어넣는 셈”이라고 했다.
   
   공사 현장에서 만난 부석종 해군기지사업단장(준장)은 “공정률이 39%”라고 말했다. 해군기지의 핵심인 항만의 공정률은 55%다. 공사가 진행돼 예정대로 2015년 말 완공되면 대소함정 20척이 드나들 수 있다. 육군의 여단에 해당하는 전단 3개가 들어가는 규모다. 육군의 사단에 해당하는 함대가 3개 전단으로 구성되는 만큼 사실상 제주해군기지는 대한민국 해군 제4함대의 모항(母港)이 되는 셈이다.
   
   이어도 상공을 둘러싼 한·중·일 3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이 중첩되면서 제주해군기지의 중요성이 재부각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측은 되레 내년도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투입될 예산 3065억원의 전액 삭감을 외치고 나섰다.
   
▲ 서귀포 화순항에 있는 플로팅독. 최대 2만t급 케이슨을 들어올려 운반하는 장치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줄곧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강정마을회를 비롯 제주 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는 지난 1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검증 없이 예산 없다. 국회 부대조건 위배한 2014년 제주해군기지 예산은 전면 삭감되어야 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채 상경 시위를 벌였다.
   
   반대 측은 기자회견에서 “국방부(해군)는 애초 ‘민군(民軍) 복합형 기항지’로 건설하라는 국회 부대조건을 위배하고 대형 군사기지 건설에 나섰다. 지난 정부는 제주해군기지를 15만t 크루즈선 2척이 동시 입출항할 수 있는 ‘민군복합 관광미항’으로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이는 군사기지에 부정적인 제주도민을 현혹하기 위한 대도민,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해군기지사업단 관계자에 따르면, 기지건설 반대 측이 공사 현장 인근 철조망 너머에 교대로 상주하며 공사 현장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해군기지 건설 현장 철조망 너머에는 반대 시위자들이 머무르는 텐트도 보였다. 이들은 각종 꼬투리를 잡아 블로그와 트위터에 올려 여론전을 펴왔다. 또 관청과 의원실 등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해 공사 진행을 늦춰왔다. 이에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상주하는 해군기지사업단 소속 37명과 삼성물산, 대림산업, 현대건설, 포스코건설 등 건설사 소속 작업인부 400여명은 극도의 신경을 써야 했다.
   
   해군기지사업단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비는 모두 약 1조294억원. 국토교통부 예산으로 반영되는 크루즈선 전용 국제여객터미널 건설비 534억원은 제외된 금액이다. 건설 반대 시위대의 주장을 반영해 국회에서 내년도 해군기지 건설 예산이 삭감되면 추가적인 공기 지연이 불가피하다.
   
   지루한 찬반 논란이 이어지며 해군기지에 상주할 군인과 그 가족들이 입주할 해군아파트는 부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해군기지 배후에 들어설 600가구 규모의 해군아파트는 7000여명이 입주할 예정으로 침체된 강정마을 경제를 활성화하고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직전의 강정초등학교를 되살릴 핵심시설로 여겨졌다. 하지만 반대가 이어지자 해군 일각에서는 “차라리 생활기반이 좋은 서귀포 시내로 들어가자”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최태복 해군본부 서울공보팀장(대령)은 “방공식별구역 문제로 제주해군기지의 필요성이 입증됐다”고 기자에게 강조했다. 제주해군기지는 이어도 해역 방어에 있어 결정적이다. 국방부 일각에서는 “해군기지뿐만 아니라 제주공군기지까지 필요한 상황”이란 말도 나온다.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이어도까지 거리는 507㎞, 배로 통상 23시간이 걸린다. 중국 동해함대의 모항인 저장성 닝보(寧波)에서 이어도까지는 398㎞이고 배로 18시간이 걸린다.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있는 규슈 사세보(佐世保)에서는 450㎞, 21시간이 걸린다. 우리 해군 3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목포에서도 340㎞, 15.5시간이 걸린다. 제주해군기지가 예정대로 들어서면 강정 해군기지에서 이어도 해역까지는 거리는 176㎞, 시간은 8시간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최태복 대령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는 국내 군항(軍港) 가운데 유일하게 태평양을 향해 곧장 열린 군항이다. 해군 작전사가 있는 부산이나 교육사가 있는 진해는 대마도 같은 자연 방파제가 있다. 3함대의 모항인 목포도 앞에 섬이 많아서 함정이 협수로를 빠져나와야 했다. 제주해군기지는 남방파제 동남쪽 입구만 열고 나가면 함정이 태평양으로 곧장 진격할 수 있다. 과거 해역방어, 연안방어 개념이 주축을 이룰 때는 ‘양항(良港)’, 즉 좋은 항만은 진해만(灣)처럼 움푹 들어간 항구였다. 하지만 인공위성과 레이더, 미사일의 발달로 양항의 의미는 많이 약해졌고 되레 곧장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기동성이 더 중요해졌다. 인천에 있던 해군 2함대 사령부를 평택으로 옮기고, 진해에 있던 해군작전사령부를 부산으로 옮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방파제의 기초가 되는 철근콘크리트 블록 케이슨.
현재 기지 건설 반대 측은 “제주해군기지는 지정학적 위치상 한·미·일 해군협력의 전초기지로 이용돼 동북아 패권 경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에서 미·일동맹과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 제주해군기지가 미국이 일본과 더불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동북아 해양의 군사화를 가속화해 불필요한 긴장관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수세적 논리로 일관한다.
   
   태평양으로 곧장 열린 항구를 통해 크루즈선이 들어올 경우 관광 수입도 더 올릴 수도 있다. 크루즈선을 통해 제주로 입항하는 관광객은 매년 급증세다. 2011년 6만4000여명에서 2012년 14만여명, 올 10월 현재 35만1000여명으로까지 늘었다.
   
   현재 제주행 크루즈관광객은 2011년 제주도가 임시 방편으로 제주시 제주외항에 조성한 크루즈선 전용부두를 통해 드나든다. 하지만 제주외항에는 변변한 국제여객터미널조차 없다. 이날 찾아간 제주외항의 크루즈선용 국제여객터미널은 컨테이너를 이어붙여 임시로 조성한 가건물로 ‘국제’란 말을 붙이기 무색할 정도였다. 결국 지난 11월 26일에야 4만8237m² 부지에 402억원을 투입해 지상 2층, 연면적 9885m² 규모의 국제여객터미널 착공에 들어갔다. 새 국제여객터미널은 2015년 7월 완공 예정이다.
   
   제주해군기지에 함께 들어서는 크루즈선 부두는 520m 길이 선회장을 갖춰 15만t급 크루즈선 두 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오는 2015년 말 완공 예정이다. 지리적으로도 톈진(天津) 등 중국 북방의 크루즈 승객들은 제주에서 처리하고, 상하이 등 남방에서 오는 크루즈 승객들은 서귀포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또 두 개의 크루즈항을 통해 관광객의 입출도(島) 동선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제주도는 해군기지에 들어서는 크루즈터미널에 기대가 높다. 제주도 해양개발과가 추산하는 오는 2020년 중국의 크루즈 관광객은 약 700만명. 서귀포는 상하이에서 출항한 크루즈선이 입항하기에 최적의 입지조건을 자랑한다. 크루즈터미널이 본격 가동하는 2020년에는 적어도 200만명의 중국 크루즈 관광객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제주특별자치도의 판단이다.
   
   제주특별자치도 해양개발과의 임영철 사무관은 주간조선에 “제주항에 있는 크루즈터미널은 30년 된 가건물로 지금도 수용을 다 못한다”라며 “지금은 기항지에 출입국 요원이 미리 나가서 크루즈선을 함께 타고 오면서 선상에서 출입국 수속을 밟고 있다”고 말했다. 임 사무관은 “2015년에 제주항과 서귀포항에 크루즈터미널이 동시 완공되면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기지와 크루즈항은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남은 과제도 있다. 해군기지 공사를 진행하며 600가구 1800명에 불과한 강정마을이 완전히 두 동강 나 서로 반목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찬반에 따라 강정마을 각 집마다 내건 깃발의 색깔도 각각 다르다. 반대 측은 ‘해군기지 결사반대’란 문구가 걸린 노란 깃발을 대나무 깃대를 걸어 뒀고, 찬성 측은 이에 맞서 태극기를 걸어 두고 있다. 기지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노란 깃발은 원래 빨간 깃발이었다”고 귀띔했다.
   
   강정마을의 중심가인 강정사거리는 이념 대결이 표출되는 장소다. 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소형마트 두 곳이 있는데 한 곳(나들가게)은 태극기를 걸고, 한 곳(코사마트)은 노란 깃발을 내걸었다. 해군과 공사현장 관계자들은 나들가게를, 소위 ‘활동가’들은 코사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한다. 특히 시위대 측은 그간 나들가게에 대한 불매운동과 함께 반품운동을 벌여왔다.
   
▲ 제주해군기지 육상부 공사 현장. 사진 오른쪽 구조물이 케이슨을 만드는 겐트리 크레인이다.

   태극기를 걸어둔 나들가게 유성마트의 관계자는 “지난 5년간 고생을 했는데 그나마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부터는 매출이 좀 올라오는 편”이라며 “앞 가게에서도 요즘 해군기지 반대시위가 조금 주춤해지니까 노란 깃발을 슬그머니 내려버렸다”고 말했다. 반대로 코사마트의 관계자는 “노란 깃발을 언제 내렸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디서 왔느냐. 해군기지 것들 나가라”며 거칠게 문전박대했다.
   
   12월 말 강정마을회장 선거를 앞두고는 강정마을에 전운도 감돈다. 해군기지 반대파인 강동균 마을회장의 연임이 이 선거에서 판가름난다. 강정마을회장은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자리다. 해군기지 건설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1800여명의 마을회장 선거에 이만큼 전국적 관심이 쏠린 적도 없을 것”이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내려와 선거를 감독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도 방공식별구역 사태를 거치며 반대 시위대의 세(勢)가 많이 약화됐다지만 외부 시위대의 시위는 어김없이 열린다.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4시면 일단의 신부와 수녀들이 공사 현장 출입구 세 곳을 가로막고 소위 ‘평화 미사’를 연다. 이날 강정마을에 상주하며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주도하고 있는 흰 수염을 기른 문정현 신부도 보였다. 해군기지 건설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미사를 한다고 공사 현장 차량의 진출입을 막는다”며 “미사 전에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재향군인회 양성기 홍보기획부장(예비역 해군 중령)은 “그동안 수많은 국책사업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에 발목이 잡혀 수천억원의 국고 손실을 가져왔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새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따라 이어도 상공수역에 대한 초계기 활동과 공군 주력기인 F-15K 전투기가 발진해 임무수행에 완벽을 기하도록 제주해군기지의 조속한 건설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성찬 의원(새누리당·경남 진해)은 “국회 국방위원회 안에서는 최근 이어도 문제나 주변국 문제(방공식별구역) 관련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간 이견이 전혀 없다”며 “동북아의 안정과 주변 해역 자원 확보, 해군의 대기, 준비에 있어서 제주도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