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 미/여행정보

절벽과 초원의 하모니 들으며 내 안의 '하이디'를 만나다 (조선일보 2012.08.23 04:00)

절벽과 초원의 하모니 들으며 내 안의 '하이디'를 만나다


 

알프스 트레킹맨리헨 조망대

스위스 중앙에 솟아오른 맨리헨(2342m)은 베르네 오벌란트 알프스의 조망대다. 360도 사방에 만년설산이나 푸른 산릉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 최고봉인 융프라우(4158m)를 비롯해 묀히(4107m), 아이거(3970m), 베터호른(3692m) 같은 설산이 위압적인 고산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로우처호른(2230m)에서 파울호른(2680m)으로 이어지는 산릉은 칼날처럼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평화로운 알프스 산록의 전형적 풍광을 보여준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관광도시인 인터라켄에서 출발하는 융프라우철도는 라운터부르넨(796m)에서 톱니를 물며 오르막길로 접어들다가 벤겐에서 잠시 정차한다. 알프스풍 정취가 넘치는 마을 분위기에 이끌려 열차에서 내려서자 빙 둘러싼 산줄기에 포근히 안긴 기분이다. 그중 초록빛 산릉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맨리헨 능선이다.

융프라우를 비롯한 하얀 설산과 푸른 산록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다. 케이블카 터미널에서 맨리헨 정상으로 오르는 트레커들.
설산은 하얀 구름이 푸른 산록으로 밀려들면서 더 한층 신비로워진다. 아이거, 쉬렉호른, 베터호른(오른쪽에서부터)이 초원능선을 배경으로 웅장하게 솟아 있다. 맨리헨과 클라이네 샤이데크 사이의 능선.

케이블카를 타고 맨리헨으로 오르는 사이 푸른 초원과 숲은 서서히 일어서더니 벼랑으로 변한다. 절벽 위 푸른 능선에 올라서자 거대한 장벽이 펼쳐진다. 베터호른, 아이거, 뮌히, 융프라우는 정수리에 하얀 눈을 살짝 얹은 채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저렇듯 험난한 설산과 절벽은 엄두 내지 못하더라도 초원 산봉이라도 올라보자는 마음에 맨리헨 정상으로 향한다.

젖소들 방울 소리에 발맞춰 얼마 걷지 않았는데 벌써 봉긋 솟아오른 정상이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부드러운 산릉이 펼쳐진다. 로우처호른~파울호른 능선은 직선과 곡선의 멋진 하모니를 이루며 선을 긋고 있고, 그 뒤로 인터라켄의 푸른 호수는 옥빛 에메랄드처럼 반짝인다. 구름도 그 풍광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꼼짝 않고 서 있다. 영봉에 오른 이들의 표정은 다양하다. 아이들은 무작정 좋고 젊은이들 눈망울에는 꿈이 담겨 있다. 허리 구부정한 노인들은 지나간 세월이 아쉬운 듯하다.

산은 구름을 위로 아래로 밀어내면서 맑은 기운을 내뿜는다. 그 기운을 빨리 느껴보기 위해 클라이데 샤이데크를 향해 내려서는 사이 산릉에 예쁘게 올라앉은 산장에서 흘러나오는 고음의 알프스 요델 소리는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젖소들의 방울 소리와 어우러진다. 알프스 소년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산길 양옆 초원들은 노랑·보라·빨강 등 다양한 색깔의 야생화를 피워 놓아 트레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그렇듯 아름다운 풍광을 발아래 깔고 1800m 높이로 솟구친 아이거 북벽은 천의 얼굴을 지닌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린다. 구름 안개가 오락가락 거릴 때마다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북벽은 눈과 바위, 안개가 뒤섞여 야릇한 선경(仙境)을 자아내는 거대한 절벽이었다.

저렇듯 신비스러우면서도 웅장한 외모에 수많은 클라이머들이 사고를 당했음에도 도전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리라. 트레커도 매한가지. 어서 다가서고픈 마음에 걸음을 서둘렀다.


여행수첩

▨맨리헨 트레킹은 스위스 알프스를 대표하는 베르네 오벌란트 풍광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코스다. 망대 같은 산봉에서 편안한 산길을 따르며 융프라우에서 베터호른으로 이어지는 유명 산봉뿐만 아니라 쉴트호른처럼 낯선 산봉우리를 마주할 기회도 주어진다.

트레킹 코스는 클라이네 샤이데크역(2061m)을 거쳐 아이거 북벽 트레일로 이어진다. 철도 개통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된 호수로 올라서면 호숫가 바윗돌에 'Kor'라는 글씨와 함께 새겨진 이름이 눈에 띈다. 아이거 북벽을 등반하다 사망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여기서 트레일은 지능선을 넘어선 다음 아이거 북벽 기슭으로 접어든다. 북벽은 잠시도 마음을 고요하게 놔두지 않는다. 거대한 북벽 위용에 섬뜩 놀라고, 눈 녹은 물은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며 거대한 폭포를 연출하는가 하면 물줄기가 흩날리면서 얼굴에 차갑게 뿌려댄다. 트레킹은 대개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2시간30분 거리인 알피글렌 열차역(1616m)에서 끝을 맺고, 여기서 융프라우 열차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내려선다.

▨맨리헨~아이거 북벽 트레킹은 요즘이 피크 시즌으로 10월 중순까지도 멋진 풍광을 누릴 수 있다. 기점은 그린델발트(1034m), 벤겐(1274m), 클라이네 샤이데크(2061m) 세 곳으로 모두 융프라우철도 중간역이다. 그중 휴양도시인 벤겐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가장 쉽고 빨리 맨리헨에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 종점(2230m)에서 정상인 맨리헨 지펠(2343m)까지는 20분 거리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시작하면 케이블카 이용료를 줄일 수 있다. 왕복 3시간30분.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메모리얼이 조성된 호수를 거쳐 아이거 북벽을 끼고 알피글렌까지 잇는 트레킹은 3시간 정도 걸린다.

여행 기점인 인터라켄 오스트(Interlaken Ost)까지는 취리히(2시간)나 제네바(3시간40분)에서 열차를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인터라켄 도착 이후에는 라우터브룬넨~클라이네 샤이데크~융프라우요흐~클라이네 샤이데크~그린델발트~인터라켄 오스트를 순환(혹은 역방향)하는 융프라우 철도를 이용해야 한다. 융프라우열차는 할인 쿠폰 이용시 당일권 135CHF(정상요금 190.2CHF), 여름 2일 VIP 패스 175CHF(정상요금 325CHF), 3일 VIP 패스 195CHF(〃). 할인쿠폰 문의 동신항운 02-756-7560.

인터라켄의 발머스 (www.balmers.com)와 그린델발트의 다운타운로지(www.downtown-lodge.ch)는 여행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는 게스트하우스다. 공동취사장과 샤워장 외에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발머스 조식 포함 28CHF, 다운타운로지 조식 포함 38CHF.