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 치/법

법원 "은행, 근저당비 돌려줘라" 첫 판결…소송 잇따를 듯 (조선일보 2013.02.20 17:51)

법원 "은행, 근저당비 돌려줘라" 첫 판결…소송 잇따를 듯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대출자들이 부담한 근저당권 설정비를 돌려주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근저당설정비 부담은 대출자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니 은행이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종전 판결들을 뒤집는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그동안 패소한 사건에 대한 항소심은 물론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2011년 5월 대법원이 '근저당 설정비를 소비자가 부담하는 은행 약관이 부당하다'고 판결하기 전 10년간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서 근저당 설정비를 부담한 소비자는 200만명이고 이들이 부담한 근저당 설정비는 10조원으로 추산된다

↑ /은행연합회 등 자료 취합

◆ "근저당비 개별약정 증거없어…은행이 돌려줘라"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판사 엄상문)는 장모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주택담보대출 근저당비 설정비를 돌려달라고 제기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 1심 판결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장 씨는 지난 2009년 9월 신한은행으로부터 1억원의 담보대출 근저당 설정비로 94만 700원을 냈으며, 이 가운데 인지세와 국민주택채권 할인비를 공제한 나머지 75만1750원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은 지금까지 지방법원이 내린 주택담보대출 근저당비 설정 소송 판결 가운데 고객이 은행을 상대로 승소한 첫 사례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2월 6일 첫 근저당비 반환 소송에서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고 이를 포함한 총 6번의 판결에서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은행이 줄줄이 승소한 것이다. 약관은 불공정하더라도 고객이 개별약정을 선택한 것은 자유의지라는 것이 판결의 주된 요지였다.

하지만 민사15부는 장 씨가 설정비를 내기로 개별 약정했다는 증거가 없고, 관련 법령을 종합할 때 설정비는 은행 부담이 맞는데도 고객이 부담한 것이므로 부당이득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원고 측 법무법인 태산은 추가 의견서를 통해 '고객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개별약정을 자유의지로 선택한 사례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무법인 태산 이양구 변호사는 "자유의지에 따른 고객의 선택이라면 약정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은행 측으로부터 약정 선택에 따른 금리결정 내부기준을 제출받아본 결과 실질적으로 이 같은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태산 측이 소송인들의 대출약정서 1997부를 확인한 결과 비용부담에 관한 합의가 없는 사람이 전체의 약 65%인 1228명에 달했다.

◆ 항소 및 유사 소송 잇따를 듯

그동안 은행들이 잇따라 승소했던 근저당 설정비 반환 소송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은행권은 지난해와 올 초 원고 패소한 소송에 대한 항소는 물론 새로운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권은 "은행이 담보대출을 하는 과정에 고객과 합의해서 근저당 설정비를 받은 만큼 돌려줄 의무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재판부의 판사의 성향마다 판결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판례를 뒤집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판결문을 자세히 봐야 하겠지만 잘못된 사실 관계가 없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1년 '근저당 설정비 등 대출 부대비용을 소비자가 부담케 한 은행 약관은 불공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도 은행들에 '2003년 1월 이후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근저당 설정비 전액을 고객에게 환급하고 인지세는 50% 돌려주라'고 결정했다. 은행들은 2011년 7월부터 담보대출의 근저당 설정비를 자체 부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