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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 미/여행정보

창조도시 요코하마 그 공간의 멋 (조선일보 2012.10.31 09:39)

창조도시 요코하마 그 공간의 멋

 

일본을 여행할 때 도시가 보고 싶다면 도쿄나 오사카를, 자연을 즐기고 싶다면 삿포로나 홋카이도를 떠올리기 쉽다. 요코하마는 그 경계에 있는 도시다. 도시의 쾌적함과 자연의 유려함을 함께 가지고 있는 항구도시. 공항에서도 가까워 일일생활권이라 불리는 요코하마. 어깨 힘 빼고 마음 편히 다녀오기에 딱 좋다.

도시다. 그런데 소음이 없다. 교통체증도 없다. 대신 탁 트인 공원이 있고, 한 바퀴 돌고 나면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초대형 관람차가 있다. 왜 수많은 일본 영화와 만화의 배경은 요코하마였나. 그건 이곳이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여백이 넉넉한 도시여서다. 이 여백의 미는 ‘최초의 개항도시’라는 역사적인 배경과 2004년부터 시작된 ‘창조도시 프로젝트’의 시너지 효과다.

여백의 미가 있는 창조도시 요코하마

일본의 요코하마와 가장 유사한 우리나라의 도시는 인천이다. 둘 다 각각의 수도인 도쿄, 서울과 가깝고 항구도시다. 근대화 시기에는 앞선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 도시가 가진 고민과 한계도 비슷하다. 요코하마는 개항 이후 150년 정도 근대화를 이끌며 도쿄와 함께 중공업 시대를 열었다. 시대가 바뀌고 제조업에서 IT, 관광으로 아이템이 바뀌었다. 버블경제로 인한 타격이 커 한물 간 도시가 될 뻔도 했다.

이 도시를 다시 일으킨 건 ‘창조도시 프로젝트’였다. 요코하마가 쾌적하고 안락한 구획을 가지게 된 건 이 덕분이다. 2004년부터 문화예술도시 창조사업본부를 운영한 요코하마는 현재 ‘창조도시’의 모범이 되고 있다. 요코하마를 걷다 보면 특별한 관광상품이 없어도,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잘 만들어진 도시가 가진 힘이다.

요코하마 창조사업본부가 추진해온 요코하마 도시 디자인의 목표는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자 공간을 확보한다’, ‘거리의 형태적, 시각적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시내에 녹지대 등 열린 공간을 풍부하게 한다’,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자산을 잘 활용한다’ 등이다. 요코하마에서 대표적인 몇 군데만 가봐도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도시공원 ‘야마시타’, 미래의 항구 ‘미나토미라이21’

요코하마의 뉴그랜드 호텔은 옛 명사들이 묵었던 명망 있는 숙소다. 료칸(일본식 다다미 여관) 같은 일본 고유의 멋은 없지만, 현대물로서도 충분히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이 호텔에서 창밖을 보면 중앙 분수와 주변 조경이 잘 어우러진 바다공원이 보인다. 1930년에 만들어져 요코하마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 중 하나로 불리는 ‘야마시타 공원’이다. 새벽부터 조깅이나 체조를 하는 이들이 많아 저절로 영화 속 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곳에는 사연이 있다. 바로 간토대지진 후 바다를 메워 만든 공원이라는 것.

예전에는 바닷물이 출렁였을 공원 한쪽에 떠나지 못하는 여객선 ‘히카와마루’가 정박되어 있다. 요코하마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이 여객선은 1930년부터 30년간 시애틀 항로를 타고 태평양을 수백 차례 횡단한 1만 2천 톤의 호화 여객선이다. 요코하마항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설치된 뒤로는 레스토랑, 공연장 등을 갖춘 관광지가 됐다. 해 질 녘이면 배 주위로 조명이 켜져 운치 있는 풍경이 된다.

‘미래의 항구’라 불리는 ‘미라토미라이21’은 요코하마가 1988년에 조성한 빌딩숲이다. 도쿄의 수도권 기능을 분담하는 역할로 만들어졌다. 니혼마루 메모리얼 파크, 요코하마 코스모 월드, 범선 니혼마루 등의 볼거리가 있다. 요코하마의 마린타워에 올라가면 잘 정돈된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상 70층, 총 296m 높이의 타워에는 로비에서 69층까지 순식간에 올라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있다. 전망대인 스카이 가든에 서면 도쿄 시가지는 물론, 날씨가 좋은 날은 후지산까지 보인다. 무엇보다 요코하마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바다에 연결된 항구와 현대식 건물들, 그 사이를 돌고 있는 회전 관람차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1 태평양을 누비던 선박 ‘히카와마루’. 지금은 바다 위에 정박돼 있다. 1930년부터 30년간 시애틀 항로를 횡단한 이 호화여객선은 요코하마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설치됐다. 2 2004년부터 시작된 창조도시 프로젝트에 따라 깨끗하면서 보행자를 배려한 길을 만들고 있는 요코하마 시내의 모습. 3 세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과 컵라면을 만든 닛신이 세운 컵누들뮤지엄. 직접 컵라면을 만들어볼 수 있고, 라면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과 컵누들뮤지엄

일본의 지도를 펴면 각기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지역마다 다른 라멘을 맛볼 수 있다. 돼지고기로 육수를 낸 돈코츠라멘부터 면을 국물에 찍어먹을 수 있는 츠케라멘까지.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에 가면 각 지역의 대표 라멘을 골고루 먹어볼 수 있다. 박물관이라고 전시만 해둔 게 아니다. 지하 2층 식당가에는 라멘을 판매하는 소규모 식당들이 마을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다. 라멘의 가격은 550엔부터. 작은 사이즈로 여러 집의 라멘을 두루 맛보는 재미가 있다. 1층에는 기념품 숍이 있다. 입장료는 300엔. 건물 내부를 옛날 일본 거리처럼 꾸며놓은 관광명소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과거’,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미래’라고 쓰여 있다. 사소한 발판이나 표지판에 담겨 있는 시그널을 찾아보는 것도 일본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라멘박물관이 일본의 옛 정취를 담고 있다면, 세계 최초로 봉지라면과 컵라면을 만든 기업 닛신에서 건립한 컵누들뮤지엄은 현대적이다. 닛신의 창업주인 고(故) 안도 모모후크의 업적과 생애, 각국의 라면과 닛신 라면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컵라면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물론 방학이 되면 일본의 가족 단위 관람객들까지 몰려 박물관 안을 가득 메운다. 컵 바깥에 들어갈 그림과 컵 내부에 들어갈 토핑을 직접 골라 만들고, 컵 안에 라면이 들어가는 모습부터 진공포장되는 모습까지 눈앞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쉽고 간편하면서도 의미 있는 기념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두 박물관은 형식과 외양은 다르지만, ‘라면’이라는 공통의 콘텐츠를 가지고 지루하지 않은 볼거리와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요코하마의 관광명소로 손색이 없다.

요코하마 속 유럽 야마테 마을과 빨간 구두의 소녀

개항 후 외국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 야마테 지역이다. 지금도 유럽식 건물들이 남아있고, 외국인 거주자들도 많다. 근처 모토마치 쇼핑거리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던 상점들로 형성되었다. 고급스런 부티크, 이탤리언 레스토랑, 차와 케이크를 파는 고급 카페들이 모여 있다. 마을 초입에 있는 외국인 묘지는 1854년 미국 군함에서 사고로 죽은 로버트 윌리엄 수병을 매장하면서 만들어졌다. 40개국의 외국인 약 4천 명이 묻혀 있다.

요코하마의 상징인 ‘빨간 구두의 소녀’도 이 마을과 연관이 깊다. 개항기에 미국인 선교사에게 입양되었지만 결핵에 걸려 미국에 가지 못하고 고아원에 맡겨진 채 어린 나이에 숨진 소녀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동요로 만들어져 불리기도 했다. 요코하마에는 지금도 빨간 구두의 소녀를 테마로 만든 ‘빨간구두버스(이카이쿠츠버스)’가 다니는데 1회 탑승비용은 100엔이다.

최대 규모 차이나타운, 추카가이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차이나타운이 요코하마에 있다. 고베의 난킨마치, 나가사키 신치추카가이와 함께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으로 꼽힌다. 5백여 개의 상가에 6천 명의 인력이 일하고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1920년대 상하이를 재현해놓은 ‘요코하마 다이세카이’가 특히 볼거리다. 1859년 요코하마가 개항될 때 들어온 유럽 상인들이 중국 통역관을 데려오면서 만들어졌다.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중국식 만두가 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