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들인 판검사출신,회장 구속에 눈만 껌벅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302/20/2013022002064_0.jpg)
최태원 SK(003600) (175,500원▼ 2,500 -1.40%)회장이 법정구속되면서 SK그룹이 혼란스럽습니다.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정점으로 집단 경영체제를 가동했지만 아무래도 최 회장의 빈 자리는 커 보입니다.
때문에 구속 당일까지 최 회장의 무죄를 확신했던 판·검사 출신이 몰려있는 SK그룹 법무 담당자들은 회사 안팎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내로라하는 판·검사 출신들이 재판 분위기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응한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SK그룹은 지난해 8월 17일 김승연 한화 회장이 법정구속된 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습니다. 규모나 방법은 다르지만 최 회장도 김 회장처럼 배임·횡령건으로 재판 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심에서 검찰이 양형 기준 최저 형량인 징역 4년을 구형하면서 법조인 출신 임원들은 결과를 낙관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선고는 검찰 구형보다 적게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지요. 1심 판사의 입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한다”는 말은 아니더라도 “그동안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을 고려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는 판결을 예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SK그룹은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로 최 회장이 구속된 이후 법조인 출신 영입에 힘을 써 왔습니다. 그룹 전체적으로 법무 전담 인력만 100여명으로 늘렸습니다. 그러나 최 회장의 두번째 구속을 막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아무리 뛰어난 판·검사 출신일지라도 유죄를 무죄로 바꾸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죄와 법정구속 판결이 날 것이라는 예상이나 정보보고 정도는 했어야 하는 것 아닌지 의문입니다. 법원을 취재하는 기자 한두 사람에게 물어보기만 했어도 그 정도 의견은 충분히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SK그룹은 공식적으로는 “그룹 법무팀은 경영상 주요 계약 등의 법률적 검토를 하는 조직일 뿐, 최 회장 재판을 담당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익명의 SK관계자는 “판·검사 출신 임원들이 소송을 직접 담당하지 않아도 변호인단 선임과 재판 대응 방안을 최 회장에게 조언하고 있다”며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 많은 법조인을 영입했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SK에는 7명의 판·검사 출신 임원이 있습니다. 이중 일선에서 수사를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등 검찰출신은 5명이나 됩니다.
SK는 과거 최 회장이 분식회계 혐의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기 3개월 전에 서울 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인 Y씨를 SK C&C 윤리경영실 실장으로 영입하면서 법조계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그는 최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을 맡았습니다.
지난해 1월에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P씨를 SK건설 윤리경영총괄(전무급)로 영입했습니다. SK 이사회 사무국장 L임원, SK하이닉스 코포레이트센터장 K임원, SK C&C 대외협력본부장 K임원 등도 검사 출신입니다. 판사 출신은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을 지낸 SK텔레콤 상임고문 N씨, SK이노베이션 지속경영본부장 K임원 등이 있습니다.
이들이 받는 연봉을 포함해 회사가 이들에게 들이는 비용을 합치면 약 100억에 이른다는 전언입니다. 이들은 계열사에 소속돼 윤리경영 관련 업무를 담당하지만 최 회장 등이 수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으면 최 회장에게 조언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변호사들과 달리 판·검사 출신이어서 누구보다 수사기관과 법정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겠지요.
- ▲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31일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날 최 회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조선일보DB
SK그룹 법무 관련 임원들은 이번 재판에서 변호인단과 기본적인 형사소송 재판 전략 등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의 구속은 어쩔 수 없지만 최태원 회장은 무죄임을 입증한다”는 소송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1심 재판부 판결 내용을 볼 때 SK그룹 법무 관련 임원과 변호인단이 소송 전략을 잘못 잡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재판부는 400장이 넘는 판결문에서 줄곧 최 회장이 횡령·배임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검찰과 재판부가 최 회장이 유죄라 생각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최 회장 측은 재판 내내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차라리 일부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요구했더라면 법정구속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옵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SK 판결은 많은 로펌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 판결문을 받아 봤는데 재판부는 최 회장이 횡령·배임 등 대부분의 혐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보통 공판 과정에서 재판부의 이런 의중이 드러나는데 SK 법무팀은 이런 눈치를 못채고 무조건 혐의를 부인해 역효과를 낸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SK의 임원들은 최 회장에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정보보다는 낙관적 전망만 조언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실제로 최 회장은 지난달 31일 징역 4년의 실형을 받고 법정구속될 때 “무엇을 제대로 증명 못했는지 모르겠다”며 울었습니다. 주변의 임원들이 “회장님, 틀림없이 무죄가 선고될 것입니다”라고 한 말을 믿었기에 최 회장의 충격이 더욱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 ▲ 최태원 다보스 포럼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달 1월24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 사회적 기업활성화 방안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낙관적인 전망만 듣다보니 선고를 일주일 가량 남기고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참가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역설했습니다. 재판부로서는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받는 피의자가 ‘사회적 기업’ 운운하며 내외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을 좋게 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SK 관계자는 “선고를 앞두고 있었지만 16년간 참석한 포럼에 참석하지 않아도 말이 나왔을 것”이라며 “다보스 포럼 참가는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 법무팀이나 다른 임원들이 관여할 만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최 회장을 걱정하는 임원이 있었다면 설령 일시적으로 오해를 받더라도 “회장님 절대로 참석하면 안됩니다”라고 고언(苦言)을 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기업 오너일가 법정구속의 신호탄이 된 이호진 태광 회장 선고부터 담철곤 오리온 회장 실형 선고 때에도 재판부는 대기업 오너들이 국민경제에 끼치는 경제적 영향력 보다는 책임을 강조해왔습니다.
실제 담철곤 오리온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재판부는 “그룹 회장 지위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해외시장 개척 등을 거론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으로 공정사회 취지를 훼손한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SK 법무팀과 관련 임원들은 이런 앞선 판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최 회장이 ‘부적절한 판단’을 하도록 방조한 셈입니다.
최 회장을 법정구속한 재판부는 “최 회장은 자신이 지배하는 다수의 유력기업을 범행의 수단으로 삼아 활용함으로써 기업 사유화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며 “SK그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렸다”고 판시했습니다.
- ▲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조선일보DB
법조계에서는 특별한 사정변경이 있지 않은 이상 무죄 등 1심 판결을 뒤집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재판부는 보통 일반적인 범죄의 경우 작량감경 권한을 통해 검찰 구형에 반을 깎아 선고하는 관례가 있지만 이번 재판에선 검찰 구형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그만큼 재판부의 처벌 의지가 강한 것이지요.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최 회장이 항소심에 혐의를 인정하면 양형이 다르게 적용돼 감경될 여지는 있지만 1심 결과가 무죄로 바뀌는 이변은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습니다.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처럼 건강 악화로 인한 형 집행정지를 받지 않는 한, 구속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2심에서도 실형이 선고되면 최 회장은 다시 상고할 가능성이 크고, 대법원까지 가게 되면 최소 2년 이상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판·검사 출신의 SK 임원들과 그들이 선정한 변호인단이 최 회장을 구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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